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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키치모노10

소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크리스마스 작년 크리스마스 오후, 호리카와 야스키치는 스다쵸의 구석에서 신바시행 승합자동차를 탔다. 그의 자리는 있었으나 자동차 안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만원이었다. 그뿐 아니라 지진 후 도쿄의 길거리는 자동차를 모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야스키치는 오늘도 평소처럼 주머니에 넣어둔 책을 꺼냈다. 하지만 카지쵸에도 이르지 않은 사이에 기어코 독서만은 단념했다. 이 안에서도 책을 읽으라는 건 기적을 행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적은 그의 직업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원광을 두른 과거의 서양 성자의――아니, 그의 옆에 앉은 가톨릭 선교사는 눈앞에서 기적을 행하고 있다. 선교사는 모든 걸 잊은 것처럼 작은 서양 문자가 적힌 책을 읽고 있다. 나이는 벌써 쉰은 되었으리라. 철 테두리의 코안경을 쓴 닭.. 2021. 11. 13.
문장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호리카와 씨. 조사弔詞 하나만 적어주시겠습니까? 토요일에 혼다 소령의 장례식이 있는데――그때 교장 선생님께서 읽으실 거라서요……" 후지타 대령은 식당을 나와 야스키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호리카와 야스키치는 학교 학생들에게 영어 읽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수업 틈틈이 조사를 쓰거나 교과서를 편집하거나 어전 강연의 참석을 하거나 외국 신문 기사를 번역하는 둥――이따금 그런 일도 해야만 했다. 그런 걸 부탁하는 건 항상 이 후지타 대령이다. 대령은 겨우 마흔 정도 됐을까. 칙칙하게 타고 살이 늘어진 신경질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야스키치는 대령보다도 한 걸음 뒤를 걸으며 저도 모르게 "어라?"하고 말했다. "혼다 소령께서 돌아가셨습니까?" 대령도 "어라?"하고 말하듯이 야스키치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2021. 9. 12.
십 엔 지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어느 흐린 초여름 아침, 호리카와 야스키치는 맥없이 플랫폼의 돌계단을 올랐다. 물론 대단한 일은 아니다. 단지 바지 주머니 밑바닥에 60몇 전 가량 밖에 없는 걸 불쾌하게 여기고 있을 뿐이다. 당시의 호리카와 야스키치는 항상 돈이 궁했다. 영어를 가르치고 받는 보수는 고작해야 한 달에 60엔이었다. 틈틈이 쓰는 소설은 '츄오코론'에 실렸을 때마저 90전 이상이었던 적이 없다. 물론 한 달에 5엔짜리 방값과 한 끼 50전의 식료는 그것만으로도 문제가 없었다. 그뿐 아니라 그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자신의 내면을 사랑한 건――적어도 그 경제적 의미를 중시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책은 읽어야 한다. 이집트 담배도 피워야 한다. 연주회 의자에도 앉아야 한다. 친구들 얼굴도 봐야 한다. 친구 이외의 여자 얼굴도.. 2021. 9. 11.
야스키치의 수첩에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멍 어느 겨울 저녁, 야스키치는 칙칙한 레스토랑 2층에서 기름 찌든 내가 나는 구운 빵을 입에 물고 있었다. 그의 테이블 앞에는 균열이 생긴 하얀 벽이 있었다. 벽에는 또 "핫(따듯한) 샌드위치도 있습니다"하고 적힌 얇고 긴 종이가 기울어져 붙어 있었다. (그의 동료중 하나는 이걸 "아따듯한 샌드위치"라 읽어 그를 정말로 신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왼쪽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오른쪽에는 바로 유리 창문이 있었다. 그는 구운 빵을 물면서 이따금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거리 하나를 둔 아연 지붕의 옷가게 하나가 직공용 작업복이나 카키색 망토 따위를 진열해두고 있었다. 그날 밤 학교에선 여섯 시 반부터 영어 회화 모임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는 출석해야 할 의무가 있었지만 학교 주변에 살지 .. 2021. 8. 17.
오우가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작년 봄밤――그래도 아직 바람이 차고 달이 밝은 밤 아홉 시 가량. 야스키치는 세 친구와 우오가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세 친구란 하이진 로사이, 서양 화가 후츄, 시화사 죠탄――세 사람 모두 본명은 밝힐 수 없지만 각자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 수완가들이다. 특히 로사이는 한참 때라서 신경향 하이진치고는 일찍부터 이름을 날린 남자였다. 우리는 모두 취해 있었다. 물론 후츄와 야스키치는 술이 잘 받지 못 하고 죠탄은 희대의 호주가이기에 세 사람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로사이만은 발걸음이 조금 위태로웠다. 우리는 로사이를 가운데에 둔 채로 비린내 섞인 밤바람이 구는 거리를 니혼바시 쪽으로 걸어갔다. 로사이는 태생부터 에도 남아였다. 증조부는 쇼쿠산이나 분쵸와 교우가 깊었던 사람이다. 집도 카시의 마.. 2021. 6. 12.
인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야스키치는 이제 막 서른이 되었다. 그런 데다가 여러 매문업자처럼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러니 '내일'은 생각하더라도 '어제'는 자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길을 걷거나 원고용지를 마주하거나 전차에 타고 있을 때에 문득 과거의 정경 하나가 선명히 떠오를 때가 있다. 후각 자극이 종래의 경험을 연상시켜 생기는 결과라고 한다. 또 그 후각 자극이란 것도 도심에 살고 있는 슬픔으로 악취라 불리는 냄새뿐이다. 이를테면 기차 매연 냄새를 맡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이다. 하지만 어떤 아가씨의 기억――5, 6년 전에 만난 아가씨의 기억은 그 냄새만 맡으면 굴뚝에서 올라오는 불꽃처럼 금세 되살아 난다. 그 아가씨와 만난 건 피서지의 정차장이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그 정차장의 플랫폼이었다. 당시 그 .. 202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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