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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카구치 안고

역사와 현대 - 사카구치 안고

by noh0058 2023.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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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아라이 시라이시의 '서양기문'을 통해 시도티의 잠입에 관한 소설을 쓸 때 야쿠시마는 어떤 섬일지 생각해 봤다. 키리시탄의 흔적을 찾아 아사쿠사까진 갔으나 야쿠시마는 가지 않았다. 다행히 이 소설은 섬의 풍경을 서술할 필요가 없었기에 사료만으로 해결이 됐으나 훗날 후카다 큐야 씨의 야쿠시마 기행을 읽고 참 놀랐다. 야쿠시마는 천칠백 미터나 되는 커다란 산덩어리이며 온섬이 천 년에서 천오백 년은 된 나무로 이루어진 밀림이라 하지 않던가.

 확실히 시라이시의 기사를 봐도 시도티가 처음 만난 일본인은 나무꾼이긴 했다. 하지만 만남의 서술은 해가 잘 드는 평범한 산속 초원을 연상케하며 험난한 지형의 밀림은 떠올릴 수 없다. 천 년에서 천오백 년 가량 지난 밀림이니 시도티가 왔을 때의 약 이백 년 전에도 지금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어야만 한다.

 역사와 사실 사이엔 이만한 거리가 있구나 하고 통감했다. '서양기문'을 읽은 사람들이 야쿠시마가 오랜 나무로 뒤덮인 커다란 산이란 걸 알 수나 있을까. 우리는 사료를 통해 역사를 안다. 하지만 사료에 기재되지 않은 부분이 바로 이와 같은 야쿠시마의 나무들로 신이 아닌 이상 알 여지가 없다.

 전국 시대 영웅 또한 이를 기록한 사료는 있으나 대중이 어떻게 보았는가 아니, 영웅들마저 사료 바깥에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했는가는 모두 야쿠시마의 나무들로 창작을 덧붙이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다.

 현대 또한 역사 중 하나이며 우리는 현대에서도 결코 만능의 거울이 아니며 우리 주위에는 무수한 야쿠시마의 나무들이 존재한다. 결국에는 하나의 도그마를 믿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야쿠시마를 찾아 나무 밀림을 가로지르는 건 문학의 영역이 아니다. 전쟁이란 현실이 아니라 강렬해도 이를 아는 건 문학이 아니며 문학은 개성적이어야 하고 늘 현실을 창조하는 것과 별다를 바 없이 여겨진다. 야쿠시마가 나무 밀림이 아니어도 괜찮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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