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쟁 중에 니혼에이가샤에 소속되어 있었다. 한 주에 한 번 출근하여 시사실에서 그 주의 뉴스 영화와 문화 영화와 그 외에 재밌어 보이는 걸 보여주었고, 전무와 십오 분 정도 이야기하면 됐다. 그러니 전무하곤 십오 분씩 몇십 번이나 이야기를 나눈 셈이다. 이 사람은 훗날 일본 영화계의 전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경영에 관한 건 나도 몰라도 영화 예술을 대하는 인식과 식견만은 일본 영화계에서 비할 바가 없었다고 본다.
내가 소속한 건 두 권쯤 되는 순수 예술 영화를 만든다는 약속 덕이었고, 전무 U 씨는 본래 동맹의 이사이자 저널리스트였으나 영화계에 관여한 이상 무언가 순수한 예술품을 남기고 싶단 꿈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두 권 정도의 단편 예술 영화란 말을 꺼낸 건 내 쪽으로 나는 노 감각의 정점만을 짜맞춘 듯한 단편 영화를 생각해 이세 모노가타리 등에서 소재를 따온 가벼운 단편을 공상했다. 이런 관념의 환상적 조립에는 지루함이란 적이 있어서 아름다움의 매력을 지속시키는 데 한계가 있으니 고작해야 두 권 정도라 생각했던 것이다.
어느 날 U 씨와 만나니 U 씨는 여행에서 돌아온 참이었다. 여행 중 읽은 모루오 사이세이의 '토모에'란 소설이 단편 예술 영화의 즐거리가 될 듯하다는 말을 꺼냈다. 요시나카가 패해 요시나카도 토모해도 뿔뿔히 흩어지고 요시나카는 토벌 당해 죽고 만다. 토모에가 홀로 도망쳐 거리서 만난 한 백성 소녀에게 하룻밤 잘곳을 받는다. 목욕물이 끓고 토모에가 목욕한다. 토모에가 한 장 한 장 옷을 벗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고 모든 꿈을 끝낸 강하고 아름다운 한 여자 도주 무사가 한 장 한 장 옷을 벗는 참에서 U 씨는 이야기를 멈추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U 씨는 이런 사람이다. 토모에가 옷을 한 장 한 장 벗는다. 영화의 본질에 연결된 아름다움에 대해, 영화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U 씨는 올바른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다른 영화 회사 사장은 이만한 식견이 없는 듯하며 키쿠치 칸 사장의 기업적 재능보다도 U 씨의 이 얌전한 식견 쪽이 일본을 위해 필요한 능력이라 나는 믿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U 씨에겐 실행력과 결단력이 전무하다. 영화계란 참 시끄러운 곳이라서 연출은 연출, 기획은 기획, 배우는 배우, 카메라는 카메라 제각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조합조직 같은 결합이 발달되어 있다. 요컨대 개인으로서의 재능에 자신이 없으니 단체적으로 자신을 지키려 하는 것인데 그만큼 아마추어 사장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게 불가능하다. 요컨대 하부의 각 조직이 자신을 지키는데 결단력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재능 레벨 이상의 걸 수용하는 능력이나 창조적 개방력을 지니지 못한다.
U 씨에겐 전권이 있으니 밀어붙이면 밀릴 힘은 있을 터이다. 하지만 밀어서 자신이 믿는 바를 관철할 만한 정열도 신념도 자신도 없는 듯하다.
애호가나 아마추어란 좋은 기회가 있어서 몸을 피하며 신념도 정열도 진짜배기 자신감도 없으니 참 어렵다. 예술계만 아니라 정계도 재계도 자신의 길에서 죽을 열정이 없는 애호가나 학자가 책임자의 위치에 앉는 게 가장 불행한 일임을 통감한다. U 씨는 자신의 회사 영화에 불평만 투덜거렸는데 전권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지지 않고 불평만 말하는 건 참 슬픈 일이자 차라리 죄악적이라 해도 좋을 일로, 나는 기어코 진심으로 일할 열정마저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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