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방귀
안드레예프에겐 백성이 코를 파는 묘사가 있다. 프랑스에겐 할머니가 소변을 보는 묘사가 있다. 하지만 방귀를 하는 묘사가 있는 소설은 아직까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나오지 않았다는 건 서양 소설 중에 없다는 뜻이다. 일본 소설 중에 없는 건 아니다. 그중 하나는 아오키 켄사쿠 씨의 아무개인가 하는 여공을 다룬 소설이다. 도망쳐 나온 두 여공이 마른 풀 안에서 야숙한다. 여명에 두 사람이 눈에 띈다. 한 사람이 뿡하고 방귀를 뀐다. 다른 한 사람이 쿡쿡 웃음을 터트린다――분명 그런 내용이었지 싶다.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 여공이 방귀 뀌는 묘사가 굉장히 질 좋게 완성되어 있었다. 나는 이 단락을 읽었기에 오늘도 아오키 씨의 수완에 경의를 느끼고 있을 정도이다.
또 하나는 나카토가와 키치지 씨의 불량소년을 다룬 소설이다. 이는 불과 삼사 개월 전에 선데이 마이니치에 실렸으니까 아는 독자도 많을 듯하다. 불량소년에게 넘어간 여자가 중요한 순간에 방귀를 뀐다. 그 때문에 모처럼 만든 에로틱한 분위기가 소멸한다. 여자는 묘하게 뿔이 나고 불량소년도 손을 댈 수 없게 된다――대강 이런 소설이었다. 이 소설 또한 교묘하게 그려냈다.
아오키 씨의 소설에 나오는 여공은 꼭 방귀를 뀔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카토가와 키치지 씨의 소설에 나오는 여자는 싫어도 방귀를 뀔 필요가 있다. 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니 방귀는 나카토가와 씨를 얻고 나서야 비로소 어느 중대한 역할을 다 하게 되었다 해야 하리라.
하지만 이건 근세의 이야기다. 우지슈이노모노가타리에 따르면 토다이나곤 타타이에도 "아름다운 여자와 함께 있어서 그럴까. 밤이 깊어질수록 달이 낮보다 밝게 빛나는구나"하고 여자를 부르니 여자는 하필 그 순간에 크게 방귀를 뀌고 만다. 타타이에는 이 방귀를 들은 순간 "이렇게 우울한 일이 또 있을까. 이제 미련은 없다. 출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여자가 방귀를 뀌었다고 출가할 일은 되지 못 한다. 타타이에는 그걸 깨닫고 출가하는 것만은 생각을 접었지만 곧장 그 자리서 도망쳤다고 한다. 그러면 나카토가와 씨의 소설도 문학사적으로 비평하면 전대미문이라 할 순 없다. 하지만 끊어진 걸 다시 이은 공은 물론 나가토가와 씨의 것이다. 이 공은 아마 나가토가와 씨 본인도 예상하지 못 했으리라. 하지만 공적임은 분명하니 그 김에 여기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둘 여자와 그림자
몬츠키를 입은 서양인은 우습게 보이곤 한다. 혹은 우습게 보이는 나머지 서양인의 남성스러움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클로델 대사의 "여자와 그림자"도 말하자면 몬츠키를 입은 서양인이었기에 웃음을 사버린 것이리라. 하지만 당사자의 남성스러움은 몬츠키든 연미복이든 구분 않고 독립적으로 미추를 논해야 하리라. "여자와 그림자"를 대하는 세간의 평은 의외로 그 점은 주목하지 않은 듯했다. 그런 남자다움이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건 프랑스 사람인 대사에게도 유감이리라.
시험 삼아 그 작품의 무대를 페르시아나 인도로 바꿔 보자. 복숭아꽃 대신에 연꽃이 피고 고풍한 사무라이 여인 대신에 왕녀를 세워두면 아무리 독으로 가득한 비평가의 혀라도 지금처럼 용맹이 권위의 경중을 묻지는 못 했으리라. 하물며 그 작품에마저 감탄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감상상의 신비주의자 따위는 물론 더할 나위 없이 황홀하여 즉사했을 게 분명하다. 클로델 대사는 몬츠키 때문에 이만한 손해를 본 셈이다.
