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기회로 아래에 적을 두 통의 편지를 손에 넣었다. 하나는 올해 2월 중순, 하나는 3월 중순――경찰서장에게 선불로 보내진 편지이다. 그런 걸 여기에 공표하는 이유는 편지가 스스로 설명하리라.
첫 번째 편지.
――경찰서장 각하께.
무엇보다 먼저 각하께서는 제가 제정신임을 믿어주셔야 합니다. 이는 제가 갖은 신성한 것에 맹세코 보증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부디 제게 정신 이상이 없다는 걸 믿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이 편지를 각하께 올리는 게 무의미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야 제가 이런 긴 편지를 쓰며 괴로워 할 이유도 없을 테지요.
각하, 저는 이 편지를 쓰기 전에 굉장히 주저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편지를 쓰는 이상 저는 저희 일가의 비밀마저 각하 앞에 폭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물론 제 명예에 꽤나 큰 손해를 주겠지요. 하지만 사정은 이렇게 적지 않으면 단 한 순간의 존재마저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절박해져버렸습니다. 때문에 저는 단호하게 조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 필요에 쫓겨 이런 편지를 쓰는 저이니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면 가만히 있을 수도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각하, 부디 제가 제정신인 걸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성가시겠지만 이 편지를 잘 읽어 주십시오. 이건 제가 저와 제 아내의 명성을 걸고 쓴 편지입니다.
이런 말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건 바쁘신 직무에 쫓기는 각하께는 어지간한 민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아래서 전해드릴 사실의 성질상, 각하가 제가 제정신인 걸 믿어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초자연적인 사실을 승인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이 창조적 정력의 괴이한 작용을 볼 수 있을까요. 그만큼이나 제가 각하께 올리려는 사실에는 신비한 성질이 더해져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위와 같은 부탁을 드렸습니다. 또 앞으로 쓸 내용도 어쩌면 헛소리라 비난받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한편으로 제정신에 이상이 없다는 걸 증명하는 동시에 또 한편으론 이러한 사실이 예로부터 결코 전무하지 않았단 걸 들었기에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믿은 바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마 카테리나 여제일 테지요. 또 괴테에게 일어난 현상도 그에 밀리지 않고 유명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건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기에 구태여 적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보다도 두세 개의 권이 있는 사례를 통해 되도록 짧게 이 신비한 사실의 성질을 설명하고 싶습니다. 먼저 Dr. Werner의 사례로 시작하죠. 그에 따르면 루트비히스부르크의 Ratzel이란 보석상은 어느 밤거리의 모퉁이를 도는 박자에 자신과 똑닮은 남자와 만났다고 합니다. 그 남자는 얼마 뒤 나무꾼이 떡갈나무를 패는 걸 돕다가 그 나무 아래에 깔려 죽었습니다. 이와 아주 닮은 게 로스토크에서 수학 교사를 하던 Becker에게 벌어진 사례일 테죠. Becker는 어느 밤 대여섯 명의 친구와 신학상의 의논을 하다 인용서가 필요해져 그걸 가지러 홀로 자신의 서재로 향했습니다. 그러자 그 이외의 그가 항상 그가 앉는 의자에 앉아 무언가 책을 읽는 게 아니겠습니까. Becker는 놀라서 그 인물의 어깨너머로 읽고 있는 책을 보았습니다. 책은 성경이었으며 그 인물의 오른손가락은 "너의 무덤을 준비하겠다"는 문장을 가리켰다고 합니다. 1Becker는 친구가 있는 방으로 돌아와 일동에게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처럼 다음 날 오후 여섯 시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걸 보면 Doppelgaenger의 출현은 죽음을 예고하는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지요. Dr. Werner는 딜레니우스 부인이란 여자가 여섯 살 먹은 자신의 아들과 남편의 여동생 셋이서 검은 옷을 입은 제2의 그녀를 보았을 때의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음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또 그런 현상이 제3자의 눈에도 나타난다는 사레가 될 것입니다. Stilling 교수가 꼽은 트리플린이라는 바이마르 공무원의 사례나 그가 아는 아무개 M 부인의 사례 또한 이런 부류에 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나아가 제3자에게만 나타난 