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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카구치 안고49

스모 방송 - 사카구치 안고 나츠바쇼가 다가왔다. 평소 방송을 듣지 않는 사람도 그것만은 스위치를 넣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물어보니 방송은 들어도 혼바쇼는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방송 자체에 독특한 매력이 있는 모양이다. 스모 방송의 독특한 매력은 입회하는데 10분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점 아닐까 싶다. 스모는 좋지만 입회가 길어서 싫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다다미 위에 누워서 반쯤은 책을 읽으며 듣는 느긋함은 야구같이 바쁜 걸로는 느끼기 힘들다. 하물며 바쁜 주제에 일투일타가 직접 승부에 이어지는 고조된 긴장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반면에 스모는 시작되면 대뜸 승부가 난다. 더할 나위 없는 힘 싸움과 긴장감이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일하는 틈틈이 라디오를 듣는 사람에겐 입회 시간이 꽤나 유쾌한 여유가 된다... 2023. 2. 19.
신동이 아니었던 랭보의 시 - 사카구치 안고 나는 나카하라가 번역할 때까지 랭보에게 '학창시절의 시'란 게 있는 걸 알지 못했다. 프랑스 전집에는 실려 있지 않다. 일본식으로 세면 열다섯에서 열일곱 살까지 쓴 작품인 듯하다. 난 여지껏 랭보가 신동이었음에 분명하다 생각했으나 이 시집을 읽자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알았다. 어른스러운 구석이 전혀 없다. 그런 데다 신동 다운 신동의 예리함도 없다. 그러니 훗날 한 번 회의의 밑바닥에 부딪히자 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거칠게 뒹굴던 기분을 잘 알 거 같았다. 사실 나는 신동 따위 별로 재밌지 않다고 느낀다. 이 시집 속 랭보는 평범한 소년 시인이라 해도 좋다. 이는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라 외려 훗날의 진폭을 이해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커다란 평범함이었단 뜻이다. 열다섯 시는 전적으로 열다섯 살의 감상으.. 2023. 2. 18.
나의 바둑 - 사카구치 안고 시오이리 3단과 이와타니 사장이 훌쩍 찾아와 도전을 하기에 내가 시오이리 3단에게 이겼다. 이걸 잡지에 실는단다. 정말로 추태이며 수치를 천하에 드러내는 얄팍한 일이다. 내 포석이 너무나 약하고 이십 수 가까이 돌이 뭉치는 마당이니 시오이리 3단도 놀란 듯하여 이기는 것도 미안하다며 약해진 걸 찔러 걷어찬 듯한 바둑이니 나는 도무지 이긴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번에 하는 건 거의 오목이나 다름없다. 도무지 이길 수가 없으리라. 나는 전문기사와 승부하면 대개 첫 국은 이기게 된다. 요컨대 내 포석이 엉망이고 초반부터 황당한 돌만 두니까 다들 미안해져 마음이 약해진다. 그럼 대뜸 정강이를 걷어차게 된다. 대개 그런 패턴으로 첫 승부를 가져간다. 2국부터는 돌을 두는 성격을 간파 당하니 미안해하거나 마음 약해.. 2023. 2. 17.
나의 탐정 소설 - 사카구치 안고 나는 어릴 적부터 탐정 소설 애호가였는데 일본에서 발행된 거의 모든 탐정 소설을 읽을 수 있었던 건 전쟁 덕이었다. 전쟁 중에는 술도 마실 수 없고 놀 곳도 부족해졌으며 잡지도 폐간되어 소설을 쓸 도리도 없었다. 남는 건 독서뿐이다. 나는 그 시절 '현대 문학'이란 집단의 동인이었는데 이 동인 중에서 탐정 소설 애호가가 모여 범인 맞추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 방법이란 해결 파트를 잘라내거나 실로 봉인해놓고 둘러본 후 범인을 맞추는 것이다. 히라노 겐이 가장 성적이 우수했고 오오이 히로스케, 아라 마사히토는 그리 무서운 적이 아니었으나 나는 범인을 제대로 맞춘 건 고작해야 두 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탐정 소설 작가와 시합하면 이길 수가 없지. 히라노 명인도 겸손을 떨었으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2023. 2. 16.
여름과 인형 ~남국에서 온 이야기 - 사카구치 안고 당신은 남국의 꼭두각시를 아십니까?(어떤 박식한 여행가가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분라쿠 무대에 비하면 너무나 원시적이고 볼품 없지만 진정한 명인 기질과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인형사가 마음을 담은 영묘한 인형은 오히려 버려진 꼭두각시꾼한테 전해져 있습니다. 칠 년 전 일입니다. 시코쿠의 한적한 길거리서 가장 신비한 꼭두각시꾼을 보았지요. 그 기묘한 연극이란! 제 마음은 끝이 없는 몽환의 깊은 곳에 이끌렸습니다. 하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건(그리고 그는 감동하여 눈을 꾹 감았습니다) 문득 정신이 들었을 때 연극을 마친 인형 이마에 땀이 질척하게 남아 있는 걸 발견했단 점입니다. 박식한 여행가의 이마에는 땀 같은 게 남지 않으니 저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합니다. 2023. 2. 15.
토요시마 씨 - 사카구치 안고 예술가 중에 괴상하고 이상한 사람은 많을지 모르나 신선은 적다. 애당초 예술이란 대개 확장하는 일이니 괴이함과는 통하는 구석이 있으나 신선 노름하고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팔아내는 장사법이나 인기를 버는 성질상으로도 괴이함하고는 통해도 신선 노름하고는 인연이 적다. 당 시인 중에는 신선이 적지 않은 듯 여겨지나 대개 그 시대 시인은 정치에 뜻을 두고 있으나 실제로는 생활의 냄새가 풍기곤 했을 터이다. 일본이나 서양 시인은 주로 화조풍월이나 애수를 노래하니 풍화하여 신선이 될 확률은 높은 듯하나 이런 잔잔한 세계는 풍화 작용이 애매하니 기껏해야 반신수에 그치기 마련이다. 토요시마 씨는 신선이다. 현대서나 과거서나 찾아보기 힘든 부류다. 과거란 과거 속에 신선의 요소가 있었을 뿐이지 과거의 인간 그 자체는 ..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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