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겐지 원년 11월 26일, 교토 수호 임무를 받은 카슈가 세력은 쵸슈 토벌에 참가하기 위해 쿠니가로 오오스미노 카미를 대장으로 삼아 오사카의 아지카와구치에서 배를 내보냈다.
소대장은 츠쿠다기우 다이후, 야마자키 산쥬로 두 명이었으며 츠쿠다기우의 부대에는 하얀 깃발을, 야마자키 부대의 배에는 붉은 깃발을 걸어두었다. 오백석척의 금비라선이 제각기 홍백의 깃발을 바람에 나부끼며 강에서 바다로 나서는 모습은 정말 용맹스러웠다.
하지만 배를 타고 있는 녀석들은 용맹하다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애당초 어느 배나 한 척에 주종 서른네 명에 선두 네 명을 더해 도합 서른여덟 명씩 타고 있다. 때문에 배 안은 움직임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좁았다. 또 배의 몸체에는 절인무를 담은 통이 발 디딜 곳도 없이 빼곡히 늘어져 있었다. 익숙해지기 전에는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오려 했다. 또 구력 11월 하순이니 바닷바람이 마치 몸을 찢어 놓는 것처럼 차갑다. 특히 해가 진 후로는 산바람과 바닷바람에 북쪽에서 태어난 젊은 사무라이마저도 이 안쪽이 시려 올 지경이었다.
그런데다가 배 안에는 이가 잔뜩 끓었다. 심지어 옷 사이로 숨는 물러 터진 이가 아니다. 돛에도 끓었다. 깃발에도 끓었다. 돛대에도 끓었다. 노에도 끓었다.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사람을 옮기기 위한 배인지 이를 옮기기 위한 배인지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였다. 그 정도이니 옷에도 물론 몇 십 마리가 끓고 있다. 그러다 피부에 닿기라도 하면 금세 기세등등하여 따끔따끔 피를 빨았다. 그나마도 다섯 마리나 열 마리라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있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하얀 참깨라도 뿌린 것처럼 잔뜩 끓고 있으니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다. 그러니 두 배를 가리지 않고 배 안의 사무라이란 사무라이는 모두 이한테 물린 자국으로 마치 홍역이라도 걸린 것처럼 가슴과 배를 가리지 않고 붉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손쓸 도리가 없다고 정말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뱃사람들은 시간이 나는 대로 이를 잡았다. 위로는 가로부터 아래로는 조리토리마저, 다 같이 훌러덩 벗어던지고 곳곳에 끓는 이를 그릇에 잡아서 넣고 잡아서 넣고 했다. 커다란 돛에 내해의 겨울 햇살을 받는 금비라선 안에서, 서른몇 명의 사무라이가 팬티 한 장 차림으로 그릇을 들고 이를 찾으며 돌아다니는 꼴이라니. 오늘날에 상상하면 우스운 꼴일지 몰라도, '필요성' 앞에 진지해지는 건 유신 이전이라도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그때, 한 배의 전라 사무라이는 자신이 커다란 이가 된 것처럼 추운 것도 참으며 매일 같이 끈기 좋게, 터벅터벅 걸으며 배 위의 이만 잡고 있었다.
둘
그런데 츠쿠다기우의 배에 묘한 남자 하나가 있었다. 모리 곤노신이란 고집센 중년 남성으로, 신분은 75표 5인부지를 받는 오카치였다. 이 남자만은 이상하게도 이를 잡지 않았다. 잡지 않으니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리해 있다. 머리 위로 올라가 있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허리춤을 맡기는 녀석이 있다. 그럼에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이 남자만은 이에 물리지 않는 걸까. 그렇지도 않았다.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온몸이 얼룩덜룩한 금전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곳곳이 붉어져 있다. 하물며 당사자가 그걸 벅벅 긁는 거 보면 가렵기는 한가 보다. 하지만 긁는 와중에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
단지 그뿐이라면 차라리 낫지만 다른 사무라이들이 이를 잡고 있는 걸 보면 반드시 옆에서 이런 말을 한다――
"잡을 거면 죽이진 마. 죽이지 않고 그릇에만 넣어두면 내가 받아 갈게."
"받아서 어쩌려고?" 동료 중 한 명이 황당하단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받아서? 받으면 내가 길러야지."
모리는 쾌활하게 답했다.
"그럼 죽이지 말지 뭐."
동료는 농담이지 싶었기에 두세 동료와 같이 반나절에 걸쳐 산 이를 억지로 두세 그릇이나 담았다. 이렇게 잡아서 "자 길러봐"하고 내밀면 아무리 똥고집쟁이 모리라도 입을 열지 못 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모리가 먼저 찾아왔다.
"좀 잡았어? 잡았으면 내가 받아가지."
동료는 모두 놀랐다.
"그럼 여기에 넣어줘."
모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기모노 소매를 펼쳤다.
"괜히 고집 부리다 나중에 앓는 소리 말고."
동료는 그렇게 말하지만 당사자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사람씩 들고 있는 그릇을 기울인다. 한 되 쌀은 되는 거 같은 이가 소매 안으로 떨어진다. 심지어 모리는 떨어진 것마저 소중하다는 양 주워 올리고는,
"고마운걸. 이걸로 밤에 따듯하게 잘 수 있겠어." 그렇게 혼잣말하더니 히죽히죽 웃었다.