도플갱어의 사례 또한 결코 희소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Dr. Werner도 자신의 하녀가 이중인격인 걸 보았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울름의 고등판사소장 Pflzer란 남자는 친구 공무원이 괴팅겐에 있는 아들의 모습을 자신의 서재서 보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유령의 성질 연구'의 저자가 밝힌 캄파랜드의 카클린튼 교회구에서 일곱 살 소녀가 그 아버지의 이중 인격을 본 사례나 '자연의 암흑면' 저자가 밝힌 H 아무개란 과학자이자 예술가였던 남자가 1792년 3월 12일 밤 숙부의 이중 인격을 보았단 사례 등도 꼽을 수 있으니 아마 그 수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사례로 각하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해버렸습니다. 단지 각하는 이 모든 게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란 걸 알아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쩌면 제가 드리는 말이 전혀 들어 줄 가치 없는 황당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저도 저의 도플갱어 탓에 괴로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로 각하께 작게나마 부탁을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도플갱어라 썼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말하면 저와 제 아내의 도플갱어라 해야 합니다. 저는 ――구 ――쵸――쵸메――반치에 사는 사사키 신이치로라 합니다. 나이는 서른다섯이며 직업은 도쿄 제국 문과 대학 철학과 졸업 후 오늘까지 사립――대학에서 윤리 및 영어 교사를 맡고 있습니다. 아내 후사코는 4년 전에 저와 결혼했습니다.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는데 아이는 아직 한 명도 없습니다. 여기서 제가 특히 각하께 주의 드리고 싶은 건 아내에게 히스텔리컬한 소질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결혼 전후가 가장 격해서 한 때는 저와 거의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을 정도로 우울해한 적이 있습니다만 요즘 들어서는 발작도 굉장히 드물어졌고 심상도 이전에 비하면 꽤나 쾌활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부터 다시 정신에 모종의 동요가 찾아왔는지 요즘에는 이상한 언동을 취하며 저를 괴롭게 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단지 제가 왜 아내의 히스테리를 역설하는가, 그건 이 기이한 현상을 다루는 제 설명과 어떤 관계가 있기 때문으로 그 설명은 나중에 자세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저와 제 아내에게 나타난 도플갱어가 어떠한 것이냐. 저희는 이제까지 세 번의 소동을 겪었습니다. 지금부터 제 일기를 참조하여 하나씩 되도록 정확하게 여기에 기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작년 11월 7일. 시각은 대략 오후 아홉 시와 아홉 시 삼십 분 사이였습니다. 당일 저는 아내와 둘이서 유라쿠자에서 자선연예회에 참가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면 그 티켓은 실제로 구매한 제 친구 부부가 모종의 사정으로 가지 못하게 되어 저희에게 양보한 것이었습니다. 연예회 자체는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요. 또 실제로 음악에나 춤에나 관심이 없는 저는 말하자면 아내를 위해 간 셈이니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저의 지루함을 키우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자세히 밝히고 싶어도 쓸만한 게 없을 정도입니다. 단지 제 기억에 따르면 휴식 직전에 무대에 오른 건 칸에이 어전시합이라는 코단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생각하기로 이상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준비된 심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칸에이 어전시합의 코단을 듣는 걸로 일소되었습니다.
저는 코단이 끝나는 걸 보고는 아내를 홀로 남기고 볼일을 보러 갔습니다. 말할 것도 없지만 휴식이 시작된 좁은 복도는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 사이를 꿰매며 변소에서 돌아왔는데 호 형태를 그린 복도가 현관으로 이어진 곳에서 저는 예기한 것처럼 반대편 복도 벽에 기대어 서있는 아내의 모습을 향했습니다. 아내는 밝은 전등이 눈부신 것처럼 살짝 고개를 숙인 채로 제 방향을 향해 옆얼굴을 보이며 조용히 서있었습니다. 물론 그건 별로 신비한 일이 아닙니다. 제가 제 시각과 또 동시에 제 이성의 주권을 거의 찰나의 순간에 박살낼 뻔한 무서운 순간에 이른 건 제 시선이 우연히――보다 정확히는 인간의 이지를 초월한 어느 은근하고 사소한 원인으로 제 아내 옆에 저를 등진 채 서있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향했을 때였습니다.
각하, 저는 그 순간 그 남자에게서 저 스스로를 인식했습니다.
