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SMALL

다자이 오사무84

그 날 - 다자이 오사무 이는 지금으로부터 사 년 전의 일이다. 내가 이토 미시마의 지인 집 2층에서 여름을 보내며 로마네스크란 소설을 쓸 적의 이야기다. 어느 밤, 술에 취해 자전거를 끌다 다쳤다. 오른발 복사뼈 위쪽이 찢어졌다. 상처는 깊지 않았으나 술 탓에 출혈이 굉장히 심해 황급히 의사에게 달려갔다. 마을의 의사는 서른두 살쯤 되어 보이는 몸집이 큰 사람으로 사이고 타카모리와 닮아 있었다. 굉장히 취해 있었다. 나와 엇비슷할 정도로 비틀비틀 진찰실에 나타난 통에 나는 우스웠다. 치료를 받으면서 쿡쿡 웃어버렸다. 그러자 의사도 쿡쿡 웃었고 결국 참을 수 없어서 둘이 목소리를 맞추어 크게 웃었다. 그 밤부터 우리는 친해졌다. 의사는 문학보다 철학을 좋아했다. 나도 그쪽을 이야기하는 게 마음이 편해 말이 잘 통했다. 의사의 세.. 2022. 3. 2.
여인창조 - 다자이 오사무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게 실소할지 모르나 힘들어지면 내 처지를 여자로 바꾸어 여러 여자의 심리를 추측하고 있자면 별로 웃을 수 없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그야말로 말과 각로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다르다. 생각에 잠기는 사람들은 이를 깨닫는 게 굉장히 느리다. 나도 최근에야 깨달았다. 이름을 잊었는데 어떤 외국인이 쓴 쇼팽전을 읽었더니 그 안에 코이즈미 야쿠모의 "남자란 평생서 적어도 만 번은 여자가 된다"는 기괴한 말이 인용되었는데 그런 일은 없지 싶다. 그건 안심해도 좋다. 일본 작가 중에서 진짜 여자를 그리고 있는 건 슈코이리라. 슈코가 그리는 여자는 실로 지루하다. "흐음"이니 "그렇구나"하고 중얼거리기만 할 뿐으로 조금도 사색적이지 않다. 그건 정확하리라. 말하자면 그리운.. 2022. 2. 28.
I can speak - 다자이 오사무 괴로움은 인종의 밤, 체념의 아침. 이 세상이란 체념을 노력해야 하는가. 슬픔을 참아야 하는가. 젊음은 날로 좀 먹혀 가고 행복도 향간서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나의 노래는 목소리를 잃고 한동안 도쿄서 무위도식하며 그동안 노래가 아닌 소위 "생활의 중얼거림"이라 해도 좋을 걸 적기 시작해 자신의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그 작품들을 통해 알리고 뭐 이렇게 하면 되나? 하고 조금 자신과 비슷한 걸 얻어 이전부터 생각하던 긴 소설에 임했다. 작 년 구 월, 코슈 미사카의 정상의 텐카차야란 찻집의 2층을 빌려 그곳에서 조금씩 일을 진행하여 백 장 가까이 썼고 다시 읽어 보아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새로이 힘을 얻어 어찌 됐든 이를 완성시키기 전까지는 도쿄로 돌아갈 수 없다고 미사카의 찬바람 강한 날에 홀로 멋.. 2022. 2. 27.
세계적 - 다자이 오사무 유럽의 근대인이 쓴 '그리스도전'을 두세 권 가량 읽었다. 별로 감탄하지는 못 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듯했다. 성서를 깊게 읽지 않은 것이다. 이건 의외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어릴 적부터 할머니를 따라 절을 찾지 않는가. 또 장례식이나 법요 때면 스님의 경을 듣기도 한다. 하물며 국보인 불상을 구경도 다니지만 글쎄, 외국인이 불교란 어떤 종교냐 물으면 백 중 아흔아홉은 입을 다물 게 분명하다. 아무것도 모른다. 외국인 또한 마찬가지다. 마리아님과 예수님이 정말 고마운 분인 건 교회 분위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어릴 적부터 기도하는 습관도 들지만 꼭 성서에 담긴 그리스도의 비원을 아는 건 아니다. J・M・마리란 사람은 유럽의 일류 사상가지만 그 '그리스도전'에선 새로운 발견도 없다. 한 번 정열을 품.. 2022. 2. 26.
열차 - 다자이 오사무 1925년에 우메바치 공장이란 곳에서 만들어진 C51형 기관차는 같은 공장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삼 등 객차 세 량과 식당차, 이등객차, 이등침대차 각각 한 량과 그 외에 우편이나 짐을 담는 화물차 세 량과 도합 아홉 개의 상자에 대략 이백 명의 여행객과 십만을 넘는 통신과 그에 따른 비통한 이야기를 싣고서 비 내리는 날도 바람 부는 날도 오후 두 시 반이 되면 기적을 울리며 우에노에서 아오모리를 향해 달렸다. 때에 따라선 만세 소리를, 때로는 손수건에 품어진 작별을, 때로는 오열을 동반한 불길한 인사를 받고는 했다. 열차번호는 103이었다. 번호부터 꺼림칙했다. 1925년부터 지금까지 8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이 열차는 수만 면의 애정을 찢어발겼다. 실제로 나 또한 이 열차 탓에 지독한 꼴을 보았다. .. 2022. 2. 24.
마음의 왕자 - 다자이 오사무 얼마 전 미타의 자그마한 학생 둘이 저희 집을 찾았습니다. 저는 아쉽게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자고 있었는데 잠깐 하면 끝날 이야기라면, 하고 마루서 나와 잠옷 위에 하오리를 걸치고 만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예의가 바르고 심지어 용건만 빨리 끝내 곧장 물러났습니다. 요컨대 이 신문에 수필을 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보기엔 하나같이 열여섯열일곱으로 밖에 안 보이는 온화한 학생이었는데 역시 스물 넘은 어른이었던 걸 테지요. 요즘 들어 영 남의 연령이 구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열다섯도 서른도 마흔도 또 쉰도 같은 일로 화를 내고 같은 일로 웃고 마찬가지로 조금 치사하고 또 마찬가지로 약하고 비굴하여 실제로 사람의 심리만 보아서는 나이 구분 따위 혼란스럽기 짝이 없어서 아무래도 좋아져 버립니다. 방금 .. 2022. 2. 23.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