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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카구치 안고

후기('도쿄') - 사카구치 안고

by noh0058 2023.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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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란 제목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소설 주인공은 되려 코켄 덴노다. 세 여주인 덕에 유지된 천황가란 가족 정부의 독자적인 성격, 집을 지키기 위해 오니처럼 깊은 진념을 가진 여주인의 뜻에 따라 길러져 그 의지의 정령처럼 결실을 맺은 쇼무 덴노와 그 황후, 더욱이 그 아래서 태어난 코겐 덴노. 내가 이 소설을 쓸 때 가장 큰 매력을 느낀 건 이 여제였다.

 그럼에도 내가 '됴코道鏡'를 제목으로 삼은 건 저널리즘에 끌려서이다. 말하자면 상품으로서의 제목을 내 건 살짝 추한 속내였단 건 부정할 수 없다. 하물며 제목을 두고 이래저래 생각하는 게 귀찮아졌다. 나는 이전부터 제목을 두고 고민하는 걸 아주 싫어했다. 제목 따위는 문학 자체와 아무 관계도 없고 작가는 소설만 쓰면 그만이니 아무래도 좋았다. 내 소설은 제목 없이 잡지사에 건네 멋대로 지어주길 기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편집자가 붙이는 제목이 내가 지은 제목보다 훨씬 와닿는 경우가 많다.

 소설 제목 따위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도쿄'란 소설의 경우엔 다르다. 주점이 놓인 대상이 명확하니 노부나가란 제목을 달고 미츠히데의 소설을 쓰는 것과 같은 실수를 저질러버린 셈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교켄 덴노어야 한다. 혹은 여제 시대나 집을 지키는 여주인의 집요한 의지, 그 마지막 결실로 나온 여제란 걸 의미하는 제목이어야만 했다.

 여제와 도쿄의 관계면에서도 내가 주로 노린 건 여제의 이러한 독자적인 성격이 만드는 연애, 그 독자적인 심정을 통해 선택 받은 남자가 도쿄였다는 점이며 주된 관점은 역시 여제를 향한다.

 때문에 나는 이 소설집을 내면서 제목을 바꿔야 하나 수도 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 제목이 단편집 제목이 되니 상품으로서의 제목이란 관점에서 기존 그대로 '도쿄'로 정했다. 제목만 바꾸었다 다른 작품처럼 팔아 먹었다 여겨지면 곤란하다. 단지 작가의 양심상으로 말하자면 원래 이 제목은 바꾸는 게 맞다는 한 마디만 해두고 싶다.

 종전 후 작품 이외의 건 내가 서른 살 전후로 '사쿠힌'이란 잡지를 통해 쓴 작품들로, 이제까지 모종의 사정상 단행본으로 만들지 못했던 것들이다. 나로선 그 시절은 잊을 수가 없다.

 그쯤엔 오오모리의 아파트에서 숨죽인 듯이 살았다. 그 시절, 그 방에서 내 머리를 태우던 질척이는 상념, 관념은 마치 끝없는 점멸만 같았고 나는 그 질척이는 이념과 관념에 죽을 것만 같았다. 그것이 이윽고 그 혼돈의 별구름 속에서 하나의 체계를 갖추어 오늘날의 내가 만들어졌다.

 그 질척이는 별구름도 그렇고 그 시절은 고통과 갑갑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언가 거짓된 문자의 탑 같은 걸 세워 그 허무함을 저주만 해왔다. 그게 이 작품들이다. 그럼 이러한 소설은 가공된 가짜일 뿐인 걸까. 나는 알지 못한다. 어찌 됐든 그 질척이는 별구름 같은 체계 이전의 난잡하고 혼탁하며 일그러진 찌꺼기인 셈이다.

 문학이란 애착이 아닌, 내게 흐른 피의 한 방울로서 그리운 소설이긴 하나 보는 게 괴로울 정도이다. 나는 눈을 감고서 읽지 않고 보내려 한다. 단지 나의 더러운 핏자국에 지나지 않는 것만 같다.

 

1947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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