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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목이 떨어진 이야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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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

 카쇼지는 군도를 던져버리고는 무작정 말의 목에 매달렸다. 분명 목이 잘린 거 같다――아니, 이건 매달린 후에 그렇게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단지 무언가가 쓱 하는 소리와 함께 목에 들어온 거 같다――그와 동시에 매달린 것이다. 그러자 말도 상처를 입은 걸 테지. 카쇼지가 안장의 전륜에 눕자마자 소리 높여 울더니 코를 불쑥 하늘로 뻗고는 곧장 적과 아군이 뒤엉킨 안을 가로질러 가득 찬 고량밭을 똑바로 달렸다. 뒤에서 두세 발 총성이 들린 거 같았지만 그의 귀에는 꿈처럼만 들렸다.
 사람보다도 크게 자란 고량은 무작정 달리는 말에 짓밟혀 파도처럼 술렁인다. 그런 고량은 좌에서도 우에서도 어떤 것은 그의 변발을 쓸고 또 어떤 것은 그의 군복을 털고 또 어떤 것은 그의 목에서 흐르고 있는 새까만 피를 닦아주고는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리에는 그런 걸 하나하나 의식할만한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단지 베였다는 간단한 사실만이 괴로울 정도로 또렷히 뇌세포에 각인되어 있다. 베였다, 베였다――마음속으로 이렇게 반복하면서 그는 단지 기계적으로 땀투성이가 된 말의 배를 몇 번이나 신발 뒤축으로 걷어찼다.

       ―――――――――――――――――――――――――

 십여 분 전, 카쇼지는 동료 기병과 함께 아군 진지에서 강을 하나 둔 작은 마을 쪽으로 정찰을 가던 도중에 노랗게 물든 고량밭 안에서 불쑥 일본 기병 부대 하나와 조우했다. 그게 너무 갑작스러웠던 일인 나머지 적도 아군도 소총을 발사할 새가 없었다. 적어도 아군은 붉은 띠가 둘러진 군모와 역시 붉은 띠가 둘러진 늑골을 보는 동시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단숨에 군도를 뽑고서 곧장 말머리를 그쪽으로 돌렸다. 물론 그때는 만에 하나 자신이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누구의 머리에도 들어와 있지 않았다. 머리 속에 담긴 건 단지 적뿐이었다. 혹은 적을 죽이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말머리를 돌리는 동시에 하나같이 개와 같은 이빨을 드러내며 맹렬히 일본 기병이 있는 방향으로 쇄도했다. 그러자 적도 그들과 같은 충동에 지배된 걸 테지. 찰나 후, 마치 그들의 얼굴을 거울로 비춘 것처럼 이빨을 드러낸 얼굴이 몇 개나 그들의 좌우서 출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얼굴과 함께 몇 개의 군도가 바쁘게 그들 주위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후의 일은 영 시간관념이 명확하지 않았다. 기만 큰 고량이 마치 폭풍우라도 만난 것처럼 흔들리거나 그렇게 흔들리는 이삭 끝에 황동 같은 태양이 걸려 있는 건 신비할 정도로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소동이 얼마나 이어졌는가 그 사이에 어떤 사건이 어떤 순서로 벌어졌는가. 그런 점은 무엇 하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어찌 되었든 그런 와중에 카쇼지는 자신에게 전혀 의미가 없는 일을 미치광이 같은 큰소리로 외치며 무작정 군도를 휘둘렀다. 한 번 그 군도가 붉게 물든 것처럼도 느껴지지만 도무지 감각은 와닿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휘두르는 군도의 칼자루가 점점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묘하게 입안이 말라졌다. 그때 거의 안구가 튀어나올 것만 같이 눈을 크게 뜨고 혈색이 달라진 일본 기병의 얼굴이 크게 입을 벌리며 불쑥 그의 앞에 뛰어들었다. 붉은 띠가 둘러진 군모가 반쯤 갈라진 사이에서는 맨들맨들하게 맨 머리가 엿보였다. 카쇼지는 그걸 보고는 대뜸 군도를 들어 올려 있는 힘껏 머리 위로 휘둘렀다. 하지만 카쇼지의 군도에 닿은 건 상대의 군모도 아닐 뿐더러 그 아래에 자리한 머리도 아니었다. 그런 걸 아래에서 가르며 올라 온 상대편의 군도의 철이었다. 그 소리가 일렁이는 듯한 주위의 소란 속에서 무서울 정도로 깔끔하게 울려서 갈고 닦은 철의 비린내를 단숨에 예민해진 코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눈부신 햇살을 반사한 폭이 넓은 상대의 군도가 머리의 바로 위로 와서 빙글 큰 원을 그렸다――그렇게 생각한 순간 카쇼지의 목덜미에 무어라 말로 못할 차가운 게 쓱 하는 소리와 함께 들어온 것이다.

