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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이도지 신스케의 반생 - 어떤 정신적 풍경화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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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혼죠


 다이도지 신스케가 태어난 건 혼죠의 에코인 부근이었다. 그의 기억에 남은 것 중에 아름다운 거리는 하나도 없었다. 아름다운 집도 하나도 없었다. 특히 그의 집 주변은 아나구라다이쿠나 다가시야 같은 낡은 도구점만이 줄지어 있었다. 그러한 집들과 접한 길은 매일 같이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더군다나 그 길의 막다른길은 오타케구라의 커다란 도랑이 자리해 있었다. 남경마름이 떠다니는 도랑은 항상 악취를 내뿜었다. 그는 물론 그런 거리에 우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혼죠 이외의 거리는 더욱 불쾌하게 느껴졌다. 민가가 많은 야마노테를 시작으로 깔끔한 상점이 줄지은 에도에서 이어져 온 변두리도 어쩐지 그를 압박했다. 그는 혼고나  니혼바시보다 되려 쓸쓸한 혼죠를――에코인을, 코마도메바시를, 요코아미를, 와리게스이를, 한노키마장을, 오타케구라의 도랑을 사랑했다. 그건 혹은 사랑보다도 연민에 가까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연민이었다 한들 삼십 년 후의 오늘날마저 이따금 그의 꿈에 나타나는 건 아직도 그런 장소뿐이었다………
 신스케는 자라면서도 끝없이 혼죠를 사랑했다. 가로수도 없는 혼죠의 거리는 항상 먼지로 가득했다. 하지만 어린 신스케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 건 역시 혼죠의 거리였다. 그는 너저분한 거리서 다가시를 먹으며 자란 소년이었다. 시골은――특히 논이 많은 혼죠 동쪽에 자리한 시골은 이렇게 자란 그에겐 조금의 흥미도 주지 못 했다. 그건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되려 자연의 추함을 보여주기만 했다. 하지만 혼죠의 거리는 설령 자연은 부족했을지언정 꽃을 피운 지붕의 풀이나 물웅덩이에 비친 봄구름은 어쩐지 가련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그런 아름다움 때문에 어느 틈엔가 자연을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그를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 뜨게 한 건 혼죠의 거리만이 아니었다. 책도――그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 몇 번이나 열심히 읽은 로카의 "자연과 인생"이나 러벅이 번역한 "자연미론"도 물론 그를 계발해주었다. 하지만 그가 자연을 보는 눈에 가장 영향을 준 건 확실히 혼죠 거리였다. 집들도 가로수도 거리도 묘하게 볼품없는 거리들이었다.
 실제로 그가 자연을 보는 눈에 가장 영향을 준 건 볼품없는 혼죠의 거리였다. 그는 훗날 혼슈의 곳곳으로 이따금 짧은 여행을 했다. 하지만 거친 키소의 자연은 항상 그를 불안하게 했다. 또 부드러운 세토우치의 자연도 항상 그를 지루하게 했다. 그는 그러한 자연보다도 훨씬 볼품 없는 자연을 사랑했다. 특히 인공 문명 속에서 희미하게 숨쉬는 자연을 사랑했다. 삼십 년 전의 혼쇼는 와리게스이의 버들을, 에코인의 광장을, 오타케구라의 잡목림을――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직 곳곳에 남겨두었다. 그는 그의 친구처럼 닛코나 가마쿠라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아침 아버지와 함께 그의 집 근처를 산책했다. 그건 당시의 신스케에게는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 또 그의 친구들 앞에서 당당히 이야기하기엔 무언가 걸리는 행복이었다.
 여명의 오렌지색이 걷혀 가던 어느 아침, 아버지와 그는 평소처럼 햣본구이 쪽으로 걸었다. 햣본구이는 오오가와의 강가 중에서도 특히 낚시꾼이 많은 장소였다. 하지만 그날 아침은 주위를 둘러봐도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넓은 강가에는 돌울타리 사이서 갯강구가 홀로 움직일 뿐이었다. 그는 아버지께 낚시꾼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아직 입을 열기도 전에 곧장 답을 발견했다. 여명의 오랜지색이 흔들리던 강가에는 민머리의 시체 하나가 바닷내 나는 수초나 쓰레기가 흐트러진 말뚝 사이에 떠올라 있었다――그는 아직도 이날 아침의 햣본구이를 기억하고 있다. 삼십 년 전의 혼죠는 감수성이 깊은 신스케의 마음에 무수한 추억적 풍경을 남겼다. 하지만 이날 아침의 햣본구이는――이 한 장의 풍경화는 또 동시에 혼죠의 거리에 던져진 정신적 음영의 전부였다.
