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오토미의 정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10. 5.
728x90
반응형
SMALL

       하나

 메이지 원년 5월 4일 오후였다. "관군은 내일 밤이 밝는 대로 토에이잔 쇼기타이를 공격한다. 우와노카이와이의 민가 사람들은 신속히 퇴거하라"――그런 통달이 내려온 오후였다. 시타야마치 니쵸메의 장신구점, 코가야세이베이가 떠난 흔적에는 주방 구석의 전복 껍데기 앞에 커다란 수컷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조용히 몸을 말고 앉아 있었다. 
 문을 닫은 집 안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웠다. 사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단지 귀에 들어오는 건 며칠 동안 이어지고 있는 빗소리뿐이었다. 비는 보이지 않는 지방 위에 이따금 급하게 내려서는 어느 틈엔가 다시 하늘로 멀어져 갔다. 고양이는 그 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호박색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궁이마저 구분이 가지 않는 주방에서도 이때만큼은 꺼림칙한 인광이 보였다. 하지만 쏴 하고 내리는 빗소리 이외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걸 알면 고양이는 역시나 미동도 않고 다시 한 번 실처럼 가는 눈을 떴다.
 그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는 사이 고양이는 기어코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비는 거세졌다 조용해지기를 반복했다. 여덟[각주:1], 여덟 반[각주:2]――시간은 그런 빗소리와 함께 점점 저녁으로 옮겨 갔다.
 그렇게 일곱[각주:3]에 이르렀을 때, 고양이는 놀란 것처럼 불쑥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귀도 쫑긋 세웠다. 하지만 비는 이제까지보다 많이 약해져 있었다. 거리를 빠르게 달려 가는 가마꾼 목소리――그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몇 초의 침묵 후, 어두웠던 주방은 어느 틈엔가 희미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좁은 판 사이를 덮고 있던 아궁이, 뚜껑이 없는 물병에서 빛을 반사하는 물, 조왕신을 기리는 소나무, 잡아 당겨 여는 창문의 망――그런 것도 서서히 보이게 되었다. 고양이는 기어코 불안하다는 양 밝아진 문을 바라보며 천천히 일어났다.
 이때 그 문을 열은 건 아니, 문만 열었을까. 장자를 열고 나타난 건 쫄닥 젖은 거지였다. 그는 낡은 손수건을 걸친 목만 앞으로 뻗고는 한동안 조용한 집 안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인기척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이것만은 새로운 대나무거적에 선명한 물기를 빛내며 조용히 주방으로 들어왔다. 고양이는 귀를 숙이며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거지는 놀라지도 않도 뒷문으로 장자를 닫으며 천천히 얼굴을 닦았다. 얼굴은 수염에 퍼묻히고 두세 군데에 연고도 발라져 있었다. 하지만 때로 범벅이 되어 있음에도 이목구비는 뚜렷했다.
 "삼색아, 삼색아."
 거지는 머리의 물을 털고 얼굴을 닦으며 작은 목소리로 고양이의 이름을 불렀다. 고양이는 그 목소리가 귀에 익은지 숙이고 있던 귀를 다시 세웠다. 하지만 다시 그곳에 자리한 채 때로는 가만히 그의 얼굴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대나무거적을 풀은 거지는 정강이 색도 보이지 않는 진흙발로 고양이 앞에 철푸덕 앉았다.
 "삼색아, 왜 그래?――다들 안 보이는 거 보면 너만 두고 다 떠났구나?"
 거지는 홀로 웃으며 커다란 손으로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살짝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물러나는 법은 없이 되려 거기에 앉아서는 점점 눈을 가늘게 떴다. 거지는 고양이를 쓰다듬는 걸 멈추고는 이번에는 낡은 유카타의 품에서 기름으로 빛나는 단총을 꺼냈다. 그리고 희미한 어둠 속에서 방아쇠 상대를 점검했다. "전쟁"의 분위기가 흐른다. 인기척 없는 집 주방에서 단총을 매만지는 한 거지――그건 확실히 소설에서나 볼 법한 기이한 광경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눈을 가늘 게 뜬 고양이는 역시나 등을 둥글게 만 채로 모든 비밀을 아는 것처럼 차갑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내일이야, 삼색아. 이 주변에 비처럼 철과 포가 쏟아질 거야. 그 안에 있으면 죽을 테니까 내일은 아무리 시끄러워도 하루 종일 엔가와 밑에서 나오면 안 된다……"
 거지는 단총을 점검하면서 이따금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너하고도 오래 지냈지. 하지만 오늘로 작별이야. 내일은 너에게도 재앙이 될 테지. 나도 내일은 죽을지 몰라. 또 죽지 않는다 한들 두 번 다시 너랑 같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럼 너는 진짜 기쁘겠지?"
