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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카구치 안고49

후기('도쿄') - 사카구치 안고 도쿄란 제목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소설 주인공은 되려 코켄 덴노다. 세 여주인 덕에 유지된 천황가란 가족 정부의 독자적인 성격, 집을 지키기 위해 오니처럼 깊은 진념을 가진 여주인의 뜻에 따라 길러져 그 의지의 정령처럼 결실을 맺은 쇼무 덴노와 그 황후, 더욱이 그 아래서 태어난 코겐 덴노. 내가 이 소설을 쓸 때 가장 큰 매력을 느낀 건 이 여제였다. 그럼에도 내가 '됴코道鏡'를 제목으로 삼은 건 저널리즘에 끌려서이다. 말하자면 상품으로서의 제목을 내 건 살짝 추한 속내였단 건 부정할 수 없다. 하물며 제목을 두고 이래저래 생각하는 게 귀찮아졌다. 나는 이전부터 제목을 두고 고민하는 걸 아주 싫어했다. 제목 따위는 문학 자체와 아무 관계도 없고 작가는 소설만 쓰면 그만이니 아무래도 좋았다. 내 소.. 2023. 2. 13.
슬픈 풍조 - 사카구치 안고 과거 문사들이 어떤 식으로 논쟁했는가. 나는 잘 알지 못하나 사토 하루오와 카와모리 요시조 두 선생님의 대논쟁에는 새로운 시대풍이 불고 있지 싶었다. 카와모리 선생님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은 법정에서 시비를 가릴 결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사토 노인이여, 귀하의 대답은 귀중한 증언이 될 테니 신중히 대답해달라. 그런 도전 방식은 과거 문사가 깨닫지 못한 새로운 방법이지 싶은데 실제론 어떨까. 국가와 국가 사이에 분쟁이 생겨 국련에 기소한다. 과거의 약소국은 가까운 강국에 울며 매달리는 방법밖에 없었지만 요즘에는 국련이란 강력한 조직이 생겨 분쟁에 기소가 따른다. 인권과 개인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신헌법 덕에 문사도 도리 없이 발매 금지를 먹어 눈물만 뚝뚝 흘리는 일도 사라졌다. 채털리 부인은 법정에.. 2023. 2. 12.
후기를 대신해('교조 문학') - 사카구치 안고 나는 사회인으로서의 자아란 걸 생각하며 정치에 대해서도 생각하나 타고 날 적부터 정치가가 될 수 없는 생물이다. 나는 요즘 시대에 태어났으니 문사가 되었으나 과거에 태어났어도 결코 이름을 날린 귀인이나 천하의 호걸이 되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으리라. 고작해야 비파법사나 음유시인 같은 게 되었겠지 싶다. 물론 나도 어릴 적에는 군인이나 스님이 되려 생각했으니 천하의 호걸이나 고승이 되려는 시도는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엔 음유시인이나 비파법사가 될 팔자라 본다. 생각하기에 코바야시 히데오 또한 정치가가 될 수 없는 팔자의 교육 종교형 시인이나 그는 비파법사나 음유시인이 되어 평생을 끝내려 하는 생각은 없어 속세로 돌아가 겸호법사가 되는 점이 나와 큰 차이이리라. 닮으면서도 미처 닮지 못하는 그 차이가 교.. 2023. 2. 11.
작가 추신 '불', '군상' 연재 1호 - 사카구치 안고 이 소설은 '신쵸' 제5, 6, 7월호에 '일본 이야기' 제1장 그 하나 '스키야키에서 역사 하나가 시작된다'에서 이어집니다. 이하 세 달에 걸친 제1장 '그 둘'을 연재하여 여섯 달 쉬었다 2장을, 또 여섯 달 쉬었다가 제3장을 하는 식으로 전5장으로 끝날 예정입니다. 이 소설에는 모델이 없습니다. 전시 내각의 총리 대신도 나옵니다만 토죠도 코노에도 아닙니다. 내란도 일어나지만 5.15도 2.26도 아닌 가공의 내용입니다. 역사적 진실은 일본의 패전 뿐입니다. 다른 인물이나 사건은 전부 작가의 창작입니다. 따라서 역사하고는 닮지 않습니다만 가장 진실된 역사적 소설일지 모르겠습니다. 2023. 2. 10.
'이방인'에 관해 - 사카구치 안고 코가라시쿠니에서 포로가 된 한 일본 시민이 그 땅의 병원 근무를 명 받아 잡역부로 일하는 이야기다. 이를 사실로 보는 건 적합하지 않다. 기록 문학이라 불리는 것도 순수하게 사실을 기록했다 여기는 건 착각으로 주관이란 게 사실을 일그러놓기 마련이다. '이방인'의 경우에는 기록성이란 그림자를 두리우면서도 문학이라는 또렷한 자각 하에 만들어진 것이나 이제까지 나타난 억류 생활의 기록 문학과 비교하여 문학적 우위란 걸 이만큼 강력히 보여준 작품이 나타난 점은 일본 문단의 큰 수확이라 할 수 있겠지. 이 작품에 흘러넘치는 선의의 크기와 듬직함은 이 작가가 앞으로 무엇을 쓰지 않아도 이 한 작품만으로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에 살아남으리란 생명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리도 어리면서 꼬임 없이 안정된 선의란 실.. 2023. 2. 9.
DDT와 만년침 - 사카구치 안고 내 서재가 2년 동안 방치된 데엔 특별한 의미는 없다. D・D・T가 발명된 탓이다. 나는 과거엔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방을 청소했으나 재작년 새해쯤 발진 티푸스에 걸렸다. 내가 사는 야구치란 곳이 전염의 시작지로 우리 집도 옆집서 환자가 생기고 진주군이 주도하는 트럭 부대가 우리 집에도 D・D・T를 뿌리러 왔다. 열흘마다 다섯 번에 걸쳐 D・D・T를 뿌리고 되도록 이불도 그대로 두란 주의를 받았기에 종전해 저녁부터 깔아둔 만년침이 위생상 공인되어 버린 것이다. 대신 갖은 곤충이 모두 죽는다. 벌도 사마귀도 나비도 나방도 개미도 파리도 한 번 내 방에 들어오면 다음 날엔 시체로 나타나니 시체산이 다를 바 없다. 이것만큼은 굉장히 더럽다. 하지만 그 시체에 벌레 꼬일 걱정이 없으니 1년이 지나면 모두 자연.. 202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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