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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횻토코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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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즈마바시의 난간에 사람이 여럿 모여 있다. 이따금 순사가 찾아와 잔소리를 하지만 곧장 원래대로 인파가 생기고 만다. 다들 다리 밑을 지나는 꽃구경 배를 보기 위해 서있는 것이었다.
 배는 강 아래에서 한두 척씩 썰물의 강을 올라온다. 대부분은 전마선에 호모멘의 천장을 달고 그 주변에 홍백의 막을 걸치고 있다. 그리고 뱃머리에는 깃발이나 고풍스러운 노보리를 세워두고 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취한 듯했다. 막 사이서는 손수건을 머리에 뒤집어 두른 사람들이 "한 잔, 두 잔"하고 잔을 들어 올리는 게 보인다. 고개를 저으면서 무어라 괴롭게 읊고 있는 게 보인다. 그런 게 다리 위 사람 입장에선 우습기 짝이 없다. 하야시나 악대를 태운 배가 다리 아래를 지나면 다리 위에선 "와아"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개중에는 "바보들"하는 목소리도 섞여 있다.
 다리 위에서 보면 강은 아연판처럼 하얗게 햇살을 반사하고 이따금 지나가는 증기선이 그 위에 눈부신 파도의 도금을 이뤄내고 있다. 그리고 그 원만한 수면을 밝은 북소리, 피리 소리, 샤미센 소리가 이처럼 간지럽게 찌른다. 삿포로 맥주의 벽돌벽부터 제방 저 너머까지 그을러진 듯한 옅은 하얀색이 무겁게 줄곧 이어져 있는 건 지금이 한창 때인 벚꽃잎이었다. 코토토이의 산바시에는 일본 배나 보트가 잔뜩 있는 모양이다. 그런 게 여기서 보면 마침 대학의 보트 창고에 햇살이 가려져 단지 꿈틀거리는 검은색으로 통일되어 움직이고 있다.
 그러자 그때 또 배 한 척이 다리를 지났다. 역시 아까부터 몇 척이나 지나고 있는 꽃구경용 전마선이다. 홍백의 막에 마찬가지로 홍백의 후키나가시를 세우고 붉은 벚꽃으로 물들인 손수건으로 머리를 감고 있는 선원 둘 셋이 노를 들고서 번갈아가며 배를 몰고 있다. 그럼에도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막 너머로 보이는 머릿수는 오십은 되어 보인다. 다리를 지나기 전까지는 샤미센 두 개로 "매화에도 봄"인지를 연주하고 있었으나 그게 끝나자 대뜸 징소리가 섞인 바카하야시가 시작되었다. 다리 위의 구경꾼들은 또 "와아"하고 웃음소리를 터트린다. 개중에는 인파에 떠밀린 아이의 울음 소리도 들린다. "저기 좀 봐. 춤추고 있어." 어떤 여자가 높은 목소리를 낸다――배 위에서는 횻토코 가면을 쓴 키가 작은 남자가 후키나가시 아래서 되는대로 춤을 추고 있었다.
 횻토코는 치치주메이센으로 된 상의를 아래로 밀어 벗은 채로 유젠무늬의 소매를 가진 화려한 쥬반을 드러내고 있다. 쿠로하치의 소매가 삐져 나온 것이나 켄죠오비가 풀려서 아래로 축 처진 걸 보면 어지간히 취한 모양이었다. 춤은 물론 엉망진창이다. 단지 적당히 오카구라도 위에서 바보 같은 손짓이나 몸짓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마저도 술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지 때로는 단지 중심을 잃어 뱃머리서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손발을 움직이는 걸로 밖에 안 보일 때도 있다.
 그게 또 한 층 더 우스우니 다리 위에서는 웃음보로 소란이다. 그리고 모두가 웃으며 제각기 비평을 주고 받고 있다. "저 허리 놀림은 뭐야?", "어디 사는 바보인지는 몰라도 아주 신이 났군." "웃기네. 어머, 비틀거렸다." "차라리 가면을 벗고 춤춰라"――대강 이런 식이다.