       ―――――――――――――――――――――――――

 말은 상처의 고통으로 앓고 있는 카쇼지를 얹은 채로 고량밭 사이를 무작정 달렸다. 아무리 달려도 고량은 그칠 줄 모르고 무성여 있다. 사람과 말의 목소리나 군도끼리 맞서는 소리는 어느 틈엔가 사라져 버렸다. 요동의 가을도 햇살도 일본과 별 차이가 없다.
 반복하여 말하자면 카쇼지는 말의 등서 흔들리며 상처의 고통으로 앓고 있다. 하지만 앙 다문 그의 이빨 사이이에서 새어 나오는 건 단순한 신음 이상으로 좀 더 복잡한 의미가 있었다. 그는 비단 육체적 고통만으로 앓는 게 아니었다. 정신적 고통 때문에――죽음의 공포를 중심으로 번잡한 감정 변화 때문에 울며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영원히 이 세상과 헤어져야 한다는 게 한없이 슬펐다. 또 그를 이 세상과 헤어지게 만든 갖은 인간이나 사건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이 세상과 헤어져야만 하는 자신 스스로에 속이 뒤집어지려 했다. 그리고――이런 잡다한 수많은 감정은 차례차례로 꼬리를 물듯이 끝없이 그를 괴롭혔다. 때문에 그는 이러한 감정이 오감에 따라 "죽는다, 죽는다"하고 외치거나 아버지나 어머니의 이름을 불러보거나 혹은 또 일본 기병의 욕지거리를 해보고는 했다. 하지만 그게 한 번 그의 입을 타면 불행히도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은 갈라진 신음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그는 그만큼이나 약해져버린 것일 테지.
 "나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을 테지. 이 젊은 나이에 이런 곳에 와 심지어 이유도 없이 개죽음을 당하고 말다니. 무엇보다 나를 벤 일본인이 밉다. 다음으로 나를 정찰로 보낸 우리 부대 상관이 밉다. 마지막으로 이런 전쟁을 시작한 일본과 청나라가 밉다. 아니 미운 건 또 있다. 나를 병졸로 만든 사정에 조금이라도 관여한 사람은 모두 나의 적이나 다를 바 없어. 나는 그런 여러 인간 탓에 하고 싶은 게 잔뜩 있는 이 세상 속과 이렇게 헤어지고 마는구나. 아아, 그런 인간이나 사정 속에 놓인 나는 얼마나 바보인가."
 카쇼지는 그 신음 속에 이런 뜻을 품으며 말의 목에 매달려 고량 안을 한없이 달렸다. 그 기세에 놀라 이따금 메추라기 무리가 바쁘게 날아오르지만 말은 애당초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등에 올라탄 주인이 이따금 떨어지려 하는 것도 아랑곳 않은 채 거품을 물며 달리고 있다. 
 그러니 만약 운명이 허락한다면 카쇼지는 이 끝없는 신음 속에 자신의 불행을 하늘에 호소하며 저 황동 같은 태양이 서쪽 하늘로 기울 때까지 하루 종일 말위에서 흔들렸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지평이 서서히 완만한 곡면에 이르러 고량과 고량 사이에 흐르는 폭이 좁고 탁한 강이 말의 앞길에 나타났을 때, 운명은 두세 그루의 갯버들 나무가 되어 이미 떨어진 잎을 낮은 가지에 모으며 혹독하게 강 끝자락에 서있었다. 그리고 카쇼지의 말이 그 사이를 지나자마자 불쑥 그 무성한 가지 속에 그의 몸을 안아 올리고는 물가의 부드러운 진흙 위로 던져버렸다.