 

둘 우유


 신스케는 어머니 젖을 물어보지 못한 소년이었다. 본래 몸이 약했던 어머니는 맞이인 그를 낳은 후에도 한 방울의 젖을 물리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빈곤한 그의 집안 형편 상 유모를 고용하는 것도 어려웠다. 때문에 그는 태어날 때부터 우유를 마시며 자랐다. 그건 당시의 신스케에겐 원망스럽기 짝이 없는 운명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부엌에서 내오는 우유병을 경멸했다. 또 아무것도 모름에도 어머니 젖만은 아는 친구들을 부러워 했다. 실제로 초등학교에 들어갈 적 나이가 어린 그의 숙모는 연시에 집을 찾아와 가슴이 부풀어 오른 걸 불편해했다. 놋쇠 그릇에 아무리 짜도 젖은 나오지 않았다. 숙모는 눈썹을 아래로 숙인 채로 반쯤 그를 놀리듯이 "신한테 마셔달라 할까?"하고 말했다. 하지만 우유로 자란 그는 물론 빠는 법을 알지 못 했다. 숙모는 기어코 옆집 아이――아나구라다이구의 여자아이에게 굳은 유방을 빨게 했다. 유방은 부풀어 오른 반구 위에 푸른 정맥을 드리우고 있었다. 부끄러움을 잘 타는 신스케는 설령 빨았다고 한들 도무지 숙모의 젖은 마시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옆집 여자아이를 미워 했다. 또 동시에 옆집 여자아이에게 젖을 물린 숙모를 미워했다. 이 작은 사건은 그의 기억에 무겁고 괴로운 질투만을 남겼다. 하지만 어쩌면 그 이외에도 그의 Vita sexualis성생활은 당시부터 시작됐던 걸지도 몰랐다………
 신스케는 병에 담긴 우유 이외에 어머니의 젖을 모르는 걸 부끄러워했다. 이건 그의 비밀이었다.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그의 평생의 비밀이었다. 이 비밀은 또 당시의 그에게는 어느 미신을 동반했다. 그는 단지 머리만 큰 꺼림칙할 정도로 마른 소년이었다. 그뿐 아니라 쉽게 부끄러워하고 잘 갈고닦은 정육점 식칼에도 가슴이 뛰는 소년이었다. 그런 점은――특히 그런 점만은 토바, 후지미의 싸움서 총알을 피한 용맹하고 거센 아버지하고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는 대체 몇 살이었는지 또 어떤 논리인지 이 아버지와 닮지 않은 점을 우유 때문이라 확신했다. 아니, 몸이 약한 것 또한 우유 때문이라 확신했다. 만약 우유 때문이라면 조금이라도 약점을 보이면 친구들이 그의 비밀을 간파할 게 분명했다. 그는 그 때문에 어느 때나 친구들의 도전에 응했다. 도전은 물론 하나가 아니었다. 때로는 오타케구라의 도랑을 뗏목 없이 건너기도 했다. 때로는 에코인의 은행나무에 다리 없이 오른 적도 있었다. 또 어느 때는 그들 중 한 명과 주먹 다짐을 한 적도 있었다. 신스케는 도랑 앞까지 오면 벌써 무릎이 떨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눈을 꼭 감은 채로 남경마름이 떠오른 수면을 열심히 뛰어넘었다. 이 공포나 망설임은 에코인의 은행나무에 오를 때에도 그들 중 한 명과 주먹다짐할 때도 역시 그를 덮쳐왔다. 하지만 그는 그 때마다 용맹히 그런 걸 정복했다. 그건 미신에 기원을 두었다 해도 확실히 스파르타식 훈련이었다. 이 스파르타식 훈련은 그의 오른 무릎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 하나를 남겼다. 아마 그의 성격에도――신스케는 아직도 위세 넘치는 아버지의 잔소리를 기억하고 있다――"너는 기개도 없는 주제에 항상 고집만 부려서 문제야."
