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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에구치 칸 씨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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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구치는 결코 소위 쾌남아가 아니다. 좀 더 복잡하고 좀 더 음험하게 풍부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애증을 움직이는 법 또한 진지하면서도 병적인 집착을 품고 있다. 에구치 본인이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근대적이란 말로 형용해도 좋다. 어찌 되었든 증오할 때에도 사랑할 때에도 모종의 박정함 따위가 반드시 에구치의 감정을 뜨겁게 하고 있다. 철이 달궈질 때에 흑열이라는 상태가 있다. 겉보기에는 검지만 손이 닿으면 곧장 그 손을 달궈버린다. 에구치의 성격이 이와 닮았다. 반복해 말하지만 결코 단순한 철 같은 쾌남아 따위엔 속하지 않는다. 
 또 에구치의 머리는 비평가보다는 창작가에 어울린다. 의논을 하더라도 논리보다는 직관으로 밀어붙이는 타입이다. 때문에 에구치의 비평은 이따금 탈선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대개 자신이 받은 감명에 논리를 뒷받침 시킬 때에 탈선하는 경우다. 감명 자체가 잘못된 경우는 많지 않다. "기교는 수학자도 알 수 있다. 작품의 힘, 생명을 움켜쥐는 게 진짜 비평가이다." 같은 말도 있지만, 그건 그럴싸한 거짓말이다. 작품의 힘, 생명 따위는 아마추어도 알 수 있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번역이 팔리는 이유다. 진짜 비평가만이 알 수 있다면 어떤 신극단도 스트린드베리나 입센을 하지 않는다. 작품의 힘, 생명을 포착하는 것만 아니라, 기교와 내용의 미묘한 관계에 초점을 가져야만 비로소 비평가가 될 수 있다. 에구치가 하는 비평의 강점은 이 미묘한 관계를 직각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생각한다. 이건 별거 아닌 듯하지만, 의외로 지금의 비평가에게 부족한 강점이다.
 마지막으로 창작가 에구치는 대체적으로 인간적 관심을 중심으로 한, 심리보다도 되려 사건을 그리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마부"나 "붉은 돛"이 그런 경향이 현저하다. 하지만 에구치의 인간적 관심 뒤에는 결코 건전하다 할 수 없는 이상성(어브 노멀리티)를 품고 있다. 이건 키쿠치가 지난달의 문장 세계에서 지적한 점이니 새삼 반복할 필요도 없지만 단지, 내게는 이 이상성이 그 흑열된 철 같은 에구치의 성격에서 필연적으로 샘솟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병적인 박정함이 색채를 띠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묘사는 거의 타니자키 준이치로 씨의 넓은 폭을 방불케 할 정도로 뛰어나다. 무엇이든 평평하게 꾹꾹 밀어 가는 부분이 있다. 물론 그렇게 밀어내는 힘을 미처 지배하지 못 하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그 힘이 맹목력(블라인드 포스)이 아닐 적이 오면, 그때야말로 에구치는 진짜 에구치가 되리라.
 에구치는 과거에 논란 공격의 글을 적었다. 때문에 좋은 족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여러 오해를 받는 듯하다. 에구치를 쾌남아로 보는 것도 좋은 오해 중 하나다. 나쁜 오해 중 하나는 에구치를 어벙한 사람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한 오해는 에구치를 위해서도 닦아낼 필요가 있다. 에구치가 쾌남아라면 우울한 쾌남아이다. 에구치가 어벙하다면 교양 있는 어벙한 사람이다. 나는 '신조'의 '사람 인상'을 이렇게 길게 써본 적이 없다. 쓸 생각이 든 건 에구치나 에구치의 작품이 우리 동료에 비하면 가장 일그러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보잘 것 없는 글이라도 에구치에게 정당한 가치를 주는데 일조한다면 다행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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