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카시이 전투가 있었던 건 겐나 원년 4월 29일이었다. 오사카 세력 중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반단에몬 나오유키, 탄나와로쿠로뵤에 시게마사 등도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특히 반단에몬 나오유키는 금장대에 십문자 창을 꽂고 자루가 부러질 때까지 싸우다 카시이의 거리 안에서 사망했다.
4월 30일의 느즈막한 시각, 그들의 군세를 타파한 아사노타지마노 카미나가아키라는 오고쇼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전투의 승리를 보고하며 나오유키의 목을 헌상했다.(이에야스는 4월 17일 이후로 니죠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건 쇼군 히데타다가 에도에서 올라오는 걸 기다린 후 오사카 성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이때 사신을 맡은 게 나가아키라의 가신인 세키 소베이, 테라카와 마사노스케 둘이었다.
이에야스는 혼다사도노 카미마사즈미에게 명령해 나오유키의 목의 진위를 확인케 했다. 마사즈미는 옆방으로 물러나 조용히 수급이 담긴 통을 열고 나오유키의 목을 보았다. 그리고 뚜껑 위에 만卍자를 쓰고는 화살을 제거한 후 이에야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오유키의 목은 더위 탓에 뺨이 축 늘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냄새도 상당하니 직접 보시는 건 삼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하지만 이에야스는 승낙하지 않았다.
"누구나 죽은 이상은 해야 하는 일이다. 가져오너라."
마사즈미는 다시 옆방으로 물러나 호로 1를 뒤집어쓴 목통 앞에 한사코 앉아 있었다.
"어서 못할까."
이에야스가 말했다. 엔슈 요코스카의 하급 무사였던 반단에몬 나오유키는 어느 틈엔가 천하에 이름을 알린 맹자 중 한 사람에 들었다. 그뿐 아니라 그뿐 아니라 이에야스의 첩인 오만노카타도 그녀가 낳은 요리노부를 위해 한때는 그에게 해마다 이백 량의 금을 보내주었다. 더군다나 나오유키는 무예 이외에도 와류 스님 아래서 일자불입의 길을 배워 갔다. 이에야스가 이런 나오유키의 목을 보고 싶어하는 건 꼭 우연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사즈미는 대답하지 않고 역시 같은 방에 자리해 있던 나루세하이토노 쇼마사나리나 도이오오이노 카미토시카츠에게 말했다.
"본디 사람이란 나이를 먹을수록 정만 깊어진다고 합니다. 오고쇼만한 무사께서도 이것만은 아랫 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지요. 마사즈미도 화살만큼은 조금 알고 있습니다. 나오유키의 목은 하나의 목이기도 하고 눈을 뜨고 있다니 직접 보실 건 없다고 뜻을 올렸습니다. 그런 걸 구태여 눈앞으로 가져 오라는 게 그 좋은 증거이지 않겠습니까?"
이에야스는 꽃과 새가 그려진 후스마 너머로 마사즈미의 말을 들은 후, 두 번 다시 나오유키의 목을 보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둘
그와 같은 30일 밤, 이이카몬노 카미나오타카의 진영의 하녀 한 명이 갑자기 미치광이처럼 소리를 질렸다. 그녀는 겨우 서른이 갓 넘은 치코야라는 여자였다.
"반단에몬만한 무사의 목도 오고쇼가 직접 보기엔 부족한다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한 세력의 대장이었던 자건만. 이런 굴욕을 받은 이상은 반드시 갚아줘야만 한다……"
치코야는 연이어 외치며 그 자리서 펄쩍펄쩍 뛰려 했다. 그건 좌우에 선 남녀의 힘으로도 거의 억누를 수 없을 정도였다. 무시무시한 치코야의 외침은 물론, 그녀를 붙잡으려던 그들의 소동도一입방아에 오르기 마련이었다.
이이 진영의 소란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귀에도 저절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뿐 아니라 나오타카는 이에야스를 알현하여 치코야에게 나오유키의 악령이 씐 탓에 모두가 두려워한다는 걸 이야기했다.
