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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355

손수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도쿄제국법과대학 교수, 하세가와 킨조 선생님은 베란다의 등나무 의자에 앉아 스트린드베리의 극작술드라마투르기을 읽고 있었다. 선생님의 전문은 식민 정책의 연구이다. 따라서 독자는 선생님이 드라마투르기를 읽는 게 조금 뜬금 없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학자뿐만 아니라 교육자로도 이름을 알린 선생님은 전문 연구에 필요하지 않은 책이라도 그게 모종의 의미로, 현대 학생의 사상이나 감정 따위에 관계가 있다면 틈이 나는 대로 반드시 한 번은 훑어보시곤 하셨다. 실제로 요사이엔 선생님이 교장을 맡고 계신 어느 고등 전문학교 학생이 애독한다는 단지 그뿐인 이유로 오스카 와일드의 심연으로부터나 의향 같은 것마저 읽으셨다. 그런 선생님이시니 지금 읽는 책이 유럽의 근대 희곡 및 배우를 논하는 것이라도 별달리 이상할 건 .. 2021. 8. 30.
출범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루세 군. 너와 헤어진 후로 벌써 한 달이 조금 넘었어. 시간 참 빠르네. 이래서야 너와 우리를 가로 막을 5, 6년도 의외로 빨리 지나갈지 모르겠어. 네가 요코하마에서 배를 타고 떠난 날, 징이 울고 배웅 나온 사람들이 모두 사다리를 타고 배에서 부두로 내려왔을 때 나는 존즈와 합류했지. 물론 그 전에 갑판에서 모습을 보았지만 네 방에도 살롱에도 나타나지 않아 이미 돌아간 줄 알았어. 그런데 갑자기 나를 붙들고는 아주 기운차게 여기에 오면 항상 여행을 하고 싶다느니 자기도 내년인지 내후년인지엔 미국에 간다느니 여러 말을 하는 거야. 나는 적당히 대답하면서 굉장히 애매한 태도로 상대에 임했어. 애당초 엄청나게 더웠거든. 또 배가 찌릿찌릿 아팠어. 도저히 그가 떠드는 영어를 하나하나 이해할 만큼 긴장할 .. 2021. 8. 29.
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마감을 내일로 앞둔 오늘 밤, 단숨에 이 소설을 쓰려고 한다. 아니, 쓰려고 한다가 아니다. 써야만 한다. 그럼 뭘 쓰는가――그건 이어지는 본문을 읽어주셨으면 한다. ――――――――――――――――――――――――― 칸다 신보쵸 부근에 자리한 한 카페에 오키미 씨라는 여직원이 있었다. 나이는 열다섯인가 열여섯 먹었을까. 외견은 좀 더 어름스럽다. 일단 색이 하얗고 눈이 맑으니 코 끝이 살짝 위를 향해 있더라도 일단 미인으로 쳐줄 수 있다. 그런 오키미 씨가 머리를 한가운데서 갈라 물망초 비녀를 하고 하얀 앞치마를 입은 채 자동 피아노 앞에 서있는 모습은 마치 타케히사 유메지 군의 그림 속 인물이 뛰쳐나온 것만 같다――그런 이유로 이 카페 단골 사이에선 일찍부터 통속소설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물론 .. 2021. 8. 28.
기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편집자 중국으로 여행 가신다 들었습니다. 남쪽인가요, 북쪽인가요? 소설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오를 생각입니다. 편집자 준비는 다 하셨고요? 소설가 대강은 마쳤습니다. 다만 읽으려던 기행이나 지지地誌를 다 읽지 못해서 곤란한 참이네요. 편집자 (관심 없다는 양) 그런 책이 몇 권이나 있나요? 소설가 의외로 많지요. 일본인이 쓴 것 중에는 78일 유랑기, 중국 문명기, 중국 만유기, 중국 불교 유물, 중국 풍속, 중국인의 기질, 연산초수, 소석소관, 북청견문록, 장강 10년, 관광기유, 정진록, 만주, 파촉, 후난, 한커우, 중국풍운기, 중국―― 편집자 그런 걸 다 읽으셨나요? 소설가 아뇨, 아직 한 권도 읽지 않았지요. 그리고 중국인이 쓴 것 중에는 대청통일지, 연도유람지, 장안객화, 제경―― 편집자 아니,.. 2021. 8. 27.
하이가 전시회를 보고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이가 전시회에 갔더니 일단 시모무라 이잔 씨의 한세츠가 굉장히 뛰어나서 놀랐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뛰어난 거 이상으로 비싸기도 해서 놀랐다. 물론 이건 이잔 씨만 그런 건 아니다. 모든 선생님의 하이가에 조금씩은 놀랐다. 이렇게 말하면 선생님들의 그림을 경멸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되려 머리 어딘가에 하이가는 저렴한 거란 생각이 자리해 있었다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개중에는 그림 자체는 볼품없으면서 가격만 비싼 것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지독해서 누가 사면 지독한 걸 후세에 남기는 꼴이 되니 일부러 아무도 못 살 법한 높은 가격을 붙인 거라 추측했다. 단지 그런 그림이 두세 점 가량 이미 예약이 돼있는 걸 보면 누구보다도 먼저 .. 2021. 8. 26.
온천 일화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는 이 온천 여관에 한 달 가량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풍경'은 아직 한 장도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탕에 몸을 담그고 코단을 읽고 좁은 거리를 산책하고――그런 생활을 반복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도 한심한 생활에 황당할 정도입니다.(작구 주. 이 동안에 벚꽃이 지고 할미새가 지붕으로 오고 사격에 7엔 50전을 쓰고 시골 게이샤를 만나고 야스키부시 연극에 놀라고 고사리를 따러 가고 소방 연습을 보고 지갑을 떨어트리는 등 적으려면 열 줄도 넘게 적을 수 있다.) 그 김에 소설 같은 사실담 하나를 보고할까요. 물론 저는 아마추어니까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치 소설이라도 읽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부디 그런 줄 알고 읽어주.. 2021.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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