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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줄리아노・키치스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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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줄리아노・키치스케는 히젠노쿠니 소노키고오리 우라카미무라 출신이었다. 일찍이 부모와 헤어져 어릴 적부터 주변의 오토나 사부로지란 남자의 하인이 되었다. 하지만 우둔함을 타고 난 그는 시종始終 동료들에게 놀아나며 소나 말이나 진배 없이 일해야 했다.
 그런 키치스케가 열아홉일 적에 사부로지의 외동딸인 카네란 여자에게 연모를 품게 되었다. 카네란 물론 이 하인의 연모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사람 나쁜 동료들은 일찍부터 이를 알고는 그를 비웃기 시작했다. 키치스케는 우둔하니까 정의 괴로움에 견디지 못 했는지 어느 밤 몰래 그간 지내 온 사부로지 집안을 떠났다.
 그로부터 삼 년 동안 키시츠케의 소식은 묘연해져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후 그는 거지꼴을 하고서 다시 우라카미무라에 돌아왔다. 그리고 원래대로 사부로지의 시종이 되었다. 그 후로 그는 동료들의 경멸도 아랑곳 않고 단지 성실히 일했다. 특히 딸 카네에게는 애완견보다 더 충실했다. 딸은 이미 남편을 맞이해 모두가 부러워할 법한 부부 관계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1, 2년의 세월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 동안에 동료들은 키치스케의 거동이 어쩐지 수상하게 느껴졌다. 때문에 그들은 호기심에 이끌려 그를 주의 깊게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키치스케가 아침 저녁으로 한 번씩 이마에 십자가를 긋고는 기도를 올리는 걸 발견했다. 그들은 곧장 그런 요지를 사부로지에게 전달했다. 사부로지는 후난이 걱정이었는지 곧장 그를 우라카미무라의 다이칸쇼에 넘겼다.
 그는 포리들에게 둘러싸여 나가사키의 감옥으로 보내질 때에도 전혀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전설에 따르면 우둔한 키치스케의 얼굴이 그때만은 마치 하늘의 빛이라도 받는 것처럼 신비한 위엄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둘

 부교奉行 앞에 끌려 나간 키치스케는 순순히 키리시탄슈몬을 따른다 자백했다. 그렇게 그와 부교 사이에는 이런 문답이 교환되었다.

 부교   "그 자들의 신은 무어라 하더냐."

 키치스케 "베렌에서 나신 주군 에스 키리스토 님, 및 옆나라의 공주 산타 마리야 님이십니다."
 부교   "그 자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냐."

 키치스케 "저희가 꿈꾸는 에스 키리스토 님은 보라색의 오오후리소데를 입으신 아름다운 도련님이십니다. 또 산타 마리야 공주는 금실은실로 짠 카이도리를 입고 계십니다."
 부교   "그 자들이 신이 된 데에는 어떤 연유가 있느냐."
 키치스케 "에스 키리스토 님, 산타 마리야 님께 사랑을 품으시고 그에 애달파 죽은 끝에 자신과 같은 괴로움에 고민하는 자들을 구하려 신이 되셨습니다."
 부교   "너는 언제 무엇에게 그러한 가르침을 배웠느냐."
 키치스케 "저는 3년 동안 곳곳을 떠돌았습니다. 그때 해변가에서 모르는 홍모인서양인을 만나 배웠습니다."
 부교   "전수할 때는 어떤 의식을 하였느냐."
 키치스케 "성수를 받고 줄리아노란 이름을 받았습니다."
 부교   "해서 그 홍모인은 그 후 어디로 갔느냐."
 키치스케 "그게 참 희안합니다. 거친 파도를 밟으며 어딘가로 가셨습니다."
 부교   "이곳에서 거짓을 말하면 그냥 둘 수 없다."
 키치스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모두 틀림 없는 진실입니다."
 부교는 키치스케의 말을 의아해 했다. 이제까지 조사한 어떤 키리시탄몬토의 말하고도 전혀 결이 달랐다. 하지만 부교가 몇 번이나 확인을 거듭해도 그는 제 말을 바꾸지 않았다.

        셋

 줄리아노 키치스케는 이미 천하의 법에 따라 책형에 처해졌다.
 그날 그는 온 거리에 끌려다닌 데다 산토 몬타니 아래의 형장에서 비참하게 창에 찔려 걸렸다.
 걸린 기둥은 주위의 대나무 울타리 위에 한 층 더 높은 십자를 그렸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몇 번이나 높게 기도를 올렸고 두려움도 없이 사형 집행인의 창을 받았다. 그 기도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 위 하늘에는 한 무더기의 기름진 구름이 무리지어 얼마 지나지 않아 거친 번개와 비가 거세게 형장에 내렸다. 다시 하늘이 맑아졌을 때, 기둥 위 줄리아노 키치스케는 이미 숨이 끊겨 있었다. 하지만 울타리 바깥 사람들은 지금도 그 기도 소리가 하늘에 떠있는 것만 같았다.
 그건 "베렌의 주군, 지금 어디 계십니까. 저를 칭찬해주시지요"하는 간소하고 소박한 기도였다.
 그의 시체가 형장에서 내려왔을 때, 사형 집행인들은 시에체서 좋은 향기가 풍기는 걸 느끼고 놀랐다. 잘 보니 키치스케의 입 안에서 백합 한 송이가 신기하게도 생생히 꽃피어 있었다.
 이게 나가사키 저문집, 공교유사, 옥포파촉담 등에서 흩어져 있는 줄리아노 키치스케의 일생이다. 그리고 또 일본의 순교자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신성한 바보의 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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