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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게와 원숭이의 싸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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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의 주먹밥을 빼앗은 원숭이는 기어코 게의 손에 죽고 말았다. 게는 절구, 벌, 계란과 함께 원망스러운 원숭이를 죽였다.――새삼 그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으리라. 단지 원숭이를 죽인 후, 게를 시작한 동지들은 어떤 운명에 이르렀는가. 그걸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동화는 이 이야기를 전혀 언급하지 않기에.
 아니, 이야기하지 않는 건 고사하고 마치 게는 구멍 속에서, 절구는 부엌의 구석에서, 벌은 제 벌집에서, 계란은 겉겨 속에서 무사태평한 일생을 보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거짓이다. 그들은 원수를 갚은 후, 모조리 경관에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심지어 재판을 거듭한 결과 주범인 게는 사형, 절구, 벌, 계란과 같은 공범은 무기징역의 선고를 받았다. 동화밖에 알지 못 하는 독자는 이런 그들의 운명을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다. 조금도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게의 증언에 따르면 주먹밥과 감을 맞바꾸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숭이는 익지 않은 감을 준 걸로 모자라 게에게 위해를 가하듯이 그 감을 지속적으로 던졌다고 한다. 하지만 게는 원숭이와 한 통의 증서도 나누지 않았다. 또한 익지 않은 감을 던졌다는 사실도 원숭이에게 악의가 있었는지 명확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게의 변호를 맡은 웅변으로 명성 높은 아무개 변호사도 재판관의 동정을 구걸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 변호사는 유감스럽다는 양 게의 거품을 닦아주면서 "포기하게나"하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 "포기하게나"란 말이 사형 선고를 받아들이란 뜻인지, 변호사에게 큰돈을 낸 걸 받아들이란 뜻인지는 누구도 결정할 수 없었다.
 그런 데다가 신문 잡지의 여론 또한 게를 동정하는 경우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게가 원숭이를 죽인 건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 개인적 원한이란 것마저 원숭이가 자신의 무지함과 경솔함을 이용하여 이익을 독점한 걸 원망한 것이 전부이지 않은가? 뛰어난 사람이 이기고 열등한 사람이 패하는 세상에서 이런 개인적 원한을 토해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미치광이다――그런 비난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상업 회의소 회장인 아무개 남작은 대강 위와 같은 의견과 함께 게가 원숭이를 죽인 것 또한 유행하는 위험 사상 탓이라 진단했다. 그래서인지 게의 원수 갚기 이후로 아무개 남작은 보디가드 이외에도 불독 열 마를 기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소위 지식인이란 사람들도 게의 원수 갚기를 호평하는 법이 없었다. 대학교수인 아무개 박사는 윤리학 관점에서, 게의 원숭이 살해는 복수심에서 나온 것이며, 복수는 선이라 하기 어렵다 말했다. 또한 사회주의자인 아무개 수령은 게가 감이나 주먹밥 같은 사적 재산을 지니고 있었으니, 절구나 벌, 계란도 반동적 사상을 지녔을 터이며, 어쩌면 우익 단체가 등을 떠밀었을지 모른다 말했다. 또한 아무개 종교의 아무개 관장은 게가 불심을 알지 못 한 듯하며, 설령 안 익은 감을 던졌다 해도 부처의 자비를 알았다면 원숭이의 행위를 미워하지 않고 되려 연민했으리라. 아아, 가능했다면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내 설교를 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말했다. 그 외에도――여러 방면에서 갖은 명사가 비판하였는데, 하나같이 게의 원수 갚기에는 찬성하지 않는 목소리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단 한 명, 게를 위해 기염을 토한 건 주호 겸 시인인 아무개 국회의원이었다. 국회의원은 게의 원수 갚기는 무사도 정신과 일치한다 말했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서 뒤떨어진 의논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 가십에 따르면 그 국회의원은 몇 년 전에 동물원을 구경하다 원숭이의 소변에 맞아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동화 속 이야기 밖에 알지 못 하는 독자는 애처로운 게의 운명에 동정의 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하지만 게의 죽음은 당연하다. 그런 걸 유감스럽게 여기는 건 어린아이 감성에 지나지 않는다. 천하는 게의 죽음을 올바른 일이라 보았다. 실제로 사형이 벌어진 밤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 간수, 사형 집행인, 교회사 등은 하루 종일 숙면을 취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꿈속에서 천국의 문을 보았다고 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천국이란 봉건 시대의 성과 닮은 백화점이라고 한다.
 더불어 게가 죽은 후 게의 가정이 어떻게 되었는지 조금 적어 보고 싶다. 게의 아내는 매춘부가 되었다. 동기가 가난 때문인지 스스로의 욕정 때문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게의 장남은 아버지의 사망 후, 신문 잡지의 용어를 빌리자면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한다. 듣자 하니 지금은 증권회사의 경비를 서고 있다고 한다. 이 게는 한때 동류의 고기를 먹기 위해 상처 입은 동료를 자기 구멍으로 끌어들인, 크로포트킨이 상호부조론에서 게도 동류를 먹는다는 사례로 꼽은 그 게였다. 차남 게는 소설가가 되었다. 물론 소설가이니 여자에게 반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아버지의 일생을 비유 삼아 선은 악의 이명에 지나지 않는다며 적당한 비꼼이나 늘어놓고 있다. 삼남 게는 바보였기에 게가 아닌 다른 게 되지 못 했다. 그런 게가 옆으로 걷고 있자니 주먹밥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주먹밥은 그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는 커다란 집게로 주먹밥을 주워들었다. 그러자 높은 감나무 위에서 이를 잡고 있던 원숭이 한 마리가――그 후의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리라.
 어찌 되었든 게란 원숭이와 싸운 후 반드시 천하를 위해 죽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말을 천하의 독자에게 해주고 싶다. 그대들 또한 대개는 게인 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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