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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84

근심의 패배 - 다자이 오사무 본심은 저세상에서 말해라. 그런 말이 있다. 진짜 사랑의 실증은 이 세상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지정할 수 없는 걸지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 도무지 불가능한 일 아닌가. 신뿐이 사랑할 수 있다. 정말로? 다들 잘 알고 있다. 내 외로움을 다들 잘 알고 있다. 이것도 내가 오만하기 때문일까. 무어라 말할 수 없다. 나카타니 타카오 씨의 "봄의 에마키" 출판 기념회 자리서 이부세 씨가 낮은 목소리로 축사를 읊었다. "진지하고 솔직한 작가가 진지하고 솔직한 작가로 인정 받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로" 어미가 떨리고 있었다. 가끔씩, 조금 쓰는 것이니 충분히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써야 한다. 넌센스. 칸트는 내게 생각의 넌센스를 가르쳐주었다. 말하자면 순수한 넌센스를. 지금 문득 댄디즘이란 말을 떠.. 2022. 5. 2.
용모 - 다자이 오사무 요즘 들어 내 얼굴이 또 한 층 커진 듯하다. 원래도 작은 얼굴이 아니었는데 요즘 들어 한 층 더 커졌다. 미남이란 얼굴이 작고 이목구비가 잘 모여 있는 사람을 말한다. 얼굴이 아주 큰 미남은 별로 사례가 없는 거 같다. 상상하기도 어렵다. 얼굴이 큰 사람은 모든 걸 순순히 체념하고 '훌륭하다', '장엄하다', '보기 좋다' 같은 말을 마음에 새겨둘 수밖에 없는 듯하다. 하마구치 오사치 씨는 얼굴이 굉장히 큰 사람이었다. 역시 미남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기 좋았다. 장엄하기도 했다. 용모를 위해 조용히 수양한 적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이렇게 된 이상 하마구치 씨처럼 되도록 수양할 수밖에 없지 싶다. 얼굴이 커지면 어지간히 조심하지 않는 이상 남들이 오만하다 오해한다. 사람을 내려다 보는 거냐고 뭐 .. 2022. 4. 13.
'지구도' 서 - 다자이 오사무 "신조" 편집자 나라사키 츠토무 씨가 내게 명하길 "근래의 감상 운운을" 적어보랍니다. 생각하기에 "다스 게마이네"의 주역 따위를 해보라는 친절심에서 나온 말일 테지요. 졸작 "다스 게마이네"는 이 나라의 저널리즘에게 과거에 없었을 정도의 부당한 냉대를 받아 저로선 말로 못할 고통을 받았습니다. 혀를 태우고 가슴이 타오르고 온 생명을 담은 절규를 했음에도 마이동풍인 마당에 이제 와서 무슨 감상을 쓰란 말일까요. 단지 왼쪽에 "지구도"를 제목으로 하는 한 편을 조용히 보여줄 뿐입니다. 이는 풍자도 아니며 격언도 아니고 한 편의 슬픈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젊은 20대의 독자여,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읽은 후에 이 나라가 아직 길을 헤매어 좋은 백석 하나 없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우리의 피가 눈.. 2022. 4. 9.
답안낙제 - 다자이 오사무 "소설 수업에 관해 말해달라"는 화제는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취직 수험을 받으러 갔더니 초등학교 수학 문제가 나와 크게 당황한 모습과 닮았다. 원의 면적을 산출하는 공식도 동물 다리를 통한 계산도 차라리 π나 미지수 문자를 쓸 수 있으면 편할 텐데. 그런 한탄을 내뱉는 것과 살짝 비슷하다. 이래저래 복잡하게 간질이는 통에 나는 부끄러울 따름이다. 스타트 라인에 줄지어 아직 출발 신호를 알리는 총이 울리기도 전에 뛰쳐나가 심판의 제지도 듣지 않고 열심히 달려 도착한 백 미터. 득의양양히 골에 뛰어들어 자, 기자들의 플래시를 기다려볼까 하고 활짝 웃어 보이나 좀 상황이 이상하다. 갈채는 전혀 없고 주위 모든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양 그 선수의 얼굴을 본다. 선수는 비로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아 부끄럽고 괴로.. 2022. 4. 5.
재미가 아닌 -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말로를 생각해 오싹해져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밤에는 지팡이를 질질 끌며 아파트서 나와 우에노 공원까지 걷는다. 내 하얀 유카타도 이젠 계절감을 잃어서 아마 하얗게 눈에 띄겠지 싶었다. 더욱 슬퍼져 사는 게 싫어졌다. 시노아즈이케를 스치며 부는 바람은 미적지근하고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연못의 연꽃도 자란 채로 썩어서 비참한 추태를 드러내고 줄지어서 저녁의 선선한 바람을 쐬는 사람들도 얼빠진 얼굴을 한 채로 피로의 색이 짙으니 세상의 종말을 떠올리게 했다. 우에노역까지 와버렸다. 무수한 검은색 여행객이 이 동양에서 제일 크다는 정차장서 우글우글 꿈틀거리고 있었다. 모두 떨거지 같은 처지다. 내게는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토호쿠 농촌의 마의 입구라 불린다. 여기를 지나 도심으로 나.. 2022. 3. 29.
아침 - 다자이 오사무 나는 노는 걸 굉장히 좋아하여 집에서 일을 하면서도 멀리서 친구가 찾아올 걸 남 몰래 기대하곤 한다. 그때 현관이 덜컹 열리면 눈살을 찌푸리고 입에 힘을 주다가도 실은 가슴이 뛰어 쓰다 만 원고용지를 정리하고는 그 손님을 맞이한다. "아, 작업 중이셨나요." "아뇨 뭘." 그리고 그 손님과 함께 놀러 나간다. 하지만 그래서야 도무지 일이 되지 않으니 어떤 곳에 비밀의 작업실을 마련하였다. 작업실이 어디 있는가. 이는 가족도 알지 못한다. 매일 아침 아홉 시면 나는 집사람에게 도시락을 부탁하여 작업실로 출근한다. 비밀 작업실을 찾는 사람도 없기에 일도 대개 예정대로 진행된다. 하지만 오후 세 시쯤 되면 피로도 찾아오고 사람이 그리워지며 무엇보다 놀고 싶어서 적당히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는 길.. 2022.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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