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한가함
"낙운퇴리결모려 이공홍진적점소
이는 한시를 만들 때에 이따금 참고한 이구령의 칠언절구이다. 지금은 어린 마음에 감탄할 정도로 명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흩은 구름 쌓인 곳에 초가집을 짓더라도 은급증서와 저금통장 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어찌 되었든 이구령은 창문 앞의 흐르는 물이나 머리맡의 책과 함께 유유한 한가함을 만끽하고 있다. 그 점은 정말이지 부럽다. 나는 글을 팔아서 입에 풀칠하기 위해 일 년 내내 바쁘게 살고 있다. 어제도 두 시까지 원고를 써서 겨우 잠자리에 드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전보 탓에 일어나야 했다. 회사가 명하기를 나보고 선데이 마이니치에 실을 수필을 쓰란다.
수필이란 한가함의 산물이다. 적어도 약간이나마 한가함을 자랑하던 문예의 형식이다. 예로부터 문인이 많았다지만 이제까지 한가하지 않은 와중에 수필을 썼다는 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사람은(이 요즘 사람이란 말은 굉장히 좁은 범위의 요즘 사람이다. 대강 다이쇼 12년 3. 4월 이후의 요즘 사람이다) 한가하지 않음에도 척척 수필을 적어 올린다. 아니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되려 한가하지 않기에 서둘러 수필을 쓰는 것이다.
본래의 수필은 네 종류이다. 혹은 더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제 다섯 시간 밖에 자지 못 한 현재의 내 머리에 따르면 첫 번째는 감상을 적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문異聞을 기록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고증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예술적 작품이다. 그런 네 종류의 수필이 존재 이유를 가지지 않는 경우는 굉장히 적다. 감개는 반드시 사상을 품기 마련이다. 이문도 이문이라 이름 붙인 이상 관심이 있는 게 분명하다. 고증도 학문을 빌리지 않는 한 손을 댈 수 없는 건 사실이다. 예술적 작품도――이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하지만 이런 수필은 조금도 한가하지 않은 날에는 전혀라고는 못 해도 쉽사리 손댈 게 되지 못 한다. 여기에 이르러 새로운 수필이 문단에 출현했다. 새로운 수필이란 무엇인가? 가치 없는 글을 늘어놓은 것뿐이다. 순수한 엉터리이다.
만약 내 말이 의심된다면 옛사람의 수필은 한동안 덮어두고 일단 관조루우기를 읽고 혹은 단장정잡배를 읽고 다음으로 매달 잡지에 나오는 대부분의 수필과 비교해보면 된다. 후자가 터무니없고 날림이란 건 일목요연하리라. 심지어 이 새로운 수필의 작가가 꼭 어리석은 사람인 건 아니다. 제대로 된 희곡이나 소설을 쓸 수 있는(예를 들면 나라던가) 상당한 재능인도 섞여 있다.
수필이 한가함의 산물이라면 한가함이란 돈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한가함을 얻기 전에 먼저 돈을 얻어야 한다. 혹은 돈을 초월해야 한다. 이는 어느 쪽도 절망이다. 그럼 새로운 수필 이외에 진짜 수필이 만들어지는 것 또한 역시 절망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구령은 "막문야인생계사"라 말했다. 하지만 나는 수필을 논하더라도 한가함의 산물로서의 수필을 논하더라도 야인생계사에 미치지 못한다. 하물며 앞으로도 쉽지 않으리란 걸 말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 김에 제목 또한 야인생계사로 하기로 했다. 물론 이도 한가함을 기다리지 못 하고 빠르게 적어 올린 수필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재밌다면 그건 작가인 나 자신이 대단하기 때문이라 여겨주길 바란다. 만약 또 재미 없다면――그건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시대의 죄라 생각해주길 바란다.
둘 무로우 사이세이
무로우 사이세이가 카나자와에 돌아온 건 두 달 전의 일이었다.
"도무지 돌아오고 싶어서 말야. 마침 각기병에 걸린 녀석이 고향 땅을 밟지 않으면 낫지 않는다잖아."
