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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키쿠치 칸12

역점과 손금 - 키쿠치 칸 내가 역점이나 손금에 관해 쓰는 걸 비웃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평생에 딱 한 번 본 손금은 실로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건 시시지보사의 기자로 있던 시절 일이다. 쿠메가 27살 먹기 전이니 10년 가까이 된 일이다. 쿠메, 아쿠타가와, 나 이렇게 셋이서 함께 저녁 먹은 뒤였는데 유시마 텐진 경내를 지날 때에 그곳에 나온 한 점쟁이한테 반신반의로 점을 받은 것이다. 물론 제군이 상상하는 것처럼 아쿠타가와만은 보지 않았다. 내 손금 판단은 아주 좋았다. 내가 서른 살 넘어 한 경지에 이르러 한 무리 사람 위에 서며 돈 또한 부족함이 없을 거란다. 그런 데다 앞으로 일어날 두세 사실을 들었다. 내가 높은 곳에 이른다느니 돈을 많이 번다느니 하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십 년 뒤 오.. 2022. 12. 29.
'다이도지 신스케의 반생' 후기 - 키쿠치 칸 아쿠타가와가 죽어 이래저래 이 년 반 가량 지났다. 그의 사인은 그의 육체 및 정신을 덮친 신경쇠약이 절반 넘게 차지하고 있을 테지만 남은 절반 가량은 그가 인생 및 예술에 너무나도 양심적이며 너무나도 신경과민이었던 탓으로 여겨진다. 그의 너무나 날카로운 신경은 실생활의 번거로움 때문에 더더욱 날카로워져 끝내 이가 빠진 얇은 검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의 뒤처리는 세밀하게 처리되었다 해도 좋았다. 그의 전집 출간도, 그의 유족 생활도 그의 신경을 건드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그의 죽음은 수많은 사람에게 진심으로 애도 받았고 그의 작품은 생전 이상으로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얻고 있지 싶다. 이제 그는 홀로 등나무 의자에 앉아 어린 모밀잣밤나무 잎을 바라보.. 2022. 8. 26.
아쿠타가와 - 키쿠치 칸 아쿠타가와의 죽음에 관해 많은 걸 쓸 수 있을 듯, 막상 쓰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쓸 수 없다. 사인은 우리도 확실히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기보다는 결국 세상 사람들이 수긍할만한 구체적인 원인은 없다고 해야 하리라. 결국 아쿠타가와 본인이 말한 것처럼 주된 원인은 "막연한 불안"이리라. 게다가 2, 3년간의 신체적 피로, 신경쇠약, 번거로운 세속적 고생 같은 것이 그의 절망적 인생관을 더욱 깊게 만들어 그런 결과를 만들었지 싶다. 작년, 그의 병은 그의 심신을 꽤나 갉아먹었다. 신경쇠약에서 오는 불면증, 망가진 위장, 지병인 치병 등이 서로 뒤엉켜서 그의 생활력을 뺏어간 듯하다. 이런 병에 고민하다 서서히 자살을 결심한 것이리라. 그런 데다가 요 2, 3년간 그의 세속적 고생은 끊이지 않았다. 우리 안.. 2022. 8. 21.
토끼와 거북이 - 키쿠치 칸 역 토끼와 거북이 중 누가 빠른지는 동물 친구들의 오랜 문제였습니다. 어떤 동물은 물론 토끼가 빠르다 말했습니다. 토끼는 그만큼 큰 귀를 가졌어. 그 귀로 바람을 가르며 다르면 꽤나 빠르게 달릴 게 분명해. 하지만 또 어떤 동물은 말합니다. 아니, 거북이가 빠르지. 왜냐면 거북이 등껍질은 무서울 정도로 착실하잖아. 그 등껍질처럼 착실히 한없이 달려갈 수 있어. 이 문제는 그렇게 말하며 토론만 하지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토론은 이윽고 전쟁이 되려 하였기에 둘은 결국 승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는 오백 야드 경주를 해서 누가 더 빠른지 모든 동물들에게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해야 하죠." 토끼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토끼 편을 든 동물들은 열심히 토끼를 설득.. 2022. 2. 7.
백설공주 - 키쿠치 칸 역 옛날 먼 옛날, 한겨울의 일이었습니다. 눈이 새 깃털처럼 하늘하늘 내려올 때, 한 여왕님이 흑단틀에 둘러싸인 창가에 앉아 재봉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왕님은 재봉을 하면서 눈을 바라보았는데 그만 쿡하고 바늘에 손가락을 찔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쌓인 눈 속에 뚝뚝 세 방울의 피가 떨어졌습니다. 하얀 눈 속에서 새빨간 피가 굉장히 아름다워 보였기에 여왕님은 홀로 이런 생각을 하셨습니다. "이 눈처럼 몸이 새하얗고 피처럼 붉은 뺨을 지니고 이 흑단처럼 검은 머릿결을 가진 아이가 있으면 좋겠는걸."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여왕님께선 공주님을 낳으셨습니다. 그 공주님은 피부색이 눈처럼 하얗고 뺨은 피처럼 붉었으며 머릿결은 흑단처럼 검었습니다. 때문에 이름도 백설공주라 지었습니다. 하지만 여왕님은 공주님을 낳고.. 2021. 6. 25.
압류 당하는 이야기 - 키쿠치 칸 나는 소득세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부가세를 더하면 매년 사백 엔 가까이 내게 된다. 나는 관사나 사업가처럼 국가의 직접적인 은혜를 받는 것도 아닌데, 사백 엔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처사이지 싶다. 문사文士라는 직업은 국가가 조금도 환대하지 않을뿐더러 보호장려하지 않는다. 장려하지 않을 뿐일까. 출판 금지니 상연 금지니 협박이나 하면서 수입에만 일반적인 세율을 적용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내 작년 소득 결정액은 일본 제일, 제이를 다투는 부호 야스다 씨의 40분의 1이며 시부사와 에이치로 씨의 4분의 1이었기에 분개했다. 사업가란 막대한 벌이에 더해 이자 수입도 있다. 나도 벌이가 있고 매해 일정한 수입이 있다면 기꺼이 납세하고 싶다. 하지만 벌이가 없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건 아니라도 한 .. 2021.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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