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왕생 에마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9. 18.
728x90
반응형
SMALL

아이       저기에 이상한 스님이 왔다. 다들 봐라. 다들 봐라.

생선 파는 여자 진짜 이상한 스님이네? 연신 금고를 두드리면서 뭐라고 큰 소리치고 있잖아……

장작 파는 영감 내가 귀가 멀어서 그런지 무어라 말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군. 여보시요, 저 사람이 뭐라 하고 있소?

금박쟁이 남자  "아미타불, 어이, 어이"하고 말하고 있군.

장작 파는 영감 하하――그럼 미치광이로군.

금박쟁이 남자  뭐 그런 걸 테지.

채소 파는 노파 아니아니. 덕 높은 분이실지도 몰라. 나는 이 틈에 절을 올려야겠어.

생선 파는 여자 그런 것치고는 얼굴이 추하지 않나? 저런 얼굴을 한 덕 높은 사람이 어디에 있으려나.

채소 파는 노파 그런 말하면 쓰나. 벌이라도 받으면 어쩔 게야?

아이       미치광이다, 미치광이.

고이 스님    아미타불, 어이, 어이.

 

        멍멍. 멍멍.

참배객 여자   보세요. 우스꽝스러운 스님이에요.

그 일행     저런 바보는 여자를 보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아직 거리가 있으니 이틈에 이쪽 길로 빠지지요.

주물사      아니, 저 사람 타도의 고이 경 아닌가?

수은 파는 여행가 고이 경인지 뭔지는 몰라도 대뜸 활을 버리고 출가해버려서 타도에서 난리가 났었지.

젊은 사무라이   확실히 고이 경이군. 아내나 자제분들이 한탄스럽겠어.

수은 파는 여행가 듣자 하니 아내나 아이분들은 울고만 계신다네요.

주물사      그나저나 처자식마저 버리고 불도에 들어가려 하다니 참 기특한 마음 가짐이야.

말린 생선을 파는 여자 기특하기는 무슨? 버려진 처자식 입장에선 부처님이든 여자든 남자를 빼앗아 간 건 밉기 마련이에요.

젊은 사무라이 그것도 일리가 있군. 아하하하.

       멍멍. 멍멍.   

고이 스님   아미타불, 어이, 어이.

말 위의 무사  이런, 말이 놀라겠군. 어쩌면 좋다.

궤를 짊어 맨 종자 미치광이에겐 약도 없다죠.

늙은 비구니 저 스님은 살생을 좋아하는 악인이라는데 잘도 불도에 발을 들였군요.

젊은 비구니 정말로 무서운 사람이었죠. 장소도 가리지 않고 거지도 거리를 두었다니까요.

손에 나막신을 찬 거지 지금 만나서 망정이지 이삼 일만 빨랐으면 몸에 화살 구멍이 뚫렸을지도 몰라.

<rt>호두 파는 상인</rt> 그렇게 살육을 좋아하는 사람이 왜 머리 밀 생각을 한 거죠?

늙은 비구니 글쎄요, 그건 모를 일이지만 역시 부처님께서 계획이 있으신 거겠죠.

기름 파는 상인 나는 텐구라도 씐 건가 싶었는데.

호두 파는 상인 아냐, 여우일 걸세.

기름 파는 상인 왜 텐구는 부처로 꾸밀 수 있다지 않나?

호두 파는 상인 무얼, 부처로 꾸밀 수 있는 게 어디 텐구뿐인가. 여우도 꾸밀 수 있다지.

손에 나막신을 찬 거지 어디 이 틈에 목 주머니에 밤이라도 하나 훔쳐볼까.

젊은 비구니 저기 보세요. 금고 소리에 놀랐는지 닭이 다들 지붕 위로 올라갔어요.

고이 스님  아미타불, 어이, 어이.

낚시하는 천민 소란스러운 스님이 왔군.

그 일행     저건 뭐야? 절름발이 거지가 뛰어가는데.

발을 쓴 채 여행하는 여자 다리 아파졌는걸. 저 거지 다리라도 빌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짊을 맨 하인 저 다리만 지나면 곧장 마을입니다.

낚시하는 천민 발 안을 한 번 보고 싶구만.

그 일행    이런 한 눈 파는 사이에 먹이만 먹고 갔네.

