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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케사와 모리토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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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

 밤, 모리토오가 축토 밖에서 달을 바라보며 낙엽을 밟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그 독백

 "벌써 달이 떴군. 항상 달을 기다리는 나도 오늘만은 밝은 게 되려 무서워. 이제까지의 내가 밤중에 사라지고 내일부터는 살인자가 될 거라 생각하니 이러고 있어도 몸이 떨리는군. 이 두 손이 피로 붉어졌을 때를 상상해보게. 그때의 나는 나 자신에게 얼마나 저주스러울까. 그것도 내가 미워하는 상대를 죽이는 거라면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테지. 하지만 나는 오늘 밤 내가 미워하지 않은 남자를 죽여야 한다.
 나는 그 남자를 이전부터 알았다. 와타루사에몬이란 이름은 이번 일로 알았지만 남자치고는 너무 부드러운 색이 하얀 얼굴을 기억하게 된 건 언제 일인지 알 수 없다. 그 사람이 케사의 남편이란 걸 알았을 때 내가 잠시 질투를 느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질투도 이제는 내 마음 위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깔끔히 사라져 버렸어. 그러니 와타루는 내게 연적이면서 밉거나 원망스럽지 않지. 아니, 오히려 나는 그 남자에게 동정을 품고 있다 해도 좋을 정도다. 고로모가와 초입부터 와타루가 케사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들었을 때, 나는 정말로 그 여자를 가엽게 여긴 적마저 있다. 와타루는 케사를 아내로 삼고 싶은 일심으로 일부러 우타까지 연습했다지 않은가. 나는 그런 진지한 사무라이가 만든 연가를 상상하면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하지만 그건 꼭 와타루를 비웃는 웃음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나 해서 여자한테 아양 떠는 그 남자를 갸륵하게 여긴 것이지.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그렇게나 아양 떨려 하는 그 남자의 열정이 애인인 나에게 어떤 종류의 만족감을 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정도로 내가 케사를 사랑하는 걸까. 나와 카사 사이의 연애는 지금과 과거 두 시기로 갈려 있다. 나는 케사가 아직 와타루와 인연을 가지기 전에 이미 케사를 사랑하고 있었다. 혹은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이제와 생각하면 당시의 내 마음에는 불순한 게 적지 않았다. 나는 케사에게 무얼 추구했는가. 총각이었던 시절의 나는 분명히 케사의 몸을 추구했다. 만약 조금의 과장이 용납된다면 케사를 향한 나의 사랑이란 것도 실은 이 욕망을 아름답고 감상적으로 꾸민 심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 증거로 케사와 교제가 끝난 후의 3년 동안 내가 그 여자를 잊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만약 그 전에 내가 그 여자의 몸을 알고 있었다면 그럼에도 역시 잊지 않고 떠올렸을까. 나는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대답할 용기가 없다. 내가 케사에게 품은 그 후의 애착 중에는 그 여자의 몸을 알지 못했다는 미련이 꽤나 섞여 있다. 그리고 그 괴로운 정을 품으면서 나는 기어코 내가 두려워하던 하지만 내가 기다리던 이 관계에 이르고 말았다. 그럼 지금은? 나는 계속해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과연 케사를 사랑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 답을 내리기 전에 나는 다시 한 번 싫어도 이런 경위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아타나베 다리의 공양 때에 삼 년 만에 우연히 케사와 만난 나는 그로부터 대략 반 년 동안 그 여자와 몰래 만들 기회를 만들기 위해 갖은 수단을 꾀했다. 그리고 그에 성공했다. 아니, 성공만 했을까. 그때, 나는 내가 꿈꾸던 것처럼 케사의 몸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를 지배한 건 꼭 앞서 말한 아직 그 여자의 몸을 모른다는 미련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나는 코로모가와의 집에서 케사와 한 방의 다다미에 앉았을 때 이미 그런 미련이 어느 틈엔가 희박해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건 내가 총각 딱지를 뗐단 사실도 그 자리에서 내 욕망을 약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였을 테지. 