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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해명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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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나카무라 무라오 군.
 이는 자네의 '수필 유행'에 대한 대답이다. 나는 한동안 자네와 함께 천하의 문예를 논했기 때문인지 자네의 문장을 읽을 때에 일격을 가하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즉 한 달 정도 늦어지긴 했으나 작게나마 자네의 논진에 화살을 되돌려주는 셈이다. 부디 평소의 자네처럼 화가 나서 머리를 거꾸로 세우는 동시에 내심으론 자네가 날린 화살이 제대로 먹힌 거라 만족해주길 바란다.
 자네는 "모든 예술이란 예술 중에 한가함의 산물이 아닌 건 없을 터이다"하고 말했다. 또 "예술 따위는 그 본래의 성질상 한가함의 산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나 또한 자네와 논하면서 "수필은 한가함의 산물이다. 적어도 조금은 한가함의 산물임을 자랑스러워하던 문예의 형식이다"하고 말했다. 이는 물론 수필 이외에는 한가함이 섞여 있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조금은 한가함의 산물임을 자랑스러워한"이란 말도 사실상의 문제를 꼽아 보았을 뿐이다. 확실히 한가함은 예술 감상 및 그 창작에 필요조건 중 하나로 넣어야 하리라. 적어도 형편상의 조건 중 하나로 새야 할 터이다. 이 점은 나도 자네의 설에 이의를 주장할 생각이 없다. 또 동시에 자네도 내 설에 이의를 주장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다음으로 나카무라 군은 이렇게도 말했다. "아쿠타가와 씨는 한가함이란 돈의 산물이라 말했다. 하지만 (중략) 돈이 있고 없고와 무간하게 현재 같은 사회적 환경 속에서는 한가함 따위를 얻을 수는 없다.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바쁘리라.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바쁘리라. 한가함을 얻을 수 없는 건 돈의 유무보다도 되려 각자의 심경 문제라 생각한다" 그러면 한가함을 얻을 수 없다는 건 꼭 자네 생각의 전부가 아니란 뜻이다. 심경은 어찌 됐든 돈 이외에 다소의 한가함을 줄 터이다. 이 또한 내게 이존은 없다. 나는 자네와 논박한 문장 중에서도 "한가함을 얻기 전에 일단 돈을 얻어야 한다. 혹은 돈을 초월해야 한다"고 확실히 단언해두었을 터이다.
 하지만 나카무라 군은 불행히도 한가함을 가능케 하는 심경 이외에 한가함을 불가능케 하는 다른 요인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건 사회적 환경이라 생각한다. 전철이나 자동차, 비행기의 울림을 듣고 신문 잡지 속에 파묻혀 있으면 설령 돈이 있어 본들 과거 사람들이 잠겼던 '한가함'의 경지에는 도무지 이를 수 있을 거 같지 않다." 이건 나카무라 군뿐만 아니라 다른 식자 입에서도 이따금 나온 산악보다도 오래된 오류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환경은 단 한 번도 한가함을 간단케 한 적이 없다. 이십 세기의 나카무라 군은 자동차 소리를 신경 쓰고 있다. 하지만 십구 세기의 쇼펜하우어는 마부의 채찍 소리를 신경 썼다. 더욱이 그보다 더 옛날의 호메로스는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전차 소리를 신경 썼을 게 분명하다. 즉 옛날 사람도 그들이 있던 시대를 가장 소란스럽다 믿은 것이다. 아니, 그뿐일까. 자동차니 전철이니 비행기니 하는 소리는――혹은 현대의 사회적 환경은 되려 한가함을 얻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이다. 그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나고 자란 자네나 나인 만큼 그런 사회적 환경의 바깥엔 안주할 천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적막도 한가함을 파괴한단 관점에선 소동과 다를 바가 없다. 만약 거짓말 같다면 아프리카 밀림에 던져진 자네나 나를 상상해 보아라. 용맹한 자네는 호텐토토의 촌장 왕좌에 앉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불행한 촌장 나카무라 무라오는 발광해버릴 게 명백하다.
 나카무라 군은 더욱이 "그럼 한가하지 않은 현대 생활 속에선 예술을 바랄 수 없는 것인가. 나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예술 따위는 그 내용도 형식도 어느 시대나 어느 경지에서나 만들어지 듯이 얼마든지 자유자재로 유통될 수 있다. (중략) 시대시대에 따라 거침없이 변해 막히는 법이 없는 것이다"하고 말했다. 예술은 누구한테 재가 받을 필요 없이 저절로 바뀌는 게 분명하다. 그런 점에선 자네에게 동감한다. 하지만 동감이란 의미는 꼭 각 시대의 예술을 하나같이 그 시대의 예술이니 평등하게 인정하잔 뜻이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은 십오 세기의 이탈리아의 예술이다. 미래파 화가의 작품은 이십 세기 이탈리아의 예술이다. 하지만 어느 쪽도 동등하게 존경하자는 건――이는 물론 나카무라 군도 동감하리라.