 하지만 그의 미신은 다행히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뿐 아니라 그는 서양사 안에서 미신의 반증에 가까운 걸 발견했다. 그건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에게 젖을 준 게 늑대라는 구절이었다. 그는 어머니 젖을 알지 못하는 사실에 점점 냉담해져 갔다. 아니, 우유로 자란 건 되려 그의 긍지가 되었다. 신스케는 중학교에 들어간 봄, 나이를 먹은 그의 숙부와 함께 당시 숙부가 경영하던 목장에 갔던 걸 기억하고 있다. 특히 울타리 위에 간신히 교복 가슴춤을 둔 채로 눈앞으로 걸어온 하얀 소에게 마른 풀을 준 걸 기억하고 있다. 소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 보면서 조용히 마른풀에 코를 벌렁거렸다. 그는 그 얼굴을 보았을 때 문득 이 소의 눈동자 안에서 무언가 인간에 가까운 걸 느꼈다. 공상?――혹은 공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에는 아직 커다란 하얀소 한 마리가 꽃을 피운 살구 가지 아래의 울타리에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 절절하게, 그리운 듯이………
 

셋 빈곤


 신스케의 가정은 빈곤했다. 물론 그들의 빈곤함은 무네와리나가야[각주:1]에 거주하는 하류층의 빈곤은 아니었다. 하지만 겉꾸미기 위해 고생을 해야 하는 중류 하층 계급의 빈곤이었다. 퇴직 관리였던 그의 아버지는 다소의 저금 이자를 제외하면 한 해에 오백 의 은급으로 여종과 다섯 가족의 입에 풀칠을 해야 했다. 때문에 물론 절약에 절약을 거듭해야 했다. 그들은 현관과 방 다섯 개의 집에――심지어 작은 정원마저 있는 그런 집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옷은 누구 하나 쉽사리 만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항상 손님에게는 내놓지도 못할 나쁜 술로 저녁술을 즐기셨다. 어머니도 역시 하오리 아래에 수없이 덧댄 오비를 감추고 있었다. 신스케도――신스케는 아직도 니스 냄새가 나는 자신의 책상을 기억하고 있다. 책상은 낡은 걸 샀지만 위에 깐 녹색 직물도 은색으로 빛나는 서랍의 나사도 얼핏 깔끔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사실 직물은 얇았고 서랍도 솔직히 열어 본 적이 없었다. 이는 그의 책상이라기 보단 집의 상징이었다. 겉꾸밈만은 항상 챙겨야 하는 집의 생활을 상징했다………
 신스케는 이러한 빈곤을 미워했다. 아니, 지금도 당시의 증오는 그의 마음 안쪽에 지우기 힘든 반향을 남겼다. 그는 책을 사지 못 했다. 여름 학교에도 가지 못 했다. 새로운 외투도 입지 못 했다. 하지만 그의 친구는 하나같이 그런 걸 애용했다. 그는 그들을 부러워했다. 때로는 그들을 질투했다. 하지만 그 질투나 부러움을 인정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그건 그들의 재능을 경멸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걸로 빈곤을 향한 증오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낡은 다다미를, 어두운 램프를, 곰팡이 핀 그림을 떼어난 벽지를――가정의 갖은 볼품없음을 증오했다. 하지만 그건 차라리 나았다. 그는 잔지 볼품없기 때문에 그를 낳은 부모를 증오했다. 특히 자신보다 키가 작고 머리가 벗겨진 아버지를 증오했다. 아버지는 번번이 학교의 보증인회의에 출석했다. 신스케는 그의 친구들 앞에 이런 아버지를 보이는 걸 부끄러워했다. 또 동시에 낳아 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자신의 추한 마음을 부끄러워 했다. 쿠니키다 돗포를 모방한 그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기록"은 노란 괘지의 한 장에는 이런 문장이 남아 있다――
 "나는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사랑은 한다. 부모란 사람 자체는 좋아해도 부모의 외견은 사랑할 수 없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군자의 수치이리라. 하물며 부모의 겉모습을 운운하는 건 오죽하랴. 하지만 나는 도무지 부모의 외견을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미워한 건 그런 볼품없는 빈곤보다 그런 빈곤을 이유로 시작된 위장이었다. 어머니는 "후게츠"의 과자 상자에 담긴 카스테라를 친척에게 선물했다. 하지만 그 내용물은 '후게츠'는 고사하고 근처 과자집의 카스테라였다. 아버지는――아버지는 진지하게 "근검상무"를 가르치려 했던 걸 테지.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르면 낡은 한 권의 옥편 이외에 중일사전을 사줬을 때마저 역시나 한참 거드름을 피웠다! 