하지만 그보다도 주된 원인은 그 여자의 용모가 쇠약해져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지금의 케사는 이미 삼 년 전의 케사라 할 수 없었다. 피부는 광택을 잃었고 눈 주위에는 검은 띠 같은 게 원처럼 둘러져 있다. 뺨 주변이나 턱 밑에도 이전의 풍부한 살점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나마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그 탄력 있는 검고 윤기가 도는 눈뿐일까――이 변화는 내 욕망에 큰 타격을 주었다. 나는 삼 년 만에 처음으로 그 여자와 마주했을 때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강한 충격을 느낀 걸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럼 비교적 그런 미련이 없는 내가 왜 그 여자와 관계했을까. 나는 가장 먼저 묘한 정복심으로 움직였다. 케사는 나와 마주하자 자신이 남편 와타루에게 가진 애정을 일부러 과장해 이야기해주었다. 심지어 내게는 그게 도무지 공허한 느낌 밖에 들지 않았다. "이 여자는 자기 남편에게 허영심을 가지고 있다"――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혹은 이도 내 연민을 사고 싶은 반항심의 표현일지 모른다"――나는 이렇게도 생각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 거짓말을 폭로해주고 싶은 기분이 서서히 나를 움직이게 했다. 단지 왜 그런 걸 거짓말이라 생각했는가 하면, 그런 걸 거짓말이라 생각한 배경에 나의 자아도취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항변할만한 이유를 지니지 못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게 거짓말이란 걸 믿고 있었다. 그리고 또 지금도 믿고 있다.
 하지만 이 정복심 또한 당시의 내 마음을 온전히 지배한 건 아니다. 그 외에――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지는 것만 같다. 나는 그 외에 순수한 욕정에 지배되어 있었다. 그건 그 여자의 몸을 모른다는 미련이 아니었다. 좀 더 하등하며 상대가 그 여자일 필요마저 없는 욕망을 위한 욕망이었다. 아마 꼭두각시 여자를 사는 남자라도 당시의 나만큼 추하지는 않으리라.
 어찌 됐든 나는 그런 여러 동기로 기어코 케사와 관계를 가졌다. 좀 더 정확히는 케사를 범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처음에 내놓은 의문으로 돌아가면――아니, 내가 케사를 사랑했는가 하는 건 아무리 나 자신에게 묻는 것이라도 새삼스러운 일이다. 나는 되려 때로 그 여자에게 증오마저 느끼고 있다. 특히 모든 게 끝나고 울음을 터트린 그 여자를 억지로 안아 올렸을 때만큼은 케사는 파렴치한 나보다도 더 파렴치한 여자로 보였다. 흐트러진 머리도 그렇고 땀을 머금은 얼굴의 화장도 그렇고 하나같이 그 여자의 몸과 마음의 추함을 보여주었다. 만약 그전까지의 내가 그 여자를 사랑했다면 그 사랑은 그날을 끝으로 영원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혹은 만약 그전까지의 내가 그 여자를 사랑했다면 그날부터의 내 마음에 새로운 증오가 생기기 시작했다 말해도 과언이 없다. 그리고 아아, 오늘 밤 나는 그 내가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위해 내가 증오하지 않은 남자를 죽이려 하고 있지 않은가!
 그 또한 정말로 누구의 죄라 할 수 없다. 내가 이 나의 입으로 공연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와타루를 죽이자"――내가 그 여자의 귀에 입을 얹고 그렇게 속삭인 때를 생각하면 스스로도 미친 거 아니었나 의심이 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속삭였다. 속삭여서는 안 된다 생각하고 이를 앙 다물면서까지 속삭였다. 나는 왜 그걸 속삭이고 싶었나. 이제 와 돌이켜 보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만약 구태여 생각하자면 나는 그 여자를 경멸하면 경멸할수록 증오하면 증오할수록 무언가 그 여자를 능욕하고 싶어 참을 수 없었다. 와타루사에몬을――케사가 그 사랑을 쌓은 남편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것만큼, 그리고 그걸 그 여자에게 억지로 승낙시키는 것만큼 목적에 결부되는 일이 또 있을까. 그렇게 나는 마치 악몽에 휘감긴 사람처럼 하고 싶지 않은 살인을 억지로 그 여자에게 권한 것이리라. 그럼에도 내가 와타루를 죽이려 한 동기가 충분하지 않았다면 그 외에는 인간이 모르는 힘이(천마파순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내 뜻을 꼬셔서 사도에 빠트리려 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어찌 됐든 나는 집념 깊게 같은 말을 몇 번이나 케사의 귀에 속삭였다.
