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학교 친구들에 관한 말이면서, 학교 친구들의 전부는 아니다. 단지 겨울밤이나 전등 아래에서 원고지를 볼 적에 문득 마음에 떠오른 학교 친구들에 대한 생각일 뿐이다.
코우타키 타카시 내 초등학교 친구이다. 아내 이름은 아키나. 하타 토요키치는 이 부부를 남화적 부부라 말했다. 도쿄 의과 대학을 나와 지금은 샤먼 아미어 아무개 병원에 있다. 인생관상의 리얼리스트지만 실생활에 임할 때에는 그리 리얼리스트라 할 수 없다. 서양 소설 속에 나오는 의사와 닮아 있다. 아이의 이름은 미노토라 한다. 코우타키의 아버지가 작명한 걸 생각하면 독특한 이름을 좋아하는 건 유전적 취미 중 하나로 봐야 하리라. 글은 제법 교묘하다. 노래도 시도 아마추어급으로 만든다. "신나이에서 내려다 바라보면 등롱이려나."란 시를 썼다.
노구치 신조 역시나 초등학교 때부터 어울린 친구이다. 옷 가게 다이히코의 젊은 도련님이다. 단지 별로 도련님 같지는 않다. 품행방정하며 학문을 좋아한다. 자기 집을 나설 때에도, 나가는 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번 집으로 돌아가 곧장 다시 나올 정도로 신경질적인 경향이 있다. 초등학생일 때 나와 모험 소설을 만들었다. 나보다도 잘 썼을지 모른다.
니시카와 에이지로 중학교 때부터 사귄 친구이다. 나도 물론 수재이지만 니시카와의 수재성은 나와 비할 바가 못 된다. 도쿄의 농과 대학을 나와 지금은 돗토리의 농림 학교에 있다. 벌명은 사자. 혹은 사자공이라 부른다. 용모가 영양 불량의 사자하고 닮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에는 같이 영어를 공부하여 "사냥꾼의 앨범", "사포", "로즈메르솔롬", "타이스"의 영역 따위를 읽은 걸 기억한다. 그 외에 유도, 수영 등도 니시카와와 함께 연습하고는 했다. 지진 얼마 전에 서양에서 돌아와 뱃여행기를 쓰다 모조리 태웠다고 한다. 리얼리스트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센티멘탈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전 번에 톳토리의 감을 받았다. 보답으로 버틀러의 책을 보내기로 했는데 아직 보내지 않았다. 단지 감의 3분의 1은 떫은 감이었다.
나카하라 야스타로 역시나 중학교 때부터 사귄 친구다. 별명은 너구리. 하지만 얼굴은 너구리와 닮지 않았다. 성격도 너구리라 부를만한 구석이 있다. 니시카와에 지지 않을 정도의 수재로, 세상 물정에 한해서는 니시카와보다도 정통할지 모른다. 키쿠치 칸의 작품――특히 "아버지, 돌아오다"의 애독자. 도쿄의 법과 대학을 나와 미쓰이 물산에 들어가였고, 지금은 독립 상인을 하고 있다. 실생활 상에서도 적당한 리얼리즘을 더한 인도주의자. 크게 벌면 내게 별장을 사준다고 약속하였는데 아직 안 사준 거 보면 대단한 수입은 없는 듯하다.
아마모토 토키요시 이 또한 중학교 때부터 사귄 친구다. 동시에 인척 중 한 명이다. 도쿄의 농과 대학을 나와 지금은 베이징의 미쓰비시에 있다. 중대하지 않은 연애상의 센티멘탈리스트. 스즈키 미에키치, 쿠보타 만타로의 애독자이지만 요즘에는 별로 읽지 않는다. 의젓하고 깔끔하게 생긴 주제에 의외로 싸울 때에는 지지 않는 구석이 있다. 중국에서 목화인지 뭔지를 심고 있다.
츠네토 쿄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친구이다. 옛성은 이가와. 냉정한 감정가란 말이 있다면 츠네토가 딱 그 중 한 사람이다. 교토의 법과 대학을 나와 그곳의 조교수인지 무엇인지가 되었고, 지금은 파리에서 유학 중이다. 내가 논의를 좋아하는 건 온전히 이 신랄한 논리적 천재의 영향 때문이다. 구도 쓰고, 노래도 쓰고, 소설도 쓰고,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재능인이다.물론 지금은 그런 건 모르는 체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나는 대학 재학 중에 운시 마츠에에 자리한 츠네토의 집에 여름 동안 머무른 적이 있다. 그때 츠네토에게 선동 당해 마츠에 기행 한 편을 만들어 쇼요신보라는 신문에 넘겼다. 엄연히는 내가 본명을 써서 문장을 공개한 첫 일인 셈이다. 아내의 이름은 마사코. 군자의 좋은 배필이란 게 딱 들어맞는 분이다.