 그러는 사이 취기가 더 심해졌는지 발놀림이 서서히 괴이해졌다. 마치 불규칙적인 Metronome처럼 꽃구경의 수건으로 뺨을 가린 얼굴이 몇 번이나 배 밖으로 고꾸라질 뻔했던 것이다. 선원도 걱정이 되었는지 두 번인가 뒤에서 말을 걸었지만 그마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그러자 옆을 지나던 증기선의 물줄기가 비스듬하게 강을 밀어내 전마선의 밑바닥을 크게 흔들었다. 그 박자에 이 몸집이 작은 남자는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것처럼 앞으로 세 걸음 정도 비틀거리다 간신히 멈추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대뜸 회전이 멈춘 팽이처럼 빙글 크게 원을 그리며 순식간에 아래쪽 속옷을 훤히 보여주듯 다리를 공중으로 들더니 전마선 안으로 굴러떨어졌다.
 배 위의 구경꾼들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배 안에서는 그 박자에 샤미센이라도 부러진 듯하다. 막 사이로 보면 취해서 재밌게 떠들던 사람들이 황급히 일어나거나 앉고 있다. 방금까지 소란을 떨던 바카하야시도 숨이 멎은 것처럼 뚝 그쳐 버렸다. 그리고는 단지 소란스러운 목소리만 들린다. 분명 생각지도 못한 혼잡함이 벌어진 걸 테지. 그렇게 잠시 지나자 붉은 얼굴을 한 남자가 막 안에서 고개를 내밀더니 자못 당황한 손놀림으로 선원에게 무어라 말을 전했다. 그러더니 전마선은 불쑥 뱃머리를 틀어 벚꽃과 반대되는 산장 기슭을 향하기 시작했다.
 다리 위 구경꾼들이 횻토코가 급사했단 소문을 들은 건 그로부터 십 분 후의 일이었다. 자세한 일은 내일 신문의 기타 소식란에 실렸다. 그에 따르면 횻토코의 이름은 야마무라 헤이키치, 병명은 뇌출혈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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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무라 헤이키치는 아버지 세대부터 니혼바시의 와카마츠쵸에서 장사를 시작한 그림도구상이었다. 죽은 나이는 마흔다섯으로 주근깨가 있는 아내와 병대에 다니고 있는 아들을 남겨두었다. 생활은 유복하다고는 못해도 고용인을 둘셋이나 쓰며 어떻게 남들처럼은 먹고사는 듯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는 청일 전쟁 쯤에 아키타 주변의 암녹청을 모조리 사들인 게 제대로 먹혀서 성공한 것이며 그전까지는 가게도 보잘 것 없고 단골 숫자도 손에 꼽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헤이키치는 얼굴이 둥글며 머리가 살짝 벗겨져 있고 눈꼬리에 주름이 잡히는 남자다. 어딘가 본인을 우스꽝스럽게 꾸미는 경향이 있고 누구에게나 자세가 낮다. 즐거움은 술 일변도이며 굳이 따지자면 괜찮게 마시는 편이다. 단지 취하면 반드시 되는대로 춤을 추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당사자가 말하기를 옛날 하마치쵸의 도쿠다란 여주인이 미코마이를 출 적에 연습한 것으로 그 시절엔 신바시든 요시쵸든 오카구라가 대유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춤은 물론 본인이 떠드는 정도는 되지 못 한다. 나쁘게 말하면 엉망진창이고 좋게 말하면 키센이라도 춤출 수 있을 정도로 꼴볼견은 아니란 점뿐이다. 물론 당사자도 이를 잘 아는지 취하지 않을 때는 "야마무라 씨, 뭐 좀 보여주시죠"하고 권해도 농담으로 도망치고 만다. 그러면서 조금이라도 술이 들어가면 곧장 손수건을 뒤집어쓰고 입으로 피리와 북의 박자를 하나로 맞춰가며 허리를 붙들고 어깨를 흔들며 횻토코 춤이라 이름 붙이려 한다. 그리고 한 번 춤추기 시작하면 한사코 물이 오른 채 춤을 춘다. 