그렇게 말하며 돌아온 것이다. 무로우의 도자기 사랑은 나보다도 지나치다. 물론 나란히 가난하니 이름 있는 찻잔은 지니지 못 했다. 하지만 무로우의 컬렉션을 보면 확실히 어떤 취향으로 집중되어 있다. 말하자면 백자 고려자기도 그림이 그려진 도자기도 무로우 사이세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는 당연한 듯하면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느 날 무로우는 놀러 온 내게 붉은 카라쿠사 문양이 새겨진 쿠타니 사발 하나를 주었다. 그리고 열심히 이렇게 말했다.
"이 안에 양갱을 넣어보렴. (무로우는 뭐뭐 하거라 하지 않고 뭐뭐 하렴이라고 말한다.) 한가운데에 딱 다섯 조각 낸 새까만 양갱을 넣어 보렴."
무로우는 이렇게 충고하지 않고는 성이 풀리지 않는 신경을 지녔다.
또 어느 날 놀러 온 무로우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단고자카의 어느 골동품점에 청자 연병이 나온 걸 이야기했다.
"팔지 않고 둔다니까 이삼일 중에 다녀오렴. 만약 나갈 새가 없으면 심부름꾼이라도 보내고."
마치 내게 그 연병을 사야 하는 의무라도 있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 말을 따라 사러 간 걸 아직도 후회하지 않는 건 무로우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다행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무로우는 또 자기 이외에 정원을 만드는 일도 사랑한다. 돌을 두고 대나무를 심고 에이잔이끼를 깔거나 연못을 팔거나 포도 선반을 놓는 등 이래저래 손을 쓰는 걸 사랑하고 있다. 심지어 무로우 본인의 집이나 무로우 본인의 정원도 아니다. 집세를 내고 있는 셋방 정원에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있다.
어느 밤 찻상대로 불러진 나는 무로우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자 어두운 대나무 그늘에 끝없이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무로우의 정원에는 연못 이외에 흐르는 건 하나도 없다. 나는 의아해져서 "저 소리는 뭐야?"하고 물어보았다.
"아, 저거. 저건 밑에 츠쿠바이를 둬서 그래. 저 대나무 안에 바구니를 두고 바구니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으로 좁은 관을 통하게 해서……"
무로우는 곧장 설명했다. 무로우가 카나자와에 돌아갈 때 내게 선물한 게 그런 인연이 있는 츠쿠바이였다.
나는 무로우와 헤어진 후 그런 풍류와 인연이 없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 정원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원 구석의 비파나무는 마침 지금 쓸쓸한 꽃을 피우고 있다. 무로우는 언제 카나자와에서 다시 도쿄로 찾아 올까.
셋 큐피드
아사쿠사란 말은 복잡하다. 이를테면 시바나 아자부란 말은 하나의 관념을 주는데 그친다. 하지만 아사쿠사란 말은 적어도 내게 세 개의 관념을 주고 있다.
첫 번째로 아사쿠사에 들어가면 내 눈에 들어 오는 건 붉게 칠해진 커다란 사철이다. 혹은 그 사철을 중심으로 한 오층탑이나 니오몬이다. 이는 이번 지진에도 다행히 무사히 남을 수 있었다. 지금은 붉게 칠해진 당 앞에도 노란 은행 잎이 피어 그 안에는 여전히 비둘기 몇 십 마리가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으리라.
두 번째로 내가 떠올리는 건 연못 주변서 구경거리를 선보이는 노점들이다. 이는 모두 불타버렸다.