 그러는 사이 비는 다시 한 번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구름도 벽돌 기와를 가릴 정도로 가깝게 지붕에 몰려들고 있다. 주방에 떠오른 옅은 빛은 전보다도 더 희미해졌다. 하지만 거지는 고개도 들지 않고 겨우 점검이 끝난 단총에 정중히 탄약을 장전했다.
 "아니면 좀 아쉬워해줄 거야? 아니, 고양이란 녀석은 삼 년의 은혜도 잊는다니까 너도 그럴 리는 없겠지――그래도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단지 나도 없으면――"
 거지는 불쑥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누가 문밖으로 걸어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거지는 단총을 넣는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또 현관의 장자에서 빛이 들어온 것도 그와 동시였다. 거지는 바로 자세를 잡고는 침입자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했다.
 그러자 장자를 연 누군가는 거지의 모습을 보자마자 되려 놀랐다는 양 "앗"하고 작게 소리를 질렀다. 그건 맨발에 큰 검은 우산을 쓴 아직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거의 충동적으로 비 안으로 뛰어 들려 했다. 하지만 놀란 걸 떨쳐내고 겨우 용기를 회복하고는 주방의 희미한 빛 너머로 가만히 거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거지는 당황했는지 낡은 유카타의 한 무릎을 세운 채로 가만히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방금 전과 같은 방심 없는 기미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잠시간 말없이 서로의 눈과 눈을 바라보았다.
 "뭐야, 신 아냐?"
 그녀는 조금 침착해진 듯이 거지에게 그렇게 말했다. 거지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두세 번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서 어쩌죠. 비가 너무 내려가지고 그만 빈 집에 실례를 해버렸네요――아뇨 뭐 빈집털이로 종목을 바꾼 건 아닌데."
 "정말 사람 놀래키기는――아무리 빈집털이가 아니라 해도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않아?"
 그녀는 우산의 빗방울을 털며 짜증 난다는 양 덧붙였다.
 "자, 여기로 나가. 나는 집에 들어갈 거니까."
 "네, 나가야죠. 나가지 말라 하셔도 나가아죠. 누님은 아직 퇴거 안 하신 거예요?"
 "퇴거했어. 했는데――그런 건 아무래도 좋지 않아?"
 "그럼 뭐 까먹으셨나 보네요――뭐 들어오셔요. 여기선 비 맞겠어요."
 그녀는 아직 성이 풀리지 않은 듯이 거지의 말엔 대답하지 않고 배수로에 앉았다. 그러고는 물에 진흙이 묻은 다리를 뻗고는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옆에 앉아 있던 거지는 수염투성이 턱을 매만지면서 뚫어져라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까무잡잡하고 코 주변에 주근깨가 있는 시골 처녀였다. 차림도 시종에 걸맞은 손으로 짠 목면 옷에 코쿠라 오비를 차고 있었다. 하지만 생기 넘치는 이목구비나 살짝 통통한 몸매는 어딘가 막 딴 복숭아나 배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소란 속에서 돌아 오신 걸 보면 뭔가 중요한 걸 잊으셨나 봐요. 뭐예요 대체? 네, 누님――오토미 누나."
 신은 다시 물었다.
 "뭐면 또 어떠냐니까? 그보다 빨리 좀 나가."
 오토미의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하지만 불쑥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신의 얼굴을 보더니 진지하게 이렇게 물었다.
 "신, 너 우리 집 삼색 고양이 못 봤어?"
 "삼색이요? 삼색이라면 여기에――어라, 어디 갔지?"
 거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고양이는 어느 틈엔가 선반의 사발이나 철냄비 사이서 몸을 작게 말고 있었다. 신은 물론이요 오토미도 곧장 그 모습을 발견한 거겠지. 그녀는 바가지를 내려놓자마자 거지의 존재도 잊은 듯이 판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선반 위 고양이를 불렀다.
 신은 어두운 선반 위 고양이서 눈을 떼고는 의아하다는 양 오토미를 보았다.
 "누님, 잊었다는 게 고양이였어요?"
 "고양이면 안 되니?――삼색아, 삼색아. 자, 이리 온."