그뿐 아니라 신스케 본인도 거짓에 거짓을 거듭하는 건 부모에게 밀리지 않았다. 그건 한 달 오십 전의 용돈을 한 전이라도 더 많이 받아 그가 무엇보다도 주리던 책이나 잡지를 사기 위함이었다. 그는 돈을 떨어트렸다, 공책을 사야 한다, 친구 모임 회비를 내야 한다――갖은 형편 좋은 구실로 부모의 돈을 훔치려 했다. 그럼에도 돈이 부족할 때에는 교모하게 부모의 환심을 사서 다음 달 용돈을 올려 받았다. 개중에서 가장 그에게 물렀던 노년의 어머니에게 아양을 떨었다. 물론 그에게는 자신의 거짓말도 부모의 거짓말처럼 불쾌했다. 하지만 그는 거짓말을 했다. 대담하고 교활하게 거짓말을 했다. 그건 그에겐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한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또 동시에 병적인 유쾌함을――무언가 신을 죽이는 것과 닮은 유쾌함을 주는 것은 분명했다. 그는 확실히 이 점만은 불량소년에 근접했다. 그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기록'의 마지막 한 줄은 이런 글을 남기고 있다――
 "돗포는 사랑을 사랑하라고 했다. 나는 증오를 증오한다. 빈곤과 거짓을 대하는 갖은 증오를 증오한다……"
 이는 신스케의 진심이었다. 그는 어느 틈엔가 빈곤을 대하는 증오 자체를 증오했다. 이런 이중의 원을 그린 증오는 이십 년 전의 그를 괴롭혔다. 물론 그에게도 다소의 행복은 존재했다. 그는 시험을 볼 때마다 3등이나 4등의 성적을 얻어냈다. 또 어느 하급 미소년은 그가 바라지 않음에도 사랑을 표했다. 하지만 그러한 것도 신스케에는 흐린 하늘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햇살에 지나지 않았다. 증오는 어떤 감정보다도 그의 마음을 압박했다. 그뿐 아니라 어느 틈엔가 그의 마음에 지우기 어려운 흔적을 남겼다. 그는 빈곤을 벗어난 후에도 빈곤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또 동시에 빈곤과 마찬가지로 호화스러움도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호사스러움도――이 호사스러움에 대한 증오는 중류 하층 계급의 빈곤이 주는 낙인이었다. 혹은 중류 하층 계급의 빈곤만이 줄 수 있는 낙인이었다. 그는 오늘도 자신 속에 있는 이 증오를 느끼고 있다. 이 빈곤과 싸워야 하는 Petty Bourgeois소시민의 도덕적 공포를……
 마침 대학을 졸업한 가을, 신스케는 법과에 재학 중인 어느 친구들을 방문했다. 그들은 벽도 당지도 낡은 팔 첩의 방에서 이야기했다. 그 후 얼굴을 내민 건 육십 전후의 노인이었다. 신스케는 이 노인의 얼굴서――알콜 중독인 노인의 얼굴서 퇴직 관리를 직각했다.
 "우리 아버지."
 그는 친구들에게 노인을 간단히 소개했다. 노인은 되려 태연하게 신스케의 인사를 흘러들었다.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편히 쉬다 가세요. 저기 의자도 있으니까"하고 말했다. 확실히 팔걸이가 달린 두 다리 의자는 검게 때 낀 엔가와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허리가 높고 붉은 쿠션색이 바란 반세기 전의 낡은 의자였다. 신스케는 이 다리 둘 있는 의자서 중류 하층 계급을 고스란히 느꼈다. 또 동시에 그의 친구도 그처럼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걸 느꼈다. 이런 작은 사건도 그의 기억에는 괴로울 정도로 또렷이 남아 있다. 사상은 그 후에도 그의 마음에 잡다한 음영을 주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먼저 퇴직 관리의 아들이었다. 하층 계급의 빈곤함보다도 허세가 먼저였던 중류 하층 게급의 빈곤이 낳은 인간이었다.
 

넷 학교


 학교도 신스케에게는 어두운 기억만을 남겼다. 그는 대학 재학 중에 노트도 만들지 않고 출석한 두세 강의를 제외하면 학교 수업에 한 번도 흥미를 느끼지 못 했다. 하지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처럼 여러 학교를 거치는 건 빈곤을 탈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구명 장치였다. 물론 신스케는 중학교 시절엔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적어도 확실히는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할 즘부터 빈곤의 위협은 구름 낀 하늘처럼 신스케의 마음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그는 대학이나 고등학교에 있을 적에 몇 번이나 퇴학을 계획했다. 하지만 이 빈곤의 위협은 그때마다 어두운 장래를 보여주고 허투루 실행하는 걸 불가능하게 했다. 