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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징강당잡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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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타이가의 그림

 나는 요즘 타이가의 그림이 가지고 싶다. 하지만 그건 타이가기만 하면 돈을 아끼지 않는단 말은 아니다. 고작해야 오십 엔 정도의 한 폭을 구하고 싶을 뿐이다.
 타이가는 대단한 화가이다. 과거에 타카쿠 아이가이는 무일푼의 곤경에서도 한 폭의 타이가만은 놓지 않았다. 그런 영령한의 붓을 통해 이루어진 그림은 몇백 엔이라도 비쌀 게 없다. 그런 걸 오십 엔으로 깎으려 드는 건 내게 돈이 얼마 없는 슬픔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가의 그림을 생각하면 설령 오백만 엔을 내든 나처럼 오십 엔을 내든 저렴한 건 매한가지일지 모른다. 예술품의 가치를 우표나 지폐로 환산할 수 있다 생각하는 건 지독한 속물뿐이다.
 Samuel Butler가 쓴 글에 따르면 그는 항상 "질 좋고 잘 보관된 사십 실링 정도의 렘브란트"를 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두 번이나 말도 안 되게 저렴한 렘브란트와 조우했다. 한 번은 일 파운드란 가격 때문에 사지 못 했다. 두 번째는 친구인 Gogin의 도움을 받아 기어코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그림이 어떤 그림이었는가. 돈을 얼마나 냈는가. 그건 어느 쪽도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산 해는 1887년 산 장소는 스트랜드(런던)의 어느 전당포였다.
 그런 선례를 생각하면 오십 엔에 타이가를 사는 건 꼭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어딘가 쓸쓸한 거리의 고도구점에서 팔다 남은 단 한 폭의 구하산초의 수묵산수――나는 이따금 지루해지면 미륵보살이 출세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이런 공상에 잠길 때가 있다.

     둘 여드름

 과거에 '라쇼몬'이란 소설을 썼을 때 주인공인 하인의 뺨에 커다란 여드름이 있다는 내용을 적었다. 당시는 왕조 시대 사람에게도 여드름이 없을 수는 없다는 겸손 떨자면 근거 없는 추측에 기반한 것인데 그후 사케이키에 니키미란 게 있으며 니키미 또는 니킨이란 게 오늘날의 여드름이란 걸 알았다. 물론 이런 발견도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느끼는 흥미만큼 재밌지는 않으리라.


     셋 장군

 관헌은 내 '장군'이란 소설에 몇 행인가의 말살을 가했다. 하지만 오늘 신문에 따르면 생활이 궁핍해진 폐병들은 "대장한테 속아 각하가 되는 발판만 되었네"니 "뒤를 돌아보지 말라느니 순 거짓말쟁이다" 같은 각종 포스터를 건 채로 도쿄 가두를 걸었다고 한다. 폐병 자체를 말살하는 건 관헌의 힘으로도 부족했나 보다.
 또 관헌은 앞으로도 "○○의 ○○에 ○○의 마음을 잃다"는 내용은 발행 금지로 한다는 모양이다. ○○의 마음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허위 위에는 성립할 수 없다. 허위란 과거의 진리이자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 어음이다. 관헌은 허위를 강요하면서 ○○의 마음을 잃지 말라고 한다. 그건 통용되지 않는 어음을 들이밀며 돈으로 바꿔 달란거나 다름없다.
 세상 물정 모르는 건 관헌 쪽이다.

     넷 탈모약

 문예와 계급문제는 머리와 탈모약의 관계와 비슷하다. 만약 멀쩡히 머리가 나있다면 꼭 바를 필요는 없다. 또 벗어진 머리라면 아마 발라도 효과가 없으리라.

     다섯 예술지상주의

 예술지상주의의 극치는 플로베르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신은 만상의 창조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인간에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예술가가 창작을 대하는 태도 또한 이와 같아야 한다." 때문에 보바리 부인도 소우주는 전개할지언정 우리의 정에 호소하지는 않는다.
 예술지상주의――적어도 소설의 예술지상주의는 확실히 하품이 나오기 쉽다.

     여섯 버릴 건 없다

 아무개는 모자만 좋은 걸 쓰고 다닌다. 저 모자만 없으면 좋을 텐데――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모자를 제외하더라도 아무개의 복장은 조금도 훌륭해지지 않는다. 단지 빈곤한 외견이 전체에 막연하기만 할 뿐이다.
 아무개의 소설은 감성적이네 아무개의 희곡은 지적이네 그러한 말은 하나같이 이 모자와 다를 바가 없다. 모자만 좋은 걸 쓰는 사람은 모자를 벗을 궁리를 하느니 웃옷과 바지, 외투를 좋은 걸 쓸 궁리를 해야 한다. 감성적인 소설의 작가는 감정을 억누르는 궁리를 하느니 이지를 살리는 궁리를 해야 한다.
 이는 비단 예술상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생사에도 마찬가지다. 다섯 욕구의 극복에만 뼈를 갈고닦는 스님이 위대한 스님이 되었단 말은 들어보지를 못 했다. 위대한 스님이 되는 건 항상 다섯 욕구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정열을 품은 스님이다. 운쇼마저 스님이 음경을 잘랐다는 걸 듣고서는 "남근은 본래 굵직해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는가? 
 우리 내부에 있는 모든 건 싫어도 키울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성불의 길이다.