 신은 불쑥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목소리는 빗소리가 울리는 와중에 거의 꺼림칙할 정도로 울렸다. 오토미는 다시 한 번 부끄럽고 화가 나 뺨을 붉히고는 대뜸 신에게 소리를 질렀다.
 "뭐가 우스운데? 집주인이 삼색이를 두고 왔다고 미치광이처럼 굴잖아. 삼색이가 죽으면 어쩌냐고 엉엉 울잖아. 나도 그게 불쌍해서 일부러 빗속을 뚫고 온 거 아냐――"
 "누가 뭐래요. 이제 안 웃을게요."
 신은 그럼에도 웃으면서 오토미의 말을 잘랐다.
 "이제 안 웃을 게요, 진짜. 근데 뭐 생각을 해보세요. 내일 당장이라도 '전쟁'이 시작되는데 고작 고양이 한 마리나 두 마리――그야 어떻게 생각해도 우습지 않겠어요? 누나 앞이라 하는 말이지만 여기 주인만큼 벽창호도 없을 걸요. 애당초 그 삼색이 찾으러……"
 "됐어! 주인 뒷담화는 듣고 싶지 않아!"
 오토미는 거의 발을 굴렀다. 하지만 거지는 생각보다 그의 험악함에 놀라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천천히 또 사양 없이 그녀의 모습에 시선을 주었다. 그녀는 그때 야만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비에 젖은 옷이나 유마키――그런 것들이 어디를 보아도 피부에 찰싹 달라 붙어 육체를 노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또 단숨에 처녀임을 느낄 수 있는 젊은 육체를 말해주고 있었다. 신은 그녀에게 눈을 준 채로 역시나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애당초 그 고양이 찾으러 누님을 보낸 것부터가 그래요. 안 그래요? 이 주변은 죄 퇴거 명령이 내려졌잖아요. 그럼 집이야 있어도 사람 하나 없는 들판이나 마찬가지죠. 설마 늑대야 나오지 않아도 어떤 위험한 꼴을 볼지 모르죠――안 그래요?"
 "괜한 걱정 하지 말고 어서 고양이나 잡아줘――아직 '전쟁'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대체 뭐가 위험하단 거야."
 "농담 마세요. 이런 상황에서 젊은 여자 혼자 걷는데 안 위험할 수 있겠어요? 애당초 여기는 저랑 누님 둘 뿐이잖아. 만에 하나 내가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면 누님은, 너는 어떻게 되는데?"
 신은 점점 농담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말투가 되었다. 하지만 맑은 오토미의 눈에는 공포의 그림자마저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 뺨에는 아까보다 더 혈기가 올라 있었다.
 "뭐야 신――너 지금 나 겁주냐?"
 오토미는 자신이 겁주듯이 신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겁을 줘요? 겁만 주면 다행이게요? 어깨에 힘주고 다녀본들 나쁜 녀석들 투성이야. 하물며 나는 거지잖아. 겁만 주면 다행이지. 만약 내가 정말 딴 맘이라도 먹으면……"
 신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머리를 얻어맞았다. 오토모는 어느 틈엔가 그의 앞에 커다란 검은 우산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건방진 소리 마라."
 오토미는 다시 신의 머리에 있는 힘껏 우산을 내리쳤다. 신은 곧장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우산은 그 순간 낡은 유카타의 어깨를 때렸다. 그 소동에 놀란 고양이는 철냄비 하나를 걷어차며 다른 선반으로 뛰었다. 또 동시에 소나무와 기름으로 빛나는 촛대 접시 등이 신의 위로 떨어졌다. 신은 일어나기 전까지 몇 번이나 오토미의 우산에 맞아야 했다.
 "씨발! 씨발!"
 오토미는 계속 우산을 휘둘렀다. 하지만 신은 얻어맞다가도 기어코 우산을 잡아당겼다. 그뿐 아니라 우산을 던지자마자 맹렬히 오토미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좁은 판위에서 잠시 힘겨루기를 했다. 이렇게 싸우는 중에도 비는 또 부엌의 지붕에 엄청난 소리를 만들어냈다. 빛도 빗소리가 높아지는 것과 동시에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신은 얻어 맞고 손톱에 긁혀도 무턱대고 오토미를 밀어붙이려 했다. 하지만 몇 번인가 실패한 후에 겨우 그녀에게 매달렸나 싶었더니 불쑥 튕기듯이 밀쳐져 버렸다.