하지만 남자다움은 잠시 묻어두고 몬츠키 그 자체의 감상이라도 제법 재밌는 건 사실이다. 확실히 "여자와 그림자"는 일본인 듯 서양인 듯 묘하게 뚜렷하지 못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런 뚜렷지 못한 부분은 수완이 부족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일본이나 우리 일본인의 예술이 이해하지 못 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호랑이를 그리려던 게 고양이를 그려버린 게 아니다. 고양이도 호랑이도 구분을 못하니 비슷하게 그린 것이다. 물론 호랑이가 되지 못한 그는 소설가가 되지 못한 비평가처럼 의리로도 재밌다고는 해줄 수 없다. 하지만 고양이인지 호랑이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무언가 괴상한 동물이라면 예로부터 시장에서 이런 동물들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었을 터이다. 우리는 재미없는 물건에 일 전도 던지지 않을 터이다.
이는 "여자와 그림자"만이 아니다. "사무라이"나 "다이묘" 같은 에레디아의 시도 마찬가지다. 그런 작품은 우스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우스움 속에 좋게 말하자면 네덜란드의 꽃병과 닮은, 나쁘게 말하면 사무라이 상회의 수출품과 닮은 일종의 매력이 숨어 있다. 이 매력마저 인정하지 않는 건 편협하단 딱지를 피할 수 없으리라. 나는 노구치 요네지로 씨처럼 혹은 코리 토라히코 씨처럼 서양에 이름을 날린 일본인의 작품도 그 이름을 알린 반쯤의 이유는 이 매력에 있다 믿고 있다. 그건 물론 두 분의 작품에 비난을 가하려는 게 아니다. 관대한 서양인에게 받아들여진 게 두 분께 잘 된 일이며 편협한 일본인에게 걷어 차인 클로델 대사를 안타까워할 따름이다.
들은 바로는 클로델 대사는 어떻게 된 일인지 최근의 서양 예술을 대하는 일본인의 감상력에 회의를 품고 있는 듯하다. 정말로 "여자와 그림자"도 나 같은 것의 비평을 용납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금을 가리지 않고 우리 일본 예술을 대하는 서양인의 감상력은――나는 지난밤 호소카와 코의 무대서 사쿠라 만타로 씨의 '스미다가와'를 보면서 하품을 하는 클로델 대사에게 동정의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니 잘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건 대사도 나도 매한가지다. 프랑스 대사 클로델 각하, 부디 저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셋 피에르 로티의 죽음
피에르 로티가 죽었다고 한다. 로티가 '국화 부인', '일본의 가을'의 작가임은 새삼 상기시킬 필요도 없을 터이다. 코이즈미 야쿠모 한 사람을 제외하면 로티는 후지산이나 동백나무나 베베 닛폰을 입은 여자와 가장 인연이 깊은 서양인이다. 그런 로티를 잃은 건 우리 일본인에게도 마냥 남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로티는 위대한 작가라 할 수 없다. 동시대 작가와 비교하면 그리 키가 큰 편은 아닌 듯하다. 로티는 새로운 감각 묘사를 주었다. 혹은 새로운 서정시를 주었다. 하지만 새로운 인생의 견해나 새로운 도덕은 주지 못 했다. 물론 이는 예술가인 로티에겐 치명상도 무엇도 아닐 게 분명하다. 제등은 불만 들어오면 경의를 받기 마땅하리라. 우비처럼 비는 막아주지 못 하더라도 경멸해 좋을 건 아니다. 하지만 비가 내리면 제등을 들지 않고 우비를 입는 게 심리의 이치이다. 그런 심리 앞에서는 어떠한 예술지상주의도 제등을 들라는 충고와 마찬가지로 효력이 없음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는 갑자기 내리는 비에 젖은 거리와 닮은 인생을 걷게 된다. 하지만 로티는 우리에게 한 장의 우비도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로티에게 "위대하다"는 말을 줄 수 없다. 예로부터 위대한 예술가란――물론 우비를 주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또 로티는 요 몇 년 동안 프랑스 문단의 "인물"이었다고는 해도 프랑스 문단의 "힘"이라곤 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의 죽음도 실제적으론 큰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 우리 일본인은 앞서 말한 것처럼 아름다운 일본 소설을 쓴 당년의 프랑스 해군 장교 줄리앙 비오의 서거에 애도를 품고 있다. 로티가 그린 일본은 헬른이 그린 일본보다도 진실을 전하지 않는 구도일지 모른다. 하지만 좋은 구도인 건 반론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자매인 오키쿠 씨 혹은 오우메 씨는 로티의 소설이 나온 후에 파리의 돌길 위를 걷게 되었다. 우리는 그 점에서 로티에게 감사를 하고 싶다. 또 로티의 평생은 대체로 아래에 적은 바와 같다.