 하지만 또 자네는 이렇게도 말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수필 또한 역시 "마쿠라노소시"나 "도연초"나 세이쇼나곤이나 요시다 켄코가 살아 있을 시대에는 그런 수필이 만들어지고 또 현재의 시대에는 현재 시대에 적응한 수필이 출현하기 마련이다.(내가 말하자면 당연한 일이다.) 나츠메 소세키의 '유리문 안'도 예술적이어서 이만한 수필이 없지 싶다.(내가 말하자면 굉장히 동감이다.) 그런 건 좀처럼 쉽게 바랄 수가 없다. 칸쵸로나 단쵸테이나 소세키 같은 건 물론이고 오카 에이치로 씨, 사사키 미츠조 씨 등의 수필에서도 그건 그것대로 새로운 시대의 수필로 충분하지 않은가." 자네의 말에 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리문 안'과 오카, 사사키 두 사람의 수필의 차이를 시대 차이만으로 둬서는 안 된다. 그야 물론 평소부터 경애하는 두 분이니 시대 차이뿐이라 해도 문제는 없으리라. 하지만 대의를 생각해 친근함을 멀리한 채 돌아보면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하물며 두 분의 작품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필이 얼마나 자네를 떠밀었다 해도 도저히 찬사를 보낼 수 없다.(또 덧붙이자면 나카무라 군은 과거 사람의 수필이 가진 장점을 자신이 말하는 소위 '과거의 풍미'와 동일시하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마쿠라노소시'를 사랑하는 건 '과거의 풍미'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과거의 풍미'만 사랑하지 않는 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자네는 "어차피 수필이다.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 너무 엉망진창이면 곤란하지만 너무 높은 품격도 필요 없고 명문일 필요가 없고 박식일 필요도 없으며 힘을 줄 것도 없다. 소박하고 천진난만하게 제각기의 소질을 따라 보고 느끼고 생각한 걸 쓰면 그걸로 족하다"하고 말했다. 그걸로 족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나카무라 군의 "너무 엉망진창이면 곤란하지만" 중 "너무"에 숨어 있다. "너무 엉망진창"에 곤란해하는 건 나 또한 자네와 다를 바가 없다. 단지 자네는 나보다도 관용의 미덕을 품고 있다.
 말을 하는 김에 곁가지로 빠지자면 나카무라 군은 '근래에 수필이 유행하면서 수필을 논할 때엔 반드시 나가이 후우 씨나 치카마츠 슈코 씨를 칭찬하며 젊은 사람들의 수필을 비웃는 경향이 있다. (중략) 세간이 인정하는 것에 꽁무니에 올라타 위에서 내려다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하고 말하고 있다. 이 또한 동감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특히 '젊은 사람들' 중에 나도 끼어준다면 더더욱 동감할 수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자네의 '수필이 유행하는 걸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건 나가토가와 키치지 씨가 시작한 잡지 '수필' 발행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하지만 수필이란 게 아쿠타가와 씨나 다른 문학가들이 정의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라면 (중략) 도저히 수필 전문 잡지 발간은 생각도 할 수 없을 것이다"하는 건 조금 지나친 말이다. 잡지 '수필'이 꼭 이상적 수필만 게재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자네가 주최하는 잡지 '새로운 파도'를 읽어 보길 바란다. 때로는 조금 오래된 파도를 게재하고 있고는 하니까. 
 나카무라 무라오 군.
 나는 자네의 글에 대강의 답이 되었으리라 믿고 있다. 하지만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내 수필을 논한 글은 논리정연치 못했다. 나는 '한가함을 얻기 전에 일단 돈을 얻어야 한다. 혹은 돈을 초월해야 한. 이는 어느 쪽도 절망이다"하고 말했다. 그럼 왜 어느 쪽도 절망인가? 이는 내 염세주의가 '일지 모른다'를 '이다'하고 단언케 한 것이다. 자네는 나를 연민했는지 불행히도 이 허를 찌르지 못했다. 논적에게 연민을 받는 불쾌함은 자네도 알고 잇을 터이다. 만약 자네와 한 논전 속에 조금이라도 적의를 느꼈다면 이 점만은 실로 화가 났다. 이상.

     둘

 새로운 파도 2월호에 기재된 후지모리 준조 씨의 문장 '우노 코지 씨의 작품과 사람에 관해'에 따르면 우노 씨는 당초 경멸하던 사토미 톤 씨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관심을 끌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토미 씨는 몰라도 나에 한해서는 후지모리 씨의 말은 들어 맞지 않는다. 우노 씨도 관심을 끌려 했을지 모르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나 스스로의 느낀 바를 말하자면 되려 관심을 끌려 한 건 나 혼자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후지모리 씨의 문장은 대가인 우노 씨에게 아픈 통격이 되지 못 하리라. 그러니 나 또한 우노 씨를 위해 이 문을 심을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이데아나 남에게 관심을 끌려고 하지 않는 간 지루함 그 자체란 증거이다. 동시에 또 내가 부끄러워하는 바이다. 그럼 관심을 끈다는 말로 표현되는 발랄한 생활력의 증거는 우노 코지 씨만의 독점거리로 두면 안 된다. 나 또한 어느 정도 나눠 받아야 할 터이다. 혹은 나 혼자에게만 주어져야 할 터이다. 그러나 편파적인 후지모리 씨는 우노 씨에게만 그런 명성을 주었다. 아무리 욕심에서 벗어난 나라도 질투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는 조금 한가한 틈을 다행으로 여겨 관심을 끌 말을 심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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