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카와 씨. 조사弔詞 하나만 적어주시겠습니까? 토요일에 혼다 소령의 장례식이 있는데――그때 교장 선생님께서 읽으실 거라서요……"
후지타 대령은 식당을 나와 야스키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호리카와 야스키치는 학교 학생들에게 영어 읽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수업 틈틈이 조사를 쓰거나 교과서를 편집하거나 어전 강연의 참석을 하거나 외국 신문 기사를 번역하는 둥――이따금 그런 일도 해야만 했다. 그런 걸 부탁하는 건 항상 이 후지타 대령이다. 대령은 겨우 마흔 정도 됐을까. 칙칙하게 타고 살이 늘어진 신경질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야스키치는 대령보다도 한 걸음 뒤를 걸으며 저도 모르게 "어라?"하고 말했다.
"혼다 소령께서 돌아가셨습니까?"
대령도 "어라?"하고 말하듯이 야스키치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야스키치는 어제 휴가였던 탓에 혼다 소령의 죽음을 전한 통지서를 보지 못한 것이다.
"어제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뇌출혈이라네요……그럼 금요일까지 부탁드립니다. 마침 모레 아침까지군요."
"네 뭐, 쓰는 건 상관없습니다만……"
눈치 빠른 후지타 대령은 야스키치의 선수를 빼앗았다.
"조사를 쓸 참고 자료로 이력서를 보내 드리지요."
"근데 어떤 사람이셨지요? 저는 얼굴만 간신히 아는 정도라서……"
"글쎄요. 형제를 아끼는 분이셨죠. 그리고……그리고 항상 수석이었던 사람이에요. 그럼 명필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노랗게 칠한 교장실 문 앞에 서있었다. 후지타 대령은 과장이라 불리는 부교장 역할을 맡고 있다. 야스키치는 도리 없이 조사에 관한 예술적 양심을 내던졌다.
"명석하고 형제를 아끼던 분이셨군요. 그럼 어떻게든 되겠지요."
"부탁드립니다."
대령과 헤어진 야스키치는 흡연실을 들르지 않고 아무도 없는 교관실로 돌아왔다. 11월의 해빛은 창문을 오른쪽에 접한 야스키치의 책상을 비추고 있다. 그는 그 앞에 앉아 배트 한 개비에 불을 옮겼다. 조사는 오늘까지 두 개 가량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첫 조사는 맹장염으로 죽은 시게노 소위를 위해 썼다. 당시 학교에 막 부임한 그는 시게노 소위가 어떤 사람인지 얼굴마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조사의 처녀작으로 조금 관심을 가졌기에 "유유한 백운 같은 사람아"하고 당송팔가문 같은 문장을 심었다. 다음 건 불의의 익사로 죽은 키무라 대위를 위해 썼다. 키무라 대위하고는 매일 같은 피서지에서 학교 부근까지 기차로 왕복하였기에 솔직히 애도의 심정을 드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혼다 소령은 식당을 나올 때에 대머리 독수리와 닮은 얼굴을 본 게 전부였다. 그뿐 아니라 조사를 쓰는데 어떠한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말하자면 현재 호리카와 야스키치는 주문을 받은 장례 회사였다. 몇 월 며칠 몇 시까지 용등이나 조화를 가져와라. 그런 말을 들은 정신생활상의 장례 회사 말이다――야스키치는 배트를 문 채로 점점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호리카와 교관님."
야스키치는 꿈에서 깨기라도 한 것처럼 책상 옆에 선 다나카 중위를 올려다보았다. 다나카 중위는 콧수염이 짧고 둥근 이중턱을 가진 애교 있는 얼굴의 소유주였다.
"혼다 소령님의 이력서입니다. 과장께서 호리카와 교관님께 전달을 명받았습니다."
다나카 중위는 책상 위에 괘지 묶음을 내려놓았다. 야스키치는 "네에"하고 대답하면서 멍하니 괘지를 바라보았다. 괘지에는 진급 일자만이 얇은 글자로 적혀져 있다. 이건 단순한 이력서가 아니다. 문관과 무관을 가리지 않고 갖은 하늘 아래의 관사의 평생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그리고 하나 여쭈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만――아뇨, 해상용어는 아닙니다. 소설 속에 나온 말입니다."
중위가 내민 종이에는 서양 문자 하나가 파란색 연필로 적혀 있다. Masochism――야스키치는 절로 종이에서 항상 뺨을 붉게 물들이는 중위의 어린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이거 말인가요? 마조히즘인데……"
"네, 도무지 평범한 영일 사전으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야스키치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마조히즘의 뜻을 설명했다.
"아니, 그런 뜻이었나요!"
