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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쿠보타 만타로 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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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는 에도 남자 중에서 문단에 관련된 자를 묻는다면 가장 먼저 고토 스에오 군, 두 번째로 츠지 쥰 군, 세 번째로 쿠보타 만타로 군이 있다. 이 세 사람은 제각기 성격이 달라도 에도 남자란 풍채와 기질을 나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후천적으로도 에도 남자의 호칭을 분명히 하는 게 바로 쿠보타 만타로 군이다. 적어도 '촌뜨기' 분위기를 두르지 않고 '거리'의 특색을 풍부히 지닌 건 분명하다.
 에도 남아는 포기와 함께 산다. 혹은 포기에 산다고 할까. 적극적이고 강하게 말하는 법이 없다. 쿠보타 군의 예술은 쿠보타 군의 생활과 마찬가지로 이런 특색을 지니고 있다. 쿠보타 군의 주인공은 항상 도덕적 여명에 사는 무명의 뒷골목 남녀이다. 이러한 남녀는 체호프의 작품에서도 찾아 볼 수 있지만, 체호프의 주인공은 우리 독자를 비웃는 경우가 적지 않다. 쿠보타 군의 주인공은 체호프보다 가냘프고, 또 일본의 담배는 러시아의 담배보다 부드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중 풍경마저 쿠보타 군의 붓을 뛰어넘는 건 항상 맑고 깔끔한 담화뿐이다. 더욱이 쿠보타 군의 생활을 보면――나는 쿠보타 군의 생활을 잘 알지 못 한다. 그럼에도 쿠보타 군의 미소 속에서는 모든 생활을 느낄 수 있다. 작은 쓴웃음이란 쿠메 마사오 군의 일본 어휘에 더해진 신숙어이다. 쿠보타 군이 이따금 짓는 건 작은 웃음으로도 작은 쓴웃음으로도 볼 수 있다. 단지 내가 보기엔 그건 작은 슬픈 웃음이라 칭해야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이미 포기에 살며 적극적이고 강하게 말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포기에 살수록 소극적으로 강할지 모른다. 쿠보타 군에게 하나를 포기하게 해보아라. 지레로든 봉으로든 움직이게 하지 못 할 터이다. 담소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일 테지. 취해서 호랑이가 되면 더욱 그렇다. 쿠보타 군의 주인공도 항상 이런 완고함의 조절을 잃지 않는다. 이것에 체호프의 주인공과 다른 점이다. 쿠보타 군과 그 주인공은 굽어지면 굽어졌지 부러지는 건 결코 간단하지 않다――이를 테면 눈이 쌓인 대나무와 비슷하다 해야 하리라.
 이 강하지 않기에 강한 특색은 에도 남아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에 가깝기는 하다. 나는 선천적으로도 후천적으로도 에도 남아의 자격을 얻지 못 한, 도쿄 태생의 서생이다. 때문에 쿠보타 군의 예술적이고 도덕적 태도를 전부 이해하지는 못 한다. 그럼에도 쿠보타 군의 소설과 희곡에 경의와 사랑을 지닌 건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으리라. 벌써 원고용지 세 장 분량으로 쿠보타 만타로론을 펼치게 되지 않았나. 쿠보타 군이 기꺼이 긍정해줄까? 만약 긍정해주지 않아――네가 내친다면 지레로든 봉으로든 움직일 수 없는 내가 아는 쿠보타 군이 되는 셈이다. 내게는 그것이 무엇보다 큰 긍정이다.
 참고삼아 말한다. 소설가 쿠보타 만타로 군이 시인 술우인 건 천하가 아는 일이다. 나는 어두운 날에 쿠보타 군에게 "스멀스멀히 어두워져만 가는 별과 달의 밤"이란 시를 들려주었다. 술우는 좋다고 평했다. 며칠 후, 나는 앞의 시를 고쳐서 "서늘히 식어 어둠이 몰려오는 별과 달의 밤"이라 말했다. 술우는 고개를 저으며 "좋지 않네요"하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고친 시를 버리지 않았다. 쿠보타 군은 고친 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의 차이를 말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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