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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카구치 안고49

예술, 땅에 떨어지다 - 사카구치 안고 근래엔 극도 영화도 하룻밤 사이에 뚝딱 만든 저렴한 것뿐이다. 그러하니 문화는 밤거리의 어둠과 함께 메이지 시대로 되돌아 가고 말았다. 모기를 잡지 못하는 모기향. 효과 없는 약. 불이 붙지 않는 성냥. 하지만 이는 상인이나 할 일이다. 예술은 다르다. 예술가는 근성을 지녀서 권문부귀에도 굴하지 않고 예술 일변도의 양심으로 살기에 예술과 자신을 고취할 수 있었다. 예술은 모기향과 다르다. 하지만 현재의 일본 문화는 완전히 모기를 잡지 못하는 모기향이다. 아무리 볼품 없는 일이라도 받는다. 시대를 한참 지난 서생극이라도 손님으로 가득하다니 극도 영화도 메이지의 흙먼지로 가득하다. 예술인의 양심 따위 엿바꿔 먹고 신경도 쓰지 않는 문화의 파국이요 지옥이다. 이래서는 전쟁에서 승리해도 문화적으론 패배할 수밖에.. 2023. 1. 13.
원대한 마음가짐 - 사카구치 안고 불평, 희망. 있다면 다양하겠지만 자그마한 일로 구질구질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저는 묵묵히 훌륭한 일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저의 이 사랑스러운 마음가짐마저 위협하는 악의에는(――아아, 소심하기에 남자 평생의 마음가짐마저 흔들리고 말다니!)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군요. 나는 일본 문학의 '잡지적' 경향이 싫습니다. 우리 소설을 약소하게 만드는 게 바로 이 경향 탓 아닐까요. 유럽의 단행본 경향을 보면 부러움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소설의 장단점을 논하는 게 아닙니다. 만약 소설이 단행본을 바탕으로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작가의 마음가짐이 원대해지며 이어서 저널리스트의 마음가짐도 꽤나 원대해질 테고 나아가선 문예시평이란 괴물도 조금은 원대하고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믿고 있습니다... 2023. 1. 12.
단맛 매운맛 - 사카구치 안고 일본 문학의 확립이란 전쟁 반세기 이전부터 주된 화제였다. 근대 일본 문확의 혼란 및 헤맴은 수입 문학 위에 일본적인 걸 확립시키기 위한 악전고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건 정치나 경제가 그 영역에서 일본적 성격을 필요로 했단 문제보다도 훨씬 심각하여 작가는 그 점에 혈육을 바쳤다 할 수 있다. 근래엔 문학 이외의 장소에서 일본적 도의를 확립하는 게 빈번히 논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근대 일본 문학이 스스로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짐 중 하나로 일본적 모랄의 확립은 젊은 작가의 목숨 건 싸움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전쟁이 벌어진 이후로 문학 영역에선 되려 이 문제에 대한 색채를 잃었고, 독립적인 입장을 잃어 남의 뒤를 따라가는 것밖에 배우지 못하게 됐다. 지도원리가 다르니 어쩔 수 없단 건 이해하지만.. 2023. 1. 11.
육아 - 사카구치 안고 쉰 가까운 나이에 첫 아이가 태어나면 당황스럽고 멈칫하기만 할뿐으로 육아에 관해서는 무능 그 자체이다. 지금도 아이를 안는 법 하나 모르지만 이따금 아버지가 아들을 안는 등 어머니가 해줄 법한 일을 하고 있으면 굉장히 기뻐하곤 한다. 딱히 혼을 주거나 주의를 주고 있진 않지만 아버지 하는 일을 흉내내며 자연스레 자라는 모양이다. 내가 해줄 일이라 하면 매일 무언가를 먹여 이따금 배를 아프게 하는 정도로 아내한테 혼쭐만 나지만 가슴이 있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의 애정 표현은 무언가 맛있어 보이는 걸 주는 정도 밖에 없다는 걸 어머니는 이해주지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아이의 독점욕이 왕성하나 결국 그쪽이 무능한 아버지로선 편할 따름이니 어머니의 독점욕에 의존하고 있다. 2023. 1. 10.
외래어 논란 - 사카구치 안고 며칠 전 어떤 신문에서 라디오니 아나운서니 하는 외래어를 사용하는 건 옳지 못하다 논하는 사람이 있었다. 황군의 파죽진격을 따라 이런 속 편한 의논이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으나 당연한 듯이 보여도 실제로는 꽤 위험한 발상이다. 황군의 위대한 전과에 비하면 우리의 문화는 아직 입에 올릴 게 못 될 정도로 빈곤하다. 라디오도 프로펠라도 술폰아미드도 일본인이 발명한 게 아니다. 그러한 말은 발명자의 국적을 따르는 게 당연하며 말하자면 문화를 무기로 이겨낸 말이라 해도 좋다. 라디오를 일본어로 바꾸더라도 실력을 통해 싸워야만 한다. 우리가 라디오를 발명한다면 물론 일본어로 말이 만들어질 것이며 자연스레 세계도 일본어를 통해 이를 부를 테지. 그래야만 의미가 있다. 우리는 문화의 실력으로 그러한 말을 앞으로 얻어내.. 2023. 1. 9.
세상의 평가와 나 - 사카구치 안고 나는 항의도 변명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면 소설은 소설 자체가 모든 걸 말해주며 그걸로 판별 받아야 하니까. 단지 문학이란 역사를 상대로 이뤄지는 것이니 현상적인 비평이나 비판은 작가의 뜻과 맞지 않을 경우가 있음을 덧붙여두고 싶다. 나는 말할 것도 없이 사회적 책임을 진다. 만약 내 저작물이 세상에 악영향을 준다 단정 지어져 음란하고 경박한 치정 작가라 판정 받는다면 그걸로 독하다. 시대나 유행이나 사회에 따라 판단 받는 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나는 '인간'에게 판단 받는 걸 경외할 뿐이다. 요컨대 나 자신에게 판단 받는 걸. 내가 어떠한 작가인가. 나는 전부 역사에게 맡기고 있다. 나는 내 소설을 겉꾸밀 수 없으니까. 하지만 불평불만 투성이인 독자가 너무 많다. 문학을 올바르게 받아 들이려면.. 202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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