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키쿠치 칸과 함께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어색함을 느낀 적이 없다. 동시에 지루함을 느낀 기억도 전무하다. 키쿠치하고라면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질리는 법이 없겠지 싶다.(물론 키쿠치는 질릴지 몰라도.) 왜냐하면, 키쿠치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형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 좋은 점은 물론 이해해주고, 부주의한 점을 드러내도 동정해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렇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동생이라 해야 마땅할 내가 이따금 키쿠치의 호의에 기대어 있을 수 없는 일방적인 열을 내뿜을 때도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마저도 키쿠치가 형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형처럼 느껴지는 이유의 일부는 물론 키쿠치의 학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컬처의 다방면에, 제각기 깊은 이해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키쿠치가 형처럼 느껴지는 건 주로 그의 인간 됨됨이가 뛰어난 결과이리라. 그럼 그 인간 됨됨이란 무엇이랴. 한 마디로 설명하는 건 어렵지만, '세상 물정을 잘 안다'는 말에서 속된 느낌을 떼어내면 딱 그짝이지 싶다. 그 증거로 자신처럼 평생 악랄한 혓바닥을 놀리는 사람이라도 키쿠치와 어떤 문제를 논할 때면, 설령 의논에 이기고 있을 때마저 말로 다 못 할 공허함이 느껴져 도무지 이긴 것 같지가 않다. 하물며 내가 졌을 때에는 박식한 백부에게 지당한 의견이라도 들은 듯한 민망함이 느껴진다. 어느 쪽이든 그 원인은 사상이든 감정이든 자신보다 키쿠치가 더 많은 고생을 해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실생활의 문제를 상담할 때면 누구보다도 키쿠치가 내 입장이 되어 여러 생각을 정리해준다. 이 다른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준다는 게 우리는――특히 나는 흉내 낼 수 없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스스로의 문제마저 자신의 처지로 생각하지 못 한다는 점을, 속으로 자만할 때마저 존재한다. 실제로 오늘까지 '내 입장'이라는 말은 나보다도 키쿠치가 더 많이 사용하고 또 생각해주었다. 그만큼이나 형처럼 느껴지는 인간은, 아직 천하에 키쿠치 칸 이외에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쓰고 싶은 문제도 있지만, 키쿠치의 예술에 관한 건 제국 문학 정월호에 짧은 논평을 적을 테니 여기서는 그분께 양보해 적지 않기로 했다. 겸사겸사 키쿠치가 신사조 동인 중에선 가장 착한 아버지이자 남편인 걸 덧붙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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