     일곱 아카니시 카키타

 한 때 시가 나오야 씨의 애독자와 "아카니시 카키타의 사랑"을 두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 소설 속 인물 중에는 사자에栄螺 마스지로次郎, 안코처럼 대개 생선류의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나오야 씨에게도 유머러스한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자 손님은 놀란 것처럼 "정말 그렇군요. 생각도 못 해봤는데"하고 말했다. 그런 주제에 손님은 나보다도 "아카니시 카키타의 사랑"의 줄거리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손님은 결코 경박아가 아니다. 학문도 인격도 겸비한 되려 보기 드문 문예통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 건 시가 씨의 작품의 형태라고 할까 어찌 됐든 언젠가 머릿속에 그런 게 떠올라 그에 사로잡힌 탓이리라. 이는 비단 손님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도 조심해야 할 일이다.


     여덟 조명문인

 예로부터 작가가 책을 냈을 때 그 책의 호평을 알기 위해 신문 잡지에 실린 논평을 이용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개중에는 조절은 고사하고 본인인 걸 뻔히 알만한 익명 아래서 자화자찬의 논평을 쓰는 경우도 있다.
 드 라 로슈푸코는 명성 높은 격언집의 작가이다. 그런데 생트뵈브가 쓴 바에 따르면 이 사람마저 주르날 데 사방에 낸 평론에 스스로 수정을 가했다고 한다. 심지어 주르날 데 사방은 당시 발행되던 유일한 신문이며 그 논평을 실은 게 천육백육십오 년 삼 월 구 일이었다니 작가가 논평을 이용하는 것도 꽤나 뿌리가 깊다. 나는 로슈푸코의 격언을 떠올리면서 이 기사를 읽었을 때 그만 쓴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일본 문단은 신 개척지인 만큼 나쁜 풍습도 적다. 웃음이나 팔려 한다느니 둉료끼리 띄어준다느니 하지만 일단 독설은 들어가지 않은가. 
 참고 삼아 말한다. 이 논평의 필자는 마담 드 사브레, 평론 대상은 그 격언집이다.

     아홉 역사 소설

 역사 소설인 이상은 한 시대의 풍속이나 정서에 조금은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한 시대의 특색만을――특히 도덕상 특색만을 주제로 삼은 소설 또한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일본의 왕조 시대는 남녀 관계의 사고 방식도 현대와 꽤나 다르다. 그런 걸 마치 작가 스스로가 이즈미 시키부의 친구였던 것처럼 허심으로 가득 찬 채 태연히 적어 올리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역사 소설은 현대와 대조를 이루어 자연히 어떤 암시를 주기 쉽다. 멜리메의 이자벨라가 이와 같다. 프랑스의 필라토도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 소설 중에는 아직 이런 작품을 찾아 볼 수 없다. 일본의 역사 소설 중 대부분은 옛 사람의 마음과 요즘 사람의 마음이 공통되는 이를테면 휴머니즘적 발상을 그린 손쉬운 작품들뿐이다. 누군가 어린 천재 중에 상기한 새로운 축을 내는 사람은 없을까?

     열 세상 사람

 서양 잡지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21년 9월 파리서 아나톨 프랑스상이 만들어졌을 때 스스로 제막식에서 연설을 했다고 한다. 그 내용을 읽어 보다 이런 내용을 발견했다. "내가 인생을 알게 된 건 사람과 접한 결과가 아니다. 책과 접한 결과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서적에 아무리 친해도 인생은 알 수 없다 말할지 모른다.
 르누아르가 한 말 중에 "그림을 배우고 싶다면 미술관으로 가라"란 게 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옛 명화를 보느니 자연을 배우라 말할지 모른다.
 세상 사람이란 항상 그렇게 말한다.

     열하나 불을 건너는 수행자

 사회주의는 불문곡직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하나의 필연이다. 내가 이 필연을 필연이라 느끼지 않는 건 마치 불을 넘는 수행자를 보는 것처럼 감탄을 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가격한 사상 단속 법안 같은 게 이 좋은 사례 중 하나이다.