다나카 중위는 여전히 밝게 개인 웃음을 띄우고 있다. 이런 만족스러운 웃음만큼 짜증을 부채질하는 것도 없다. 특히 지금의 야스키치는 이 행복한 중위의 얼굴에 크라프트 에빙의 모든 어휘를 던져주고 싶은 유혹마저 느꼈다.
"이 말의 기원이 된――그, 마조흐라 하셨습니까? 그 사람의 소설은 볼만합니까?"
"뭐 별 볼 일 없지요."
"하지만 마조흐란 사람은 재미 있는 사람인가 봅니다?"
"마조흐요? 마조흐란 녀석은 바보지요. 무엇보다 정부보고 국방 계획보다 창부 보호에 돈을 더 내라고 열심히 주장할 정도였으니까요."
마조흐의 멍청함을 안 다나카 중위는 그제야 야스키치를 놓아주었다. 물론 마조흐가 국방 계획보다 창부 보호를 중시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 국방 계획에도 상당한 경의를 보였으리라. 하지만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이 낙천가 중위의 머리에 변태 성욕의 바보 같음을 새겨줄 수 없으리라……
야스키치는 혼자 남은 후 다시 한 번 배트에 불을 붙이며 실내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가 영어를 가르치는 건 앞에서도 적었다. 하지만 그건 본직이 아니다. 적어도 본직이라 믿지 않았다. 그는 일단 창작을 평생의 사업이라 여기고 있다. 실제로 교사가 된 후로도 대략 두 달에 한 편씩 짧은 소설을 발표해왔다. 그 중 하나――쌩 크리스토프의 전설을 케이쵸판의 이소보모노가타리풍으로 절반가량 고쳐 쓴 게 이번 달에 어느 잡지에 실린다. 다음 달엔 또 같은 잡지에 남은 절반가량을 써야 한다. 이번 달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니 다음달 호의 마감일은――조사 따위를 쓰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밤낮으로 공부하면서 틈틈히 본래 일에 임하는 그가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야스키치는 끝내 조상 불쾌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때 커다란 기둥 시계가 조용히 열두 시 반을 알렸다. 그건 마치 뉴턴의 발밑에 사과가 떨어진 것과 같았다. 야스키치의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앞으로 삼십 분이 남았다. 그 사이에 조사를 완성하면 꼭 괴로운 일 틈틈이 "슬프구나"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고작 30분 만에 명석하고 형제를 아끼는 혼자 소령의 추도를 완성하는 건 조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고난을 꺼려 하면 위로는 카키노모토노히토마로부터 아래로는 무샤노코지 사네아츠에 이르는 어휘의 풍부함을 자랑스러워하던 것도 전부 허세가 되고 만다. 야스키치는 곧장 책상 앞에 앉아서는 잉크 항아리에 펜을 꽂자마자 시험용지에 단숨에 조사를 쓰기 시작했다.
× × ×
혼다 소령의 장례식날은 조금도 흠잡을 데 없는 가을 날씨였다. 야스키치는 프록코트에 실크 했을 쓰고 열두세 명의 문관 교관과 행렬의 뒤를 따랐다. 그러는 사이 돌아보니 교장 사사키 중장을 시작으로 무관 중에는 후지타 대령, 문관 중에는 오와노 교관 등도 그의 뒤를 걷고 있었다. 그는 어깨가 좁아지는 듯한 느낌에 바로 뒤에 있던 후지타 대령에게 "먼저 가시죠"하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대령은 "아뇨"하고 말하고는 묘하게 히죽히죽 웃고 있다. 그러자 교장과 이야기하던 콧수염이 짧은 오와노 교관도 역시 작게 웃으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가지 않게 야스키치에게 주의를 주었다.
"호리카와 군. 해군의 예식에선 고위 고관일 수록 뒤에 선답니다. 호리카와 군은 후지타 씨의 뒤에 설 수 없는 거예요."
야스키치는 다시 한 번 어깨가 좁아졌다. 확실히 듣고 보니 그 애교 있는 다나카 중위는 훨씬 앞줄에 있다. 야스키치는 재빨리 큰 걸음으로 중위 옆으로 걸어갔다. 중위는 오늘도 장례식보다는 혼례에 참석하기라도 한 것처럼 굉장히 기쁜 투로 야스키치에 말을 걸었다.
"날씨가 좋습니다……교관님께서는 지금 참석하신 겁니까?"
"아뇨, 저 뒤에 있었지요."
야스키치는 방금 전 일을 이야기했다. 중위는 혹여 장례식의 위엄에 상처라도 입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웃음을 터트렸다.
"장례식에는 처음 오셨습니까?"
"아뇨, 시게노 소위 때에도 키무라 대위 때에도 참석했습니다."
"그런 때엔 어떻게 하셨습니까?"
