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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의 산문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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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밤

 화로에 숯을 넣으려니 숯이 두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숯 그릇 밑바닥에는 숯 가루 안에 무언가의 나뭇잎이 건조하게 말라 있다. 어느 산에서 온 나뭇잎인가?――오늘 석간에 따르면 키소의 온타케엔 예년보다 훨씬 이른 첫눈도 내렸다고 한다.
 "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붉게 칠해진 낡은 책상 위에는 무로우 사이세이의 시집 한 권의 가철된 페이지를 펼치고 있다. "나는 펜을 들면 우울해진다"――이는 이 시인의 한탄이라고만 할 수 없다. 오늘 밤에도 홀로 차를 마시고 있으면 마음에 같은 쓸쓸함이 스며든다.
 "이제 좀 바깥으로 나오지."
 이 청화자기잔은 십 년 전에 산 것이다. "나는 펜을 들면 우울해진다"――그런 한탄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몇 년 후의 일이리라. 잔에는 이미 금이 가있다. 차도 차갑게 식어버렸다.
 "사모님, 탕파를 들일까요?"
 그러자 어느 틈엔가 화로 안에서 옅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집게로 헤짚어 보니 방금 전 나뭇잎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어느 산에서 온 나뭇잎일까?――이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벽을 가로 막은 책장 너머로 별하늘과 산이 보이는 것 같다.
 "그쪽에 불은 있으신가요? 저도 먼저 쉬려 합니다."

     모밀잣밤나무

 모밀잣밤나무는 아름답다. 뿌리나 가지는 어떤 선에도 커다란 저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데다가 가지를 덮은 잎도 강철처럼 빛나고 있다. 이 잎은 안개나 서리도 떨구지 못한다. 이따금 북풍에 휘날리면 단숨에 갈색의 뒷면을 드러낸다. 그리고 남자답게 웃는다.
 하지만 모밀잣밤나무는 야만적이지 않다. 잎 색에도 가지에도 어딘가 침착한 구석이 있다. 전통과 교양을 배운 문명인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정숙함이 있다. 떡갈나무는 이런 정숙함을 알지 못한다. 단지 겨울의 찌르는 듯한 거친 힘을 자랑할 뿐이다. 동시에 또 모밀잣밤나무는 우유부단하지 않다. 따스한 봄날씨와 장난치듯 살랑이는 녹나무는 모밀잣밤나무가 알지 못 하는 가벼움이리라. 모밀잣밤나무는 좀 더 우울하다. 대신에 좀 더 착실하다.
 모밀잣밤나무는 이러한 정숙함 때문에 우리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걸 테지. 또 이 우울한 그림자 때문에 우리의 경박함을 경계하게 되는 걸 테지. "일단 찾고 본 모밀잣밤나무의 여름 숲일까"――바소는 이백 여 년 전에도 모밀잣밤나무의 기질을 알고 있었다.
 모밀잣밤나무는 모습도 아름답다. 특히 햇살에 맑게 갠 하늘에 투명히 비치는 깊은 가지를 뻗으며 조용히 우뚝 서있는 모습은 장엄함에 가까운 광경이다. 남자다운 일본의 옛 천재도 모두 이 늙은 모밀잣밤나무처럼 유유히 또 엄숙히 서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 두터운 뿌리나 가지에는 비바람의 흔적을 남긴 채로……
 또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건 우리의 선조는 삼나무처럼 모밀잣밤나무 또한 신으로 추앙했었다.

     무시보시

 이 녹색 카타비라는 우리 할아버지의 옷이다. 할아버지는 성의 오쿠보즈셨다. 나는 할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돌아가신 날마다 술을 올리는 초상화를 보면 쿠로하부타에 몬츠키를 입으신 어딘가 고집이 쎄 보이는 노인이시다. 할아버지는 하이카이를 좋아하신 모양이다. 실제로 낡은 수첩 안에는 이런 구도 몇 개인가 적혀 있다.
 "늙은이에겐 차갑고 무거워진 와카자시랴."
 '아니, 무언가가 비치고 있다! 희미하게 해가 드리운 서쪽 창문의 장자에.'
 그 코몬 온나바오리는 우리 어머니의 옷이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에 떠나가셨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와 함께 기차를 탄 기억을 지녔다. 그때 입은 하오리가 이 코몬이었나 아니면 저 줄무늬 오메시였나?――어찌 되었든 어머니는 장문을 뒤로하여 무릎을 모은 채로 작은 담뱃대를 물고 계셨다. 이따금 내 얼굴을 보고는 아무 말도 않고 작게 웃으면서.
 (뭔가 했더니 대나무 가지다. 올해 자란 대나무 가지.)
 이 연노란색 하카타 오비는 내가 어릴 적에 차던 녀석이다. 나는 연약한 아이였다. 또 동시에 조숙한 아이였다. 내 기억에는 색이 검은 소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왜 그런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지금의 내 눈으로 보면 되려 추하기만 한 그 소녀를. 그 의문에 대답할 수 있는 건 이 오비 하나뿐이리라. 나는 단지 장뇌와 비슷한 추억의 냄새를 알고 있을 따름이다.
 (대나무 가지가 바람에 날린다. 사바계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선향

 나는 우연히 늘어진 천을 걸었다……
 묘하게 구름이 낀 유월의 어느 아침.
 빠따후통의 기생집의 어느 방.

