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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오오가와의 물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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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오가와바다 근처 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을 나와 모밀잣밤나무의 어린잎으로 둘러싸인 검은 울타리가 많은 요코아미의 긴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곧장 폭이 넓은 강줄기가 보이는 말뚝이 많은 강가가 나왔다. 어릴 적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거의 매일 같이 그 강을 보았다. 물과 배와 다리와 모래와 물 위에서 태어나고 물 위에서 생활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보았다. 한여름 오후에 달아 오른 모래를 밟으며 수영을 배우러 가는 길에 맡지 않아도 코로 다가오는 강의 물 냄새도 나이 먹은 이제는 그리운 추억처럼만 느껴진다.
 나는 왜 이렇게나 그 강을 사랑하는 걸까. 본래는 진흙에 탁해진 오오가와의 미적지근한 물에 한없는 그리움을 느끼는 건 어째서일까. 스스로도 그 설명은 쉽지 않다. 단지 나는 어릴 적부터 그 물을 볼 때마다 어쩐지 눈물이 떨어질 듯한 말로 다 하기 힘든 위안과 쓸쓸함을 느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멀어져 그리운 사모와 추억의 세계에 들어가는 심정이 들었다. 이 심정 때문에, 이런 위안과 쓸쓸함을 느꼈기에 나는 무엇보다도 오오가와의 물을 사랑하는 것이다.
 은은한 잿빛 아지랑이와 푸른 기름 같은 강물과 숨결처럼 희미한 기적 소리와 석탄배의 갈색 삼각돛――모두 억누를 수 없는 애수를 일으키는 이러한 강의 풍경은 내 어린 마음을 얼마나, 그 강가에 선 버들잎처럼 흔들리게 했을까.
 요 3년 동안 나는 야마노테 교외의 잡목림 뒤에 놓인 서재에서 조용히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한 달에 두어 번은 그 오오가와의 강을 바라보는 걸 잊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 없이 움직이고 흐르는 일 없이 흐르는 오오가와의 물색은 정숙한 서재의 공기가 쉼없이 주는 자극과 긴장에 안타까울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는 내 마음을 마치 오랜 여행을 나섰던 순례객이 겨우 고향땅을 밟았을 때 같은 쓸쓸하면서도 자유로운 그리움에 녹여주었다. 오오가와의 물이 있어 나는 비로소 다시 한 번 순수한 본래의 감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푸른 물에 접한 아카시아가 초여름의 부드러운 바람에 날려 하얀잎을 떨구는 걸 몇 번이나 보았다. 나는 안개가 많은 11월 밤에 어두운 물의 하늘서 차갑게 우는 물떼새의 울음을 몇 번이나 들었다. 내가 보고 내가 들은 모든 건 하나같이 오오가와를 향한 내 사랑을 새롭게 했다. 마치 여름 강의 물에서 태어나는 잠자리의 날개처럼 흔들리기 쉬운 소년의 마음은 그때마다 새로운 경이의 눈동자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밤에 고기 잡으러 나온 배의 뱃전을 따라 소리도 없이 흐르는 검은 강을 바라보며 밤과 물속에 떠오른 '죽음'의 호흡을 느꼈을 때 나는 얼마나 기댈 곳 없는 적적함에 휩싸여야 했던가.
