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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카구치 안고

슬픈 풍조 - 사카구치 안고

by noh0058 2023.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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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문사들이 어떤 식으로 논쟁했는가. 나는 잘 알지 못하나 사토 하루오와 카와모리 요시조 두 선생님의 대논쟁에는 새로운 시대풍이 불고 있지 싶었다.

 카와모리 선생님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은 법정에서 시비를 가릴 결의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사토 노인이여, 귀하의 대답은 귀중한 증언이 될 테니 신중히 대답해달라. 그런 도전 방식은 과거 문사가 깨닫지 못한 새로운 방법이지 싶은데 실제론 어떨까.

 국가와 국가 사이에 분쟁이 생겨 국련에 기소한다. 과거의 약소국은 가까운 강국에 울며 매달리는 방법밖에 없었지만 요즘에는 국련이란 강력한 조직이 생겨 분쟁에 기소가 따른다.

 인권과 개인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신헌법 덕에 문사도 도리 없이 발매 금지를 먹어 눈물만 뚝뚝 흘리는 일도 사라졌다. 채털리 부인은 법정에서 시비를 다툰다. 이게 즉 새로운 바람이다. 발매 금지나 기소에 앞서 외설적인지 아닌지 대표적 식자들이 모여 문답을 나눈다. 카와모리 선생은 그런 문답에 응하는 대표적인 식자 중 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새로운 풍조는 참 마음에 든다. 문명은 이미 문단의 논쟁에도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는 새로운 풍조에 이른 듯하다. 과거 프랑스에선 이럴 때 무기를 들고 결투하는 만행이 벌어졌다 하는데, 그런 만행에 비하면 몇 천 배는 교양 있는 풍조이다.

 하지만 문사니 비평가니 하는 건 자신의 의견을 문장을 통해 공중에 공개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인종으로, 시비나 선악을 공중의 양식에 맡길 수단을 지니고 있단 뜻이다. 더군다나 원고료가 들어온다는 건 정말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신문 투고란을 보라. 시민이란 자신의 입장을 문장을 통해 남에게 호소하기 위해 몇 천 분의 일이라는 바늘구멍을 뚫어야 하지 않는가.

 문장을 통해 남의 가슴에 양식을 호소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문장 상의 시비 판정을 자신의 문장에 기대지 않고 법정에서 찾는다면 문장을 쓰는 직업은 관두는 게 낫지 않을까. 슬픈 풍조가 나타났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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