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못 옆을 걷고 있다.
낮인가 밤인가. 그마저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어디선가 왜가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덩굴로 뒤덮인 나뭇가지 사이로 옅은 빛이 감도는 하늘이 보였다.
연못은 내 키보다 큰 갈대가 수면을 뒤덮고 있다. 물도 움직이지 않는다. 마름도 움직이지 않는다. 물 밑바닥에 사는 물고기도――물고기가 이 연못에 살기는 하는 걸까.
낮인가 밤인가. 그마저도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요 대여섯 날 동안 이 연못 옆만을 걸었다. 추운 아침 햇살의 빛과 함께 물냄새나 갈대 냄새를 몸에 두른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비개구리의 목소리가 덩굴에 뒤덮인 나뭇가지에서 하나하나 작은 별을 부른 기억도 있었다.
나는 연못 옆을 걷고 있다.
연못에는 내 키보다 큰 갈대가 수면을 뒤덮고 있다. 나는 먼 옛날부터 갈대 너머에 신비한 세계가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지금도 내 귀에는 Invitation au Voyage의 곡이 띄엄띄엄 들려왔다. 그런가 하면 물 냄새나 갈대 냄새와 함께 그 "물망초"도 꿀 같은 냄새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낮인가 밤인가. 그마저도 나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요 대여섯 날 동안 그 신기한 세계를 동경하여 덩굴에 뒤덮인 나무 사이를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걸었다. 하지만 여기서 기다려도 단지 갈대와 물만 펼쳐 있는 이상, 나는 나아가 연못 안에서 그 "물망초"를 찾으러 가야 한다. 찾을 수 있을까 싶어 갈대 안에서 반쯤 연못으로 몸을 내밀었다. 나이를 먹은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곳에서 연못에 뛰어들면 분명 물 밑바닥에 위치한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 게 분명하다.
나는 기어코 그 버드나무 위에서 몸을 던졌다.
내 키보다 큰 갈대가 그 박자에 떠들기 시작했다. 물이 중얼인다. 마름도 몸을 떨었다. 덩굴에 뒤덮인, 비개구리의 울음이 울리는 주위의 나무들마저 한때는 자못 걱정스럽게 숨을 토해냈다고 한다. 나는 돌처럼 물 밑바닥으로 잠겨가며, 끝을 모르는 푸른 화염이 어지럽게 내 주위를 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밤인가 낮인가. 그마저도 나는 알 수 없었다.
내 시체는 연못 밑바닥의 미끈한 진흙 위에 누워 있다. 시체의 주위는 어디를 보아도 새파란 물만 있을 뿐이었다. 이 물 아래야말로 신비한 세계가 있으리라 믿은 건, 역시 나의 잘못된 생각이었던 걸까. 어쩌면 Invitation au Voyage의 곡도 이 연못이 장난삼아 내 귀를 속인 걸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무언가 얇은 줄기 하나가 내 시체의 입안에서 쭉쭉 뻗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게 머리 위의 수면에 닿았다 싶었더니, 곧 하얀 수련꽃이 키가 큰 갈대에 둘러싸여 마름 냄새가 풍기는 연못 안에, 눈부시고 선명하게 봉오리를 틔웠다.
이게 내가 동경하던 신비한 세계였구나――내 시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옥 같은 수련꽃을 한사코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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