1850년 1월 4일. 로티는 로슈포르에서 태어나 17살에 해군에 들어가 1906년 대령이 되었다. 대령이 된 건 세는 나이로 57일 적이다.
처음 작품은 1879년 즉 30살에 공개한 '아지야데'이다. 그 후 1년 뒤 1880년에 'Rarahu'을 내놓고 일약 유행을 타게 되었다. 이는 2년 뒤에 "로티의 결혼"이란 이름으로 이름을 바꾸어 재간된다.
그 '국화 부인'은 1887년에, '일본의 가을'은 89년에 공개되었다.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된 게 91년, 세는 나이로 42살일 때이다.
국제 전보에 따르면 그는 10일 앙다이에서 죽었다고 한다. 향년 73세였다.
넷 새봄의 정원
벚꽃 비가 그치니 상쾌하네요. 물론 꽃받침은 붉어져 있지만요.
밤나무 저도 슬슬 싹을 피우겠죠. 살짝 갉아 먹힌 싹을요.
대나무 저는 아직 노랗기만 하네요…………
파초 이런 이 녹색 램프, 바람에 뚜껑이 부러질 뻔했는걸.
매화 어째 춥다 했더니 벌써 벌레가 기어오르네.
팔손이 가려운걸, 이 갈색 솜털이 있는 동안엔.
백일홍 무얼, 아직 이른걸요. 저는 보다시피 마른 가지뿐이니까요
무도철쭉 ――상스러운 소리 말거라. 나 같은 건 너무 바빠서 올해는 그만 여느 때와 달리 옅은 보라색을 피우고 말았어.
선인장 제멋대로 하라지. 내 알 바 아냐.
석류 가지 한 쪽에 벼룩이 오른 거 같네요.
이끼 더 잔다고?
돌 응, 조금만 더.
단풍 "어린 단풍 갈색이 되는 일도 쉽지 않다"――정말 쉽지 않네요. 지금은 주위랑 맞먹을 정도로 단지 기운 넘치는 황록색이에요. 어라, 장자에 불이 들어왔군요.
다섯 봄볕이 드는 거리를 홀로 느긋이 걷는다
봄볕이 드는 거리를 홀로 느긋이 걷는다. 반대편에서 보이는 건 지붕 가게 주인이었다. 지붕 가게 주인도 이 계절엔 남색 정장에 중절모를 쓰고 고무인지로 된 장화를 신고 있다. 그건 그렇고 참 긴 장화다. 무릎――정도가 아니다. 허벅지도 절반가량 가려져 있다. 저런 장화를 신었을 때엔 장화를 신었다기보다도 모종의 박자로 장화 속에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 테지.
단골 골동품상을 찾았다. 정면의 붉은 선반 위에 무시아케에서 만든 듯한 술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술병 입구가 묘하게 외설적이다. 그래그래, 언젠가 본 고비젠의 술병도 살짝 입을 얹어 보고 싶었다. 눈앞엔 문양이 그려진 접시 한 장이 놓여 있다. 남색 버들 가지 아래에 역시 남색으로 된 사람 하나가 바보 같이 긴 낚시대를 뻗고 있다. 누구인가 싶어 들여봤더니 카나자와에 있는 무로우 사이세이 아닌가!
다시 느긋이 걷기 시작한다. 채소가게에 쇠귀나물이 조금 있다. 쇠귀나무 껍질색은 보기 좋은 걸. 오래된 진흙칠보의 청색과 닮아 있다. 저 쇠귀나물을 살까. 거짓말쟁이. 살 생각 없는 걸 아는 주제에. 그나저나 스스로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싶어지는 심정은 대체 무엇일까. 이번에는 새를 파는 가게. 하나같이 새장투성이인걸. 오, 주인도 편하다는 양 곤줄박이 새장 안에 앉아 있지 않은가!
"즉 말을 탄 거하고 똑같은 거지."
"칸트의 논문에 놀아났네."
뒤에서 길을 지나는 교복 차림의 대학생 둘. 힐끔 듣는 남의 대화는 참 미치광이의 대화 같단 말이지. 이쯤부터 슬슬 언덕이 시작된다. 저 집 참죽나무는 벌써 잎이 떨어져 갈색으로 변했군. 물론 언덕 쪽 대나무는 여전히 노랗기만 하지만………이런 반대편에서 말이 오는군. 말의 눈동자는 참 크지. 대나무도 참죽나무도 내 얼굴도 모두 눈동자 안에 비친다. 말 뒤로는 배추 흰나비 따른다."