"이가 있으면 따듯해?"
황당해진 동료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누구에게 묻는 법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모리는 이를 넣은 소매를 정성스레 다잡고는, 동료들의 얼굴을 깔보듯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다들 요즘 들어 추워서 감기 걸리잖나. 이 곤노진은 어떤가. 기침 한 번 없지. 콧물도 안 훌리지. 하물며야 열이 나기를 하나 손발이 시리기를 하나. 그게 다 누구 덕이겠어――모두 이 덕인 게지."
모리의 말에 따르면 몸에 이가 있으면 반드시 따끔따끔 찌른다. 찌르면 가려워진다. 그리고 온몸을 물리면 온몸이 긁고 싶어진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잘 만들어져 있어서 가려워서 긁고 있는 사이, 자연스레 긁은 곳이 열을 두른 것처럼 따듯해진다. 그렇게 따듯해지면 잠이 온다. 잠들면 가려운 줄 모른다――그렇게 몸에 이만 잔뜩 있으면 잠자기도 좋고 감기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니 이는 길러야지 잡아야 할 게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오호라, 그런 건가." 동료는 모리의 이 강의를 듣고 감탄하여 그렇게 말했다.
셋
그렇게 모리의 흉내를 내 이를 기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사람들도 시간만 나면 그릇을 손에 들고 이를 뒤쫓는 건 다른 동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단지 다른 건 잡은 이를 하나하나 품에 넣어 소중히 기르고 있다는 점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나라, 어느 시대도 Précurseur 1의 말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법이다. 배 안에서도 모리의 이론에 반대하는 Pharisien 2이 많이 있었다.
개중에서도 필두Pharisien은 이우에 쿠라노스케란 오카치였다. 이 또한 묘한 남자로 이를 잡으면 반드시 먹어버린다. 저녁에 밥을 먹고는 그릇을 앞에 내놓고는 맛있다는 양 무언가를 씹고 있는다. 옆사람이 뭘 먹나 하고 그릇을 들여다 보면 그게 모두 모아놓은 이였다. "어떤 맛이냐?"하고 물으니 "기름기가 있지. 햅쌀 같은 맛이야."하고 말한다. 이를 입으로 씹는 사람은 어디나 있지만 이 남자는 그렇지 않다. 완전히 간식이라도 먹는 분위기로 매일 같이 이를 먹고 있다――이 사람이 가장 먼저, 그리고 제일 모리에 반대했다.
이우에처럼 이를 먹는 사람은 달리 한 명도 없지만 이우에의 반대설에 가담하는 자는 꽤나 많았다. 그 사람들이 말하기는 이가 있다고 인간의 몸이 따듯해질 리가 없다. 그뿐 아니라 효경에도 몸과 머리는 부모에게 물려 받는 것이다. 허투루 다치지 않는 게 효의 시작이라 되어 있다. 제가 나서서 몸을 이 따위의 먹이로 주는 건 심상치 않은 불효이다. 그러니 이는 잡아야 한다. 길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모리의 동료와 이우에의 동료 사이서 이따금 입씨름이 생겼다. 그것도 마냥 입씨름만 하는 정도면 별 지장은 없다. 하지만 기어코 그게 번져서 생각지도 않던 칼날 사태가 시작되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어느 날, 모리가 기르려 받아 온 이를 그릇에 넣어두었더니 이우에가 방심한 틈을 찔러 어느 틈엔가 먹어버린 것이다. 모리가 돌아와보니 이미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런 Précurseur의 설이 누구에게나 받아 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배 안에서도 모리의 이론에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왜 남의 이를 먹었지?"
허리를 쭉 피고 눈색을 바꾸어 따지고 물으니 이우에는,
"애당초 이를 기르는 것부터가 헛소리야."하고 딴청을 피우며 전혀 어울려주지 않았다.
"먹는 쪽이 웃기지도 않지."
모리는 화가 나서 판자 사이를 두드리며,
"이 배 안에 누구 하나 이의 은혜를 받지 않은 자가 있나? 그 이를 먹는 건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거나 마찬가지야."
"이보게나, 나는 이한테 받은 은혜 같은 건 없거든."
"아니, 설령 은혜를 입지 않았다 해도 허투루 생명을 죽이는 건 언어 도단일 텐데."
두세 마디를 주고받고 있자니 모리가 대뜸 눈색을 바꾸며 붉게 칠해진 자루에 손을 얹었다. 물론 이우에도 지지는 않았다. 곧장 붉은 검집의 나가모노를 잡아당기며 일어선다――알몸으로 벌레를 잡던 동료들이 놀라서 두 사람을 붙들지 않았다면 누구 하나는 죽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 소동을 실제로 본 사람이 말하길, 두 사람은 일동에게 안긴 채로 입꼬리에 거품을 물고 "이, 이."하고 소리쳤다고 한다.
넷
이런 식으로 배안의 사무라이들이 이 때문에 칼부림을 일으키는 동안에도, 오백석척의 금비라선은 그런 일에는 조금도 아랑곳 하지 않 듯이 홍백의 깃발을 찬바람에 나부끼며 저 먼 나가슈 토벌에 이르기 위해 눈이 내리는 하늘 아래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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