 그러자 케사는 한참 후 불쑥 고개를 들더니 순순히 내 생각을 받아들이겠단 대답을 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대답이 간단했던 게 의외였다. 케사의 얼굴을 보자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신비한 빛을 품고 있었다. 간통녀――나는 곧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실망에 비슷한 감정이 불쑥 내 생각의 두려움을 내 눈앞에 펼쳐주었다. 그동안에도 그 여자의 음란하기 짲이 없는 젖은 용모의 외설스러움이 끝없이 나를 괴롭힌 건 일부러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만약 가능하다면 나는 그때 나의 약속을 그 자리에서 파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부정한 여자를 굴욕하고 능욕하여 저 밑바닥까지 떨어트리고 싶었다. 그러면 설령 그 여자를 가지고 논 내 양심이라도 그런 의협의 뒤로 피난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마치 내 감정을 꿰뚫어 본 것처럼 갑자기 표정을 바꾼 그 여자가 나를 가만히 보았을 때――나는 솔직히 자백하겠다. 내가 일자와 시각을 정해 와타루를 죽이는 약속을 맺게 된 건 전적으로 만에 하나 내가 승낙하지 않았을 때 케사가 내게 하려는 복수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도 이런 공포는 집념 깊게 내 감정을 붙들고 있다. 겁쟁이라 비웃을 사람은 얼마든지 비웃으라지. 그건 당시의 케사를 모르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와타루를 죽이지 않는다면 설령 케사가 자기 손을 쓰지 않더라도 나는 이 여자한테 죽게 되리라. 그럴 바에야 내가 와타루를 죽이겠다"――눈물 없이 우는 그 여자의 눈을 보았을 때 나는 절망적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심지어 나의 이런 공포는 내가 선언한 후에 케사가 창백한 얼굴에 한 쪽 보조개를 품으며 고개 숙인 채 웃는 걸 보는 걸로 뒷받침되지 않았던가.
 아아, 나는 그 저주스러운 약속을 위해 더럽혀지고 또 더러워진 마음 위에 이제는 또 살인죄마저 더하는가. 만약 오늘 밤에 이 약속을 깼다면――이 또한 역시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선언한 건 다름 아닌 바로 나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나는 복수가 두렵다고 말했다. 이건 결코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그 위에 아직 무언가가 있다. 그건 뭐지? 이 나를, 이 겁 많은 나를 몰아붙여 죄도 없는 남자를 죽이려 하는 그 커다란 힘은 뭐지? 나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지만 어쩌면――아니, 그럴 리 없다. 나는 그 여자를 경멸하고 있다. 두려워하고 있다. 증오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또 그럼에도 또 내가 그 여자를 사랑하는 탓일지도 모른다."
 미로토오는 배회하면서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달빛. 어디선가 지금 모습을 노래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기에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빛 하나 없는 어둠과 다를 바 없다.
  단지 번뇌의 불꽃에 불타 사라질 뿐인 목숨이다.