"이제 막 나온 계란 있습니다."
아, 그런가요? 저는 계란 필요 없는데――봄볕이 드는 거리를 홀로 느긋이 걷는다.
여섯 겨울밤
겨울밤의 기억 중 하나.
평소처럼 책상 앞에 앉아 있자니 12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12시에는 반드시 잠들기로 하고 있다. 오늘 밤도 먼저 책을 덮고, 내일 앉자마자 바로 일할 수 있도록 책상 위를 정리한다. 정리라는 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원고지와 필요한 서적을 하나로 뭉쳐두는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각로의 불을 정리한다. 항아리병에 주전자의 물을 붓고 그 안에 불을 하나씩 넣는다. 불은 점점 검어진다. 잿소리도 점점 울린다. 수증기도 모락모락 올라온다. 어쩐지 즐거워진다. 무언가 덧없는 느낌도 든다. 잠자리는 작은방에 깔아두었다. 작은 방도 서재도 2층에 있다. 자기 전에는 반드시 아래로 내려가 소변을 본다. 오늘 밤도 조용히 2층에서 내려간다. 가족들의 눈에 들지 않도록 되도록 조용히 2층을 내려간다. 아래층 작은방에 불이 들어와 있다. 아직 누가 일어나 있다. 누가 일어나 있는 걸까. 앞을 지나며 보니 예순여덟 되신 큰어머니께서 홀로 낡은 옷감을 만지고 계셨다. 살짝 빛나는 견면이다.
"큰어머니." 그렇게 부른다. "아직 안 주무셨어요?"하고 묻는다. "그래, 이거만 하고 자려고. 너는 이제 잘 거지?"하고 대답한다. 화장실 전등은 들어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어두운 채로 소변을 본다. 화장실 창밖에선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바람 부는 밤에는 잎이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밤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추운 밤에 사로잡혀 있다.
솜 넣기에도 손이 곱아 어려운 겨울밤인가
일곱 수집
나는 어떤 시대에도 수집벽이란 걸 가져 본 적이 없다. 만약 가진 적이 있다면 어릴 적에 파충류 표본을 모은 정도이다. 지금은 확실히 서적만은 어느 정도 모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모은 게 아니라 모인 것이다. 낙엽이 바람에 모이듯이 자연스레 서재에 모인 것이다. 딱히 어렵게 모은 건 아니다.
서적마저 그 모양이다. 하물며 서재나 골동품 같은 건 한 번도 모으고 싶다 생각한 적이 없다. 물론 이는 생각해 본들 글쟁이로선 쉽게 손을 댈 수 없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모으려 하지 않는 게 비단 금전적 이유 때문은 아니다. 되려 모으고 싶다는 심리에 쾌재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은 모으려 하는 생각에 권태를 느끼고 마는 것이다.
이는 지식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떠한 지식도 모으려고 생각해 모은 적이 없다. 물론 모였다고 생각할 정도의 지식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찌 되었든 모였다고만 해야 한다.
수집가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단 한 장의 성냥 상표를 모으기 위해 세계를 도는 수집가는 사실상 열정 그 자체이다. 그러니 열정을 경멸하지 않는 한 수집가도 마냥 웃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수집가하고는 다른 틀에 속해 있다. 또 동시에 혁명가나 예언가하고도 다른 틀에 속해 있다.
나는 성냥 상표를 향한 열정에도 동정을 느끼고 있다. 아니, 동정이란 말 대신에 경의라 해도 지장이 없다. 하지만 성냥 상표의 가치에는 회의적이다. 나는 이전에 이런 기질을 부끄러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얼굴이 두꺼워진 지금은 그리 비하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여덟 지기료
우리는 당시 '신사조'란 동인잡지에 임하고 있었다. '신사조' 이외의 잡지에도 이따금 작품을 발표하는 건 쿠메 마사오 한 사람뿐이었다. 그때 '키보우'란 잡지사에서 불쑥 내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5월호에 실을 수 있게 단편 하나를 부탁하고 싶다. 상황이 되느냐 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물론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라는 단편을 키보우샤에 보냈다. 그리고――원고료가 도착하는 걸 기다렸다. 첫 원고료를 기다리는 건 글을 팔아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상상이 조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나도 조금 과장하자면 마치 사무라이를 기다리는 서른 살 아내처럼 돈이 들어오는 날만 기다렸다.
