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가 2년 동안 방치된 데엔 특별한 의미는 없다. D・D・T가 발명된 탓이다. 나는 과거엔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방을 청소했으나 재작년 새해쯤 발진 티푸스에 걸렸다. 내가 사는 야구치란 곳이 전염의 시작지로 우리 집도 옆집서 환자가 생기고 진주군이 주도하는 트럭 부대가 우리 집에도 D・D・T를 뿌리러 왔다. 열흘마다 다섯 번에 걸쳐 D・D・T를 뿌리고 되도록 이불도 그대로 두란 주의를 받았기에 종전해 저녁부터 깔아둔 만년침이 위생상 공인되어 버린 것이다.
대신 갖은 곤충이 모두 죽는다. 벌도 사마귀도 나비도 나방도 개미도 파리도 한 번 내 방에 들어오면 다음 날엔 시체로 나타나니 시체산이 다를 바 없다. 이것만큼은 굉장히 더럽다. 하지만 그 시체에 벌레 꼬일 걱정이 없으니 1년이 지나면 모두 자연스레 풍화되어 쓰레기로 돌아가 천지자연의 이치를 따르게 된다.
내 방구석에는 재작년 여름의 비자나무가 벽 한구석에 걸려 있는데 이 비자나무를 찌르면 먼지가 날려 떨어져 더러우니까 걸어둘 수가 없다.
책상 네 방향에 산처럼 쌓인 책이나 잡지 아래엔 다양한 게 있을 테지만 헤짚으면 먼지가 일어나니 찾을 수가 없다.
청소하면 여러 물건이 발견되어 편리하나 정리에 사흘은 걸리고 남에겐 맡길 수도 없으니 청소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다.
가장 곤란한 건 편지로 나중에 대답할 생각에 적당히 던져두면 곧 행방불명이 되어 대답할 수 없게 된다. 편지를 받아 곧장 대답하는 건 좀처럼 쉽지 않으니 곧잘 행방불명 되는 셈이다. 그러니 또 이 종잇조각 아래엔 이미 먼지가 되어버린 우표 따위가 꽤나 섞여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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