     열둘 슌칸

 헤이케이모노가타리나 겐페이세이스키 이외에 슌칸의 신 해석을 꾀한 건 현대에 시작된 일이 아니다. 치카마츠 몬자에몬의 슌칸은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이다.
 치카마츠가 슌칸의 섬에 남긴 건 슌칸 본인의 뜻이다. 탄노자에몬노죠 모토야스는 슌칸, 나리츠네, 야스요리 세 사람의 사면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리츠네의 아내가 된 섬 여자 치도리만은 배에 타는 게 용납되지 않는다. 세이시 모토야스가 허락할 생각이 있어도 후쿠시인 세노오가 용납하지 않는다. 처자식의 죽음을 들은 슌칸은 치도리를 배에 태우기 위해 세노오 타로를 죽이고 만다. "죠시를 벤 죄로 다시 키카이가지마에 오게 되면 윗사람의 자비도 이치에 맞고 죠시의 실수도 되지 않는다." 이런 영웅적인 슌칸은 나리츠네와 야스요리에게 승선을 권하며 침착히 이렇게도 말했다. "슌칸이 타야 하는 건 홍서의 배, 세속의 배가 아니다."
 나는 이전에 쿠메 마사오와 이 슌칸의 연극을 보았다. 슌칸은 고인 탄시로, 치도리는 우타에몬, 모토야스는 우자에몬――그 이외엔 기억나지 않는다. 슌칸이 타야 하는 건 운운은 당시에 쿠메 마사오를 크게 감탄게 했다.
 치카마츠의 슌칸은 겐페이세이스키의 슌칸보다도 훨씬 위대한 사람이 되어 있다. 물론 떠나는 배를 볼 때에는 한탄하고 슬퍼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 후엔 치카마츠의 슌칸도 평온한 여생을 보냈을지 모른다. 적어도 세이스키의 슌칸만큼 슬픈 말기는 맞이하지 않았으리라――그럼 가정을 주는 한 '괴로워하지 않는 슌칸'을 쓴 건 전적으로 치카마츠라 해야 한다.
 하지만 치카마츠가 원한 건 '괴로워하지 않는 슌칸'만이 아니다. 그의 슌칸은 '헤이케이 뇨고가시마'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쿠라타, 키쿠치 두 분의 슌칸은 슌칸만을 주제로 하고 있다. 키카이가시마에 흘러 든 슌칸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나?――이게 두 분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특히 키쿠치 씨의 경우 이런 형식으로 바꿀 수 있으리라――"우리는 슌칸과 마찬가지로 섬에 이르렀을 때 어떤 생활을 꾸릴 것인가."
 치카마츠와 두 분의 입장 차이는 세이스키의 글을 다시 보게 한다. 치카마츠는 그 슌칸을 만들기 위해 슌칸의 비극의 열쇠인 파면장마저 바꾸었다. 두 분도 물론 치카마츠에게 부족함 없이 세이스키의 글을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두 분 모두 치카마츠처럼 사면장까지 바꾸지는 않는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슌칸을 해석하는 이상 이것만은 보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와 마찬가지로 쿠라타 씨와 키쿠치 씨의 입장 차이도 역시나 스이세키의 글을 바꾸는 법에서 찾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쿠라타 씨가 슌칸의 딸이 죽은 걸로 하거나 키쿠치 씨가 섬을 풍요의 땅으로 삼는 등――그러한 건 모두 두 분의 슌칸――"괴로워하는 슌칸"과 "괴로워하지 않는 슌칸"을 그려내기 위한 방도였으리라. 나의 슌칸도 그런 점에선 키쿠치 씨의 슌칸을 따르고 있다. 단지 키쿠치 씨의 슌칸은 되려 외부 생활에 안주의 원인을 찾고 있지만 나는 꼭 그렇지 않다.
 하지만 우타나 쥬루리에 있는 것처럼 불모의 외딴섬에 남겨진 채로 유유히 생활하는 대단한 슌칸도 생각해보지 못 할 건 없다. 단지 이 거대한 편린을 보는 건 지금의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추기 세이스키에 드러난 슌칸은 이지가 풍부한 사상가이며 츠루노마에를 사랑한 호색가이다. 나는 특히 이 점에서는 세이스키의 기록에 충실했다. 또 슌칸의 우타는 야스요리나 나리츠네보다 부족했다고 한다. 슌칸은 논의에는 뛰어나다 시인 기질은 아니었나 보다. 나는 이 점에서도 세이스키의 충실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또 세이스키의 키카이가시마는 설령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마냥 바위로만 가득했던 것도 아닌 듯하다. 만약 그 세이스키의 섬의 기록에서 변두리를 대하는 도심 사람의 공포나 혐오를 뺀다면 의외로 고풍 사기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섬일지 모른다.

     열셋 한자와 가나와

 한자의 특징은 한자의 뜻 이외에도 한자 그 자체의 형태로도 미추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 한다. 가나는 물론 사용상 표음문자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카'는 '加'인 것처럼 선조는 하나 같이 한자이다. 그뿐 아니라 언제나 한자와 함께 사용되는 관계상 자연스레 한자와 마찬가지로 가나의 형태 그 자체에도 미추를 느끼기 쉽다. 이를테면 '이'는 침착하다. '리'는 어딘가 날카롭다. 그런 글 느끼기 쉽다.
 이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하지만 사실은 어떠한가?
 나는 사실 히라가나를 쓸 때는 이따금 형태를 고집하곤 한다. 예를 들어 '테'라는 글자는 되록 피하고 싶다. 특히 '뭐뭐 해서 뭐뭐何何して何何'로 이어지는 건 금물이다. 그런 주제에 '뭐뭐하고 있다何何してゐる'로 끊길 때는 괴롭지 않다. '테' 다음으로는 '쿠'가 있다. 이 또한 마치 부러진 못처럼 윗 문장의 중량을 제대로 받아내는 힘이 빈곤하다. 가타카나는 히라가나에 비하면 '쿠'도 '테'도 진정되어 있다. 어쩌면 가타카나는 히라가나보다도 진보한 표음문자일지 모른다. 어쩌면 히라가나에 익숙해진 나도 가타카나에는 느낌이 둔해진 걸지도 모른다.

     열넷 그리스 말기의 사람

 요즘 들어 이집트 모래 안에서 또 헤라클레니움의 용암 안에서 그리스 사람이 쓴 게 발견되고 있다. 시대는 350 B.C.에서 150 B.C. 정도인 듯하다. 즉 아테네 시기부터 로마 시대로 옮겨 가려는 중간 시대의 것이다. 종류는 논문, 시, 희극, 연설 초고, 편지――또 그 외에도 있을지 모른다. 작가는 조금은 알려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름만 간신히 전해진 사람도 있다. 물론 이름마저 전혀 전해지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찌 되었든 그런 단간영묵을 근대어로 번역한 걸 보면 하나같이 우리에게는 친근하지 않은 사상뿐이다. 이를테면 Polystratus라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는 "갖은 허위와 마음고생을 벗어던지고 인생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만물생성의 대법을 알아야만 한다"고 논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Cercidas란 견유학파의 철학자는 "탕아와 수전노는 돈을 버는데 나만 가난한 건 옳지 않다! ……정의는 돼지처럼 눈이 멀었는가? Themis(정의의 여신)의 눈은 가려져 있는가?하고 크게 분노한 후 "그렇다면 나는 병약을 구하고 빈곤함을 구제하는 걸 맡기고 싶다"고 용맹이 신념을 피로하고 있다. 더욱이 그보다 삼십여 년 앞섰다 전해지는 Colophon의 Phœnix는 "부자에겐 누구나 친구이다. 돈만 있으면 신들마저 반드시 그대를 사랑하리라. 하지만 만에 하나 가난하다면 어머니마저 그대를 미워하리라"하고 풍자로 가득한 시를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Œnoande의 Diogenes는 "내 소견에 따르면 인류는 갖은 불필요한 일에 갖은 괴로움을 맛보고 있다……나는 이미 노인이다. 생명의 태양도 저물고 있다. 나는 단지 나의 길을 가르쳐줄 뿐이다……세상 사람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서로 허위를 나누고 있다. 마치 한 무리의 병든 양처럼"하고 구원의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인종의 진보란 민달팽이의 걸음과 닮아 있나 보다. 