        하

 밤, 케사가 쵸다이 밖에서 촛대의 빛을 뒤로한 채 소매를 씹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그 독백

 "그 사람이 올까 오지 않을까. 설마 오지 않을 일은 없겠지만 달이 기우는데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걸 보면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걸지도 몰라. 만약 오지 않는다면――아아, 나는 마치 꼭두각시 여자처럼 이 부끄러운 고개를 들고 또 햇살을 봐야 하다니. 그런 뻔뻔하고 수치스러운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분명 저 길거리에 버려진 시체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겠지. 능욕 당하고 짓밟히고 그 끝에 이 몸의 수치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로 그럼에도 역시 벙어리와 같이 입을 다물어야만 하니까. 나는 만에 하나 그렇게 되면 설령 죽어도 죽을 수 없어. 아니, 그 사람은 반드시 올 거야. 나는 이번에 헤어질 때에 그 사람의 눈을 볼 때부터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어. 그 사람은 나를 무서워하고 있어. 나를 증오하고 나를 경멸하면서 그럼에도 또 나를 무서워하고 있어. 확실히 나 자신을 부탁하는 거였다면 그 사람이 꼭 오리란 보장은 없겠지.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부탁했어. 그 사람의 이기심에 의지했어. 아니, 이기심을 일으키는 추한 공포를 의지했어.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그 사람은 몰래 올 게 분명해……
 하지만 나 자신을 부탁할 수 없었던  나는 얼마나 비참한 인간일까. 삼 년 전의 나는 나 자신에게, 나의 이 아름다움에 의지했어. 삼 년 전이라기보다도 혹은 그날까지라고 말하는 편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지. 그날, 큰어머님의 집 한 방에서 그 사람과 만났을 때 나는 단 한 번 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마음에 비친 내 추함을 알아 버렸지. 그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를 꼬드기는 듯한 상냥한 말을 해주었어. 하지만 한 번 자신의 추함을 안 여자의 마음이 그런 말에 위로를 받을 리도 없었지. 나는 그저 안타까웠어. 두려웠고 슬펐지. 어릴 적에 유모에게 안겨 월식을 본 꺼림칙함도 그 당시의 심정에 비하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몰라. 내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꿈은 단숨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고. 그 후엔 단지 비가 내리는 새벽 같은 쓸쓸함이 가만히 내 몸 주위를 두르고 있을 뿐이었지――나는 그 쓸쓸함에 떨면서 죽은 거나 다름없는 이 몸을 그 사람에게 맡겨버렸어. 사랑하지도 않는 그 사람에게 나를 증오하고, 나를 경멸하는 호색적인 그 사람에게――나는 내 추함을 보고 만 그 쓸쓸함을 견딜 수 없었던 걸까. 그리고 그 사람의 가슴에 얼굴을 얹어 열을 머금은 듯한 한 시간으로 모든 걸 속이려 한 게 아닐까. 그마저도 아니라면 그 사람처럼 나 또한 단지 더러운 감정으로 움직인 게 전부일까. 그렇게 생각한 것만으로도 나는 수치스러워. 수치스러워. 수치스러워. 특히 그 사람의 팔을 벗어나 다시 자유로운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나 스스로가 얼마나 추하게 느껴졌던가.
 나는 분함과 쓸쓸함에 아무리 울어도 눈물이 흘렀지. 하지만 그게 꼭 정조가 깨진 것만이 슬펐던 건 아니야. 정조가 깨진 걸로 더 낮잡아 보이는 게 마치 나병을 앓는 개처럼 증오하면서도 괴롭힘 당하는 게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게 했지. 그리고 그 후로 나는 대체 뭘 한 걸까.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것도 먼 기억처럼 희미하기만 할 뿐이야. 단지 울먹이는 사이에 그 남자의 콧수염이 내 귀에 얹어지나 싶더니 뜨거운 숨과 함께 작은 목소리로 "와타루를 죽이자"하는 말이 속삭여진 걸 기억하고 있지. 나는 그걸 듣는 동시에 아직도 스스로 알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리만치 생기 넘치는 감정을 품게 되었어. 생기 넘치는? 아니, 만약 달빛이 밝다면 그 또한 생기 넘치는 감정이었을 테지. 하지만 그건 달빛하고는 다른 생기 넘치는 감정이었지. 하지만 나는 역시 이 무서운 말 덕에 위로받은 게 아닐까. 아아, 나는, 여자란 자신의 남편을 죽여서까지 사람에게 사랑받는 게 기쁘게 느껴지는 걸까. 