그는 물론 학교를 미워했다. 특히 구속이 많은 중학교를 미워했다. 수위의 나팔은 얼마나 경박하게 들렸던가. 운동장의 백양은 또 얼마나 우울한 색을 띠고 있었는가. 신스케는 그곳에서 서양 역사의 연표를, 실험도 하지 않을 화학의 방정식을, 유럽과 미국의 일개 도시의 인구를――갖은 불필요한 잔지식을 배웠다. 그건 조금만 노력하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불필요한 잔지식이란 사실을 잊는 건 어려웠다. 도스토옙스키는 "죽음의 집의 기록" 중에서 이를테면 첫 번째 양동이의 물을 두 번째 양동이로 옮기고 다시 두 번째 양동이의 물을 첫 번째 양동이로 옮기는 무의미한 노역을 강요받은 죄수의 자살을 말하고 있다. 신스케는 쥐색 교사 안에서――키가 큰 백양이 살랑임 속에서 이런 죄수가 경험하는 정신적 고통을 경험했다. 그뿐 아니라――
 그뿐 아니라 그가 교사를 가장 증오한 것도 중학교 때였다. 교사는 모두 개인으로선 악당이 아님이 분명했다. 하지만 "교육상의 책임"은――특히 학생을 처벌하는 권리는 저절로 그들을 폭군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편견을 학생의 마음에 심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실제로 그들 중 어떤 이는――달마라는 별명을 가진 영어 교사는 '건방지다'라는 이유로 번번이 신스케에게 체벌을 가했다. 그 '건방지다'는 이유는 필경 신스케가 돗포나 카타이를 읽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또 그들 중 어떤 이는――그건 왼눈이 의안인 국어 한문 교사였다. 이 교사는 그가 무예나 경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걸 기뻐하지 않았다. 때문에 몇 번이나 신스케를 "너 여자냐?"하고 비웃었다. 신스케는 어느 날 그 말을 뒤집어 "선생님은 남자신가요?"하고 반문했다. 교사는 물론 그의 불손함에 처벌을 가했다. 그 외에 노랗게 바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기록"을 되짚어 보면 그가 굴욕을 당한 횟수는 세기 어려울 정도였다. 자존심이 강한 신스케는 고집으로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항상 이런 굴욕에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갖은 불량소년처럼 자신 스스로를 경멸하는 걸로 끝날 뿐이었다. 그는 그런 자강술의 도구로 물론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기록"을 애용했다――
 "내가 뒤집어쓴 오명이 아주 많지만 크게 나누어 셋이다."
 "그중 하나는 문약文弱이다. 문약이란 육체의 힘보다 정신의 힘을 중시한다는 걸 말한다."

 "두 번째는 경조부박이다. 경조부박이란 공리 이외에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는 걸 말한다."
 "세 번째가 오만이다. 오만이란 허투루 남의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는 걸 말한다."
 하지만 모든 교사가 그를 박해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가족 간의 담화 모임에 그를 초대했다. 또 그들 중 어떤 이는 그에게 영어 소설 등을 빌려주었다. 그는 4학년을 졸업했을 때, 이렇게 빌린 소설 중에 "사냥꾼의 수기" 영역을 발견해 환희하며 읽은 걸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상의 책임"은 항상 그들과 인간으로서 친해지는 걸 방해했다. 그건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에도 그들의 권력에 모종의 아양을 떠는 추함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은 그들의 동성애에 아양 떠는 추함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들 앞에 나서면 도무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때로는 부자연스럽게 담배 상자에 손을 대거나 훔쳐본 연극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들은 물론 이러한 무례함을 불손이라 해석했다. 그렇게 해석하는 건 지당했다. 그는 본래 이쁨을 살만한 행동을 하는 학생이 아님이 분명했다. 그의 상자 속의 낡은 사진은 몸과 어울리지 않게 머리가 크고 하얌 없이 눈만 빛나는 병약한 소년을 담고 있다. 심지어 이 얼굴색이 안 좋은 소년은 끊임없이 독을 품은 질문을 던지고 사람 좋은 교사를 고민하게 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유쾌함을 느꼈다!