     열다섯 비유

 은유나 직유로 문장을 쓰는데 고생하는 건 먼 서양의 일이다. 우리는 모두 힘겨운 현대 일본서 자라고 있다. 그런 것에 고생하는 건 물론이요 어찌 됐든 뜻을 정확히 전달하는 문장을 만들 여유마저 없다. 하지만 문득 눈에 들어 온 서양인의 비유의 사랑하는 마음만은 남아 있다. 
 "틴가렐라의 얼굴은 화장으로 거칠어져 있다. 하지만 그 피부 아래에는 얇은 얼음 아래의 물처럼 아직 무언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이는 Wassermann이 쓴 매춘부 틴가렐라의 초상이다. 내 역문은 볼품없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Guys가 그린 상냥한 매춘부의 면모는 원문서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열여섯 고백

 "좀 더 자신의 생활을 적어라. 좀 더 대담히 고백해라." 이는 이따금 여러 사람이 권하는 말이다. 나도 고백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내 소설은 비록 양은 적어도 내 체험의 고백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내게 권하는 건 나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삼아 내게 일어난 일을 주저하는 법 없이 쓰란 것이다. 더군다나 권말의 일람표에는 주인공이 나는 물론이요 작중 인물의 본명을 가나로 쭉 늘어놓으란 것이다. 그것만큼은 사양할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나는 식견 높은 여러 사람들에게 내 생활을 드러내는 게 불쾌하다. 또 그런 고백을 바탕으로 삼아 필요 이상으로 돈과 명예를 착복하는 게 불쾌하다. 이를테면 나도 잇사와 마찬가지로 교합 기록을 남긴다고 하자. 또 그런 걸 츄오코론이나 무언가의 신년호에 올리기도 한다. 독자는 모두 재밌어한다. 비평가는 갑자기 손바닥을 뒤집어 칭찬한다. 친구들은 드디어 전라가 되었구나――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스트린드베리도 돈만 있었다면 '치인의 고백' 같은 건 내놓지 않았을 터이다. 또 내놓아야만 했을 때에도 자국어 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을 테지. 나도 슬슬 매달리지 않으면 어떻게 활로를 찾아야 할지 모른다. 그때는 저절로 그렇게 되리라. 하지만 지금은 빈곤하여도 어떻게든 수명을 이어가고 있다. 또 몸에는 병이 많아도 정신 상태는 지극히 평범하다. 마조히즘의 기질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누가 부끄러운 일을 번거롭게 고백 소설 따위로 만든단 말인가.

     열일곱 채플린

 사회주의자라 이름 붙은 건 볼셰비키이든 아니든 모조리 위험시되는 모양이다. 특히 요전번 대지진 때에는 그런 이유로 여러모로 고생 좀 한 모양이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라면 그 찰리 채플린 또한 사회주의자 중 한 명이다. 만약 사회주의자를 박해한다면 채플린 또한 박해해야 한다. 시험 삼아 아무개 헌병 대위 손에 채플린이 죽었다고 상상해 보아라. 집오리가 걷는 사이에 찔려 죽였다 생각해 보아라. 한 번이라도 필름 위의 그를 본 자는 분노를 금할 수 없으리라. 이 분노를 현실로 옮기자면――어찌 됐든 당신 또한 블랙 리스트에 오를 건 확실하다.

     열여덟 놀이

 이는 선데이마이니치에 실린 후쿠다 마사노스케 군의 '최근 미국 테니스계"의 한 구절이다.
 "틸든은 손가락을 자른 이후로 되려 더 굉장한 타구를 보여주게 되었다. 왜 손가락을 잘랐는데 이전보다 더 잘하게 되었나. 하나는 그가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연기투가 가미되어 있어서 이길 수 있는 매치서도 쉽게 이기려 하지 않고 어느 정도까지 상대를 띄우는데 올해엔 '손가락'이란 핸디캡 때문에 게임을 시작할 때부터 긴장하여 더욱 강해진 것이다……"
 라켓을 쥐는 손가락을 절단한 후 한 층 더 실력을 키운 틸든은 그야말로 위대한 선수이다. 하지만 손가락이 만족스러웠던 그도――또 동시에 상대를 희롱하는 '놀이' 정신으로 풍부한 그도 반드시 위대하지 않다곤 할 수 없다. 아니, 나는 틸든 스스로도 때때론 마음 안쪽에서 '놀이' 정신으로 풍부하던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을까 싶다.

