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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카구치 안고49

일본 시인 - 사카구치 안고 바둑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십 대 중반에 초단이 되는 듯하다. 이십 대 중반에는 고단자나 준명인도 되어버린다. 그 후로 약해지기만 한다니 스모 선수나 야구 선수와 엇비슷한 모양이다. 그 방면의 천재가 아니고선 대성하기 힘든 듯하나 노나 죠루리, 닌교츠카이 등과 비교할 수는 없다. 예술이 아닌 힘의 연마에 중점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바둑 기사와 똑같다고 말한다. 시라는 건 서른 전에 다 써버리는 거라고 말한다. 서른이 넘으면 약해지기만 한다고. 그럼 일본 시인도 바둑 기사와 똑같은 모양이다. 스모 선수나 야구 선수와 마찬가지로 청춘 유희의 하나인 듯하다. 나는 이 판단이 부당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면 시인 스스로가 그렇게 판단하고 자신의 한계를 훌륭히 보여주며 그 판단에 들어맞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 2023. 2. 1.
일본 정신 - 사카구치 안고 유럽 정신은 실재하는가. 또 실재한다면 어떤 것인가. 이는 서양 사상계에서 꽤나 문제시되고 있는 점으로, 나 또한 누벨 리테일의 앙케이트에서 같은 질답을 읽은 기억이 있다. 발레리나 로맹 롤랑, 클로델 같은 프랑스 문단의 대부들이 나란히 대답했는데 개개인의 의견은 기억나지 않는다. 대개 유럽 정신은 실존하지 않는다, 실존한다면 정신세계로 존재한다는 의견이 많은 듯했다. 이 사실은 우리도 상식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일이며 또 상식적이지 않은 입장에서도 일단은 부정할 수 없는 일로 오늘날의 유럽 정신을 지적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입장에서도 일본 정신을 독립된 형태로 지적하고 파악하는 건 오늘날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일본 정신 또한 오늘날에는 필연적으로 세계정신과 연결된다. 또 연결될 수밖.. 2023. 1. 31.
야다 츠세코 님께 보내는 편지 - 사카구치 안고 편지 잘 받았습니다. 몸 건강 조심하세요.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집니다. 저는 이번 달 초부터 잠시 작업에 임했습니다.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선 수명이 깎여도 좋지 싶습니다. 지금 하는 작업은 존재 그 자체의 허무성(지금은 존재 그 자체라고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만)을 지성을 통해 극단으로 쫓아보려 합니다. 이 소설을 마치면 제 생활에 비약이 찾아올지 모릅니다. 이 소설 뒤엔 행동만이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사회적 실제 운동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는가. 가끔 그런 생각이 드는데 모든 건 이 소설을 다 쓴 후에 자신의 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허무는 깊어질 대로 깊어진 듯합니다. 그 끝에 처박히나, 빠져나오는가. 이젠 둘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로렌스는 그 끝없는 허무를 육체를 통해 해결.. 2023. 1. 30.
귀환 - 사카구치 안고 시로는 남쪽 섬에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3년도 더 전에 전사한 취급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한 손과 한 다리가 없었다. 가족이 그를 둘러싸며 신기해한 것도 하루뿐으로 다음날부터는 성가신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지인도 한 번은 신기해해도 두 번째부터는 짜증부터 낸다. 혼약을 나눈 소녀가 있었다. 어머니에게 물으니 성가신 사람이 여자에게 들러붙지 말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미 다른 남자에게 가서 아이도 있다고 한다. 마음의 동요가 잦아든 후에는 여느 때처럼 한 번은 신기해줄 거란 생각에 찾아보기로 했다. 여자는 그를 보자 겸연쩍은 얼굴을 지었다.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기에 기저귀를 갈아주며 '잘도 살아왔네'하고 말했다. 그는 이런 기묘한 심정으로 아기를 바라본 적이 없었다. 네가 살아 돌아오지 않아도 인.. 2023. 1. 29.
나의 장례식 - 사카구치 안고 나는 장례식을 좋아하지 않아 참석하지 않는다. 예의란 게 그런 행사에 출석하는 점에 있다 생각하지 않으니 나로선 별생각이 없다. 하지만 누구누구 고별식에 누구누구가 오지 않으면 일본은 괜히 시끄러워진다. 오오쿠라 키하치로는 자신이 죽으면 아카이시야마의 꽃밭에 뼈를 뿌려달란 유언을 남겼다 한다. 나는 그런 그럴싸한 수고는 필요 없으니 내 뼈 따위는 바다밑이든 숲 구석이든 어디 방해 안 되는 구석에 대강 놔줬으면 한다. 장례식 같은 건 별 수없이 주위의 누군가에겐 뒤처리를 받는 것 이외엔 가장 조용하고 사람 눈초리를 피해 이뤄졌으면 한다. 빛을 잃은 내 얼굴을 둘러싸고 사무적 처리를 하는 것 이외에 괜한 짓을 하는 건 생각만 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죽은 얼굴에 고별사를 한 마디씩 하고, 향을 피우고 초를 태.. 2023. 1. 28.
니에이의 추억 - 사카구치 안고 나는 전쟁 중에 니혼에이가샤에 소속되어 있었다. 한 주에 한 번 출근하여 시사실에서 그 주의 뉴스 영화와 문화 영화와 그 외에 재밌어 보이는 걸 보여주었고, 전무와 십오 분 정도 이야기하면 됐다. 그러니 전무하곤 십오 분씩 몇십 번이나 이야기를 나눈 셈이다. 이 사람은 훗날 일본 영화계의 전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경영에 관한 건 나도 몰라도 영화 예술을 대하는 인식과 식견만은 일본 영화계에서 비할 바가 없었다고 본다. 내가 소속한 건 두 권쯤 되는 순수 예술 영화를 만든다는 약속 덕이었고, 전무 U 씨는 본래 동맹의 이사이자 저널리스트였으나 영화계에 관여한 이상 무언가 순수한 예술품을 남기고 싶단 꿈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두 권 정도의 단편 예술 영화란 말을 꺼낸 건 내 쪽으로 나는 노 감각의 정점만.. 2023.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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