고이 스님   아미타불, 어이, 어이.

까마귀     까악까악.

모를 심는 여자 "두견새야. 네놈이 울면 나는 밭에 선다."

그 일행     저기 봐, 우스꽝스러운 스님이야.

까마귀      까악까악. 까악까악.

고이 스님      아미타불, 어이, 어이.

잠시 말소리가 울리고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분다.

고이 스님      아미타불, 어이, 어이.

다시 바람이 분다.

고이 스님      아미타불, 어이, 어이.

늙은 스님      스님, 스님.

고이 스님      저를 부르셨습니까?

늙은 스님      그렇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고이 스님      서쪽으로 가지요.

늙은 스님      서쪽은 바다입니다.

고이 스님      바다는 중요치 않습니다. 저는 아미타불에 몸을 바친 이상 서쪽으로 서쪽으로 갈 생각입니다.

늙은 스님      그건 별일이군요. 그럼 스님께서는 아미타불이 지금도 눈에 보이시는 겁니까?

고이 스님      보이지 않으면 큰 소리로 부처의 이름을 부를 리도 없지요. 제가 출가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늙은 스님      뭔가 사정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고이 스님      아니, 사정 같은 건 없습니다. 단지 어제 밤에 사냥서 돌아오는 길에 어느 강사의 설법을 듣게 되었지요. 그 강사가 말하기를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아미타불에게 심신을 바치면 정토에 이를 수 있다죠.  저는 그야말로 온몸의 피가 단숨에 불타나 싶을 정도로 불쑥 아미타불이 사랑스러워졌습니다……………

늙은 스님      그리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고이 스님      저는 강사를 때려눕혔지요.

늙은 스님      때려눕혀요?

고이 스님      그리고 검을 뽑아 강사의 가슴에 들이밀며 아미타불의 거처를 물었습니다.

늙은 스님      그거 참 놀랄만한 질문법이군요. 강사도 많이 놀랐겠습니다.

고이 스님      괴롭게 눈을 올려 뜬 채로 서쪽, 서쪽이라 말했지요――이런, 떠드는 사이에 해가 져버렸군요. 도중에 시간을 낭비해서야 아미타불에 이를 수는 없을 테죠.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아미타불, 어이, 어이.

늙은 스님       엄청난 미치광이를 만났군. 나도 이만 돌아갈까.

세 번 바람 소리 슝슝. 또 파도 소리 첨벙첨벙.

고이 스님      아미타불, 어이, 어이.

파도 소리 가끔 참새 소리 짹짹짹.

고이 스님      아미타불, 어이, 어이.――이 주변 바닷가에는 배도 안 보이는군. 보이는 건 파도뿐이야. 아미타불이 태어난 나라는 저 파도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겠군. 만약 내가 두견새라면 곧장 건너갈 수 있었을 텐데……그나저나 그 강사는 아미타불에게 넓고 끝을 모르는 자비가 있다고 했지.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큰 소리로 아미타불의 이름을 외치면 답 정도는 해주실 테지. 안 그러면 부르다 부르다 죽을 테니까. 다행히 이곳에 마른 소나무가 두 가지를 뻗고 있군. 일단 저 위로 올라볼까――아미타불, 어이, 어이.

다시 파도 소리 첨벙첨벙

늙은 스님       그 미치광이를 만난지로 벌써 일주일이 되었군. 맨몸의 아미타불을 보려는 모양인데 그 후로 어디로 갔으려나――오오, 저 가지 위에 홀로 올라가 있는 게 그 스님인가. 반갑습니다, 스님……대답이 없을만 하군. 어느 틈엔가 죽어버렸어. 먹을 거 하나 안 들고 있는 거 보면 불쌍하게도 아사한 모양이야.

다시 파도 소리 첨벙첨벙

늙은 스님       이대로 버리고 가면 까마귀 먹이나 되겠군. 모든 게 전생의 인연이라던가. 내가 묻어줘야지――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이 스님 입 속에 하얀 연꽃이 피어 있지 않나. 그럼 여기에 올 때부터 다른 냄새가 풍겼을 텐데. 그럼 미치광이라 생각한 게 존귀한 분이셨던 건가. 그것도 모른 채 무례를 범한 건 전부 내 실수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728x90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