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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토 하루오28

아쿠타가와를 통곡하다 - 사토 하루오 마지막까지 이지를 친구로 둔 것처럼 보이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리기 위해서는 고인 또한 그러했던 것처럼 감상에서 벗어나 논평의 형태로 글을 남기는 게 옳을 테지. 이 사실이 내 친구의 좋은 영혼을 달래주리라 믿는다. "오로지 해본 자만이 알 수 있다." 이는 니체의 말로 나는 아직 한 번도 자신을 죽여 본 적이 없다. 때문에 친구의 특별한 죽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테지. 때문에 나는 결국 내게 보인 그를 통해 나 자신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렇게 독자 또한 이 글이 와닿을 수 있을 터이다. 요컨대 보잘 것 없이 살아남아 있는 인간이 제멋대로 떠드는 꼴일지도 모른다. 내 좋은 친구였던 고인은 요즘 들어 나의 불손함을 장난스레 과감함이라 불러주며 관대히 봐주었다. 그러니.. 2022. 8. 24.
이부세 마스지는 나쁜 사람인가 - 사토 하루오 다자이 오사무는 이부세 마스지는 나쁜 사람이란 말을 남기며 죽었다 들었다. 이는 꽤나 중요한 유언이라 생각하니 나는 이를 해설하여 이부세 마스지가 다자이 오사무에게 나쁜 사람이었던 걸 뒷받침해주고 싶다. 다자이 오사무는 역설적 표현을 즐겨 쓰던 남자였으니 이부세 마스지는 나쁜 사람이라 써져 있어도 나는 크게 기이하다 느끼지 않는다. 되려 "이부세 씨께는 오랫동안 신세를 졌습니다. 감사합니다"하고 적혀 있다면 되려 이상하게 여겼을 정도이리라. 또 다자이가 이부세를 정말 나쁜 사람이라 느꼈다면 이부세 마스지는 나쁜 사람이라는 단순하고 멋없는 표현으로 만족했을까. 여시아문의 필법으로, 그런 표현도 조금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부세 마스지는 다자이 오사무에게 그만한 독설을 할 가치도 없던 나쁜 사람.. 2021. 12. 19.
수국 - 사토 하루오 ――그 사람이 그렇게 얘기치 않게 죽어버리지 않았다면 가령 오랜 병이라도 앓은 후에 죽었다면 당신과 나 사이를 좋다느니 결코 안 된다느니 뭐라도 딱 잘라 말해주고 갔겠지……저는 도무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당신이 그로부터 칠 년이 지났음에도 왜 아직까지 혼자인지, 또 제가 왜 이따금 설교를 들으러 가고 싶어졌는지, 그 사람은 그 이유를 입 밖으로는 내지 않을지언정 분명히 알고 있었던 거겠죠. 그렇기에 저를 한층 더 잘 대해줬던 거겠지요. 그런 걸 생각하면 저는 그것만으로 어쩌면 좋을지 헤매고 말아야. 그리고 저와 당신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또 이런 걸 생각해보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요…… 방금 전 들은 눈물을 머금은 여자의 말. 남자는 그 말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되풀이해 보았다. 그리고 여자.. 2021. 12. 17.
우리의 사계절감 - 사토 하루오 "나는 이제 극락행은 포기했어." 어느 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특유의 장난스러운 눈을 빛내며 내게 그런 말을 걸었다. "?" 분명 뒤에 재밌는 말이 이어지리라. 내가 그렇게 뒤를 기대하고 있자니 그는 말했다. "극락은 날씨가 사시사철 따듯하고 쾌적하고 계절 변화가 없다잖아. 계절 변화 없는 세계는 질색이야." 정말로 아쿠타가와 다운 말이었다. 그는 하이진의 일면을 지녔고 하이쿠는 계절 변화를 주제로 삼는 문학이니 아쿠타가와가 계절 변화 없는 세계를 질색이라 말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극락정토에는 계절 변화 이상으로 이를 보상해주는 수많은 정신적 쾌락이 있는 듯하나 그럼에도 아쿠타가와가 계절 변화를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라 말하는 건 하이진이 아니더라도 모든 일본인이 동감해도 좋지 싶다. 애당초 우리 .. 2021. 11. 28.
존중해줘야 할 곤란한 사람――다자이 오사무 - 사토 하루오 '푸른 꽃'에 드러난 얼핏 동화풍이면서 내부에는 근대인의 자기분열과 정신박약의 자기반성을 동반한 현실감을 바람처럼 자연스레 묻어나게 하며 골격에 잘 담은 걸 발견한 건 일 년도 더 된 일이다. 이제 제목은 떠오르지 않아도 작가가 다자이 오사무인 것만큼은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 같은 작가의 이름을 분게이서 보고 곧장 읽어 보니 이전 번엔 털실을 푸는 듯한 문체였던 반면 금속적 느낌이 드는 지독히 교묘한 엽편소설 세 개를 모아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묘하게 스며 드는 듯한 현실감은 이전과 일맥상통하여 외견은 달라졌어도 같은 작가의 것이라 연결 지을 수 있었다. 다시 분게이순슈에 서평을 쓰던 나는 이 작가와 이 작품에 한 마디를 남기고 싶었으나 작품이 아직 낟알이 작고 작가의 풍채가 내 취향에 들어맞는 게 아닐.. 2021. 11. 25.
타니자키 문학의 대표작 '세설' - 사토 하루오 타니자키 문학의 특징은 느긋하면서도 풍부한 풍격의 중후함에 있다. 마치 탄탄한 도심의 큰 길을 가는 것만 같다고 해야 할까. 이 특징은 초기 작품에서도 잘 드러났으나 대성한 모습을 드러낸 게 이 세설이지 않을까. 이 중후하면서도 거창한 것에 더욱이 세밀함을 더해 정말로 뛰어난 작품을 이뤄냈다. 이는 작가가 겐지모노가타리의 현대어 번역을 통해 본래의 좋은 자질 위에 고전의 뼈대란 좋은 비료를 더해 이뤄낸 작품이다. 그러니 이만큼 부족함 없는 작품이 가능했으리라. 고전적인 진정된 분위기와 근대풍의 사실이 잘 뒤섞여 정말로 좋은 풍자와 좋은 양식을 이룬 듯하다. 이상 타니자키 문학의 좋은 점만 꼽아 보았다. 세설이 그만큼 타니자키 문학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니자키 문학도 전체적으.. 2021.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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