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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카구치 안고

나의 장례식 - 사카구치 안고

by noh0058 2023.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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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장례식을 좋아하지 않아 참석하지 않는다. 예의란 게 그런 행사에 출석하는 점에 있다 생각하지 않으니 나로선 별생각이 없다. 하지만 누구누구 고별식에 누구누구가 오지 않으면 일본은 괜히 시끄러워진다.

 오오쿠라 키하치로는 자신이 죽으면 아카이시야마의 꽃밭에 뼈를 뿌려달란 유언을 남겼다 한다. 나는 그런 그럴싸한 수고는 필요 없으니 내 뼈 따위는 바다밑이든 숲 구석이든 어디 방해 안 되는 구석에 대강 놔줬으면 한다. 장례식 같은 건 별 수없이 주위의 누군가에겐 뒤처리를 받는 것 이외엔 가장 조용하고 사람 눈초리를 피해 이뤄졌으면 한다. 빛을 잃은 내 얼굴을 둘러싸고 사무적 처리를 하는 것 이외에 괜한 짓을 하는 건 생각만 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죽은 얼굴에 고별사를 한 마디씩 하고, 향을 피우고 초를 태우고 향을 향해 합장과 묵례를 받다니, 생각만 해도 질색이다. 나는 주위 사람에게 고별식이나 장례식은 절대 안 할 거라고 확실히 말해두고 있다.

 "콘도르"라는 영화가 있다. 재미없는 영화였는데 그 내용 중에 추락 사고로 빈사 상태에 빠진 비행사가 이제 죽을 테니 다들 다른 방으로 가 달라, 죽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다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정말 와닿는 장면이었다.

 물론 사람은 병에 걸리고 고열에 시달릴 땐 환각과 고독감에 괴로워해 굉장히 사람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병상 주변에서 누가 자리해 깨워주지 않으면 밤의 적막에 숨이 막힐 정도의 고통을 느끼곤 하니, 범속하고 어리석은 내가 죽어갈 때에 고독할 용기가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으나 주변인 이외의 사람에게 죽는 걸 보여주는 건 역시 내키지 않는다.

 인간은 살아 있을 때가 전부다. 사회인으로서 공동생활도 살아 있는 사람들과 여러모로 얽히기 마련이나 죽어버리면 무의미하다. 살아 있는 생활하곤 무관해지는 것이다.

 친구끼리도 살아 있는 동안에야 서로를 도와주고 격려하는 게 중요하지 사후 장례식의 성황을 바라는 건 나의 관심과 동떨어져 있다.

 나는 내가 죽은 뒤의 명성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일을 대충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일에는 전력을 다한다. 이게 일이란 것이며 즉, 살아 있다는 걸 진정으로 이해하는 건 당연한 일로 오히려 사후를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살아 있는 데 들이는 몰입이나 노력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 본다. 산다는 게 나의 모든 걸 걸고 노력하며 사는 거란 걸 아는 사람에겐 사후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내 생각이다.

 고별식 성황 따위를 생각하는 건 삶의 빈곤함이 드러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빈곤한 허례에 지나지 않으리라. 물론 그런 것에 집착하는 것도 무의미한 걸지 모른다.

 내가 남의 장례식에 출석하지 않는 것도 그 사실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그런 걸 염두에 두지 않기에 신경 쓰지 않을 뿐이다.

 물론 법요 같은 건 한때의 즐거운 술자리란 의미에선 괜찮다고 본다.

 내가 죽은 뒤에도 뒤처리가 끝난 후에 친지를 모아 내가 유령으로 튀어나와 한 잔 마셔도 될 정도로 소란을 떨어준다면. 이는 공상만으로라도 즐겁다.

 나는 집사람(아내가 아니라 애인이다)한테 말해둔 게 있다. 내가 죽으면 당신 혼자 장례식을 하고 뼈를 수습하라. 그 후에 친지에게 죽은 걸 밝히고 한바탕 소란을 떨라. 그 후엔 다른 누군가와 사랑하며 즐겁게 살아달라. 유산은 전부 주겠다. 묘도 필요 없다.

 스님의 경이니 향이니 그런 지루하기 짝이 없는 건 하지 말라. 살아 있는 나는 도무지 그런 지루한 걸 견디지 못하니 죽은 후에라도 지루할 게 분명하며, 그런 걸 당했다간 나는 스님의 머리를 뻥 걷어찰 거고 향으로 친구의 코를 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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