원고료는 쉽게 들어 오지 않았다. 나는 이따금 쿠메 마사오와 키보우샤가 내 단편에 얼마를 낼 지를 논했다.
"일 엔은 줄 거야. 일 엔이라면 12장해서 12엔인가. 아니다. 1엔 50전은 충분히 낼 거야."
쿠메는 그런 예측을 했다. 그런 말을 듣자니 나도 어쩐지 1엔 50전은 받을 거 같았다.
"1엔 50전 받으면 8엔은 쓴다."
나는 친구들을 위해 돈을 쓴다고 약속했다.
"1엔이라도 5엔은 쓸 의무는 있지."
쿠메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5엔을 할애하는 정도는 딱히 상관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키보우' 5월호가 나오고 동시에 원고료도 들어왔다. 나는 그걸 주머니에 넣은 채로 쿠메의 하숙을 찾았다.
"얼마 받았냐? 1엔? 1엔 50전?"
쿠메는 내 얼굴을 보고는 자기 일처럼 열심히 물었다. 나는 아무 말 않고 명세서를 내밀었다. 종이에는 잔혹하게도 3엔 60전이라 적혀 있었다.
"30전? 30전은 지독하네."
쿠메도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더욱 무뚝뚝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잠시 동시에 히죽히죽 웃음을 지었다. 쿠메는 소위 작은 쓴웃음을 짓고 나는 가볍게 쓴웃음을 지었다.
"30전을 지기료로 쓰긴 그렇지. 1엔 50전 마이너스 30전――1엔 20전은 지기료치곤 너무 비싸다."
쿠메는 이렇게 말하며 명세서를 내게 되돌려주었다. 하지만 요전 때처럼 돈을 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홉 망문망답
손님 키쿠치 칸 씨의 소설에 따르면 저희는 이번 대지진처럼 목숨의 귀기에 처했을 때 예술은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잖나. 일단 목숨을 부지해야 써먹을 수 있다며 휴지로 쓰는데 바쁘다더군. 실제로도 그렇다 보나?
주인 그야 실제로도 그렇지.
손님 예술상의 현인이라도? 이를테면 소설가나 화가처럼――
주인 현인이야 물론 아마추어보다 예술을 생각할 거야. 하지만 그것도 생각해 보면 사실은 오십 보 백 보 아니겠나. 실제로 머리에 불이 붙었는데 이 불을 어떻게 묘사할지 생각하는 호걸은 없을 테니 말이야.
손님 하지만 과거의 사무라이는 옆구리를 창에 꿰뚫렸음에도 시세의 우타를 읊지 않았나.
주인 그건 단지 명예를 위한 일이야. 의식적인 예술적 충동하고는 별개지.
손님 그럼 우리의 예술적 충동은 그런 큰일을 만나면 전부 사라지는 건가?
주인 그야 전부 사라질 리 있나. 실제로 조난민의 이야기를 들어보게나. 생각보다 예술적인 것도 많이 있잖아――본래 예술적으로 표현되기 위해서는 일단 예술적이라는 인상이 있어야 할 테지. 그럼 그런 녀석들은 저도 모르게 의식하지 않고 예술적으로 마음을 움직인 셈이야.
손님 (반어적으로) 하지만 그런 사람도 머리에 불이 붙은 날에는 역시 예술적 충동을 잃지 않나?
주인 그렇다고는 볼 수 없어. 무의식적인 예술 충동만큼은 의외로 생사의 문턱에서도 마지막 비약을 하지 않은가. 시세의 우타를 떠올렸는데 과거의 사무라이가 죽는 건 대개 희곡적 혹은 배우적 충동의――즉 소위 연극투의 표현이라 볼 수 있지 않겠나.
손님 그럼 예술적 충동은 어느 때에나 있을 수 있는 건가?
주인 무의식적인 예술적 충동은 그러하지. 하지만 의식한 예술적 충동은 불가능할 거야. 실제로 머리에 불이 붙었는데………
손님 그건 이미 들었어. 그럼 자네도 키쿠치 칸 씨에게 찬성하는 건가?
주인 있을 수 없다는 것만은 그렇지. 하지만 키쿠치 씨는 있을 수 없는 게 쓸쓸하다지 않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당연한 일이니까.