 오오가와의 강줄기를 볼 때마다 나는 그 교회의 종소리와 고니의 울음소리로 저물어 가는 이탈리아의 물의 도시――발코니에 핀 장미나 백합도 바닥에 가라앉은 듯한 달빛에 파랗게 질리고 검은 관을 닮은 곤돌라가 그 안을 다리서 다리로 꿈처럼 흘러가는 베네치아의 풍물에 넘칠 듯한 정열을 부운 단눈치오의 심정을 새삼스러운 그리움과 함께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오오가와의 물에 접한 해안가 마을들은 하나같이 내게 잊기 어려운 그리운 곳이다. 아즈마바시부터 강 아래라면 코마카타, 나미키, 쿠라마에, 다이치, 야나기바시, 혹은 타다의 야쿠시마에, 우메보리, 요코아미의 강가――어디라도 좋다. 이러한 마을들을 오가는 사람들의 귀에는 햇살을 받은 광의 벽과 벽 사이서, 격자문의 어두컴컴한 집과 집 사이서, 혹은 갈색 싹을 틔운 버들과 아카시아 가로수 사이서, 잘 닦인 유리처럼 푸르게 빛나는 오오가와의 물이 그 차가운 물 냄새와 함께 예로부터 남쪽으로 흐르는 그리운 울림을 전해주리라. 아아, 그런 물소리가 가진 그리움이란. 중얼거리듯이, 토라진 듯이, 혀를 차는 것처럼 풀의 즙을 머금은 푸른 물은 낮도 밤도 구분 않고 양 물가의 돌절벽을 씻어간다. 한죠나 나리히라, 무사시노 같은 과거는 몰라도 멀게는 수많은 에도 죠루리의 작가, 가깝게는 가와타케 모쿠아미 옹이 센소지의 종소리와 함께 그 살벌한 장소의 Stimmung분위기, 정서를 가장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이따금 그 이야기 속에 이용한 게 바로 이 오오가와의 쓸쓸한 울림이었다. 이자요이 세이신이 몸을 던졌을 때도, 겐노죠가 새를 쫓는 노래를 부르던 오코요를 본 순간에도 혹은 또 땜장이 마츠고로가 박쥐가 나는 여름 저녁에 천칭을 짊어진 채 료고쿠의 다리를 지나던 때에도 오오가와는 지금처럼 뱃가게가 자리한 산바시에, 강기슭의 갈대와 물억새에, 쵸키부네의 배 밑바닥에 조용한 속삭임을 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 물 소리를 그립게 들을 수 있는 건 강을 건너는 배 안이리라.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아즈마바시에서 신오오바시 사이에 본래는 다섯 개의 나루터가 있었다. 그 가운데 코마카타 나루터, 후지미 나루터, 아타카 나루터 세 곳은 서서히 하나씩 사라졌고 이제는 단지 이치노하시에서 하마쵸로 건너는 나루터와 미쿠라바시에서 스가쵸로 건너는 나루터 두 개만이 예전처럼 남아 있다. 내가 어릴 때와 비교하면 강의 흐름도 달라지고 무늬물대로 무성한 곳곳의 모래 기슭도 발 디딜 곳 없이 매워져 버렸지만 이 두 나루터만은 여전히 밑바닥이 얕은 배에 여전히 노인의 사공을 두고서 기슭의 버들잎처럼 푸른 강물을 지금도 변함 없이 하루에 몇 번인가 오가고 있다. 나는 자주 아무 볼일도 없이 이 나룻배에 올라타곤 했다. 물이 움직이는 걸 따라 요람처럼 가볍게 몸을 맡기는 그 기분이란. 특히 늦은 시각일수록 배의 쓸쓸함과 기쁨이 뼈저리게 몸에 스며들었다――낮은 뱃전 이외엔 곧장 부드러운 녹색 물과 청동처럼 둔한 빛을 내뿜는 폭이 넓은 강 표면은 저 먼 신오오바시까지 한 눈에 들어오게 했다. 양 기슭의 집은 황혼의 잿빛으로 통일되고 곳곳의 장자에 담기는 빛마저 노란 아지랑이 속에 떠올라 있다. 위로 오르는 강줄기를 따라 회색 돛을 반쯤 편 전마선이 한 척, 두 척 이따금 강을 오르고 있는데 어느 배나 하나 같이 조용하여 뱃전을 쥐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그마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항상 이 조용한 배의 돛과 푸르고 평평하게 흐르는 강줄기를 보고 어쩐지 호스만슈탈의 Erlebnis란 시를 읽었을 때 같은 말로 다 못할 쓸쓸함을 느끼는 동시에 내 마음 속 정서의 물줄기가 속삭이는 소리 또한 아지랑이의 밑을 흐르는 오오가와의 물과 같은 선율을 노래하는 것처럼만 느껴졌다.


