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내 주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4. 9.
728x90
반응형
SMALL

     하나 책상

 나는 학교를 나온 해 가을 "참마죽"이란 단편을 신소설에 발표했다. 원고료는 한 장에 40전이었다. 당시에도 그것만으로 입고 먹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때문에 나는 다른 벌이를 찾아 같은 해 12월에 해군 기관 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나츠메 선생님이 작고하신 건 그해 12월 9일이었다. 나는 한 달에 60엔의 월급을 받으며 낮에는 영문일역을 가르치고 밤에는 부지런히 일을 했다. 그로부터 일 년 가량 지난 후, 내 월급은 백 엔이 되었고, 원고료 또한 한 장에 2엔 전후가 되었다. 나는 그런 두 수입이 있으면 어떻게든 집안을 꾸려 갈 수 있겠지 싶어, 전부터 결혼을 약속한 친구의 사촌과 결혼했다. 내 낡은 자단 책상은 그때 나츠메 선생님의 사모님께 축하 선물로 받은 것이다. 책상은 가로로 세 척, 세로로 네 척, 높이는 일 척 오 촌 정도이다. 나무는 마르지 않았지만, 지금은 판의 결합부에 약간의 균열이 생겼다. 하지만 이래저래 십 년 가까이 항상 이 책상을 마주하고 있으니, 역시 애착이 생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둘 연병


 내 청자 연병은 단고자카의 골동품점에서 사온 것이다. 물론 나서서 산 건 아니다. 나는 언젠가 이 연병에 관한 걸 "야인생계사"에 쓴 적이 있다. 거기서 조금 발췌하면――
 또 어느 날 놀러 온 무로우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단고자카의 어떤 골동품점에 청자 연병을 팔고 있다 말했다.
"팔리지 않고 있더라고. 2, 3일 중에 구해와. 만약 나갈 새가 없으면 심부름꾼이라도 보내고."
 마치 내게 그 연병을 사야 할 의무라도 있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말하는 대로 사온 걸 아직도 후회하지 않은 건 무로우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기쁜 일일 수밖에 없다.
 이 문단에서 나오는 무로우라는 건 물론 무로우 사이세이 군을 말하는 것이다. 연병은 15엔이었다.


     셋 펜받침

 나츠메 선생님은 펜받침 대신에 찻받침을 쓰셨다. 나도 그 지혜를 빌려서 집에 내려오는 자단 찻받침을 펜받침으로 섰다.(선생님의 펜받침은 대나무였다.) 이건 코우이의 사촌 동생에 해당하는 사이키 이베이가 만든 물건이다. 나는 가마쿠라에 살 적에 스가 토라오 선생님께 글자를 부탁받아 펜받침 홈 안에 "본시산중인 애설화중화"라 새겨 넣기로 했다. 찻받침 외에는 이베이 본인이 아마추어의 손에 그려진 듯한 나무나 물이 새겨져 있다. 그렇게 말하면 불쑥 풍류 있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성격과 거리가 멀기에 먼지나 잉크로 범벅이 되어 있고, 때로는 "본시산중인"마저 거꾸로 되어 있다.

     넷 각로

 작고 긴 각로를 산 것 역시 내가 결혼했을 때였다. 이건 고작 5엔이었다. 하지만 서랍 따위는 가격보다도 훨씬 잘 만들어져 있다. 나는 당시 가마쿠라의 츠지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 셋집은 어떤 실업가의 별장 안에 세워져 있어, 파초가 지붕을 가리거나 넓은 연못을 볼 수 있거나 의외로 살기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팔 첩방이 둘, 육 첩 방이 하나, 네 첩 반이 두 방, 게다가 욕탕이나 주방이 있음에도 집세는 18엔을 넘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네 첩 반 방에 이 작고 긴 각로를 두고 태평무사히 살고 있었다. 그 셋집도 이제는 지진 때문에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으리라.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