손님 왜?
주인 왜고 자시고가 어디 있나. 목숨이 있는 종은 모든 걸 잊3을 테니 말야. 예술도 물론 잊지 않겠나? 나는 대지진 정도가 아냐. 소변을 볼 때는 렘브란트나 괴테도 잊어버리지. 물론 그렇다고 예술을 경시할 생각은 없지만 말야.
손님 그럼 예술이란 인생에 그리 통절하지 않단 건가?
주인 헛소리 말게나. 예술적 충동은 무의식중에도 우리를 움직이지 않나. 그럼 예술은 인생의 밑바닥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셈이지――되려 인생은 예술의 싹으로 가득 한 밭이란 게 되지.
손님 그럼 "옥은 부서지지 않고"인가?
주인 옥은――그렇지. 옥은 부서질지도 몰라. 하지만 돌은 부서지지 않지. 예술가는 어쩌면 잊힐지도 몰라. 하지만 어느 틈엔가 예술적 충동에 지배되는 곰이나 벌은 죽지 않지.
손님 그럼 자네는 문제가 된 사토미 씨의 설에도 키쿠치 씨의 설에도 부분적으로 반대한다는 거로군.
주인 부분적으로 찬성한다고 해두고 싶은데. 애당초 두 남자 사이에 끼는 건 나로서도 어려운 일이니 말야. 아, 그리고 또 키쿠치 씨의 설에는 신용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
손님 신용할 수 없는 부분?
주인 키쿠치 씨는 이번에 대중의 갈채를 받기 위해선 거짓말이 필요하단 걸 통감한다고 했지. 별로 믿기진 않아. 아마 조금 느낀 정도일 테지. 뭐 좀 더 보고 있게나. 또 화가 나서 무언가 드러낼 테니 말이야.
열 매화에 대한 감정
이 저널리즘의 한 편을 근엄한 니시카와 에이지로 군에게 바친다.
우리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기에 세상만사를 여실히 봐야만 한다. 적어도 만인의 안광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안광을 통해 봐야만 한다. 예로부터 위대한 예술가는 모두 이런 독자적인 안광을 지녀 저절로 독자적인 표현을 이루었다. 고흐의 해바라기의 사진판이 오늘날에도 애완 받는 건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닐 터이다.(GOGH를 고흐라 발음하는 걸 나무라지는 않길 바란다. 나는 ANDERSEN을 아나아센이라 부르지 않고 안데르센이라 부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는 예술을 사명으로 삼는 자에겐 하늘의 햇살보다도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독자적인 눈을 가지는 게 꼭 쉬운 일은 아니다.(아니 절대적인 독자의 눈을 지니는 건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특히 만인의 시에 이따금 들어가는 풍경을 볼 적에 독자적인 눈을 가지는 건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시험삼아 '늦봄"이란 말을 떠올려 보라. 부손이 "늦봄"을 읊은 후에 누가 독자적인 눈으로 "늦봄"을 읊고 있다 확신할 수 있으랴. 매화도 마찬가지다. 아니, 정확히는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한다.
매화는 이미 이세노모노가타리의 우타부터 하루노부의 그림에 이르기까지 유미함을 그러냈다. 하지만 매화를 볼 때마다 가장 먼저 마음을 사로잡는 건 중국에서 만들어진 문인취미이리라. 이는 단순히 나만 아니라 대부분의 군자 또한 마찬가지일 터이다.(츄오코론 기자도 '매화부'란 용어를 쓰지 않는가.) 매화를 단순히 사랑스러운 제누스 푸르너스로만 두는 건 서양 시인뿐이다. 우리는 매화 꽃잎 하나서도 학을 떠올리고 초승달을 연상하고 공산을 바라고 강을 동경하고 단각을 보고 서등을 놓고 수죽을 뻗고 푸른 안개를 생각하며 나부를 그리며, 선비를 기억하고 임처사의 풍류를 들을 수밖에 없다. 이것만 보아도 독자적인 안광으로 만물을 보려 하는 우리 예술가가 매화에 호의를 느끼고 있음은 잘 알 수 있으리라.(이는 이미 나가이 후우 씨의 '일본 정원'의 한 장인 '매화' 안에서 밝혀진 진리이다. 문단은 시인 또한 심장 이외의 뇌수를 지녔단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게 내가 오늘 진리를 도용한 이유이다.)