두 번째 저는 첫 번째 저와 같은 하오리를 입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저와 같은 하카마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첫 번째 저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두 번째 저가 저를 보았다면 아마 그 얼굴 또한 저와 같았을 테지요. 저는 당시의 제 심정을 형용할 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이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제 머리 위에선 수많은 전등이 낮과 같은 빛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제 전후좌우에는 신비와 양랍히가 어려운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저는 실제로 그런 바깥 세계 속에서 불쑥 이 존재 이외의 존재를 눈앞에서 본 것입니다. 저의 경악은 그 때문에 한층 더 놀랐습니다. 제 공포는 그 때문에 한층 더 두려워졌습니다. 만약 아내가 그때 고개를 들어 저를 잠깐이라도 보았다면 저는 아마 큰 소리를 질러 주위의 주의를 이 괴이한 환영으로 끌어모았을 테죠.
하지만 아내의 시선은 다행히도 제 시선과 일치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두 번째 저는 마치 유리에 균열이 생기는 듯한 속도로 제 시야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저는 몽유병 환자somnambulist처럼 멍하니 아내에게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아내에겐 두 번째 제가 보이지 않았던 걸 테지요. 제가 옆에 오자 아내는 평소처럼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제 얼굴을 보더니 이번에는 머뭇머뭇 "무슨 일 있었어?"하고 물었습니다. 제 얼굴색이 잿빛이었던 탓일 테지요. 저는 식은땀을 닦으면서 제가 본 초자연적 현상을 아내에게 밝혀야 되나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걱정스레 보는 아내 앞에서 어떻게 그런 걸 밝힐 수 있을까요. 저는 그때 더 이상 아내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두 번째 저에 관한 건 입을 다물자고 결심했습니다.
각하, 만약 아내가 저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또 제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제가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단언합니다. 저희는 오늘날까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세간은 그걸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각하, 세간은 아내가 저를 사랑한다는 걸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무서운 일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로서는 제가 아내를 사랑하는 걸 부정 당하는 것보다 더 굴욕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세간은 한 발 더 나아가 제 아내의 정조마저 의심하고 있습니다――
감정이 격해져 그만 글이 옆으로 샌 듯합니다.
저는 그날 밤 이후로 어떠한 불안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앞에 적은 사례처럼 도플갱어의 출연이 대부분 당사자의 죽음을 예고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불안 속에서도 한 달이란 시간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해가 바뀌었습니다. 저는 물론 그 두 번째 저를 잊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딸아 제 공포나 불안도 서서히 풀어져만 갔습니다. 아니, 한 때는 모든 걸 환상hallucination이란 말로 정리해버릴까 싶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마치 저의 그런 방심을 경계하기라도 한 것처럼 두 번째 제가 다시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는 1월 17일, 마침 목요일의 정오쯤의 일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학교에 있었는데 불쑥 친구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마침 오후 수업도 없는 날이었기에 같이 학교를 나와 스루가다이의 카페에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알다시피 스루가다이에는 사거리 근처에 큰 시계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저는 전철에서 내릴 때에 문득 시곗바늘이 열두 시 오 분을 가리키고 있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때 제게는 큰 시계의 하얀 판이 눈이 쌓인 아연 같은 하늘을 뒤로한 채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게 어쩐지 무섭게만 느껴졌습니다. 혹은 그마저도 어떤 전조일지 모릅니다. 저는 불쑥 이런 두려움에 휩싸여 큰 시계를 보던 눈을 전철의 선로 하나를 둔 나카니시야 앞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러자 붉은 기둥 앞에는 저와 제 아내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친근하게 서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내는 검은 코트에 짙은 갈색 명주 목도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색 오버코트에 검은 소프트 햇을 쓴 제게, 두 번째 제게 무어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각하 그날은 저도, 첫 번째 저도 회색 오버코트에 검은 소프트 햇을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두 개의 환영을 얼마나 공포로 충만한 눈으로 바라보았을까요. 얼마나 증오로 불타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요. 특히 아내의 눈동자가 두 번째 저의 얼굴을 달콤하게 바라보고 있는 걸 알았을 때에는――아아, 모든 게 무서운 꿈만 같습니다. 저는 도무지 당시의 제 위치를 재현할만한 용기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친구의 팔꿈치를 붙들고 정신을 놓은 것처럼 거리에 서있었습니다. 그때 외호선 전철이 스루가다이 쪽에서 언덕을 내려와 큰 소리를 내며 제 앞에 멈춰 선 건 정말로 하늘의 도움이라고 해야 할 테지요. 우리는 마침 외호선 선로를 가로지르려던 참이었습니다.
