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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카구치 안고

토요시마 씨 - 사카구치 안고

by noh0058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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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 중에 괴상하고 이상한 사람은 많을지 모르나 신선은 적다. 애당초 예술이란 대개 확장하는 일이니 괴이함과는 통하는 구석이 있으나 신선 노름하고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 팔아내는 장사법이나 인기를 버는 성질상으로도 괴이함하고는 통해도 신선 노름하고는 인연이 적다. 당 시인 중에는 신선이 적지 않은 듯 여겨지나 대개 그 시대 시인은 정치에 뜻을 두고 있으나 실제로는 생활의 냄새가 풍기곤 했을 터이다. 일본이나 서양 시인은 주로 화조풍월이나 애수를 노래하니 풍화하여 신선이 될 확률은 높은 듯하나 이런 잔잔한 세계는 풍화 작용이 애매하니 기껏해야 반신수에 그치기 마련이다.

 토요시마 씨는 신선이다. 현대서나 과거서나 찾아보기 힘든 부류다. 과거란 과거 속에 신선의 요소가 있었을 뿐이지 과거의 인간 그 자체는 현대 인간과 엇비슷하게 밖에 신선 요소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토요시마 씨는 많은 것에 무욕적이다. 하지만 마냥 무욕적이라곤 할 수 없다. 실제로 욕심이 전무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요시마 씨 본인은 속세 사람보다 더 혼돈적인 카오스 속에서 구원할 도리 없는 자아의 망집을 바라보는 걸지 모른다. 그런 정신상의 진창 작업은 현대 문학가의 직업적 요소기도 하지만 정말로 인간 자체가 진창으로 되어 있는 건 아니다. 속물은 그 자체로 진창일지 모르나 속물이기에 진짜 진창이 될 수는 없다. 혼이 귀족적이지 않고선 진짜 진창이 될 수 없다. 토요시마 씨는 정말로 진창이 된 신선이시다.

 나는 얼마 전 니가타에 여행 갔다 선물 가게에 료칸의 서예의 복사본이 팔리고 있었다. 그 액자에는

 천상

 대풍

 이라 적혀 있었다. 진창이 된 신선이 아니고선 이런 문구는 떠올리지 못하리라고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물론 료칸은 신선이다.

 종전 후 2, 3년째 됐을 때인가. 토요시마 씨를 단장으로 삼아 원폭이 떨어진 히로시마에 가는 기획이 잡지사에서 시작되어도 나도 그 단원 권유를 받았다. 심부름을 맡은 사람이 말하길

 "토요시마 선생님께서 말하신 여행 조건은 많은 건 필요 없기 세 끼 식사랑 조금의 술이면……"

 이게 첫 번째 조건이며 또 거의 모든 조건이기도 했다. 당시는 시장에서 막소주나 간신히 팔던 시대였다. 나는 모종의 사정으로 이 신선 여행에 참가하지 못했으나 나처럼 지상에 대풍 밖에 일으키지 못하는 바보는 신선 여행을 따라가지 못했으리라.

 그쯤 토요시마 씨는 따님을 잃고 크게 울적해 하셨는데 내가 입원 중인 정신병원을 빠져나와 놀러 갔더니

 "딸을 위해 어렵게 찾은 판스코가 남아 있는데 자네 줄까?"

 판스코란 마취 극악이다. 나를 불쌍하게 여겨주신 걸 테지. 하지만 신선의 따님이 두고 간 유품은 사양했다. 그날, 토요시마 씨는 막소주에 취해 길거리서 자다 순사가 집까지 데려다준 참이었는데 나는 저녁까지 막소주를 마시고 한참 바닥을 두었다. 신선은 술을 마시고 또 먹이며 바둑돌을 뒀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늘 내가 졌다. 거나하게 취해서 달이 떠도 잔과 바둑돌을 놓지 않으니 속세 사람이 이길 수나 있을까. 신선의 바둑은 술을 마셔도 마시지 않아도 거칠고 난폭하며 자유분방하다. 그러니 이쪽이 맨정신이라면 무서워할 적은 아니나 신선은 어떤 일을 할 때나 맨정신을 아주 싫어한다.

 죽은 다자이도 다나카 히데미츠도 죽기 직전에 토요시마 씨를 찾았다. 죽기 직전에 만나고 싶어지는 유일한 인격인 셈이다. 나는 자살할 법한 사람은 아니나 그럼에도 죽고 싶단 생각이 들 때면 역시 토요시마 씨를 떠올린다. 진창 속 신선의 조용한 기척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현시대의 진정한 귀족성이라 해야 마땅할지 모르겠다. 다자이도 다나카도 반신수이자 반귀족이며 그 벽에 부딪혀 자멸한 셈이나 토요시마 씨는 그들에게 신부님처럼 그리운 존재이기도 하며 또 자살을 막기에는 무력한 청결한 정령이기도 하다. 천상대풍이란 료칸의 붓질이 토요시마 씨의 붓질처럼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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