나는 매화를 볼 때마다 문인취미를 환기한다는 건 이미 적은 바 있다. 하지만 허투루 나를 소위 문인으로 만드는 일은 없길 바란다. 나를 사기꾼으로 모는 건 괜찮다. 또 살인범으로 몰아도 괜찮다. 어쩔 수 없이 대학교수의 적임자로 모는 것도 참아 줄 수 있다. 단지 나를 소위 문인으로 만드는 일은 없길 바란다. 십편십의의 존재가 타이가와 부손을 소위 문인으로 만들었다. 나는 설령 궁에 들어가더라도 이런 종류의 미치광이와 같은 선상에 놓이는 걸 바라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나는 문인취미를 경멸하고 있다. 특히 카세이도에 유행한 문인취미를 경멸한다. 문인취미는 도락일 뿐이다. 도락으로 시작해 도락으로 끝난다. 하지만 만약 도락 이상의 딱지를 붙인다면 산요의 그림을 보는 게 제일이리라. 니혼가이시는 어찌 되었든 일부의 역사 소설이다. 그림에 이르러서는 이를 넘는 건 필경 츠쿠네이모의 산수 뿐이리라. 더욱이 또 치쿠덴의 햐쿠쿠와츠이는 어떨까. 이를 만약 예술이라 부를 수 있다면 야스키부시도 예술이리라. 나는 물론 그들의 도락을 배척하려는 게 아니다. 나도 당시에 태어났다면 장난삼아 캇파반키의 그림을 그리고 산자수명을 보고 웃었을 게 분명하다. 또 그들 또한 총명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도락을 그들의 예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나는 항상 확신한다. 다이쇼의 유행과 예술을 알지 못하고 순수한 그들의 농담을 진지하게 기뻐하며 갈망할 때면 가장 먼저 웃음을 참지 못하는 건 그들 둘이 분명하리라고.
매화는 내가 경멸하는 문인취미를 강하게 하며 하찮은 시를 떠올리게 매료한다. 나는 고독한 여행객이 깊은 산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이 매화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생각하기론 여행객이 주파의 기쁨을 느끼는 것 또한 항상 깊은 산일 터이다. 나는 매화를 볼 때마다 카비의 눈을 바라보는 서하객처럼 남극의 별을 올려다 보는 섀클턴처럼 무성한 남심을 금할 수가 없다.
재를 버리자 흰 매화 원망하는 울타리려나
덧붙이자면 본쵸는 우리를 위해 일찍부터 나루를 가르쳐주었다. 강을 서둘러 건너려는 나는 소년의 객기와 무엇이 다르랴.
나는 독자적인 안광으로 매화를 보는 게 어렵기에 더더욱 독자적인 안광으로 매화를 보는 걸 바란다. 약간 패러독스를 건드려 보자면 매화에 냉담하기 짝이 없기에 매화에 열중할 수 있는 것이다. 고계의 시는 말한다. "경자지합재요대옥 자태는 신선 사는 요대에 있어야 하거늘 수양강변처처재누가 강남 땅 곳곳에 심었단 말인가" 또 말한다. "자거하낭무호영하랑이 떠난 뒤로는 잘 읊을 이 없나니 동풍수적기회개동풍에 쓸쓸히 몇 번이나 피었던가" 정말로 매화란 선인의 영애나 부자의 은거와 닮은 바 있다.(후자는 나가이 후우 씨의 비유이다. 전자와 모순되는 건 아니다.) 나의 문장이 부족하다면 그런 미인을 대하는 감개라 생각해주길 바란다. 또 더욱이 그대의 감개에 그저 젖기만 하는 걸로 그친다면 그대 또한 속된 것이며 구할 도리 없는 건시일 뿐이다.
열하나 우연
"오토미의 정조"란 소설을 썼을 때 오토미가 아무개 부인이 모티브가 아니냐 물은 사람이 셋 있다. 또 그 소설 속에 무라카미 신자부로란 거지가 나온다. 막부 말기에 무라카미 신고로란 호걸이 있는데 동일 인물이냐 물었다. 하지만 그 소설은 가공의 이야기이니 소위 모델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오토미의 정조' 속 등장인물은 오토미와 거지 둘 뿐이다. 그 두 사람 모두 실존 인물과 비슷하다는 별난 우연임에 분명하다. 나는 이전 후지노 코하쿠의 구에서 "꼭두각시꾼이 해질녘 돌아가는 라쇼몬일까"란 걸 보고 "꼭두각시꾼", "라쇼몬" 모두 내 소설과 일치하는 걸 보고 묘하게 놀란 걸 있다. 그리고 지금은 또 이런 우연과 만났다. 내게는 우연이 따르는 모양이다.