전차는 물론 바로 저희 앞을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제 시선을 가로막은 건 나카니시야 앞에 자리한 붉은 기둥뿐이었습니다. 두 개의 환영은 전철이 가려준 찰나에 어딘가로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친구를 재촉하여 우습지도 않은 일을 우습게 웃으며 일부러 큰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그 친구가 나중에 제가 발광했단 소문을 퍼트린 것도 당시의 제 이상 행동을 생각하면 이해가 갈 지경입니다. 하지만 제 발광의 원인을 제 아내의 품행 탓으로 돌리는 건 저를 굴욕한 셈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얼마 전에 그 친구에게 절교장을 보냈습니다.
제가 사실을 기록하는데 바쁜 나머지 당시의 아내가 아내의 이중인격에 지나지 않다는 걸 증명하지 않은 듯합니다. 당시의 정오 전후, 아내는 분명 외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내 본인은 물론이요 저희 집에서 일하는 하녀도 그렇게 증언한 일입니다. 또 그 전날부터 두통이 있어 방안에만 있던 아내가 금세 밖으로 나갈 리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제 눈에 비친 아내는 도플갱어가 아니라 무어라 해야 할까요. 저는 아내가 외출 여부를 묻는 질문에 눈을 크게 뜨면서 "아뇨?"하고 말한 얼굴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만약 세간이 말하는 것처럼 아내가 저를 속이는 거라면 그런 아이 같은 순수한 얼굴은 절대 불가능할 터입니다.
제가 두 번째 저의 객관적 존재를 믿기 전에 제정신 상태를 의심한 건 물론입니다. 하지만 제 두뇌는 조금도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잠도 잘 자고 있습니다. 새로운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두 번째로 두 번째 저를 본 후로 무언가에 쉽게 놀라고 있긴 하지만 이는 그 기괴한 현상을 접한 탓이지 결코 원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도무지 이 존재 이외의 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도 아내에게는 그 환영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운명이 허락한다면 저는 오늘날까지 역시나 입을 다물고 있었을 테지요. 하지만 집요한 두 번째 저는 한 번 더 제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는 저번 주 화요일 즉, 2월 13일 오후 일곱 시 전후의 일입니다. 저는 그때 아내에게 모든 걸 밝혀야만 했습니다. 그 외에는 우리의 불행을 가볍게 할 수단이 없었으니까 도리가 없습니다.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드리도록 하죠.
그날, 마침 숙직이었던 저는 방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격렬한 위경련에 휩싸였습니다. 곧장 교의의 충고를 따라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지요. 아지만 오후부터 내리던 비에 바람이 더해져 집 근처에 이를 쯤에는 퍼붓는 것처럼만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문 앞에서 빠르게 비용을 지불하고 비 안에서 현관까지 서둘러 달렸습니다. 현관 격자에는 여느 때처럼 내부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밖에서도 잠금을 풀 수 있었으니 곧장 격자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마 빗소리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걸 테지요. 안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신발을 벗고 모자와 오버코트를 걸어두고 현관에서 한 방을 두고 있는 서재의 당지를 열었습니다. 이는 거실에 가기 전에 교과서나 다른 게 담긴 가방을 서재에 두는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제 눈앞에는 곧장 의외의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북쪽 방향으로 놓인 창 앞에 자리한 책상과 그 앞에 배치된 회전의자와 그 모든 걸 감싸고 있는 책장에는 물론 어떠한 변화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쪽에게 옆모습을 보이며 책상 옆에 서있던 여자와 회전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는 대체 누구였을까요. 각하, 저는 이 순간 두 번째 저와 두 번째 제 아내를 가까이서 본 셈입니다. 저는 당시의 무서운 인상을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서있는 문지방 위에서는 책상을 두고 서있는 두 사람의 옆얼굴이 보였습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빛을 받은 그 두 얼굴은 나란히 날카로운 명함을 만들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 얼굴 앞에 놓인 노란 삿갓 머리가 달린 전등은 제 눈에는 거의 새까맣게만 비쳤습니다. 심지어 무슨 아이러니일까요. 그들은 제가 이 기괴한 현상을 기록해둔 제 일기를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책상 위에 펼쳐진 책의 형태로 곧장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광경을 보는 동시에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비명이 제 입술에서 저절로 나온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그 비명을 따라 두 사람의 환영이 동시에 저를 본 것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환영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 두 번째 아내에게도 당시 제 모습을 들을 수 있었을 테지요. 하지만 그건 물론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단지 확실히 기억하는 건 당시의 저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는 것뿐입니다. 저는 그대로 그곳에서 쓰러져 실신해버렸습니다. 그 소리에 놀란 아내가 방에서 달려왔을 때에는 그 원망스러운 환영도 모습을 감춘 걸 테지요. 아내는 저를 서재에서 재우고는 바로 얼음주머니를 이마에 얹어주었습니다.