     열아홉 진로

 나도 대부분의 글쟁이처럼 바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공부도 좀처럼 마음 같지 않다. 2, 3년 전에 읽고 싶었던 책도 여전히 읽지 못한 지경이다. 나는 그런 번잡함은 일본만의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문득 레미 드 구르몽을 다룬 책을 읽었더니 구르몽은 말년에마저 매일 같이 라 프랑스에 논문을 한 편, 2주에 한 번씩 메르큐에 대담을 한 편씩 썼다고 한다. 그럼 예술을 존중한 프랑스서 태어난 문학자도 한가하지는 못 했단 뜻이다. 일본에 태어난 내가 불평을 하는 건 잘못된 일일지 모른다.

     스물 이바네스

 이바네스 씨도 일본에 왔다고 한다. 주재 기간도 짧았으니 그냥 한 번 둘러보기 위해 온 것뿐이리라. 이바네스 씨의 평전으론 Camille Pitollet의 V.Blasco-Ibáñez, Ses romans et le roman de sa vie 같은 책도 유행하고 있다. 단지 읽은 건 아니다. 단순히 2, 3년 전 서양 잡지서 소개되는 걸 읽은 게 전부다.
 "내가 소설을 쓰는 건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결과이다……나는 청년 시절을 감옥에서 보냈다. 적어도 서른 번은 감옥에 들어갔겠지. 나는 죄수였던 적도 있다. 번번히 야만한 결투를 위해 중상을 입은 적도 있다. 또 나는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육체적 고통을 맛본 적도 있다. 빈곤의 밑바닥에 떨어진 적도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 정치인으로 선출된 적도 있다. 터키의 술탄의 친구였던 적도 있다. 궁전에서 살아 본 적도 있다. 또 막대한 돈을 다루는 사업가도 되었다. 미국에서는 마을 하나를 세웠다. 그런 걸 이야기하는 건 나는 소설을 생활 상에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와 잉크에 써올리는 것보다도 몇 단계 더 교묘하게 실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피톨렛의 책 속에 담긴 이바네스 씨 본인의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걸 읽어도 문호 이바네스 씨처럼 별격 소설을 생활상에 실현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다면 단지 소설의 광고를 실현하는 정도이다.

     스물하나 선장

 나는 상하이로 오르는 도중에 치쿠고마루의 선장과 이야기했다. 세이유카이의 횡포라던가 로이드 조지의 "정의" 같은 이야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전장은 내 명찰을 보면서 감탄한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쿠타가와라니 특이한 성씨군요. 하하, 오사카 마이니치신분샤――역시 정치 경제가 전문시이신가요?"
 나는 적당히 대답을 했다.
 우리는 잠시 후 볼셰비즘인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마침 그 달의 츄오코론에 실린 누군가의 논문을 인용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선장은 츄오코론의 독자가 아니었다.
 "츄오코론도 좋지만――"
 선장은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소설을 너무 실어서요.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그것 좀 어떻게 안 될까요?"
 나는 되도록 하찮은 표정을 지었다.
 "정말입니다. 소설 때문에 곤란하죠. 그것만 없으면 좋을 텐데요."
 그 후로 나는 선장에게 격별의 신용을 얻은 듯하다.

     스물둘 스모

 "져서는 안 돼 밤을 수놓은 스모 이야기일까". 이는 명성 높은 부손의 하이쿠이다. 이 "져서는 안 돼"의 해석이 생각보다 갈리는 듯하다. "부손 구집 강의"에 따르면 키요시, 헤키고토 두 분은 또, 근래엔 키무라 카쿠 씨 또한 '질 수 없기에'를 미래로 해석하고 있다. "내일 스모 경기는 져서는 안 된다. 져서 안 되는 스모 이야기를 잠자리서 이야기하고 있다."――그렇게 해석한 셈이다. 나는 줄곧 이전부터 과거로만 해석했다. 지금도 역시 과거의 뜻이라 해석하고 있다. "오늘은 져서는 안 되는 시합에 졌다. 그런 걸 잠자리서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그렇게 해석한 셈이다. 만약 미래의 이야기를 한다면 "져서는 안 돼"라고 다섯 글자를 띄우고 아래서 "스모 이야기일까"하고 마무리하지는 않았을 테지. 이는 문법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져서는 안 돼'를 어떻게 느끼느냐는 예술적 촉각의 문제이다. 물론 '부손 구집 강의' 안에서도 시키와 나이토 메이세츠 씨는 역시나 과거를 뜻한다 해석하고 있다.

     스물셋 "とても"

 "とても 싸다"느니 "とても 춥다"느니 "とても"란 말이 도쿄의 말이 된 건 몇 년 전의 일이다. 물론 'とても'란 말이 도쿄에 전혀 없었던 간 아니다. 하지만 주된 용법은 'とても 이길 수 없다'느니 'とても 도리가 없다'느니 부정을 동반하였다.
 긍정형이 따르는 신유형의 'とても'는 미카하노쿠니 근처의 방언이리라. 실제로 미카하노쿠니 사람들이 이 'とても'를 사용한 사례는 겐로쿠 4년에 만들어진 "사루미노" 안에 남겨져 있다.

 가을바람아 참억새를 정말로とても 움직이느냐 미카하, 시인

 그럼 "とても"는 미카하노쿠니에서 에도로 옮겨가는데 이백 년 가량 걸린 셈이다. "とても 수고가 많다"고 밖에 할 수가 없다.

     스물넷 고양이

 이는 '언해言海' 속 고양이의 설명이다.

