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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메 마사오7

상하이 유랑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상하이 도쿄를 뜨는 날에 나가노 소후 씨가 찾아왔다. 듣자 하니 나가노 씨도 보름 후에 중국 여행을 떠날 생각이시란다. 그때 나가노 씨는 친절하게도 뱃멀미의 묘약을 가르쳐주셨다. 하지만 모지에서 배를 타면 이틀 밤낮도 걸리지 않고 곧장 상하이에 도착하고 만다. 고작 이틀 밤낮 가량 되는 항해에 뱃멀미 약을 휴대하다니 나가노 씨의 엄살도 알만 하다――이렇게 생각한 나는 삼 월 이십일 일 오후, 지쿠고마루의 사다리에 올랐을 때에도 비바람이 부는 항구를 보며 다시 한 번 나가노 소후 화백이 바다를 두려워한 사실을 유감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고인을 경멸한 벌은 배가 겐카이에 오르는 동시에 서서히 바다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같은 선실을 받은 마스기 군과 윗갑판의 등의자에 앉아 있으니 배 옆에 부딪히는 파도.. 2021. 12. 24.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이야기' 다운 이야기가 없는 소설 나는 '이야기' 다운 이야기가 없는 소설을 가장 뛰어나다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야기'다운 이야기 없는 소설만 쓴다고는 할 수 없다. 애당초 내 소설도 대개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뎃셍 없는 그림은 성립할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설은 '이야기' 위에 성립된다.(내 '이야기'란 말은 단순히 '줄거리'란 뜻이 아니다) 만약 엄밀히 따지자면 '이야기'가 없는 곳에는 어떠한 소설도 성립하지 않으리라. 따라서 나는 '이야기' 있는 소설에도 물론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다프니스와 클로에" 이후로 갖은 소설 혹은 서정시가 '이야기' 위에 성립된 이상, 대체 누가 '이야기' 있는 소설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을까? "보바리 부인" 또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2021. 11. 6.
그 시절의 나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하는 소설로 부를만한 종류는 아닐지 모른다. 그렇다고 뭘로 불러야 하는가 하면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나는 단지 네다섯 해 전의 자신과 그 주위를 되도록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써보았다. 따라서 나 혹은 우리의 생활이나 그 심정에 관심이 없는 독자에겐 재미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다. 하지만 그 걱정을 밀고 가면 결국 어느 소설도 마찬가지니 그 사실에 마음을 편히 먹고 발표하기로 했다. 참고로 있는 그대로라 해도 사건의 배열은 반드시 있는 그대로는 아니다. 단지 사실 그 자체만이 대부분 있는 그대로란 걸 덧붙여둔다. 하나 십일 월의 어느 맑은 아침이었다. 오랜만에 갑갑한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니 정문 앞에서 역시나 교복을 입은 나루세와 만났다. 내가 "안녕"하고 말하니 나루세도 "안녕"하고 답했다. .. 2021. 11. 2.
츠네토 쿄 씨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츠네토 쿄는 제1고등학교 시절의 친구이다. 기숙사도 같이 써서 1년간 3번방에서 함께 지냈다. 당시의 츠네토는 아직 법과 소속이 아니었다. 1부 을반, 즉 영문과 학생이었다. 츠네토는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점심시간에 낮잠을 자고 밤 열한 시 소등 전에 이빨을 닦고 잠자리에 들었다. 생활이 어찌나 규칙적인지 이마누엘 칸트의 재림이거나 시계의 진자인가 싶을 정도였다. 당시 우리 반에는 쿠메 마사오니 키쿠치 칸이니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작지 않았다. 그러한 호걸은 츠네토와 달리 술을 마시거나 새벽까지 노는 등 천마가 하늘을 가는 듯 혹은 승합자동차가 거리를 달리는 듯 자유로운 생활을 누렸다. 때문에 츠네토의 생활은 그러한 호걸들의 생활에 비해 한 층 더 규칙적으로 보였으리라. 나는 츠네토의 친구이지.. 2021. 10. 19.
징강당잡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타이가의 그림 나는 요즘 타이가의 그림이 가지고 싶다. 하지만 그건 타이가기만 하면 돈을 아끼지 않는단 말은 아니다. 고작해야 오십 엔 정도의 한 폭을 구하고 싶을 뿐이다. 타이가는 대단한 화가이다. 과거에 타카쿠 아이가이는 무일푼의 곤경에서도 한 폭의 타이가만은 놓지 않았다. 그런 영령한의 붓을 통해 이루어진 그림은 몇백 엔이라도 비쌀 게 없다. 그런 걸 오십 엔으로 깎으려 드는 건 내게 돈이 얼마 없는 슬픔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가의 그림을 생각하면 설령 오백만 엔을 내든 나처럼 오십 엔을 내든 저렴한 건 매한가지일지 모른다. 예술품의 가치를 우표나 지폐로 환산할 수 있다 생각하는 건 지독한 속물뿐이다. Samuel Butler가 쓴 글에 따르면 그는 항상 "질 좋고 잘 보관된 사십 실링 정도의.. 2021. 10. 9.
MENSURA ZOILI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는 배의 살롱 한가운데서 테이블을 두고 묘한 남자와 마주하고 있다―― 잠깐 기다려줬으면 한다. 배의 살롱이란 것도 사실은 별로 확실하지 않다. 방의 상황이나 창밖으로 바다가 보인다는 점으로 그렇게 추정했을 뿐이지, 어쩌면 좀 더 평범한 장소일지 모른다는 걱정이 있다. 아니, 역시 배의 살롱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흔들릴 리가 없다. 나는 키노시타 모쿠타로 군이 아니니까 몇 센티로 흔들리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흔들리고는 있다. 거짓말 같다면 창밖의 수평선이 위아래로 출렁이는 걸 보면 된다. 하늘이 어두워 바다는 더할 나위 없는 청록색을 한없이 펼치고 있는데, 그와 잿빛 구름이 하나가 되는 장소가 창틀의 원형을 여러 현으로 잘라내고 있다. 그 안에 하늘과 같은 색을 한 게 하늘하늘 떠올라 있.. 2021.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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