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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번역110

군함 콩고 항해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하나 더운 프록 코트를 여름 양복으로 갈아입고 다른 녀석들과 함께 갑판으로 나가니, 젊은 기관 소위 셋이 다가와 여러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야 신병이니 세 사람하고는 처음 만나지만, 다른 녀석들은 모두 교실에서 한 번은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 사이였다. 그러니 나는 살짝 거리를 둔 채 얌전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아무개 소위가 요코스카에서 S와 S의 부인과 둘이서 산책하는 걸 만났더니 잘 사는 거 같아 그날 밤부터 속이 안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녀석들은 그 말을 듣고는 아하하 크게 웃었다. 단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S만은 그 안에 끼지 못 했다. 기쁜 얼굴로 히죽히죽 웃었던 것이다. 나는 저녁 햇살을 한가득 받은 군항을 바라보며 새신부를 집에 두고 온 S에게 연민에 가까운 동정을 느꼈다... 2021. 3. 25.
러역단편집 두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제 작품이 러시아어로 번역된다는 점은 물론 꽤나 유쾌한 일입니다. 근대 외국 문예 중 러시아 문예만큼 일본 작가에게――라기보다도 되려 일본의 독서 계급에 영향을 준 문예는 없겠지요. 일본의 고전을 모르는 청년마저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체호프의 작품은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일본인이 러시아와 친하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확연하겠지요. 그분 아니라 제 개인적인 생각에 따르면 러시아가 낳은 근대의 정치적 천재, 레닌을 생각해도 소위 Europe이 레닌을 이해하지 못 한 건 레닌이 동양적인 정치적 천재였던 탓일지도 모릅니다. 가장 이상으로 불탔던 동시에 가장 현실을 알고 있던 레닌은 일본이 낳은 정치적 천재들, 미나모토노 요리모토나 토쿠가와 이에야스에 꽤나 가까운 천재입니다. 말하자면 동양의 .. 2021. 3. 24.
쿠보타 만타로 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내가 아는 에도 남자 중에서 문단에 관련된 자를 묻는다면 가장 먼저 고토 스에오 군, 두 번째로 츠지 쥰 군, 세 번째로 쿠보타 만타로 군이 있다. 이 세 사람은 제각기 성격이 달라도 에도 남자란 풍채와 기질을 나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후천적으로도 에도 남자의 호칭을 분명히 하는 게 바로 쿠보타 만타로 군이다. 적어도 '촌뜨기' 분위기를 두르지 않고 '거리'의 특색을 풍부히 지닌 건 분명하다. 에도 남아는 포기와 함께 산다. 혹은 포기에 산다고 할까. 적극적이고 강하게 말하는 법이 없다. 쿠보타 군의 예술은 쿠보타 군의 생활과 마찬가지로 이런 특색을 지니고 있다. 쿠보타 군의 주인공은 항상 도덕적 여명에 사는 무명의 뒷골목 남녀이다. 이러한 남녀는 체호프의 작품에서도 찾아 볼 수 있지만, 체호프.. 2021. 3. 23.
호박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호박이 사람을 죽이는 세상이라니 참 놀라울 따름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녀석이 그런 대단한 짓을 저지를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잖아. 뭐, 진짜 호박 이야기냐고? 농담은 적당히 좀 해라. 호박은 별명이야. 호박 이치베라고 해서 말야. 요시와라의 말단――좀 더 정확히는 숫자에도 들어가지 않는 호우칸이야. 그런 걸 묻는 거 보면 너는 그 녀석을 보지 못 한 모양이네. 그건 좀 아까운걸. 이제는 붉은 옷을 입고 있을 테니 보고 싶어도 쉽게는 못 볼 거야. 머리 큰 난쟁이라 해야 하나? 그런 녀석이 프록 코트에 우단 조끼 같은 걸 입고 있으니 우습지. 더군다나 일자로 이마를 훤히 드러낸 머리에 촌마게를 하고 있지. 그것도 순 사기꾼 같아 보이는 걸 말야. 그래서인지 처음 만난 손님은 누구나 독기가 빠져 버려. .. 2021. 3. 22.
오리사냥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오오마치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건 다이쇼 3년 정월에 코스기 미세이, 코지로 타네스케, 이시카와 토라키치 제군과 시나가와미나토에 오리 사냥을 나섰을 적이다. 이른 아침부터 이치노하시 근처의 선착장으로 가서 발동기선을 타고 오오카와를 지난 기억이 있다. 코스기 군이나 코지로 군은 뛰어난 사냥꾼이다. 더군다나 배의 선두에 선 사람도 활 사냥꾼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금수 사냥의 대가가 셋이나 모인 주제에 그날은 오리를 한 마리도 잡지 못 했다. 아니, 오리든 두견이든 시나가와미나토에 있는 새란 새는 우리 배를 보자마자 일제히 날아가 버렸다. 오오마치 선생님은 오리를 잡지 못 하는 게 굉장히 기뻤는지, "거참 요즘 오리는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모양이야. 다들 수렵 금지 구역에 들어가버리는걸... 2021. 3. 21.
ism이란 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ism을 가질 필요가 있는가. 그런 문제가 나왔는데, 사실 저는 아쉽게도 이 문제와 크게 얽혀 있는 이와노 우메이 씨의 논문을 읽지 못 했습니다. 그러니 그에 대한 제 대답도 기자가 되었든 독자가 되었든 그 생각과 초점이 맞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이 문제의 성질을 잘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ism이란 말의 뜻이나 필요란 뜻이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굽어질 거 같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걸 상식으로 해석하더라도 ism을 가지는 게 어떤 것인지, 그것도 이래저래 짜맞춰지겠지요. 어찌 되었든, 우리가 모두 로맨티스트나 나르시스트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냐는, 통속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물론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정확히는 되려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래 그런 ism이란 비평가들이 뒤늦게 편의.. 2021.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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