제가 정신을 되찾은 건 그로부터 삼십 분 후의 일입니다. 아내는 제가 정신을 차린 걸 보며 불쑥 소리내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제 언동이 아내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걸 테지요. "뭔가 의심하는 거지? 그렇지? 아니면 왜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 거야?" 아내는 이렇게 말하며 저를 나무랐습니다. 세간이 아내의 정조를 의심한다는 건 각하께서도 물론 아실 터입니다. 그 소문은 당시의 제 귀에도 전해진지 오래였습니다. 아마 아내 또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이 무서운 소문을 들은 걸 테지요. 저는 아내의 말이 저 또한 그런 의심을 품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떨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내는 제 갖은 이상한 언동이 모두 그 의심에서 오는 거라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런 상황서 제가 침묵을 지키면 그건 하염없이 아내를 괴롭히는 일이 될 게 분명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마에 얹은 얼음주머니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용히 아내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용서해줘. 나는 너한테 숨겨둔 일이 있어"하고 운을 뗐습니다. 그러고는 두 번째 제가 세 번이나 제 눈앞에 나타난 걸 되도록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세간의 소문도 누가 두 번째 내가 두 번째 너와 같이 있는 걸 보고 날조한 거 같아. 나는 너를 굳게 믿고 있어. 대신 너도 나를 믿어줘." 저는 그 후 힘을 담아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세간의 의혹의 표적이 되는 게 견디기 힘들었던 걸 테지요. 혹은 또 도플갱어란 현상이 그 의심을 풀기에는 너무나 이상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아내는 제 머리맡에서 한사코 울음을 훌쩍여야 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앞에서 꼽은 수많은 사례를 통해 도플갱어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 거듭 설명했습니다. 각하, 아내처럼 히스테리컬 한 소질을 가진 여자에게는 특히 이런 기괴한 현상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그 사례 또한 기록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저명한 몽유병 환자인 Auguste Mulle은 한동안 그 이중인격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단 그 경우에는 몽유병 환자의 의지를 따라 도플갱어가 나타난 것이니 그 의지가 조금도 없는 아내의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비난도 듣게 되겠지요. 또 한 걸음 양보해 그걸로 아내의 이중인격이 설명되더라도 저에게는 불가능하단 의문이 생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건 결코 해석이 어려운 문제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자신 이외의 인간의 이중인격을 만들어내는 능력도 때로는 존재한다는 게 역시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프란츠 폰 바델이 에카르츠하우젠은 죽기 조금 전에 Dr. Werner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자신은 다른 인간의 이중인격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고 공언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두 번째 의문은 첫 번째 의문과 마찬가지로 아내에게 그럴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되어버릴 테지요. 하지만 의지의 유무를 따지는 건 의외로 불확실한 법입니다. 확실히 아내는 도플갱어가 나타나도록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일을 시종 염두에 두고 있었겠지요. 혹은 저와 어딘가로 같이 가는 걸 바랐던 걸지도 모릅니다. 이게 아내와 같은 소질을 가진 사람에겐 도플갱어의 출현을 바란 것과 같은 결과가 되는 건 아닐까요. 적어도 저는 그럴 법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제 아내 같은 사례도 두세 개 가령 찾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런 말로 아내를 위로했습니다. 아내도 겨우 납득이 간 걸 테지요. 그 후로는 "당신이 마음에 걸리네"하고 말하며 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걸로 눈물이 말라버렸습니다.