 신스케는 시험이 있을 때마다 항상 고득점을 따냈다. 하지만 소위 태도 점수는 단 한 번도 6점을 넘지 못 했다. 그는 6이란 아라비아 숫자 속에서 교원실의 냉소를 느꼈다. 또 실제로 교사가 태도 점수를 방패로 그를 비웃은 건 사실이었다. 그의 성적은 이 6점 탓에 한 번도 3등을 넘지 못 했다. 그는 이런 복수를 미워했다. 이런 복수를 하는 교사를 미워했다. 지금도――아니 지금은 어느 틈엔가 당시의 증오를 잊고 있다. 그에게 중학교는 악몽이었다. 하지만 악몽이었던 게 꼭 불행이라 할 수는 없다. 그는 그 때문에 조금이나마 고독을 버티는 기질을 길렀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의 반생의 걸음은 오늘보다도 더 괴로웠을 테지. 그는 그가 꿈 꾸던 것처럼 몇몇 책의 저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건 필경 낙막한 고독이었다. 이 고독에 눌러 앉은 오늘――혹은 이 고독에 눌러 앉을 수밖에 없단 걸 알게 된 오늘. 20년 전을 돌아보면 그를 괴롭힌 중학교 교사는 되려 아름다운 장미빛을 품은 여명 속에 누워 있다. 물론 운동장의 백양만은 여전히 우울한 가지에 쓸쓸한 바람 소리를 머금은 채로………
 

다섯 책


 책을 향한 신스케의 열정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이 열정을 그에게 가르친 건 아버지의 책상자 밑바닥에 있던 제국 문고본인 수호전이었다. 머리만 큰 초등학생은 어두컴컴한 램프 빛에 의지하여 몇 번이나 '수호전'을 읽었다. 그뿐 아니라 책을 펼치지 않을 때도 깃발이나 경양강의 대호나 채원자장청의 교량의 묶인 인간의 허벅지를 상상했다. 상상?――하지만 그 상상은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이었다. 그는 또 몇 번이나 목검을 들어 마른 야채를 걸어 둔 뒤뜰서 "수호전"의 등장인물과――일장청 호삼량이나 화화상 노지심과 격투했다. 이 열정은 삼십 년 동안 끝없이 그를 지배했다. 그는 번번이 책을 앞에 두고 밤을 지새운 걸 기억하고 있다. 아니, 방석 위에서, 차 위에서, 측간에서――때로는 길 위에서도 열심히 책을 읽은 걸 기억하고 있다. 목검은 물론 '수호전' 이후로 두 번 다시 손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책 위에서 몇 번이나 울고 웃었다. 그건 말하자면 변신이었다. 책 속 인물로 바뀌는 일이었다. 그는 천축의 부처처럼 무수한 과거의 삶을 넘어섰다. 이반 카라마조프를, 햄릿을, 공작 안드레이를, 동 중앙을, 메피스토펠레스를, 여우 라이케네를――심지어 그들 중 어떤 이는 일시적 변신이라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어느 늦은 가을의 오후, 그는 용돈을 받기 위해 나이 먹은 숙부를 방문했다. 숙부는 나가슈 하기 사람이었다. 그는 숙부 앞에서 새삼스레 또 길게 유신의 대업을 논하고 위로는 무라타 세이후부터 아래로는 야마가타 아리토모에 이르기까지 나가슈의 인재를 절찬했다. 하지만 이런 허세의 감격으로 가득 찬 얼굴색이 창백한 고등학교 학생은 당시의 다이도지 신스케라기 보다는 되려 젊은 쥘리앵소렐――"적과 흑"의 주인공이었다.
 이런 신스케는 또 당연히 책 속에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적어도 책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은 구석은 하나도 없었다. 실제로 그는 인생을 알기 위해 거리 행인을 바라보는 법이 없었다. 되려 행인을 바라보는 걸로 책 안의 인생을 알려 했다. 그건 혹은 인생을 알기 위한 걸로는 멀리 돌아가는 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에게 거리의 행인이란 단순한 행인이었다. 그가 그들을 알기 위해서는――그들의 사랑을, 그들의 증오를, 그들의 허영심을 알기 위해서는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책을――특히 세기말 유럽이 낳은 소설이나 희곡을. 그는 그 차가운 빛 속에서 그의 앞에 전개되는 인간 희극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가 자연을 보는 눈에 약간의 날카로움을 더한 건 역시나 몇 권의 애독서――특히 겐로쿠의 하이카이였다. 그는 그런 걸 읽었기에 "도심에 가까운 산의 형태"를 "을금밭에 부는 가을 바람"을 "연안의 장미 속에서 흔들리는 돛"을" 어둠에 삼켜지는 고이의 목소리"――혼죠의 거리가 가르쳐주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이 "책에서 현실로"는 신스케에겐 항상 진리였다. 그는 그의 반생 사이서 몇몇의 여인에게 연애를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 하나 여성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적어도 책으로 배운 것 이외의 여성의 아름다움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는 햇살을 투과한 귀나 뺨에 떨어진 눈꺼풀의 그림자를 고티에나 발자크나 톨스토이에게 배웠다. 때문에 여자는 지금도 신스케에게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다. 