 그 순간 카쇼지는 어떤 연상의 관계로 하늘에 불타고 있는 선명한 노란 불을 보았다. 어릴 적에 그의 집 주방에서 커다란 아궁이 밑에서 불타는 걸 본 선명하고 노란 불이다. '아아, 불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그 다음 순간에 그는 어느 틈엔가 정신을 잃고 있었다………

        중

 말 위에서 굴러 떨어진 카쇼지는 내내 맨정신이 아니었던 걸까. 확실히 상처의 고통은 어느 틈엔가 거의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흙과 피 투성이가 되어 인기척 없는 강 옆에 누워 갯버들 잎의 쓰다듬을 받고 있다. 높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본 기억이 있다. 그 하늘은 그가 이제까지 본 어떤 하늘보다도 높고 푸르게 부였다. 마치 커다란 남색 병을 거꾸로 뒤집어 그걸 아래서 올려다 보는 것만 같다. 심지어 그 병 밑바닥에는 거품을 모은 듯한 구름이 어디선가 만들어져 다시 어딘가로 태연히 사라지고 만다. 그런 게 마치 끝없이 살랑이는 갯버들 잎에 지워진 것만 같다.
 그럼 카쇼지는 내내 맨정신이었던 걸까. 하지만 그의 눈과 푸른 하늘 사이에는 그곳에 없던 수많은 무언가가 구름처럼 수없이 오고 갔다. 가장 먼저 나타난 건 그의 어머니가 입고 있던 낡은 옷이다. 어릴 적의 그는 기쁠 때도 또 슬플 때도 몇 번이나 이 옷자락에 매달렸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는 그가 손을 뻗어 붙잡으려 하자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사라지는 걸 보면 옷은 한없이 얄팍해져 저 너머에 있는 구름 덩어리를 운모처럼 투명하게 비추었다.
 그 후 보인 건 그가 태어난 집이었다. 넓기만 한 참깨밭이 같이 흘러왔다. 쓸쓸한 꽃이 해가 지는 걸 기다리듯이 피어 있는 한여름의 참깨밭 말이다. 카쇼지는 그 참깨밭 안에 서있는 자신이나 형제들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곳에 사람으로 보이는 그림자는 하나도 없었다. 단지 얄팍한 꽃과 잎이 몸을 살며시 기대어 옅은 햇살을 받고 있다. 이건 공간을 비스듬하게 가르며 떠오르듯이 사라졌다.
 그러자 다음으론 기묘한 게 하늘에 떠올랐다. 잘 보니 등불이 들어온 거리를 짊어진 채 걷는 커다란 용등이었다. 길이는 네다섯 간 정도 될까. 대나무로 만든 뼈대 위에 종이를 붙이고 붉은색과 푸른색의 화려한 색채로 칠해져 있다. 형태는 그림으로 보는 용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런 게 대낮임에도 안에 촛불을 드리운 채로 푸른 하늘에 나타났다. 그런데다 신비한 건 그 용등이 영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 긴 수염은 홀로 좌우로 움직이는 모양이다――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서서히 시야 밖으로 헤엄쳐 가더니 불쑥 사라지고 말았다.
 용등이 사라지니 이번에는 가련한 여자 발이 불쑥 하늘에 나타났다. 전족을 한 발이니 두께는 고작해야 세 촌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우아하게 굽은 발가락 끝에는 옅은 하얀색의 손톱이 부드럽게 살색을 가로 막고 있다. 카쇼지의 마음에는 그 발을 봤을 때의 기억이 꿈속에서 먹은 벼룩처럼 희미하고 먼 슬픔을 옮겨왔다. 다시 한 번 저 발을 만질 수 있다면――하지만 그건 물론 불가능할 게 분명하다. 여기와 저 발을 본 장소는 몇 백 리나 떨어져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발은 서서히 투명해지고 자연스레 구름 그림자에 삼켜져 버렸다.
 그 발이 사라졌을 때이다. 카쇼지는 마음속 밑바닥에서 이제까지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신비한 쓸쓸함에 휩싸였다. 그의 머리 위에는 커다란 푸른 하늘이 소리도 없이 뒤덮여 있다. 인간은 싫어도 이 하늘 아래서 내려오는 바람을 맞으며 비참한 생존을 거듭해야만 한다. 이는 말로 못할 쓸쓸함이리라. 그리고 그런 쓸쓸함을 지금까지 자신이 알지 못 했다는 게 이리도 신기한 일일까. 카쇼지는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 그의 눈과 하늘 안에는 붉은 띠가 담긴 군모를 쓴 일본 기병 부대가 이제까지 본 것 중 무엇보다 빠른 속도로 번잡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같은 속력으로 어디론가 바쁘게 사라져 버렸다. 아아, 저 기병들도 이러한 쓸쓸함은 자신과 다르지 않으리라. 만약 그들이 환상이 아니라면 나는 그들과 위로하며 하다못해 잠깐이나마 이 쓸쓸함을 잊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도 늦어버린 일이었다.