각하, 제 이중인격이 제게 나타난 오늘날까지의 경과는 대개 위와 같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아내와 저만의 비밀로 삼아 오늘까지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때가 아닙니다. 세간은 공연히 저를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제 아내를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요즘에는 아내의 정조를 풍자하는 노래를 부르며 제 앞을 지나가는 자마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 사실을 묵시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제가 각하에게 이렇게 호소하는 건 단순히 저희 부부에게 이유 없는 굴욕이 가해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런 굴욕을 견딘 결과 아내의 히스테리가 더더욱 심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스테리가 심해지면 도플갱어의 출연도 빈번해질지 모릅니다. 그러면 아내의 정조를 보는 세간의 의혹은 더욱 심해질 테지요. 저는 이 딜레마를 어떻게 벗어나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각하, 이런 사정에 처한 제게는 각하께 보호를 의뢰하는 게 최후의, 유일한 활로입니다. 부디 제가 올린 말을 믿어 주십시오. 그리고 잔혹한 세간의 박해에 괴로워하는 저희 부부를 동정해주십시오. 제 동료 중 한 명은 더 커진 목소리로 신문에 나온 간통 사건을 제 앞에서 떠들어댔습니다. 제 선배 중 한 명은 제게 편지를 보내 아내의 정조를 비웃는 동시에 은근슬쩍 이혼을 권했습니다. 또 제가 가르치는 학생은 제 강의를 진지하게 듣지 않는 건 물론이요 제 교실 칠판에 저와 제 아내의 캐리커처를 그리고는 그 아래에 "경사 난 가족"이란 말을 적어놨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저와 조금이나마 교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들어서는 새빨간 타인인 주제에 생각할 수도 없는 굴욕을 가하는 사람도 결코 적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름 없는 편지를 보내 아내를 앰글류로 비유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집 울타리에 학생 이상의 수완을 발휘해 참 귀여운 그림과 글을 적어두었습니다. 그리고 더 대담한 사람은 저희 정원 안으로 들어와 아내와 제가 저녁 먹는 모습을 바라볼 지경이었습니다. 각하, 이게 정녕 인간이 할 법한 짓입니까?
저는 각하께 이러한 사실을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적었습니다. 저희 부부를 능욕하고 협박하는 세간에게 관헌은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그건 물론 각하의 문제이며 제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현명한 각하가 저희 부부를 위해 반드시 각하의 권능을 가장 알맞게 행사하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부디 일을 잘 처리하시어 불명예를 입지 않도록 각하의 직무를 완수해주셨으면 합니다.
또 질문하실 바 있으시면 저는 언제라도 경찰서에 출두할 뜻이 있습니다. 그럼 이상으로 붓을 놓겠습니다.
두 번째 편지
――경찰서장 각하.
각하의 태만은 저희 부부에게 마지막 불행을 초래했습니다. 제 아내는 얼마 전 갑자기 실종되어 아직도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아내는 세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게 아닐까요.
세간은 끝내 죄 없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각하께서도 그 사악한 방보자 중 한 사람이 되신 겁니다.
저는 오늘부로 이곳을 뜰 생각입니다. 무위무능한 각하의 경찰 아래에서는 도무지 안녕히 지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각하, 저는 그제 학교도 사직했습니다. 앞으로 저는 전력을 다해 초자연적 현상의 연구에 종사할 생각입니다. 각하는 아마 일반 세간과 마찬가지로 저의 이런 계획을 냉소하실 테지요. 하지만 일개 경찰서장의 신분으로 초자연적 현상을 전부 부정하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각하는 먼저 우리 인간이 아는 부분이 얼마나 적은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이를 테면 각하가 부리는 형사 안에도 각하가 꿈에도 꾸지 못할 법한 전염병을 가진 자가 수없이 있습니다. 특히 그게 접촉을 통해 신속히 전염된다는 사실은 저 이외에 거의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 사례는 각하의 오만한 세계관을 부수기에 충분할 테지요……
× × ×
그 이후로는 거의 의미가 없는 철학 같은 이야기가 갈게 이어져 있다. 이는 불필요하니 생략하기로 했다.
- 나훔서 1:14 [본문으로]
'고전 번역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코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09.17 |
---|---|
변환과 그 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09.16 |
오오가와의 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09.14 |
담뱃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09.13 |
문장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0) | 2021.09.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