 하지만 나를 매료한 게 비단 오오가와의 물이 주는 울림만은 아니다. 내게는 이 강의 물이 빛나는 게 다른 곳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운 부드러움과 따스함을 지닌 것처럼 느껴졌다.
 바닷물은 이를테면 벽옥Jasper색처럼 너무나 무거운 녹색을 지니고 있다. 또 물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상류의 강물은 말하자면 에메랄드색처럼 너무 가볍고 너무 얄팍하게 빛나고 있다. 그러나 담수와 조수가 교차하는 평원의 큰 강이 지닌 물은 시원한 푸른색에 탁하고 노란 따스함이 뒤섞여 어딘가 인간화휴머나이즈된 친숙함과 인간 답다는 뜻에서 라이프라이크한 그리움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오오가와는 붉은 점토가 많은 관동평야를 오가며 "도쿄"라는 대도심을 조용히 흐르는 만큼 그 탁하고 주름지며 깐깐한 유대인 노인처럼 쫑알쫑알 잔소리를 하는 물의 색은 참으로 인간다우며 잘 내려앉은 뛰어난 촉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같은 마을 속을 흐르더라도 '바다'란 커다란 신비와 끝없이 이어져 있는 탓인지 강과 강을 잇는 물길의 물처럼 어둡지 않다. 잠들어 있지도 않다. 어딘가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심지어 그런 움직임 너머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의 신비함이 있는 것 같다. 아즈마바시, 우마야바시, 료고쿠바시의 사이를 향유 같은 푸른 물이 커다란 다리의 화강석을 적셔가는 기쁨은 말할 것도 없다. 물가에 가까운 나루터의 하얀 행등을 비추고 은빛 잎을 흔드는 버들을 비추고 또 수문에 이르러서는 미적지근한 샤미센 소리가 들리는 오후를 붉은 부용에 한탄하면서 마음 약한 집오리의 날개에 흐트러지고 인기척 없는 주방 아래를 조용히 빛나며 흐르는 것도 이 무거운 물색이라 할 수 있는 온정을 지니고 있었다. 설령 료고쿠바시, 신오오바시, 에이타이바시처럼 강 입구에 가까워짐에 따라 강물이 따스한 바다의 진한 남색을 품어가며 소음과 연기로 가득 찬 공기 아래서 하얗게 죽은 눈을 날카롭게 빛내는 양철처럼 반사해 석탄을 쌓은 다루마부네나 하얀 페인트칠이 된 고풍스러운 기선을 울적하게 흔들고 있더라도 자연의 호흡과 인간의 호흡이 하나 되어 어느 틈엔가 융합한 도심의 물색이 가진 따스함은 간단히 사라질 게 못 된다.

 특히 저녁 쯔음에 강 위에 떠오르는 수증기와 서서히 어두워지는 저녁 하늘의 여명은 이 오오가와의 물에 비유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묘한 색채를 둘러준다. 나는 홀로 뱃전에 팔꿈치를 얹은 채로 아지랑이낀 저녁의 수면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그 암녹색 물의 너머, 어두운 집집의 하늘에 커다랗고 붉은 달이 나온 걸 보고 저도 모르게 눈물 흘린 걸 아마 평생 잊지 못하리라.
 "모든 마을은 그 마을 고유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피렌체의 냄새는 붓꽃의 하얀 꽃과 먼지와 아지랑이와 낡은 그림의 니스 냄새이다"(메레시콥스키) 만약 내게 '도쿄' 냄새를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오오가와의 물 냄새라 대답하는데 어떠한 주저도 하지 않으리라. 비단 냄새만이 아니다. 오오가와의 물색, 오오가와의 울림은 우리가 사랑하는 '도쿄'의 색이자 목소리여야 한다. 나는 오오가와가 있기에 '도쿄'를 사랑하고 '도쿄'가 있기에 생활을 사랑한다.

(1912・1)

 그후 "이치노하시 나루터"는 자취를 감추었다. "미쿠라바시 나루터"가 사라지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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