열둘 콜레라
콜레라가 유행하여 떠오른 건 소세키 선생님의 이야기다. 선생님이 어릴 적에도 콜레라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은 콩을 잔뜩 먹고 물을 잔뜩 마시고 또 선생님의 아버지와 함께 모기장 안에서 잤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날이 지나고 모기장 안에서 갑자기 구토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자 선생님의 아버지는 "어이구, 콜레라네."하고 말하며 모기장을 뛰쳐나왔다고 한다. 모기장을 뛰쳐나와 뭘 하나 했더니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직 별이 떠있음에도 정원을 청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선생님의 구토는 콩과 물을 너무 먹은 탓이지 콜레라는 아니었지만 선생님은 이 일로 아버지란 인종의 에고이즘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콜레라를 다룬 소설 중엔 무엇이 있는가. 코우에후의 "청포도"라는 게 아마 콜레라 이야기였던 거 같다. La Motte란 사람의 단편 중에 일본의 콜레라를 다룬 내용도 있다. 무언가 눈에 띄는 사건은 없지만 우오가시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무언가를 하는 게 꽤나 잘 그려져 있다.
나는 콜레라로 죽고 싶진 않다. 구역질을 하고 하혈을 하는 풍류와 맞지 않는 인생은 사양이다. 쇼펜하우어가 콜레라를 두려워해 도망치며 걸은 걸 읽었을 때에는 그에게 크게 동정했다. 어쩌면 그의 철학보다도 더 동정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시대에는 아직 콜레라가 먹는 걸로 점염된다는 걸 알지 못 했다. 하지만 나는 현대에서 태어난 고마움 덕에 그런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삶은 것만 먹거나 염산 리모나데를 복용하는 등 유유히 예방을 강구하고 있다. 요전 번엔 겁이 너무 많다고 웃음을 샀지만 겁이란 문명인만 지니는 미덕이다. 겁쟁이지 않은 인간이 위대하다 생각한다면 호텐토트의 왕한테 가서 절이라도 하고 오면 된다.
열셋 나가사키
마름모꼴의 연. 샌트 몬타니의 하늘에 걸린 연. 하늘하늘 몇 개나 날리는 연.
길거리에 줄지은 여름밀감이나 바나나. 돌길의 햇살에 붉어진 분위기. 마을 한가득 나는 제비.
마루야마 둘레를 두른 버드나무.
운하에는 돌로 된 메가네바시. 다리에는 오가는 밀짚모자――이다금 헤엄치러 오는 집오리 한 무리. 하얀 털을 햇살에 드러낸 집오리 한무리.
난킨테라 돌계단의 도마뱀.
중화민국의 깃발. 연기를 내뿜는 영국의 배. '항구를 둘러싼 산의 젊은 잎에 빛이……' 정수리가 벗겨진 사이토 모키치. 로티. 쉔 칸. 나가이 가후.
마지막으로 '일본 성모의 절' 내부의 어머니 마리아. 보리 이삭에 섞인 도깨비부채. 빛이 없는 대낮의 촛불. 창밖에는 먼 샌트 몬타니.
산 위 하늘에는 역시나 마름모꼴의 연. 키타하라 하쿠슈가 노래한 연. 하늘하늘 몇 개나 날리는 연.
열넷 도쿄 타바타
장마에 젖은 나뭇가지. 장마에 빛나는 집들의 지붕. 개는 쌓인 숯가마니 위에서 잠들고 닭은 우리 하나에 몇 마리나 담겨 있다.
정원수에 와가가 달린 건 주물사 카토리 호즈마의 집.
대나무 잎이 울타리에 걸린 건 화가 코즈키 미세이의 집.
진흙탕을 앞에 둔 건 하이진 타키이 세츠사이의 집.
돌길에 조릿대를 심은 건 시인 무로우 사이세이의 집.
모밀잣밤나무나 은행 속에 담긴 건――등뇽에 저녁빛을 품고 있는 건 요정 텐넨지소켄.
장맛비 내리는 정원을 가로 막는 장자. 장맛비의 추위를 피하기 위한 화로. 나는 자단 책상 앞에서 한 개비에 8전 하는 담배를 문 채로 일유정의 닭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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