 "이 개 자식!……"
 신은 장자를 뒤로한 채로 가만히 오토모를 노려 보았다. 어느 틈엔가 머리도 풀어진 오토미는 풀썩 주저앉은 채로 오비 안쪽에 넣어둔 면도칼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 그건 살기를 내뿜으면서도 또 동시에 묘하게 요염한 말하자면 선반 위에서 몸을 일으킨 고양이와 닮아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간 말없이 상대의 눈을 보았다. 하지만 신은 그 후 과장스러운 냉소를 지어 보이고는 품에서 방금 전까지 만지던 단총을 꺼냈다.
 "그래, 얼마든지 까불어봐."
 단총 끝은 천천히 오토미의 가슴을 향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분하다는 양 신의 얼굴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은 그가 소란 떨지 않는 걸 보고는 이번에는 무언가 떠올린 것처럼 단총 총구를 위로 들었다. 그 너머에는 어둠 속에서 호박색으로 빛나는 고양이 눈동자가 있었다.
 "잘 들어, 오토미 씨――"
 신은 상대를 애태우듯이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를 냈다.
 "이 단총이 펑하고 울리면 저 고양이가 거꾸로 떨어질 거야. 댁도 마찬가지고. 무슨 뜻인지 알겠어?"
 방아쇠는 이미 떨어지려 했다.
 "신!"
 오토미가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
 "안 돼. 쏘면 안 돼."
 신은 오토미를 보았다. 하지만 총끝은 여전히 삼색 고양이를 노리고 있었다.
 "안 되는 걸 누가 몰라."
 "쏘면 불쌍하잖아. 삼색이는 살려줘."
 오토미는 이제까지와 달리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지으며 진심으로 떨리는 입술 사이서 얇은 이를 엿보였다. 신은 반쯤 비웃듯이 또 반쯤 의아해하듯이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겨우 총긑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오토미의 얼굴에는 안도의 색이 드리웠다.
 "그럼 고양이는 살려주지, 대신――"
 신은 거칠게 말했다.
 "대신 네 몸을 빌리겠어."
 오토미는 살짝 시선을 돌렸다.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는 증오, 분노, 혐오, 비애, 그 외의 여러 감정이 불타올랐다. 신은 그런 그녀의 변화에 주의 깊게 주의하면서 옆으로 걸으며 그녀의 뒤로 돌아서는 거실의 장자를 열었다. 거실은 부엌에 비하면 물론 한 층 더 어두웠다. 하지만 퇴거한 흔적이라 해도 좋을 장이나 긴 화로는 그 안에서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신은 그곳에서 살짝 땀으로 젖은 듯한 오토모의 소매를 보았다. 그러자 그걸 느낀 걸까. 오토모는 몸을 비틀 듯이 뒤에 있는 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느 틈엔가 아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활기찬 색이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신은 당황한 듯이 묘한 눈 껌뻑임을 한 번 하더니 갑자기 다시 고양이를 향해 총을 뻗었다.
 "안 돼, 안 된다니까――"
 오토미는 그를 제지하려는 동시에 손안의 면도칼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안 되는 거 알면 저리로 가."
 신은 작게 웃었다.
 "적당히 좀 해!"
 오토미는 지긋지긋하다는 양 중얼거렸다. 하지만 대뜸 일어서서는 토라진 여자처럼 곧장 거실로 들어갔다. 신은 그녀의 포기가 좋아야 할 터인데 조금 놀란 모양이었다. 비는 이미 많이 희미해져 있었다. 더군다나 구름 사이로는 저녁 빛이라도 드리웠는지 어두웠던 부엌도 점점 빛을 되찾아 갔다. 신은 그런 가운데에 자리한 채 거실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오비를 푸는 소리, 다다미 위로 누운 소리――그리고 거실은 조용해졌다.
 신은 조금 주저한 밝은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오토미가 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로 위를 보며 누워 있었다. 신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도망치듯이 부엌으로 돌아갔다. 그의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는 표한 표정이 담겼다. 그건 혐오로도 보이는가 하면 부끄러움으로도 보이는 색이었다. 그는 거실로 나오더니 다시 거실에 등을 돌린 채로 불쑥 쓴웃음을 지었다.
 "농담이야, 오토미 씨. 농담. 이제 그만 나오세요……"
 ――몇 분인가 후, 품에 고양이를 넣은 오토미는 우산을 한 손에 든 채 찢어진 거적을 쓴 신과 가볍게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님, 아까부터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신은 아직 겸연쩍은지 오토미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뭔데!"