세 번째로 보이는 아사쿠사는 소박한 변두리의 일부이다. 하나가와도, 산야, 코마카타, 쿠라마에――그 외에 어디라도 상관없다. 단지 비가 그친 후의 벽돌 지붕이나 불이 들어오지 않은 고신등, 꽃이 떨어진 나팔꽃 화분서 "아사쿠사"의 작가 쿠보타 만타로 군을 느낄 수만 있으면 된다. 이 또한 이번 대지진이 한 줌의 흙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 세 아사쿠사 중 내가 좀 더 걸어 보고 싶은 건 두 번재 아사쿠사――활동사진이나 메리 고 라운드가 이어진 아사쿠사이다. 만약 쿠보타 만타로 군을 세 번째 아사쿠사의 시인이라면 두 번째 아사쿠사의 시인도 없을 수가 없다. 타니자키 준이치로 군도 그중 한 사람이다. 무로우 사이세이 군 또한 그중 한 명이다. 하지만 나는 그 외에도 한 사람의 시인을 두고 싶다. 그건 사토 소노스케 군이다. 나는 4, 5년 전에 분명 잡지 "산에스"에서 사토 군이 쓴 산문을 읽었다. 그건 고작 몇 페이지에 오페라 대기실을 그린 스케치였다. 하지만 큐피드로 분한 무수한 소녀가 나선계단을 내려가는 광경은 정말로 발랄했다.
두 번째 아사쿠사의 기억은 수없이 많다. 그중 가장 오래된 건 모래로 글을 쓰는 할머니의 기억일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항상 오색 모래에 시라이 곤파치나 코무라사키를 그렸다. 모래의 색은 묘하게 어두워서 시라이 콘파치나 코무라사키도 역시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 나가이 효스케라는 두꺼비 기름을 팔던 이아이누키도 있었다. 그 긴 검을 찬――아니, 그런 과거의 풍경은 지난번에 나츠미 선생님께서 "히간 지나서까지"서 쓴 이상 이제와서 내가 서툰 글을 쓸 필요는 없을 터이다. 그 외엔 수족관이 있는 야스모토 카메하치의 활인형이나 유럽의 X 광선 따위를 기억한다.
또 가까운 기억은 칼리갈리 박사의 필름이다.(나는 그 필름이 움직이는 동안 내가 든 지팡이 자루에 얇은 실을 건너는 거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이 거미는 표현파의 필름보다도 내게 더 큰 꺼림칙함을 주었다.) 혹은 러시아의 여자 곡마사 따위가 기억난다. 그런 기억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조금도 그리움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내 마음에 가장 또렷이 흔적을 남긴 건 사토 군이 그린 광경이다. 큐피드로 분한 무수한 소녀가 나선 계단을 내려가는 광경 말이다.
나는 또 어느 늦은 봄 오후, 어느 오페라의 대기실 복도서 그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사토 군이 적은 것처럼 나란히 나선 계단을 내려갔다. 장미색 날개, 금색 활, 그리고 옅은 하늘색 의상――그런 색채를 지니면서도 우울한 파스텔의 분위기를 두른 것 또한 사토 군의 산문과 똑같았다. 나는 매니저 N 군과 그들이 내려가는 걸 내려다보면서 문득 그 큐비드 중 한 명이 얼굴색이 밝지 않은 걸 보았다. 큐비드는 열다섯이나 열여섯 쯤 되었으리라. 힐끔 본 얼굴인 뺨이 축 늘어져 선병질처럼 말라 있었다. 나는 N 군에게 말했다.
"저 큐비드는 의기소침해 있네요. 무대 감독한테 혼나겠어요."
"어디요? 아, 쟤요? 실연 당했거든요."
N 군은 적당히 대답했다.
이 큐비드가 나오는 오페라는 희가극이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인생은 희가극마저――이제와서 그런 모랄을 가지고 올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월계수나 장미에 스포트 라이트를 내린 무대에는 그 후에도 줄곧 그림자처럼 큐비드 한 명이 실연 중이다……
- 흩은 구름 쌓인 곳 초가 짓고 살아가니 속된 세상 더불어 발자취도 성겨지네. 들사람 살아가는 형편을 묻지 말게 창문 앞 흐르는 물 베개 앞 책뿐이라. [출처] 김돈희_근현대 서예가 1세대@미술관에 書 _국현 덕수궁|작성자 바라보다 https://blog.naver.com/chatelain/22194297928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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