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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카구치 안고

일본 정신 - 사카구치 안고

by noh0058 2023.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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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정신은 실재하는가. 또 실재한다면 어떤 것인가. 이는 서양 사상계에서 꽤나 문제시되고 있는 점으로, 나 또한 누벨 리테일의 앙케이트에서 같은 질답을 읽은 기억이 있다. 발레리나 로맹 롤랑, 클로델 같은 프랑스 문단의 대부들이 나란히 대답했는데 개개인의 의견은 기억나지 않는다. 대개 유럽 정신은 실존하지 않는다, 실존한다면 정신세계로 존재한다는 의견이 많은 듯했다.

 이 사실은 우리도 상식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일이며 또 상식적이지 않은 입장에서도 일단은 부정할 수 없는 일로 오늘날의 유럽 정신을 지적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입장에서도 일본 정신을 독립된 형태로 지적하고 파악하는 건 오늘날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일본 정신 또한 오늘날에는 필연적으로 세계정신과 연결된다. 또 연결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생활 또한 일본적인 동시에 굉장히 세계적이며 그런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떼어내 특별히 일본적으로 꾸며서야 되려 자연 정신을 잃어 개념적인 일본인 밖에 남지 않는다. 일개 일본 정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조국 정신'이란 건 오늘날 세계정신의 형태 속에서 재생되어야만 한다.

 문학면에서도 일본 정신으로 돌아가란 목소리가 돌고 있으나 일본 정신을 특별히 의식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마치 소설을 쓰면서 특별히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게 지극히 위험한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소설을 쓰면서 자아를 의식하는 결과 소설이 자아에 한정되며 자아의 영역과 연결되는 통로에 지나는 물건 밖에 만들지 못한다. 본래 우리는 아무리 자아에 무의식적이려 해도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선 자아를 논하게 된다. 그리고 소설을 제작한 후에 소설 결과로서 자아를 발견하는 게 예술 본래의 비한정성, 발전성, 자유성에 맞으며 본래의 모습인 셈이다.

 일본 정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제작하는데 먼저 일본 정신을 의식하는 건 하염없이 한정 짓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일본 정신에 무의식적이어도 결국 소설 결과로선 일본인임을 폭로할 수밖에 없다.

 전통에도 발전이 있어야 하며 발전 없는 전통으로 한정 짓는 것만큼 문화의 적이 되는 일은 없다. 외형적으로 서양에 겹치려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이윽고 그 점에도 일본 정신의 필연적인 자율성이 생기리라. 본래 외국인 척하는 것 자체가 일본 정신의 한 특징일지 모른다. 이는 농담도 자조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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