 "뭐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뭐 피부를 맡기는 건 여자한텐 큰일이잖아요. 그런데 오토미 씨는 고양이 목숨과 바꿔서――그건 좀 난폭한 일 아니에요?"
 신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오토미는 히죽 웃으며 품의 고양이를 매만졌다.
 "그 고양이가 그렇게 이뻐요?"
 "그야 삼색이도 귀엽지만――"
 오토미는 미적지근한 대답을 했다.
 "아니면 누나는 주위에서도 주인을 아낀다고 평판이 자자하잖아요. 삼색이가 죽으면 주인을 볼 면목이 없다――그런 걱정이라도 하신 거예요?"
 "그래, 삼색이는 귀엽지. 주인도 소중하고. 하지만 나는 말야――"
 오토모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먼 곳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해야 되지? 단지 그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쩐지 미안한 거 같아서 말야."
 ――더욱이 몇 분인가 후, 혼자 남은 신은 낡은 유카타의 무릎을 안은 채로 멍하니 부엌에 앉아 있었다. 저녁색은 희미해진 빗소리 속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창문의 망, 물병――그런 것도 하나씩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우에노의 종이 비구름에 묻혀 무겁게 울리는 소리를 퍼트리기 시작했다. 신은 그 소리에 놀란 것처럼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또 손을 더듬어 물 근처에 이르러서는 바가지에 물을 떴다.
 "무라카미 신자부로, 미나모토노 시게미츠. 오늘은 한 방 먹었군."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맛있다는 양 황혼의 물을 마셨다……
        *      *      *
 메이지 23년 3월 26일, 오토미는 남편이나 세 아이와 우에노의 길을 걸었다.
 그날은 마침 타케노다이서 제3회 내국박람회 개회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더군다나 쿠로몬 주변에는 사쿠라도 만개해 있었다. 그러니 거리의 인파는 심상치 않았다. 우에노 방면에서는 개회식의 귀가길인 듯한 마차나 인력거의 행렬이 쭉 이어져 있었다. 마에다 마사나, 타구치 우키치,  시부자와 에이치, 츠지 신지, 오카쿠라 텐신, 게조 마사오――마차나 인력거 손님 중에는 그런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다섯 먹은 차남을 안은 남편은 소매로 장남을 끈 채로 번잡한 거리의 인파를 피하며 이따금 걱정스럽다는 양 뒤를 따라오는 오토미를 돌아 보았다. 오토미는 장녀의 손을 끌면서 그때마다 밝게 웃어 보였다. 물론 이십 년이란 세월은 그녀에게도 노쇠를 가져왔다. 하지만 눈 안에 담긴 깔끔한 빛만은 과거와 다를 게 없었다. 그녀는 메이지 4. 5년 즈음에 코가야세이베이의 조카인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은 그쯤엔 요코하마에, 지금은 킨자 몇 쵸메인가에 작은 시계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오토미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때 마침 지나간 두 마리 말이 끄는 마차에는 신이 앉아 있었다. 신이――물론 지금의 신의 몸은 타조 깃털이니 근엄한 금장식이니 크고 작은 훈장이니 숱한 명예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반백의 수염 사이로 이쪽을 보고 있는 붉은 얼굴은 왕년의 거지임이 분명했다. 오토미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늦추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놀라지는 않았다. 신은 단순한 거지가 아니다――어째서인지 그런 걸 알고 있었다. 얼굴 탓인가, 말투 탓인가. 혹은 지닌 단총 탓인가. 어찌 됐든 알고 있었다. 오토모는 눈썹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신도 고의인지 우연인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십 년 전 비 오는 날의 기억은 이 순간 오토모의 마음에 안타까울 정도로 분명히 떠올랐다. 그녀는 그날 무분별하게도 한 마리의 고양이를 지키기 위해 신에게 몸을 맡기려 했다. 그 동기는 무엇이었는가――그녀는 알지 못 했다. 신은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가 던진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그 동기는 무엇이었는가――그 또한 알지 못 했다. 하지만 모름에도 불구하고 오토모에겐 그 모든 게 지나칠 정도로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마차와 엇갈리면서 어쩐지 살짝 기뻐졌다.
 신의 마차가 지나갔을 때, 남편은 인파 속에서 오토모를 보았다. 그녀는 역시 그 얼굴을 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웃어 보였다. 활기차게 또 기쁘게……

 

 

 

 

  1. 오후 두 시 [본문으로]
  2. 세 시 [본문으로]
  3. 네 시 [본문으로]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