옆에서 샤미센을 치든 우타를 읊든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술 탓에 중풍처럼 쓰러져 정신을 잃은 일이 두 번 가량 있었다. 한 번은 마을 안 욕탕에서 나오며 몸에 물을 끼얹을 적에 시멘트 위에 쓰러졌다. 그때는 허리가 부딪힌 게 전부로 십 분도 되지 않아 정신이 들었지만 두 번째로 자기 집 창고 안에서 쓰러졌을 때는 의사까지 불러 정신을 되찾게 하는데 이래저래 삼십 분 가량을 들여야 했다. 헤이키치는 그때마다 의사의 금주 권유를 받았으나 기특하게 얼굴을 붉히지 않는 건 그 순간 뿐이었다. 항상 "한 잔 정도야"부터 점점 잔수가 늘어나 보름도 되지 않아 어느 틈엔가 다시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당사자는 당당해서 "역시 안 마시면 되려 몸에 안 좋아요'하고 제멋대로 떠들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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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헤이키치가 술을 마시는 건 당사자의 말과 같은 생리적 필요성 때문만은 아니다. 심리적으로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술만 마시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어쩐지 누구 앞에서나 물불 가리지 않아도 될 거 같기 때문이다. 추고 싶으면 춘다. 자고 싶으면 잔다. 누가 그런 걸 나무랄 수 있을까. 헤이키치는 무엇보다도 그게 고마웠다. 왜 이게 고마운가. 그건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단지 헤이키치는 취하면 자신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물론 춤을 추고 술이 깨서 "어젯밤에는 아주 신이 났던데"하는 말을 들으면 부끄러운 나머지 "취하면 영 느슨해져서 말이죠. 아침이 되면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꼭 꿈이라도 꾼 것처럼요"하고 흔해 빠진 거짓말을 하고 만다. 물론 춤을 춘 것도 잠든 것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억에 남은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하면 도무지 같은 사람인 거 같지 않다. 그런 마당이니 어느 쪽 헤이키치가 진짜 헤이키치인가 그로선 구분이 가지 않는다. 취하는 건 한 순간이고 깨있는 건 늘상 그렇다. 그러면 깨어 있을 때의 헤이키치 쪽이 진짜 헤이키치처럼 느껴지나 스스로는 묘하게 어느 쪽이라고도 하지 못 한다. 왜냐면 헤이키치가 나중에 생각해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건 대부분 취했을 때의 일 뿐이다. 춤은 차라리 낫다. 화투를 친다. 여자를 산다. 심지어는 여기에 적을 수 없는 일도 한다. 그런 일을 하는 자신이 맨정신의 자신일 거 같진 않았다. 
 Janus라는 신에겐 목이 둘이 있다. 어느 쪽이 진짜 목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 한다. 헤이키치도 그렇다.
 평소의 헤이치키와 취한 헤이키치는 다르다고 말했다. 평소의 헤이키치만큼 거짓말하는 사람은 적을지 모른다. 이는 헤이키치가 이따금 스스로 느끼는 바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했다고 꼭 헤이키치가 손익을 따져가며 거짓말을 한다는 건 아니다. 먼저 그는 거의 거짓말한단 인식이 없이 거짓말을 한다. 물론 거짓말을 하고 나면 곧 스스로도 깨달으나 말하는 그 순간에는 결과를 예상할 여유가 없었다.