 "고양이, (중략) 민가서 기르는 작은 동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온화하고 유순하여 기르기 쉽고 또 쥐를 잡는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물건을 훔치는 기질이 있다. 형태는 호랑이를 닮았으나 채 2척이 되지 못한다.(후략)"
 확실히 고양이는 접시 위 회 따위를 훔치고는 한다. 하지만 이런 걸 "물건을 훔치는 기질이 있다"라고 말하자면 개는 풍속괴난의 기질이 있는 것이며 제비는 가택 침입의 기질이 있는 거고 뱀은 협박하는 기질이 있으며 나비는 유랑의 기질이 있고 상어는 살인 기질이 있다 해도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해보기에 '언해'의 저자 오오츠키 후미코 선생은 적어도 새나 동물, 생선을 비방하는 기질을 갖춘 노학자이리라.

     스물다섯 판수

 일본의 판수는 엉망진창이다. 내가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어떤 상당한 출판 업자는 내무성에 헌본한 두 권을 한 판으로 센다고 한다. 설령 그것이 거짓말이라도 오늘처럼 엉망진창이어서야. 오십 판, 백 판이라는 광고를 보고 책을 사는 천하의 독자는 우롱 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물론 프랑스의 판수마저 굉장히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이를테면 졸라의 말년의 소설은 이백부를 1판이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악습이다. 향수나 오페라백처럼 수입할 필요는 없을 게 분명하다. 또 메르큐는 출판 한 책에 一一권째라 기록한 적도 있다. 메르큐를 배우는 건 곤란하더라도 한 판을 몇 부라 지정하고 판수도 속이지 않고 광고하는 건 당연히 일본의 출판 조합도 엄격히 실행해야 할 일이리라. 아니, 이런 간단한 건 총명한 출판 조합 사람들이 진작에 깨달았을 터이다. 그럼에도 실행하지 않는 건 "만약 질 좋은 책을 바란다면 판수가 적은 쪽을 골라라"라는 교훈을 따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스물여섯 집

 하야카와 코타로 씨는 "산슈요코야마바나시"의 권말서 저주의 노래를 몇 개인가 실었다.
 도적에게 주의를 호소하는 노래――"잔다, 잘 거야. 부탁한다, 서까래야. 꿈꾸는 동안 무슨 일 있으면 깨워다오 형랑아."
 불조심 노래――"서릿발, 얼음이 낀 눈이 쌓인 처마도리, 비를 맞은 서까래에 이슬맺힌 초가지붕."
 하나 같이 "집"에서 생명을 느낀 옛사람의 면모를 보는 듯하다. 이런 감정은 우리 안에선 진작에 죽어버렸다. 우리보다도 후세에 태어나는 사람은 이러한 우타를 읽어본들 어떠한 감개도 받지 않을지 모른다. 혹은 또 콘크리트로 된 셋집에 살게 되어도 이러한 우타는 환상처럼 산 그늘막에 산재한 초가지붕을 떠오르게 할지도 모른다.
 또 겸사겸사 광고하자면 하야카와 씨의 '산슈요코야마바나시'는 야나기타 쿠니오 씨의 '토오노모노가타리' 이후로 가장 흥미로운 전설집이리라. 발행은 코이시카와쿠 묘가다니 마치 52치반 쿄도켄큐샤, 정가는 70전이다. 단지 나는 하야카와 씨도 알지 못하고 물론 광고를 부탁 받은 것도 아니다.
 추기 또 45년 전의 도쿄에는 이런 우타도 있었다고 한다. "잔다, 잘 거야, 부탁한다, 서까래야, 형랑도 들어라, 내일 아침 여섯에는 깨워다오."

     스물일곱 속 "とても"

 긍정에 따르는 'とても'는 도쿄의 말이 아니다. 도쿄 인이 본래 쓰는 건 'とても 도리가 없다'처럼 부정을 동반한다. 근래엔 긍정을 동반하는 'とても'도 성황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とても 이쁘다', 'とても 맛있다'가 그렇다. 이런 긍정을 동반하는 'とても'가 '사루미노'에 나온다는 건 '징강당잡기'(수필집 '백초' 수록)에서 이야기를 해두었다. 그후 시마키 아카히코 씨에게 주의를 받고 보니 이 'とても'는 'とてもかくても'의 'とても'라고 한다. 

 가을바람아 참억새를 정말로とても 움직이느냐 미카하, 시인

 그런데 요즘 들어 책을 읽다가 '속 춘하추동'의 봄 부분에서 이러한 'とても'를 발견했다.

 이치비나야 정말로とても 수가 많은 얼굴이구나 카요

 겐로쿠의 시인은 호처럼 미카하 사람이다. 메이지의 카요는 어디 사람이었을까.

     스물여덟 죠소

 쇼몬에 용상이 많은 건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누가 가장 정확히 바쇼의 가르침을 전했는가 하면 아마 나이토 죠소이리라. 적어도 홋쿠는 쇼몬 중 누구도 이 하이카이의 신발지만큼 바쇼의 쓸쓸함을 포착한 자가 없다. 근래 노다 벳텐로 씨가 편역한 '죠소집'을 읽고 한 층 더 이런 감개가 깊어졌다.

  서론 생략
목침의 때 그 위로 불어오는 눈바람이랴
나비 한 마리 들판 위에 올라야 겨우 내린 달
골바람 뚫고 아오타를 돌아온 절손님이랴
작은 병풍에 맑은 산 떠오르네 배 위에 올라
번개 한 번에 하나같이 모여든 불나방일까
풀초서 나온 반딧불이가 일군 날개 소리야
계관의 아침 희미하게 비추는 옻 베개구나
환자와 병목 같이 잠들어 버린 추운 밤이랴
잠자리 날아 파리 하나 잡아간 삿갓 안일까
비바람 부는 새벽녘에 떠오른 별 두 개구나
<rt>등걸에 붙은 불도 황혼하고는 다섯여섯 척</rt>


 이러한 구는 단지 쓸쓸함만을 품고 있지 않다. 한 구 한 구의 변화에 풍부한 건 작가로서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키토가 죠소를 비웃은 건 그 역량에 자신이 미치지 못 했던 것도 컸지 싶다. 

