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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내 친구 두세 명-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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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아나 류이치 군(괜히 '군'을 붙이는 것도 우스울 정도다)은 나보다 어리다. 하지만 오아나의 일처리는 비범하다. 만약 내 이름이 남는다면 내 작품의 작가로 남기보다도 오아나 군이 디자인을 한 책의 작가로 남으리라. 이건 오아나 군에게 아양 떠는 게 아니다. 세간에 겸손을 떠는 건 더더욱 아니다. 조형 미술과 문예의 차이를 생각하여 하는 말이다.(문에라는 건――특히 소설이란 삼백 년 지난 후에는 쉽사리 통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지진이나 대화재로 오아나 군의 그림도 불타버리면 이번에는 되려 오아나 군의 이름 또한 나와 나눈 인연 덕에 남으리라.
 오아나 군은 신경질적이다. 이따금 용맹한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하지만 결코 호방한 성격의 소유주지는 않다. 하지만 해학적 정신은 적잖이 갖추고 있다. 나는 언젠가 바다에서 올라 와 "어쩐지 완선[각주:1]에 걸릴 거 같네"하고 말했다. 그러자 오아나 군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술병을 건네며 "이걸 불알에 바르면 될걸"하고 권했다. 나는 오아나 군의 말을 따라 정성스레 불알에 술을 발랐다. 그때 불알이 뜨거워지는 게 화형이라도 당하는 것만 같을 정도였다. 나는 "이거 큰일났네"하고 말하며 마루 위를 굴렀다. 오구라 군은 배를 부여잡고는 "그거 큰일이네"하고 동정(?) 해주었다. 나는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있어도 불알에 술을 바르고 있지 않다……
 또 오구라 군은 홋쿠를 만들고 있다. 이게 또 평범하지 않다. 그뿐 아니라 오아나 군의 그림과 깊은 혈맥으로 이어져 있다. 나는 역시 홋쿠에 있어서도 오아나 군의 가르침을 받았다.(어떠한 가르침도 받지 않는 건 재앙인 동시에 행복이다.)
  양말 걸어둔 밭 위의 나무에도 가지는 있네 류이치

     2

 호리타츠 군도 나보다는 어리다. 하지만 호리타츠 군의 작품도 비범하다. 도쿄 사람, 도련님, 시인, 책벌레――그러한 점도 나와 공통되어 있다. 하지만 나처럼 구시대적이지 않다. 나는 '신감각'을 가진 작가의 작품을 읽고 있다. 호리타츠 군은 그러한 작가들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다음 시가 내 말이 과장이 아님을 확실히 해주리라.

유리가 깨진 창문
내 충치야
밤이 되면 네 안에서
램프가 들어와
가만히 들어보면
점시와 나이프 소리가 들리네.

 호리 군의 소설 또한 이 시와 같은 특색을 지니고 있다. 어린 작가들은 앞으로도 문단에 나타나리라. 하지만 호리군도 그런 작가 중에서 언젠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한 사람이 되리란 건 확실하다. 본래 우리 일본인은 "일찍 숙성되고 일찍 늙는다"하는 비웃음을 받기 쉽다. 하지만 열대의 여인이 열세 살에 회임하는 걸 생각하면 온대의 남자가 서른에 머리가 벗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물며 '일찍 숙성되어 늦게 늙는다"는 형편 좋은 일은 많지 않다. 나는 거침없이 호리 군이 일찍 숙성되기를 바란다. "악의 꽃"이 만들어진 건 작가가 스물다섯 살(?)일 때였다. 일찍 높은 곳에 오르는 건 늙어서 낮은 곳에 있는 것보다 낫다. 늙는 노력 따위 나중에 해도 된다.

     3

 이 뒤엔 누구를 써도 좋다. 또 쓰지 않아도 좋자. 그러면 쓰지 않을수록 편한 일이니 "3"이라고만 써두기로 했다.

 

 

 

 

  1. 주로 청년남자의 음고부(陰股部)와 둔부에 자주 발생하는 천재성(淺在性) 백선(白癬)의 한 형이다. 흔히 말하는 음부나 사타구니에 생기는 오래된 습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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