만약 그런 걸 배우지 않았다면 그는 혹은 여자 말고 암컷만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빈곤한 신스케는 도무지 그가 읽고 싶은 모든 책을 살 수 없었다. 그런 이난을 겨우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도서관의 덕이 컸다. 둘로는 대여점의 덕이었다. 세 번째로는 인색하단 비웃음마저 부른 그의 절약 덕이었다. 그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도랑에 접한 대여점을, 사람 좋은 대여점 할머니를, 할머니가 부업으로 만든 비녀를. 할머니는 겨우 초등학교에 들어간 "꼬맹이"의 순수함을 믿었다. 하지만 그 "꼬맹이"는 어느 틈엔가 책을 찾는 척 훔쳐 읽는 걸 발명했다. 그는 또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헌책방만이 줄이어진 이십 년 전의 신보쵸도리를, 햇살을 받고 있는 지붕 위 구단자카의 경사를. 물론 당시의 신보쵸도리는 전철도 마차도 지나지 않았다. 그는――열두 살의 초등학생은 도시락이나 공책을 옆구리에 낀 채로 오오하시 도서관에 가기 위해 이 길을 몇 번이나 왕복했다. 길은 왕복해서 한 리 반이었다. 오오하시 도서관에서 제국 도서관으로. 그는 제국 도서관이 준 첫 번째 감명을 기억하고 있다――높은 천장에게 느낀 공포를, 커다란 창문에게 느낀 공포를, 무수한 의자를 가득 매운 무수한 사람에게 느낀 공포를. 하지만 공포는 다행이도 두세 번 다니는 사이에 소멸했다. 그는 곧장 관람실에, 철 계단에, 카탈로그 상자에, 지하 식당에 익숙해졌다. 또 대학 도서관이나 고등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는 그러한 도서관에서 몇 백 권의 모르는 책을 빌렸다. 또 그러한 책 안에서 몇 십 권의 모르는 책을 사랑했다. 하지만――
 하지만 그가 사랑한 건――거의 내용을 가리지 않고 책 그 자체를 사랑한 건 역시 자신이 산 책이었다. 신스케는 책을 사기 위해 카페에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용돈은 항상 부족했다. 그는 그 때문에 주에 세 번, 친척의 중학생에게 숫자(!)를 가르쳤다. 그래도 돈이 부족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새책이라도 파는 가격은 사는 가격의 절반 이상이 되는 법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줄곧 가지고 있던 책을 헌책방에 넘기는 건 그에게는 항상 비극이었다. 그는 어느 옅은 눈이 내리는 밤, 신보쵸도리의 고서점을 하나씩 엿보았다. 그런 가운데 어느 헌책방에서 "짜라투스트라"를 한 권 발견했다. 그것도 단순한 "짜라투스트라"가 아니었다. 두 달 정도 전에 그가 팔은 손때투성이 "짜라투스트라"였다. 그는 가게에 앉아 이 낡은 "짜라투스트라"를 다시 읽었다. 그러자 다시 읽으면 다시 읽을수록 그리움을 느꼈다.
 "이거 얼마죠?"
 십 분 가량 지난 후, 그는 헌책방의 여주인에게 "짜라투스트라"를 보여주고 있었다.
 "1엔 60전――아니, 오늘만 특별히 1엔 50전에 드리죠."
 신스케는 고작 70전에 이 책을 판 걸 기억했다. 하지만 판 가격의 두 배――1엔 40전까지 깎은 끝에 기어코 다시 한 번 구매하게 되었다. 눈 내리는 밤의 거리는 집들도 전철도 미묘하게 조용했다. 그는 이런 거리를 지나 혼고로 돌아가는 도중, 끝없이 자신의 품 안에서 강철색 표지를 한 "짜라투스트라"를 인식했다. 하지만 또 동시에 입안에는 몇 번이나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여섯 친구


 신스케는 재능이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는 친구를 만들 수 없었다. 설령 어떤 군자라도 소행 이외에 장점이 없는 청년은 그에게는 볼일이 없는 행인이었다. 아니 되려 얼굴을 볼 때마다 야유해주고 싶어지는 광대였다. 그건 태도점수 6점인 그에게는 당연한 태도임이 분명했다. 그는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몇 개의 학교를 나오는 동안에도 끝없이 그들을 비웃었다. 물론 그들 중에 어떤 이는 그의 분노에 화를 냈다. 하지만 또 그들 중 어떤 이는 그의 비웃음을 느끼기엔 너무나도 모범적으로 군자였다. 그는 "불쾌한 녀석"이라 불리는데 약간의 유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어떠한 비웃음도 효과를 내지 못 하는 건 스스로를 화나게 만들었다. 실제로 그런 군자 중 한 명――어느 고등학교 문과 학생은 리빙스턴의 숭배자였다. 같은 기숙사에 있던 신스케는 어느 날 그에게 진실인 양 바이런 또한 리빙스턴 전기를 읽고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는 허튼소리를 했다. 그 후로 20년이 지난 오늘, 이 리빙스턴 숭배자는 어느 기독교회의 기관 잡지서 여전히 리빙스턴을 찬미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의 문장은 이런 한 줄로 시작되고 있다――"악마적 시인 바이런마저 리빙스턴의 전기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는가?"!
