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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84

순진 - 다자이 오사무 어쩌면 미국 생활 중에 '순진'이란 개념의 견본을 본 걸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아무개 학원의 아무개 여사 같은 사람이 '아이의 순진함은 위대하다' 같은 굉장히 애매모호한 말을 울적한 얼굴로 탄식하고, 그걸 여사의 제자 부인이 그대로 신봉하여 자신의 남편에게 호소한다. 남편은 먹을 만큼 먹고도 콧수염을 기르며 "음, 아이의 순진함은 중요하지"하고 소란을 떤다. 팔불출이란 것과 아주 닮아 있다. 좋은 그림은 아니다. 일본에는 '성의'란 윤리는 있었어도 '순진'이란 개념은 없었다. 사람이 '순진'이라 말하는 모습을 보면 대개는 연기다. 연기가 아니면 바보다. 우리 딸은 네 살인데 올해 8월에 태어난 갓난 아이의 머리를 콩하고 때리곤 한다. 이런 '순진함'의 어디가 위대한가. 감각만 남은 사람은 악귀와 닮아 .. 2022. 1. 30.
오가타 씨를 죽인 자 - 다자이 오사무 오가타 씨의 임종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고 들었다. 이를 갈며 가셨다 들었다. 나와 오가타 씨는 고작 두세 번 만난 게 전부인 사이지만 좋은 소설가를, 노력가를, 어지간히 불행한 장소에 둔 채로 죽게 둔 사실에 꽤나 고통을 느끼고 있다. 추도문이란 게 참 어렵다. 관에 한 다발의 꽃을 넣어두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오열하는 모습은 숭고할 테지. 하지만 그건 젊은 여성의 모습이며 먹을 대로 먹은 남자는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흉내 낼 수도 없다. 괜히 과장스럽게 진지해질 뿐이다. 누가 오가타 씨를 죽였는가. 난폭한 말이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불쾌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의문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도무지 이길 수가 없어서 정면으로 마주하고 말았다. 사람 하나가 어두운 상.. 2022. 1. 20.
시장 싸움 - 다자이 오사무 구 월 초, 코후에서 미타카로 이사하여 나흘째 되던 낮, 이상한 여자가 찾아와 이 주변 주민이라고 거짓말을 하더니 억지로 장미 일곱 송이를 강매했다. 나는 거짓말이란 걸 알면서도 자신의 비굴한 약함 탓에 미처 거절하지 못하고 사 엔을 빼앗겨 나중에 굉장히 불쾌해했다. 또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시 월 초, 나는 그때 겪은 가짜 주민을 소설로 써서 문장을 다듬고 있던 차였는데 정원서 죄송합니다, 저 요앞 온실서 왔는데 꽃 구근이라도 사주실 수 없을까요, 하고 마흔 가량의 남자가 바깥 복도 앞에서 머뭇머뭇 웃고 있었다. 요전 번의 가짜 주민하고 사람은 달라도 같은 분류이지 싶어 안 돼요, 요전 번에도 장미를 여덟 송이나 심어야 했어요, 하고 여유롭게 대답했더니 그 남자가 얼굴이 살짝 질리더니 "뭐예요 그게?.. 2022. 1. 19.
코쿠키칸 - 다자이 오사무 난생처음 혼바쇼를 보러 갔습니다. 세간 사람들이 떠드는 거엔 더욱 등을 돌리고 싶어지는 제 슬픈 나쁜 버릇상 스모 또한 열심히 무관심을 겉꾸며 왔습니다. 하지만 내심 한 번 봐두고 싶었습니다. 과거의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협회의 안내 편지를 받아 하카마를 입고 나왔습니다. 코쿠키칸에 도착한 건 오후 네 시 경이었죠. 초대석은 괜히 갑갑하고 굉장히 더웠기에 곧장 복도로 나와 인파 뒤에서 서서 봤습니다. 관객석을 멀리서 바라보면 중국 항아리 모양처럼 보입니다. 붉은 양탄자에 살짝 검은 때가 껴서 거기에 하얀색에 가까운 푸른색이 교차되어 있습니다. 하얀 기운이 감도는 파란색은 관객 복장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둥근 부채가 무수히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름이 진작에 온.. 2022. 1. 18.
의무 - 다자이 오사무 의무 수행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왜 사는가. 왜 문장을 쓰는가. 지금의 제게는 의무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돈 때문에 쓰는 건 아닌 듯하다. 쾌락 때문에 사는 건 아닌 듯하다. 저번에도 길가를 홀로 걸으며 문득 생각했다. "사랑이란 것도 결국 의무 수행 아닌가?" 솔직히 말해 나는 지금 다섯 장의 수필을 쓰는 것도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열흘 전부터 무얼 써야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왜 거절하지 않았는가. 부탁받았기 때문이다. 이 월 십구 일까지 대여섯 장 써라. 그런 편지를 받았다. 나는 이 잡지(분가쿠샤)의 동인이 아니다. 또 장래에 동인이 될 생각도 없다. 동인 중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뿐이다. 그러니 꼭 써야 한다는 이유도 없다. 하지만 .. 2022. 1. 17.
다나카 군에 관해 - 다나카 히데미츠 '올림푸스의 과실' 서장 - 다자이 오사무 다나카 군의 작품보다도 일단 다나카 군의 사람 됨됨이부터 알려둘 필요가 있을 테지요. 그쪽만 짧게 써보려 합니다. 이 창작집 말미서 다나카 군이 작가의 말을 쓰는 모양인데 이는 "내 과거는 추악하고 복잡하여 제대로 쓸 게 못된다. 이 추함은 얼굴을 붉히고 겨드랑이 아래서 식은땀이 흐르는 그럴싸한 게 못 된다"하는 참회로 전도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건 다나카 군의 주관이지 저는 그렇게까지 폄하할 건 없지 않나 싶어집니다. 다나카 군은 저와 비교해 훨씬 기품 있고 나긋하고 또 굉장히 정직한 사람입니다. 어머니께 꽤나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사 년 정도 전, 제가 아직 오기쿠보 하숙에 있던 시절 이야기인데 다나카 군의 어머니께서 저희 하숙집에 화를 내며 찾아오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운 좋게 외출.. 202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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