     스물아홉 케사와 모리토오

 "케사와 모리토오"란 독백체의 소설을 4월 츄오코론에서 발표했을 때 어떤 오사카 사람에게 편지를 받았다. '케사는 와타루의 의리와 모리토오의 한심함에 몰려 정조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결심한 열려이다. 그런 걸 모리토오와 정이 있었던 것처럼 쓰는 건 케사에게도 유감인 한편으로 국민 교육상으로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리라. 당신을 위해 충고해둔다."
 하지만 당시에 곧장 대답을 쓴 것처럼 케사와 모리토오가 정을 나눈 건 내 창작이 아니다. 겐페이세이스키의 몬가쿠홋신 부분에 "그렇게 온 여자와 함께 누웠다. 좁은 밤도 그렇게 운운"하고 분명히 적혀 있는 일이다.
 세간은 무슨 생각인지 그런 걸 묵살하면서 애처로운 여자 주인공을 마치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열녀처럼 광고하고 있다. 그러니 사실을 멋대로 바꾼 죄는 그 소설을 쓴 내게 있는 게 아니라 되려 그 소설을 비난하는 부르주아 자신들에게 있다 해도 지장이 없다. 사실을 바꾸네 마네 하는 건 큰 문제라 생각하지 않지만 이 기회에 사실로서 이것만은 공표해둔다. 물론 겐페이세이스키의 기록이 거짓이라는 고증가가 나탄다면 나는 언제라도 개변자의 낙인을 달게 받을 셈이다.

     서른 후세

 나는 백 년 후의 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다.
 대중의 평판은 엇나가기 쉽기 마련이다. 현재의 대중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역사는 이미 펠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나 시민이나 문예부흥기(르네상스) 시기의 플로렌스 시민마저 이상의 대중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과거나 오늘의 대중마저 그렇다면 미래 대중의 평판도 알 법 하지 않을까. 그들이 백 년 후에 모래와 금을 구분할 수 있으랴. 아쉽게도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또 이상적인 대중을 얻는다 한들 과연 절대미란 게 예술 세계에 존재할까. 오늘의 내가 가진 눈은 단지 오늘의 내가 가진 눈이지, 결코 내일의 내가 가진 눈이 될 수 없다. 또 동시에 내 눈은 결국 일본인의 눈이며 서양인의 눈이 아님 또한 확실하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장소와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의 존재를 믿을 수 있으랴. 확실히 단테의 지옥불은 지금도 동방의 뜨내기들을 전율시킬지 모른다. 하지만 그 불과 우리 사이에는 14세기의 이탈리아란 게 운무처럼 펼쳐져 있지 않은가.
 하물며 나는 보잘 것 없는 문인이다. 후대의 평판이 잘못되지 않고 보편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면, 글을 명산 위에 얹는 일은 나를 위해서도 옳지 않다. 내가 백 년 후의 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건 물을 것도 없이 확연하리라 믿는다.
 이따금 나는 몇 년 후, 혹은 오십 년 후, 더욱이 백 년 후, 내 존재마저 알지 못 하는 시대가 오는 걸 상상한다. 그때 내 작품집은 진한 먼지에 뒤덮여 칸다 언저리에 위치한 고서점 선반 구석에서 멍하니 독자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아니, 어쩌면 어느 도서관에서 단 한 권만 남은 채로 비참하게 좀 먹혀 문자마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져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우연히 내 작품집을 찾아내 그 안의 짧은 한 편을, 혹은 그 한 편 속의 몇 행인가를 읽지는 않을까. 더욱이 형편 좋은 소리를 하자면 그 한 편이나 몇 행인가가, 내가 모르는 독자에게 비록 작을지언정 아름다운 꿈을 보여주지는 않을까.
 나는 백 년 후의 지기를 기다리는 건 아니다. 때문에 나는 이런 내 상상이 내 신념과 모순되어 있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상상한다. 막연한 후대에 내 작품집을 손에 얹을 한 독자가 있으리란걸. 그리고 그 독자의 마음 앞에 몽롱할지언정 내 신기루가 떠오를 것을.
 나는 내 어리석음을 비웃을 현명한 사람들이 있을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나 자신 또한 내 어리석음을 비웃는 점에 한해서는 구태여 남에게 밀린다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심지어 그 어리석음을 사랑하는 나 자신의 흔들림을 연민할 수밖에 없다. 혹은 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흔들리는 다른 여러 사람도 연민할 수밖에 없다.