 신스케는 재능이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는 친구를 만들 수 없었다. 설령 군자는 아니라 해도 지식적 욕구를 모르는 청년은 그에겐 역시 길거리의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친구에게 상냥한 감정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의 친구들은 청년다운 심장을 가지지 못한 청년이라도 좋았다. 아니, 소위 친구는 되려 그에겐 공포였다. 대신에 그의 친구는 두뇌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두뇌를――잘 만들어진 두뇌를. 그는 어떤 미소년보다 이런 두뇌의 소유주를 사랑했다. 또 동시에 어떤 군자보다도 이런 두뇌의 소유주를 미워했다. 실제로 그의 우정은 항상 사랑 속에 어느 정도의 증오를 품은 정열이었다. 신스케는 오늘도 이 정열 이외엔 우정이 없음을 믿고 있다. 적어도 이 정열 이외에 Herr und Knecht주권과 구속의 비린내를 두르지 않은 우정은 없다고 믿고 있다. 하물며 당시의 친구는 한편으론 서로 뒤섞일 수 없는 숙적이었다. 그는 그의 두뇌를 무기로 끝없이 그들과 격투했다. 휘트먼, 자유시, 창작적 진화――전장은 거의 온갖 곳에 있었다. 그는 그러한 전장서 그의 친구를 쓰러트리거나 그의 친구에게 쓰러지곤 했다. 이 정신적 격투는 무엇보다도 살육의 환희 때문에 이뤄지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저절로 새로운 관념이나 새로운 아름다움의 모습을 찾아낸 것도 사실이었다. 오전 세 시의 촛불은 그들의 논전을 얼마나 비추어주었던가. 무샤노코지 사네아츠의 작품은 얼마나 그들의 논전을 지배했는가――신스케는 선명한 구월의 어느 밤, 촛불에 모인 몇 마리나 되는 불나방을 기억하고 있다. 불나방은 깊은 어둠 속에서 불쑥 눈부시게 태어났다. 하지만 불에 닿자마자 거짓말처럼 버둥버둥 죽어 갔다. 그건 새삼스러워 할 만한 일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신스케는 오늘도 이 작은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이 신비하게 아름다운 불나방의 생사를 떠올릴 때마다 어째서인지 그의 마음 밑바닥에 약간의 쓸쓸함을 느꼈다………
 신스케는 재능이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는 친구를 만들 수 없었다. 기준은 단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 기준에도 전혀 예외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건 그와 그의 친구 사이를 절단하는 사회적 계급의 차별이었다. 신스케는 그와 태생이 비슷한 중류계급의 청년에겐 어떤 집착도 느끼지 못 했다. 하지만 그가 조금이라도 아는 상류 계급의 청년에겐――때로는 중류 상층 계급의 청년에게도 묘하게 남처럼 느껴지는 증오를 느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나태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겁쟁이였다. 또 그들 중 어떤 이는 관능주의의 노예였다. 하지만 그가 미워한 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되려 그보다도 무언가 막연한 것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 중 어떤 이도 그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로 이 "무언가"를 미워했다. 때문에 또 햐류 계급에――그들의 사회적 대척점에 병적인 실의를 느꼈다. 그는 그들에게 동정했다. 하지만 그의 동정도 분명 도움은 되지 않았다. 이 "무언가"는 악수하기 전에 항상 바늘처럼 그의 손을 찔렀다. 바람이 추운 어느 4월의 오후, 고등학교 학생이었던 그는 그들 중 한 명――어느 남작가의 장남과 강의 섬 절벽 위에 자리해 있었다. 눈앞에는 바로 아리소가 있었다. 그들은 "잠수하는" 소년들을 위해 동전 몇 장을 던졌다. 소년들은 동전이 떨어질 때마다 첨벙첨벙 바다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해녀 한 명만은 절벽 아래에 모닥불을 피운 채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다음엔 저 녀석도 날려주겠어."
 그의 친구는 한 장의 동화를 담배 상자 안 은박지로 감쌌다. 그리고 몸을 돌리더니 있는 힘껏 동전을 던졌다. 동전은 반짝반짝 빛나며 바람이 거세게 부는 파도 너머로 떨어졌다. 그러자 해녀는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들었다. 신스케는 아직도 입가에 잔혹한 웃음을 지은 친구를 또렷이 기억할 수 있다. 그의 친구는 남들 이상으로 어학 재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또 남들 이상으로 날카로운 어금니를 지니고 있었다…………
 (이하 속출)

 추신 이 소설은 앞으로 서너 배는 계속할 생각이다. 지금 실은 것만으로도 '다이도지 신스케의 반생"이란 제목에는 충분지 못할 테지만 달리 바꿀 제목도 없어 도리 없이 쓰기로 했다. "다이도지 신스케의 반생"의 1편이라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다이쇼 13년 12월 9일, 작가 기록.

  1. 한 채를 벽으로 칸막이해서 몇 가구로 가른 긴 집.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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