 헤이키치는 스스로도 왜 그런 거짓말이 나온 건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과 말할 때는 자연스레 말하려 하지 않았던 거짓말이 나오고 만다. 하지만 그게 딱히 괴롭지는 않았다. 나쁜 일을 했다는 느낌도 없다. 때문에 헤이키치는 매일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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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키치의 입에서 나온 말에 따르면 그는 열한 살에 미나미덴마쵸의 종잇가게에 일하러 갔다고 한다. 그러자 그 주인이 홋케에 보통 미친 게 아니라서 세 끼 밥도 매번 경을 읊기 전에는 젓가락도 못 들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헤이키치가 일을 시작해 두 달 가량 지나자 안주인이 불쑥 가게의 젊은 사람과 짐도 꾸리지 않고 그대로 도주해버리고 말았다. 그때 신앙이 일가 안녕에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생각했는지 홋케에 미쳐 있던 주인이 불쑥 몬토로 개종을 하더니 제석천의 옷이라며 천을 강에 흘려보내지 않나 시치멘상을 아궁이 아래에 넣어 굽지 않나 대소란을 떤 적이 있다고 한다.
 또 스무 살까지 종잇가게에서 일하면서 가게 돈을 빼돌려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친해진 여자가 동반자살 해달라 하는 통에 곤란해한 적도 있다는 모양이다. 기어코 대충 말을 돌려 수습을 했는데 나중에 듣자하니 그 여자는 역시 그로부터 사흘 가량 지나 은장이와 동반자살을 했단다. 마음을 두던 남자한테 다른 여자가 생겨서 되는대로 아무하고나 자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스무 살에 아이를 가지게 되어 종잇가게를 뒤로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보름 정도 지난 어느 날, 아버지 대부터 쓰던 직원이 도련님께 편지 하나를 써달란다. 쉰이 넘은 곧은 남자로 그때 마침 오른 손가락을 다쳐 붓을 들지 못한 것이다. "다 잘 됐으니 곧 간다"고 적어달라길래 그렇게 써줬다. 받는 사람이 여자 이름이길래 "얕볼 수가 없네"하고 놀렸더니 "누나입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직원은 사흘도 지나지 않아 거래처를 돌고 오겠단 말을 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장부를 살펴보니 돈이 줄줄 새고 있었다. 편지는 역시 여자한테 보낸 것이다. 그런 편지를 적어 준 꼴이니 헤이키치만한 바보가 또 있을까……
 이는 모두 거짓말이다. 헤이키치의 평생(남이 알고 있는)에서 이러한 거짓말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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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키치가 꽃구경 배에서 하야시에게 횻토코 가면을 빌려 뱃머리에 오른 것도 역시 평소처럼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춤추는 사이에 배 안으로 굴러떨어져 죽은 건 앞서도 적었다. 배 안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가장 놀란 건 머리 위로 헤이키치가 떨어진 키요모토의 스승이었다. 헤이키치의 몸은 스승의 머리 위에서 노리마키나 삶은 계란이 나와 있는 돗자리 위로 떨어졌다.
 "이러다 다치려면 어쩌려 그래." 이는 헤이키치가 아직 장난치는 중이라 여긴 사람들이 화가 나서 한 소리였다. 그러나 헤이키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선장 옆에 있던 이발소 사장이 뭔가 잘못되었나 싶어 헤이키치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이봐요, 이봐요…저기요…이봐요…나리"하고 불러보지만 역시나 답이은 돌아오지 않았다. 손끝을 잡고 있으니 점점 차가워졌다. 주인은 선장과 둘이서 헤이키치를 안아 올렸다. 일동의 얼굴은 불안에 젖어 헤이키치를 향했다. "이봐요……이봐요……정신 좀 차려봐요……이봐요……이봐요……" 이발소 주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때 호흡인지 목소리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가 가면 아래서 주인의 귀에 전해졌다. "가면……가면 좀 치워줘……가면." 선장과 주인은 떨리는 손으로 손수건과 가면을 벗겼다.
 하지만 가면 아래의 헤이키치의 얼굴은 이미 평소의 헤이키치의 얼굴이 아니었다. 코가 부러지고 입술색이 변하고 하얗게 질린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 얼핏 봐서는 누구도 이게 그 애교 넘치고 우스꽝스러우며 말 잘 하는 헤이키치라 알아볼 수 없었다. 단지 변하지 않은 건 입을 삐쭉 비튼 채로 시치미 뚝 떼는 얼굴로 돗자리 위에 누워 가만히 헤이키치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횻토코 가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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