 나는 그 달밤의 빛과 닮은 쓸쓸하고 생기 넘치는 심정으로 한동안 눈물을 거듭했어. 그리고? 그리고 어떻게 되었냐고? 나는 그 사람을 끌어들여 남편을 죽인다는 약속을 맺어버렸지. 하지만 그 약속을 맺는 것과 동시에 나는 처음으로 남편을 떠올렸지. 처음으로 솔직히 말해야 할까. 그때까지 나는 단지 나만을, 수치를 입은 나만을 생각했을 뿐이야. 그런데 그 순간에 남편을, 그 소심한 남편을――아니, 남편이 아닌가. 내게 무언가 말할 때의 미소 지은 남편의 얼굴을 고스란히 눈앞에 떠올린 거야. 왜냐하면 그때의 나는 이미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또 그렇게 각오할 수 있었던 게 기뻤지. 하지만 눈물을 멈춘 내가 고개를 들고 그 사람을 바라보았을 때, 그리고 그전처럼 그 사람의 마음에 비친 내 추함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내 기쁨이 단숨에 사라져버린 것만 같았어. 그건――나는 또 유모와 본 월식의 어둠을 떠올리게 했어. 그건 기쁨 밑바닥에 숨어 있는 수많은 괴이를 단숨에 내뿜는 꼴이 되었지. 내가 남편을 대신해 죽으려는 건 과연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일까. 아니, 아니, 나는 이런 형편 좋은 구실의 뒤에서 그 사람에게 몸을 맡긴 나의 죄를 갚으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어. 자해할 용기가 없는 나는. 적어도 세간의 시선에 나를 곱게 보이고 싶은 비열한 생각을 지닌 나는. 하지만 그건 차라리 관대하게 볼 수 있겠지. 나는 좀 더 추했어. 더, 훨씬 추했지. 남편을 대신 죽겠다는 명목하에 나는 그 사람의 증오에 그 사람의 경멸에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가지고 논 그 사악한 욕정에 원수 갚으려는 거잖아. 그 증거로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달빛 같은 신비한 생기도 사라져서 단지 슬픔만이 곧장 내 마음을 얼리고 말지. 나는 남편을 위해 죽는 게 아냐. 나는 나를 위해 죽는 거지. 내 마음을 상처 입힌 안타까움과 내 몸을 더럽힌 증오, 그 둘을 위해 죽으려는 거야. 아아, 나는 사는 보람이 없었던 걸로 그치지 않는 걸까. 죽는 보람마저 없었던 거야.
 하지만 그 죽는 보람 없는 죽음마저 살아 있는 것보다는 한없이 나을 테지. 나는 슬픈 걸 억지로 웃으면서 거듭하여 그 사람과 남편을 죽일 약속을 나눴어. 감이 좋은 그 사람은 그런 내 말에서 만에 하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내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 대강 추측할 수 있었을 테지. 그러니까 선언한 그 사람이 몰래 오지 않을 수가 없어――이건 바람 소리일까――그날 이후로 괴로운 나날이 오늘 밤으로 겨우 끝난다 생각하면 어느 정도 마음이 풀어지는 것도 같아. 내일 햇살은 분명 목 없는 내 위에 살짝 차가운 빛을 내려줄 테지. 그런 걸 보면 남편은――아니, 남편은 생각하지 말자. 남편은 나를 사랑하고 있어. 하지만 내게는 그 사랑을 어떻게 해줄 힘도 없지. 옛날부터 나는 단 한 명의 남자 밖에 사랑하지 못했어. 그리고 그 한 남자가 오늘 밤 나를 죽이러 오는 거야. 이 촛대의 빛도 그런 내게는 밝게만 보일 지경이야. 심지어 그 연인에게 학대 당한 내게는."
 케사는 촛대의 불을 끄고 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 속에서 살짝 차양을 여는 소리와 함께 옅은 달빛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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