"나오유키가 원망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럼 어서 확인해야겠군."
이에야스는 큰 촛불의 빛 속에서 이렇게 딱 잘라 말했다.
밤의 니죠성에서 나오유키의 목을 보는 건 대낮에 보는 것보다 장엄했다. 이에야스는 갈색 하오리를 입고 발목 언저리서 묶은 바지를 입은 채로 본래의 예법을 따라 나오유키의 목을 확인했다. 또 목 좌우에는 도구를 갖춘 두 부하가 검의 자루에 손을 얹은 채로 이에야스가 확인하는 목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오유키의 목은 뺨이 쳐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적갈색을 두른 채로 혼다 마사미즈가 말한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이걸로 반단에몬도 바라는 바를 이루었겠죠."
부하 중 하나――요코타 진에몬이 이렇게 말하며 이에야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나오타카를 부르고는 그에 귀에 입을 얹고 "그 여자의 출신 성분은 확인해두어라"하고 작은 목소리로 명했다.
셋
이에야스가 나오유키의 목을 본 이야기는 물론 이이의 진영에도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치코야는 이 이야기를 듣고 "그래야지"하고 말하며 한동안 웃고 있었다. 그러고는 마치 굉장히 지친 것처럼 깊은 잠에 들었다. 이이 진영의 남녀는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치코야가 남자처럼 굵은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하는 건 꺼림칙한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 밤이 저물어 갔다. 나오타카는 곧장 치코야를 불러서 그녀의 이력을 물어보기로 했다. 치코야는 이런 곳에 있기엔 너무나도 가녀린 여성이었다. 특히 어깨가 축 처진 건 애처로운 걸 넘어 비통할 정도였다.
"그대는 어디서 태어났는가?"
"게슈 히로시마의 성 아래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오타카는 치코야를 가만히 바라보며 이런 문답을 거듭한 후 천천히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쪽은 반단에몬하고 인연이 있군?"
치코야는 놀란 듯했다. 하지만 조금 주저한 후 의외로 딱 잘라 이렇게 답했다.
"네,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치코야의 말에 따르면 나오유키는 그녀에게 아이 하나를 낳게 했다고 한다.
"그 탓일까요. 어젯밤에 확인하지 않았단 말을 듣고 여자임에도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어느 틈엔가 정신을 잃더니 무어라 떠들어댔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기억하지 못 하는 일입니다만……"
치코야는 두 손을 땅에 댄 채로도 흥분한 게 보였다. 그 광경은 그녀의 마른 몸에 마치 아침해로 빛나는 옅은 빙판에 가까운 느낌을 주었다.
"됐다. 이만 물러가서 쉬거라."
나오타카는 치코야를 물린 후 다시 한 번 이에야스를 찾아 그녀의 이야기를 했다.
"역시 반단에몬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에야스는 당초 작게 웃고 있었다. 그에게 인생이란 토카이도 지도처럼 명백했다. 이에야스는 치코야의 광란 속에서도 몇몇 인생을 배웠다. 어떤 일에나 앞가 뒤가 있단 사실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추측은 지금도 칠순이 넘은 그의 경험에 들어 맞고 있었다……
"잘 알겠다."
"그 여자는 어떻게 할까요?"
"됐다. 계속 쓰거라."
나오타카는 살짝 성이 난 듯했다.
"하오나 윗사람을 속인 죄는……"
이에야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 눈은 인생 밑바닥에 자리한 암흑에――또 그 암흑 속에 자리한 여러 괴물을 향해 있었다.
"제 일존으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음, 윗사람을 속였다라……"
나오타카에겐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어느 틈엔가 눈을 크게 뜬 채로 마치 적을 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렇게 당당히 대답을 했다――
"아니, 나는 속지 않았다."
- 옛날 갑옷 뒤에 덮어 씌워서 화살을 막던 포대와 같은 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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