 카쇼지의 눈서는 그칠 줄 모르는 눈물이 터져 나와 있었다. 그 눈물로 젖은 눈으로 돌아보았을 때, 그가 보낸 이제까지의 생활이 얼마나 추함으로 가득 차 있었는가. 그건 이제 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누구에게나 사과하고 싶었다. 또 누구라도 용서해주고 싶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살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일을 해서라도 이 과거를 갚을 수 있으련만."
 그는 울면서 마음 밑바닥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한없이 깊고 한없이 푸른 하늘은 마치 그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한 척 혹은 한 촌씩 서서히 그의 가슴 위로 내려왔다. 그 푸른 공기 속에서 점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건 아마 낮부터 보이는 별일 테지. 이제는 저 그림자 같은 것도 두 번 다시 눈을 스쳐가지 않으리라. 카쇼지는 다시 한 번 탄식하고 불쑥 입술을 떨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하

 일본과 청나라 양국이 조약을 맺어 일 년 가량이 지난 어느 이른 봄의 오전이었다. 베이징 일본 공사관의 한 방에선 공사관 부속 무관 키무라 육군 소령과 마침 관명으로 내지에서 시찰하러 온 농산무성 소속 기술사 야마가와 이학사가 테이블 하나를 둔 채로 한 잔의 커피와 한 개비의 담배로 바쁘던 나날을 잊고 느긋이 잡담에 빠져 있었다. 이른 아침이지만 커다란 벽난로에 불이 타고 있기에 방은 자칫 땀이 흐를 정도로 더웠다. 그때 테이블 위에 얹은 화분의 붉은 매화가 이따금 중국 특유의 냄새를 풍겼다.
 두 사람의 화제는 한동안 서태후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윽고 청일 전쟁 당시의 추억 회상이 되었다. 그러자 키무라 소령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불쑥 일어나더니 방구석에 놓인 신주 일보 뭉치를 테이블에 가져왔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한 장을 야마가와 기술사 앞에 펼치고는 손가락으로 어떤 부분을 가리키며 읽어 보라고 눈짓을 했다. 그게 너무 갑작스러웠던 통에 기술사는 살짝 놀랐지만 상대 소령이 군인에 어울리지 않는 소탈한 사람이란 걸 평상시부터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곧장 전쟁에 관한 독특한 이야기를 예상하면서 그 종이를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사각의 글자로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글은 일본의 신문 말투로 고친 것이다.
 ――거리의 이발점 주인, 카쇼지란 사람은 청일 전쟁에 출정해 이따금 공을 세운 용사인데 개선 후에는 소행이 나빠져 술과 여자로 신세를 망쳐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개 술집에서 술친구와 말싸움을 하다 이윽고 서로 멱살을 잡고 싸움을 하게 되었고 목 언저리에 부상을 입어 목숨을 잃었다. 헌데 신기한 건 카쇼지의 목가의 상처란 싸우면서 흉기에 당한 게 아니라 청일 전쟁 중 전장에서 입은 상처가 다시 벌어진 것이라 한다. 실제로 본 사람이 말하기를 격투 중에 카쇼지가 테이블과 함께 넘어지자 목이 불쑥 가죽 한 장만 남긴 채로 선혈과 함께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고 한다. 단 당국은 그 진상을 의심하여 범인을 찾고 있으나 목이 떨어진 건 요재지이에도 실려 있는 만큼 카쇼지라고 다를 건 없지 않을까. 운운.
 야마가와 기술사는 글을 다 읽은 동시에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이게 뭐야"하고 말했다. 그러자 키무라 소령은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의기양양히 미소 지었다.
 "재미 있지? 이런 일은 중국 아니면 일어나지 않을걸."
 "이런 일이 많을 리가 있나."
 야마가와 기술사도 히죽히죽 웃으며 길어진 담뱃재를 재떨이에 떨구었다.
 "심지어 더 재밌는 건――"
 소령은 조금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살짝 말을 끊었다.
