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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사카구치 안고

신동이 아니었던 랭보의 시 - 사카구치 안고

by noh0058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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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카하라가 번역할 때까지 랭보에게 '학창시절의 시'란 게 있는 걸 알지 못했다. 프랑스 전집에는 실려 있지 않다. 일본식으로 세면 열다섯에서 열일곱 살까지 쓴 작품인 듯하다.

 난 여지껏 랭보가 신동이었음에 분명하다 생각했으나 이 시집을 읽자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알았다. 어른스러운 구석이 전혀 없다. 그런 데다 신동 다운 신동의 예리함도 없다. 그러니 훗날 한 번 회의의 밑바닥에 부딪히자 지옥에 떨어진 것처럼 거칠게 뒹굴던 기분을 잘 알 거 같았다. 사실 나는 신동 따위 별로 재밌지 않다고 느낀다.

 이 시집 속 랭보는 평범한 소년 시인이라 해도 좋다. 이는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라 외려 훗날의 진폭을 이해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커다란 평범함이었단 뜻이다. 열다섯 시는 전적으로 열다섯 살의 감상으로 가득하며 열여섯 살에 처음 쓴 시는 지극히 염세적이나 그 형태가 염세적일 뿐이지 깊이나 날카로움은 모두 열여섯 살 소년의 것이다. 날카로운 노림수도 없다. 말하자면 그의 이 시대는 소년 시인적인 호기심이 굉장히 왕성했을 뿐이다. 감각도 평범하고 신경은 오히려 둔하다. 말하자면 형태에만 집착한 가짜라 해도 좋으나 갖은 점에서 가짜의 형태가 크다. 가짜치고는 본격적이다. 따라서 이윽고 훗날 한 번 진실의 형태를 갖추니 온몸을 통해 밑바닥까지 고뇌한 기린의 모습이 똘렷이 보이는 것이다. 신경의 가는 예리함 없이 대뜸 전체적으로 던지 듯이 깊은 곳에 닿는 걸 알 수 있다. 랭보는 열여덟 살부터 슬슬 어른이 되었으리라. 말하자면 조숙한 예술가였으나 신동은 아니었나 보다. 대부분의 신동하고는 반대로 탈피의 시기가 올 때까지는 일반인의 정점을 걸으며 자랐던 걸로 추측된다. 나는 나카하라의 번역시를 읽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훗날의 랭보가 더욱 깊게 이해된 듯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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