"물론 교장 선생님이나 과장님보다 훨씬 뒤를 따라가고 있었죠."
"그래서야――대장격이 되신 거군요."
행렬은 이제 사철에 가까운 변두리로 들어섰다. 야스키치는 중위와 이야기하면서 장례식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주는 걸 잊지 않았다. 이 마을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무수한 장례식을 보기에 장례식 비용을 계산하는데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여름방학 하루 전에 수학을 가르치는 키리야마 교관의 아버지가 돌아가셔 행렬이 만들어졌을 때에도 어떤 집에 앉아 있던 진베이 하나 입은 노인이 부채를 이마에 얹은 채로 "하하, 50엔 어치 장례구나"하고 말했다. 오늘도――오늘은 아쉽게도 누구도 그때와 같은 재능을 발휘하진 않았다. 하지만 오오모토교의 신주 한 명이 자신의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있는 건 오늘날 떠올려도 기묘한 광경이었다. 야스키치는 언젠가 이 마을 사람들을 "장례식"이란 단편 속에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번 달에는 아무개호로 상인전인가 하는 소설을 내셨다죠."
붙임성 좋은 다나카 중위는 거리낌 없이 혀를 놀리고 있다.
"비평이 나온 모양입니다. 오늘 아침의 지지――아니, 요미우리였군요. 나중에 보십시오. 외투 주머니에 들어 있으니까요."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교관님께서는 비평을 보시지 않는 모양입니다. 저는 언제 한 번 비평만 써보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셰익스피어의 햄릿 같은 거 말입니다. 그 햄릿의 성격은……"
야스키치는 곧 크게 깨달았다. 천하에 비평가가 충만한 게 꼭 우연은 아니다.
행렬은 이윽고 사철 문으로 들어갔다. 절은 뒤의 소나무 숲 사이서 잔잔한 바다를 내려보고 있다. 평소에는 필시 한적하리라. 하지만 지금은 행렬의 앞에 서있던 학교 학생으로 가득 차 있다. 야스키치는 고리의 현관서 새로 산 에나멜 구두를 벗어두고 햇살이 잘 드는 복도를 통해 다다미만 새로 깐 참가인 자리로 향했다.
참가인 자리 반대편은 친족 자리였다. 상석에 앉은 게 혼다 소령의 아버지일 테지. 역시 대머리 독수리와 닮은 얼굴도 머리색이 하얗게 물든 탓에 아들보다도 한 층 더 날카로워 보였다. 그다음 자리에 앉은 대학생은 물론 동생일 터이다. 세 번째 자리에는 동생이라기엔 그릇이 커보이는 소녀가 앉아 있었다 네 번째에는――네 번째 이후 사람은 이렇다할 특색이 없었나 보다. 참석자 자리의 상석에는 교장이 앉아 있다. 그다음으론 과장이 앉아 있다. 야스키치는 과장의 뒤편――참석자석의 둘째 줄에 엉덩이를 붙이기로 했다. 물론 과장이나 교장처럼 무릎을 가지런히 모으진 않았다. 쉽게 저리지 않도록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독경은 금세 시작되었다. 야스키치는 신나이부시를 사랑하는 것처럼 갖은 종교의 독경 또한 사랑했다. 하지만 도쿄 내지 도쿄 부근의 절은 불행히도 독경 분야에서도 타락을 보이고 있다. 과거엔 킨푸센지의 자오를 시작으로 쿠마노의 곤켄, 스미요시의 묘신 등에 독경을 들으려 사람들이 모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미묘음은 미국 문명의 도래와 함께 이승을 뜨고 말았다. 지금도 네 사람의 제자는 물론이요 근시 안경을 쓴 주지도 국정 교과서를 낭독하듯이 아리야데바를 읽고 있다.
