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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110

속 서쪽의 사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2021.04.02 - [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서쪽의 사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 다시 이 사람을 보라 그리스도는 '만인의 거울'이다. '만인의 거울'이란 말은 만인이 그리스도를 따라 하란 말이 아니다. 단 한 명의 그리스도 안에 만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그리스도를 그리다 잡지 마감에 쫓겨 펜을 내려놔야만 했다. 지금은 조금 여유가 생겼기에 다시 한 번 나의 그리스도를 덧그리고 싶다. 누구나 내 글에――특히 그리스도를 그린 것 따위에 관심을 느끼는 법은 없으리라. 하지만 나는 네 복음서 속에서 또렷이 나를 부르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느끼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덧그리는 것 또한 나 스스로는 멈추게 할 수 없다. 2 그의 전기 작가 요한은 그리스도의 전기 작가 중에서 .. 2021. 4. 11.
쿠메 마사오 씨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쿠메는 관능에 예민한 촌뜨기입니다. 글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실생활 속에서도 촌뜨기스러운 면모는 잔뜩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관능만은 어지간한 도시 사람보다 훨씬 예민합니다. 거짓말 같다면 쿠메의 작품을 읽어 보십시오. 색채나 공기 같은 게 참으로 선명하고 참으로 청신하게 그려집니다. 이 점만을 떼어 이야기하면 현재 문단에서 쿠메와 맞먹을 사람은 몇 되지 않겠지요. 물론 촌뜨기 같은 부분에도 좋은 점은 있습니다. 아뇨, 되려 쿠메의 요새 같은 일면은 그런 데서 나오는 것이겠지요. 순박한 서정미 따위는 이 촌뜨기 기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먼저 확실히 할까요. 그건 쿠메가 촌뜨기라도 단순한 촌뜨기가 아니란 점입니다. 물론 이래서야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쿠메의 촌뜨기 기질 속에 도락가(댄디)의 기질이 많.. 2021. 4. 10.
내 주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책상 나는 학교를 나온 해 가을 "참마죽"이란 단편을 신소설에 발표했다. 원고료는 한 장에 40전이었다. 당시에도 그것만으로 입고 먹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때문에 나는 다른 벌이를 찾아 같은 해 12월에 해군 기관 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나츠메 선생님이 작고하신 건 그해 12월 9일이었다. 나는 한 달에 60엔의 월급을 받으며 낮에는 영문일역을 가르치고 밤에는 부지런히 일을 했다. 그로부터 일 년 가량 지난 후, 내 월급은 백 엔이 되었고, 원고료 또한 한 장에 2엔 전후가 되었다. 나는 그런 두 수입이 있으면 어떻게든 집안을 꾸려 갈 수 있겠지 싶어, 전부터 결혼을 약속한 친구의 사촌과 결혼했다. 내 낡은 자단 책상은 그때 나츠메 선생님의 사모님께 축하 선물로 받은 것이다. 책상은 가로로 세 척,.. 2021. 4. 9.
납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집 뒷마당 울타리 옆에 한 그루 납매가 있다. 올해도 츠쿠바산에서 불어오는 추위에 호박과 닮은 꽃을 피우지 못 했다. 이 나무는 본가에서 옮겨 심은 것이다. 가에이 시대에 그려진 집 그림을 펼쳐보면 츠지야 사도노카미의 집 앞에 '아쿠타카와'라 써넣는 걸 볼 수 있다. 이 '아쿠타가와'가 우리 집이었던 셈이다. 우리 집도 도쿠가와 가문의 와해 이후로 얼마 안 되던 돈마저 잃고, 부흥은 이루지 못 했으며 아버지나 숙부 모두 길에 내몰려 집안 재산을 다 팔아 넘겼다 한다. 할아버지의 와카자시 하나 남지 못 했다. 지금은 단지 한 그루의 납매만이 열여섯 손자에게 전해 내려오게 되었다 눈속에서도 투명하게 비치는 납매 가지야 2021. 4. 8.
서쪽의 사람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이래저래 십 년 전부터 예술적으로 그리스도교――특히 가톨릭교를 사랑하고 있다. 나가사키에 자리한 '일본 성모의 절'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나는 키타하라 하쿠슈 씨와 키노시타 모쿠타로 씨가 뿌린 씨앗을 주운 까마귀에 지나지 않는다. 또 몇 년 전에는 그리스도교를 위해 순직한 교도들에게 흥미를 느꼈다. 순교자의 심리가 내게는 갖은 광신자의 심리처럼 병적인 관심을 쥐여준 셈이다. 나는 그제야 네 전기 작가가 우리에게 전달한 그리스도란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오늘의 나는 그리스도를 길거리의 사람처럼 볼 수 없다. 어쩌면 그 사실은 서양 사람은 물론이고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웃음을 살지 모른다. 하지만 19세기 말에 태어난 나는 그들이 보기에는 질린――되려 넘어트리는 .. 2021. 4. 2.
타니자키 준이치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어느 초여름 오후, 나는 타니자키 씨와 칸다 외출을 나섰다. 타니자키 씨는 그 날도 검은 양복에 붉은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장대한 옷깃 장식에 상징적인 로맨티시즘을 느꼈다. 물론 이건 나뿐만이 아니다. 길거리 사람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와 같은 인상을 받았으리라. 엇갈리면서도 다들 뚫어져라 타니자키 씨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타니자키 씨는 도무지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건 자네를 보는 거지. 미치유키같은 걸 입으니까." 나는 마침 여름용 외투를 대신해 아버지의 미치유키를 빌려 입고 있었다. 하지만 미치유키는 다도 스승도 보다지의 스님도 입는다. 대중의 눈을 끈 건 분명 한 송이 장미꽃을 닮은 비범한 넥타이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타니자키 씨는 나처럼 로직을 존중하지 않는 시인이기에.. 2021.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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