 "나는 그 카쇼지라는 녀석을 알고 있거든."
 "안다고? 이거 놀랐는걸. 설마 외교관이나 되는 주제에 신문기자랑 똘똘 뭉쳐서 적당한 거짓말을 날조한 건 아니지?"
 "왜 그런 별 볼 일 없는 일을 해. 나는 그 시절――전투 중 부상을 입었을 때 그 카쇼지란 녀석도 우리군 야전 병원에 수용되어 있었거든. 그래서 중국어 연습하는 김에 두세 마디 정도 섞어 봤지. 목에 상처가 있다니까 십중팔구 그 남자야. 듣자 하니 정찰인지 뭔지 나온 차에 우리군 기병과 충돌해 목에 일본도를 맛보았다지.
 "흐음, 기묘한 인연인걸. 하지만 이 신문을 보면 무뢰한이라 적혀 있잖아. 그런 녀석은 차라리 그때 죽어버리는 게 이 세상을 위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네."
 "그게 그 시절에는 굉장히 정직하고 사람 좋은 녀석이었어. 포로 중에서도 그렇게 유순한 녀석도 드물었지. 그러니까 군의관이든 누구든 그 녀석이 묘하게 귀여워 보여서 특별히 잘 치료해줬다나 봐. 그 녀석은 또 제 처지를 논한 적이 있는데 이게 꽤나 재밌는 소리더라고. 특히 그 녀석이 목에 부상을 입고 말에서 떨어졌을 때의 심정을 내게 이야기한 건 지금도 기억하고 있지. 어느 강가의 진흙 안을 구르면서 갯버들로 가려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머니 옷자락이니 여자 맨발이니 꽃이 핀 참깨밭 같은 게 또렷이 보였다네?"
 키무라 소령은 담배를 버리고 커피 찻잔을 입에 얹으며 테이블 위의 붉은 매화를 보고 혼잣말처럼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은 그걸 볼 적에 이제까지의 생활이 하찮아졌다는군."
 "그런데 전쟁이 끝나니 바로 무뢰한이 되었다 이건가. 이래서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거야."
 야마가와 기술사는 의자 등받이에 고개를 얹으며 다리를 뻗어 천장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믿을 수 없다는 건 그 녀석이 우리 앞에서 깨달은 행세를 했단 뜻이야?"
 "그럼 무슨 뜻이겠어."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적어도 당시엔 녀석도 진지하게 그렇게 느꼈을 거야. 아마 이번엔 또 목이 떨어지는 동시에(신문의 표현을 그대로 쓰자면) 역시 같은 걸 느꼈겠지. 나는 그걸 이렇게 상상해. 그 녀석은 싸우는 사이에 이유도 없이 테이블과 함께 던져졌을 거야. 서로 취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박자에 상처가 벌어진 긴 변발을 하고 있던 목이 바닥 위로 떨어졌지. 그 녀석이 전에 본 어머니의 옷자락이니 여자 맨발이니 혹은 또 꽃이 핀 참깨밭 같은 건 역시 그와 동시에 그 녀석의 눈앞에 떠올라 오고 갔겠지. 혹은 지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높은 푸른 하늘을 저 멀리서 바라본 걸지도 몰라. 그 녀석은 그때 자신의 이제까지의 생활이 한없이 보잘 것 없어졌지. 하지만 이제는 늦었어. 전에는 정신을 잃은 걸 일본의 간호병이 찾아 돌봐줬지. 하지만 이번 싸움 상대는 떨어진 목을 걷어찼다지. 그렇게 녀석은 후회하고도 또 후회하면서 숨을 거두는 거야."
 야마가와 기술사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대단한 공상가군. 만약 그렇다 치면 그 녀석은 왜 한 번 그런 꼴을 봐놓고 또 무뢰한 같은 게 된 거야?"
 "그거야 자네가 말한 대로 사람은 믿을 게 못 되기 때문이지."
 키무라 소령은 새로운 담배에 불을 붙이며 거의 자랑에 가까울 정도로 밝은 분위기로 작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믿을 게 못 된다는 걸 통렬히 깨달아 둘 필요가 있어. 실제로 그걸 안 자가 그나마 믿을만 해지지. 그렇지 않고서야 카쇼지의 목이 떨어진 것처럼 우리의 인격도 언제 목이 떨어질지 모를 일이야――모든 중국 신문은 이렇게 읽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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