그러던 사이 독경이 끝나고 교장 사사키 중장이 천천히 소령의 관 앞으로 향했다. 하얀 린스 비단으로 둘러싸인 관은 수미단을 정확히 정면으로 둔 채 본당 입구에 안치되어 있었다. 또 그 관 앞 책상에는 조화 연꽃이 장식되고 촛불이 나부끼는 가운데 훈장 상자 따위가 장식되어 있다. 교장은 관에 예를 다한 후 왼손에 들고 있던 대봉서의 조사를 펼쳤다. 조사는 물론 이삼일 전에 야스키치가 쓴 "명문"이었다. "명문"은 딱히 부끄러워할 구석이 없다. 그런 신경은 진작에 낡은 가죽처럼 닳은지 오래였다. 단지 이 장례식의 희곡 속에서 자신 또한 조사의 작가란 한 역을 맡고 있는 건――그보다도 되려 그런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건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야스키치는 교장 선생님이 헛기침을 하는 동시에 저도 모르게 무릎 위로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교장은 조용히 읽기 시작했다. 목소리엔 살짝 무게가 실려 필담을 초월한 애절한 정을 담고 있었다. 도무지 타인이 쓴 조사를 읽는 거 같지 않았다. 야스키치는 홀로 교장의 배우적 재능에 감탄했다. 본당은 한층 더 조용해졌다. 움직임조차 허투루 취할 수 없었다. 교장은 이윽고 침통하게 "그대, 명석하고 형제를 아끼던 벗에게"하고 읽어갔다. 그러자 불쑥 친족 자리서 누군가가 쿡쿡 웃기 시작했다. 그분 아니라 웃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야스키치는 내심 놀라서 후지타 대령의 어깨너머로 반대편 사람들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인 줄 알았던 게 우는소리란 걸 발견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여동생이었다. 구식 속발을 숙인 채로 손수건으로 얼굴을 덮은 그릇이 넓어 보이는 소녀였다. 그뿐일까. 동생도――투박하게 보인 대학생 또한 역시 눈물을 훌쩍이고 있다. 그뿐 아니라 노인도 줄곧 휴지를 꺼내서는 코를 풀고 있다. 야스키치는 이런 광경 앞에서 무엇보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관객을 절절히 울린 비극 작가의 만족을 느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느낀 건 그러한 감정보다도 훨씬 큰 무어라 말로 못할 미안함이었다. 존귀한 인간의 심리를 알지 못하고 더러운 발로 들어간 사과하고 싶어도 사과할 수 없는 미안함이었다. 야스키치는 이 미안함 앞에서 한 시간에 걸친 장례식 중 처음으로 숙연히 고개를 숙였다. 혼다 소령의 친족은 이런 영어 교사의 존재 따위는 알지도 못했을 테지. 하지만 야스키치의 마음속에는 피에로 복장을 입은 라스콜리니코프가 홀로 7. 8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진창이 된 길거리에 앉은 채로 그들의 용서를 구하고 있다………
장례식이 있었던 날의 저녁이다. 기차서 내린 야스키치는 해안가의 하숙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릿대 울타리가 이어진 피서지의 뒷골목을 지났다. 좁은 거리는 구두 밑바닥에 모래를 착실히 남겼다. 어느 틈엔가 안개도 내려온 모양이다. 울타리 안에 무리 진 소나무는 띄엄띄엄 하늘을 비추며 희미하게 수지향이 나고 있다. 야스키치는 고개를 조아린 채로 이런 조용함에도 아랑곳 않고 터덜터덜 바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절에서 돌아가면서 후지타 대령과 같이 걸었다. 그러자 대령은 그가 지은 조사의 완성도를 절찬하며 "갑자기 깨진 옥"이란 말이 혼다 소령의 죽음을 정말 잘 표현했다고 말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친족의 눈물을 본 야스키치를 곤란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또 같은 기차를 탄 애교 있는 다나카 중위는 야스키치의 소설을 비평한 요미우리신분의 월평을 보여주었다. 월평을 적은 건 그 시절 이름을 떨치던 N 씨셨다. N 씨는 한참을 매도한 끝에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해군 XX 학교 교관의 잔기술은 문단에 불필요하다"!
삼십 분도 걸리지 않은 조사는 생각지 못한 감명을 주었다. 하지만 몇 밤을 걸쳐 전등불 아래에서 숙고를 거듭한 소설은 남몰래 생각한 감명의 십 분지 일도 주지 못했다. 물론 그는 N 씨의 말을 일소할 여유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놓인 위치는 간단히 일소할 수 없었다. 그는 조사에 성공하고 소설에는 실패했다. 이는 그의 처지가 되어보면 어깨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대체 운명은 언제쯤이면 그를 위해 이런 희극의 막을 내려 줄까?………
야스키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가지를 뻗은 소나무 안에 빛이 없는 달 하나가 적동색으로 걸려 있었다. 그는 그 달을 바라보는 사이에 소변을 보고 싶어졌다. 다행히 거리에는 인기척 하나 없었다. 길 좌우는 여전히 조릿대 울타리만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그는 우측 울타리 아래에 길고 조용한 소변을 보았다.
그러자 소변을 보는 사이에 야스키치의 눈앞에 있던 울타리가 뒤로 밀렸다. 울타리인 줄 알았던 게 울타리로 보이게 만들어진 문이었던 것이다. 또 그 문을 통해 나온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콧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야스키치는 당황하면서도 소변은 계속하며 되도록 천천히 옆을 보았다.
"이러면 곤란하죠."
남자는 멍하니 말했다. 어쩐지 당혹 그 자체가 사람이 된 것 같은 목소리였다. 야스키치는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불쑥 소변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이 저문 걸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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