 늘어진 천이 걸린 방 안에는 커다란 흑단 원탁 테이블에 아름다운 중국 소녀가 홀로 백의의 양팔꿈치를 얹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의 무례함을 부끄러워하며 원래대로 천을 내렸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 보니 소녀는 말없이 앉아서 머리 위치마저 바꾸려 하지 않았다. 아니, 내 존재를 전혀 모르는 것만 같다.
 나는 소녀를 보았다. 그러자 소녀는 의외로 작게 눈을 감고 있었다. 나이는 열다섯이나 열여섯 됐겠지. 얼굴은 이미 하얀 가루로 가득했다. 눈썹이 긴 오이 형태의 얼굴이다. 머리는 하늘색 끈으로 묶은 일본 소녀와 같은 사게가미, 입고 있는 뱌쿠에는 유행을 좇아 프랑스 비단으로 만든 듯하다. 또 부드러운 뱌쿠에의 가슴에는 금강석(다이아몬드) 브로치 하나가 생생한 빛을 내뿜고 있다.
 소녀는 빛을 잃은 걸까? 아니, 소녀의 코 끝에는 작은 동 연화의 향로에 선향이 하나 꽂혀 있다. 그 선향의 얇음과 올라오는 연기의 약한 일렁임――소녀는 물론 눈을 감은 채로 향선의 향을 맡고 있었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원탁 테이블 앞으로 걸어갔다. 소녀는 그럼에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커다란 흑단 원탁 테이블은 마치 맑은 물처럼 조용히 소녀를 비추고 있다. 머리, 뱌쿠에, 다이아몬드 브로치――무엇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선향만이 한 점의 불을 붙인 채로 연기를 내뿜고 있다.
 소녀는 이 한 줄기의 향에서 느껴지는 조용함과 한적함을 사랑하는 걸까? 아니, 잘 보면 소녀의 얼굴에 드러난 건 그런 침착한 감정이 아니다. 코끝을 끝없이 떨고 있다. 입술도 이따금 씰룩거린다. 그런데다가 조용히 정맥을 드리운 가련한 관자놀이 부근에는 옅은 땀마저 빛나고 있다……
 나는 그 순간 발견했다. 이 얼굴에 담긴 감정이 무엇인지를!
 묘하게 구름이 낀 유월의 어느 아침.
 빠따후통의 기생집의 어느 방.
 나는 그 후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아름다운 소녀 얼굴만큼 병적인 성욕으로 고민하게 만드는 안타까운 얼굴을 보지 못 했다.

     일본의 성모

 야마다 에모사쿠는 아마쿠사의 바다에서 성모수태의 유화를 만들었다. 그러자 그날 밤 성모 '마리야'는 꿈의 단게를 밟으며 그의 머리맡에 찾아왔다.
 "에모사쿠! 이건 누구 모습이지?"
 '마리야'는 그림 앞에 멈춰 서서는 내키지 않는다는 양 돌아보았다.
 "당신의 모습입니다."
 "내 모습! 이게 내 모습이랑 닮았을까? 이 노란 소녀가?
 "그야 닮지 않았을 테지요――"
 에모사쿠는 정중히 말을 이어갔다.
 "저는 이 나라 소녀처럼 당신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심지어 이는 보다시피 모내기 복장입니다. 하지만 원광이 있으니 평범한 여자로 보이지는 않겠지요."
 "뒤어 보이는 건 비가 그친 뒤의 논이고 논 너머는 마츠야마지요. 부디 마츠야마 하늘에 걸린 옅은 무지개도 봐주시지요. 그 아래에는 성령을 드러내기 위한 집비둘기 한 마리가 날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모습을 한 게 마음에 들지 않으시겠지요. 하지만 저는 알다시피 일본 화가입니다. 일본 화가는 당신의 모습마저 일본인으로 삼을 수밖에 없겠지요. 안 그렇겠습니까?"
 '마리야'는 겨우 납득이 간 것처럼 천상의 웃음을 빛내 보였다. 그리고 별하늘의 하늘로 살랑살랑 올라 갔다……

     현관

 나는 추운 밤의 뒷골목에 장자 너머로 붉은 불을 피운 어느 집 현관을 알고 있다. 현관을――하지만 그 가문비나무 격자문 너머로는 한 번도 발을 들인 적이 없다. 하물며 장자로 가로막힌 너머는 완전히 미지의 세계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현관 안쪽의 연극을. 눈물마저 부르는 인생의 희극을.
 작년 여름, 그곳에 있던 노인의 신발은 어디로 갔는가?
 저 낡은 낡은 신발과 저 작은 여자 신발과――그건 어느 때나 노인의 신발과 양말이 돌 위에 얹어져 있었다.
 하지만 작년 가을 말에는 이미 다른 신발이 어디선가 들어왔다. 아니 신발만이 아니다. 몇 번이나 나를 불쾌하게 한 저 얇은 양산!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작은 여자 신발에는 그만큼 정도 깊었다는걸.
 마지막으로 저 유모차! 저건 불과 사오 일 전부터 격자문 안에서 보이게 되었다. 자 보라, 남녀의 신발 사이에 공갈젖꼭지가 하나 떨어져 있다.
 나는 추운 밤의 뒷골목에 장자 너머로 붉은 불을 피운 어느 집 현관을 알고 있다. 마치 아직 읽지 않은 책의 목차만 대충 알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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