     서른하나 "옛날"

 내 작품에는 옛날을 다루는 작품이 많으니까 그런 옛날을 다룰 때의 태도를 이야기하란 주문이 왔다. 태도니 뭐니 하면 굉장히 거창하게 들리는데 그런 대단한 걸 지닌 건 결코 아니다. 뭐 내가 옛날을 쓸 때에 어떤 눈으로 옛날을 보는가. 바꿔 말하자면 내 작품 속에서 옛날이 어떤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그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본래 옷무새 바로잡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니 부디 그런 줄 알고 들어줬으면 한다.
 동화를 읽을 적에 일본은 "옛날옛날"이나 "지금은 옛날"이라고 쓴다. 서양에서는 "아직 동물들이 말을 할 적에"니 "벨트를 실로 대신할 적에"라고 쓴다. 그건 어째서일까. 왜 "지금"으로는 안 되는 걸까. 그런 건 본문에 나오는 갖은 사건에 어떤 가능성을 주기 위한 전제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동화 속에 나오는 사건은 하나 같이 신비한 일뿐이다. 그러니 동화 작가 입장에선 무대를 현대로 삼기엔 영 사정이 좋지 않다. 지금이라면 절대 일어날 일이 없으나 그보다 옛날이라면 편리하다. "옛날옛날"이라고 하면 거의 아득한 태고의 세상이니 손가락만 한 사람이 살아도, 대나무 속에서 공주님이 태어나도 딱히 모순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미리 "옛날옛날"이라 붙여두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게 "옛날옛날"의 유래라면 내가 옛날에서 소재를 찾는 건 대부분 이 "옛날옛날"과 같은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내가 어떤 테마를 잡고 그걸 소설로 쓴다고 치자. 그리고 그 테마를 예술적이고 가장 힘 있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느 이상한 사건이 필요하다고 치자. 그 경우 그 이상한 사건이란 이상한 만큼 오늘날 이 일본에 벌어지는 일로 적기엔 좀 어려운 면이 있다. 좀 더 강하게 써보자면 대부분의 경우엔 독자에게 부자연스럽단 느낌을 주어 모처럼의 테마마저 개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러니 이 곤란함을 배제하는 수단으론 "오늘날 이 일본에 벌어지는 일로 적기엔 좀 어려운 면이 있다"는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과거(미래는 희소하리라)거나 일본 이외의 땅에서 일어난 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내가 과거에서 소재를 찾은 이유는 대부분 이러한 필요에 쫓겨 부자연스러움을 피하기 위한 무대를 과거서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화와 달리 소설은 소설인 이상 "옛날옛날"이란 말로 넘길 수 없다. 그런 만큼 거의 시대적 제한이 생기고 만다. 따라서 이 시대의 사회 상태란 것도 자연의 감각을 만족시키는 정도로는 어느 정도 넣어 둘 필요가 생긴다. 그러니 소위 역사 소설하고는 어떤 의미에서나 '과거'의 재현을 목표로 삼지 않는단 점에서 구분이 갈지 모르겠다――대강 이런 식이다.
 덧붙이자면 이런 배경상 나는 과거를 다룬 소설을 쓰더라도 과거 자체에는 대단한 동경을 품지 않는다. 나는 헤이안 시대에 태어나는 것보다 또 에도 시대에 태어나는 것보다 오늘날 일본에 태어난 걸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덧붙이자면 어떤 테마 표현에 이상한 사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그 외에 또 모든 이상한 만물에 대해 내(우리 인간이라 하고 싶지만)가 가진 관심도 작동하고 있지 않나 싶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느 이상한 사건을 부자연스럽지 않게 적어야 하는 필요상 과거를 고르더라도 그런 필요 이외에 과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꽤나 크게 영향을 주고 있을 게 분명하다. 단지 과거가 내 작품 속에서 맡는 주된 역할은 역시 "벨트를 실로 대신할 적에"에 있다. 혹은 "아직 동물들이 말을 할 적에"에 있다.


     서른둘 도쿠카와 말기의 문예

 도쿠카와 말기의 문예는 불성실하다고 한다. 확실히 불성실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문예 작가는 과연 인생을 알지 못 했는가. 그건 의문이다. 화류계에 익숙한 그 사람들도 배 안쪽에서는 인생이 얼마나 암담한지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심지어 그 사실을 회피하기 위해(설령 무의식적이라도) 그런 것에 빠지게 된 건 아닐까? 그들 중 한 사람――이를테면 미야타케 가이고츠 씨의 산토쿄덴을 읽어 보아라. 그런 평생을 보내면서 인생의 암담함을 알지 못 했단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꼭 기뵤시나 샤레본 같은 통속 소설의 작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교쿠테이 바킨도 그의 권선징악의 주의를 믿지 않았다 생각하고 있다. 바킨은 어쩌면 믿으려고 노력은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에바 코손 씨가 편집한 바킨 일기 등을 보면 바킨 스스로의 모순에는 바킨도 알아차리지 못 했으리라. 모리 오가이 선생은 확실히 바킨 일기의 뒷장에 "바킨이여, 그대는 행복했다. 그대는 선왕이 가는 길을 믿을 수 있었다"하고 썼던 걸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바킨 또한 선왕의 길을 믿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작품은 거짓말투성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과 함께 세간을 속이려 했다 해도 좋다. 하지만 선이나 아름다움을 대한 추구는 그들의 작품에 남아 있다. 특히 그들이 살아 있던 시대는 프랑스의 로코코 왕조와 함께 실생활의 구석구석까지 미의식이 전해진 시기였다. 따라서 아름다움으로 말하자면 그들의 작품에 넘치는 공기는 참으로 아름답다(물론 조금 퇴폐적이긴 하다) 해도 좋으리라.
 나는 소위 에도 취미에 별 존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동시에 또 그들의 작품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사람 중 하나이다. 하지만 단순히 "천박"하단 말 하나로 그들의 작품을 일소하는 건 그들에게 유감이다. 만약 그들의 "농담"을 "진지함"이라 생각해 보면 키뵤시나 샤레본도 그 안에는 수많은 문제를 품고 있다. 우리는 그들 작품에 고마워하는 사람에게도 찬성할 수 없다. 하지만 또 그들의 작품을 일소하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가볍게 찬성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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