하타 토요키치 역시나 고등학교 이후로 사귄 친구이다. 마츠모토 시로의 조카이다. 도쿄 법과 대학을 나와 지금은 베를린 미쓰비시에 자리를 튼 선량한 도회적 재능인이다. 갖은 내 친구 중에서도 가장 여자에게 반하기 쉽다. 물론 여자에게 반하더라도 큰 손해를 보는 남자는 아니다. 나가이 카후, 공쿠르, 우타모라의 신자였지만 요즘에는 톨스토이 등을 꺼내고는 한다. 내게 아스트라칸의 모자를 주겠다 약속하였는데 아직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 자유롭게 글을 쓰는 건 문단 사람 중에서도 희소하리라. "스트린드베리의 마지막 사랑"은 2, 3일만에 번역을 마쳤다고 한다.
후지오카 조로쿠 역시나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친구이다. 도쿄의 문과 대학에서 나와 지금은 법정 대학인가에 있다. 내 많은 친구들 중에서도 후지오카만큼 손해를 본 남자는 찾아 볼 수 없다. 후지오카가 항상 손해를 보는 건 결코 후지오카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후지오카가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후지오카의 할아버지 되는 사람은 강가에 주저앉아 구걸하는 사람을 보기 많이 춥겠다 싶어 자기도 얇은 옷 하나만 입고 추운 겨울의 엔가와에 앉아 있었기에 기어코 감기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분명 선조부터 이어지는 맹렬한 이상주의자이리라. 이 이상주의자를 이해하지 못 하는 세간은 후지오카를 보고 민완가라 부른다. 우스운 걸 넘어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천하 사람이 무어라 말한들 후지오카는 결과 민완가지 않다. 속이기 쉽고 속아 넘어가기 쉬운 정직 일변도의 학자이다. 내 말을 의심하는 자는 시험 삼아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다――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재능인이다. 후지오카 조로쿠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친구이다. 그 친구에게 15년 간 속을 재능인이 과연 존재하랴.(후지오카 조로쿠의 선배나 지기들이 대부분 철학자이기에 삼단논법을 쓰는 것과 같다.)
그 외에 키쿠치 칸, 쿠메 마사오, 야마모토 유조, 오카에 이치로, 나루세 슈이치, 마츠오카 유즈루, 에구치 칸도 학교 친구이다. 하지만 이 친구들에 관한 건 이미 한 번 이상 썼거나 혹은 백 년 내에는 쓰게 될 사이기에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이제부터 적는 건 잊기 어려운, 이미 세상을 뜬 친구들이다.
오오시마 토시오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이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애어른스러운 소년이었지만, 오오지마에게는 한 걸음이나 두 걸음 정도 밀렸음을 기억한다. 원예를 좋아하고 문에를 좋아했으나 스무 살도 되지 않아 폐결핵으로 명을 달리했다. 그런 애어른 같은 분위기가 그렇게 요절할 전조라도 됐던 것만 같이. 물론 나는 유감스럽게도 매번 오오지마를 울렸고, 울보라며 놀리고는 했다.
히라카츠 이치로 중학교 시절 친구이다. 사람들이 이따금 나와 헷갈리고는 했으니, 얼굴이 길고 초췌했음을 알 수 있으리라. 로맨틱한 수재였지만 오카야마의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신결핵에 걸려 죽었다. 히라카츠의 아버지는 화가였고, 그 마지막 작품이라는 지장보살을 본 적이 있다. 병과 함께 실연하여 치바 오오하라의 병원에서 홀로 죽었기에 가장 마음에 두고 있는 친구이다. 한 때 중학교 서기가 되어 자취 생활을 했을 때, "저녁놀 아래 전갱이 어떤 서기 꼭 빼닮았네."하고 제 병약한 몸을 비웃은 적이 있다. 실연 상대도 본 적은 있으나 지금은 어쩌고 있는지 알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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