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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시로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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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어느 봄의 늦은 오후입니다. 시로란 개는 땅에 코를 얹고서 조용한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좁은 거리의 양옆에는 싹이 돋은 나무 울타리가 이어져 있고 그 울타리 사이서는 힐끔힐끔 벚꽃도 피어 있습니다. 시로는 울타리를 따라 불쑥 뒷골목으로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돌리다 마치 깜짝 놀라기라도 한 것처럼 불쑥 멈춰 섰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그 뒷골목의 십 미터 언저리에는 시루시반텐을 입은 개장수 하나가 함정을 뒤에 숨은 채로 한 검은 개를 노리고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검은 개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개장수가 던져 준 빵을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로가 놀란 건 그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잘 모르는 개라면 또 모를까 지금 개장수가 노리는 개는 옆집이 기르는 쿠로였으니까요. 매일 아침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서로 냄새를 맡는 아주 친한 쿠로 말입니다.
 시로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쿠로! 위험해!"하고 외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박자에 개장수가 시로를 보았습니다. "가르쳐줘봐! 네놈부터 먼저 잡아 줄 테니까"――개장수의 눈에는 그런 위협이 드리워 있었습니다. 시로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그만 짖는 것도 잊었습니다. 아니, 잊기만 했을까요. 한 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시로는 개장수에게 눈을 주면서 천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울타리 뒤로 개장수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불쌍한 쿠로를 남긴 채로 일사불란 도망쳤습니다.
 그 순간 함정이 날아온 걸 테지요. 이어서 쿠로가 우는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지만 시로는 걸음을 돌리기는 고사하고 걸음을 멈추려는 기척도 없습니다. 진창을 뛰어넘고 돌을 걷어차고 거리의 밧줄을 빠지고 쓰레기통을 뒤집고 돌아보지 않고 줄곧 도망쳤습니다. 언덕을 내려가는 걸 보세요! 자동차에 치일 뻔했네요! 시로는 살기 위해 신경 쓸 새가 아니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아니, 시로의 귀 밑바닥에는 아직도 쿠로가 우는소리가 등에처럼 맴돌고 있었습니다.
 "깽깽, 살려줘! 깽깽, 살려줘!"
 


 시로는 헐떡거리며 주인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검은 울타리 아래의 통로를 빠져 창고를 돌면 개집이 있는 뒤뜰이 나옵니다. 시로는 거의 바람처럼 뒤뜰의 잔디에 달려들었습니다. 여기까지 도망쳤으니 함정에 걸릴 일도 없겠지요. 더군다나 푸른 잔디서는 다행히 아가씨랑 도련님도 공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걸 본 시로의 기쁨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시로는 꼬리를 흔들며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아가씨! 도련님! 오늘은 개장수를 만났어요."
 시로는 두 사람을 올려보고는 숨도 쉬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아가씨나 도련님은 강아지 말을 알지 못하니 멍멍으로 들리기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어떻게 된 건지 아가씨도 도련님도 놀란 것처럼 시로를 보며 머리도 쓰다듬어주지 않습니다. 시로는 이상해하면서 다시 한 번 두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아가씨! 아가씨는 개장수를 아시나요? 무서운 녀석이라고요. 도련님! 저는 살았지만 옆집 쿠로는 잡혀버렸어요."
 그럼에도 아가씨와 도련님은 얼굴을 마주할 뿐입니다. 더군다나 두 사람은 잠시 후 묘한 말마저 시작했습니다.
 "누구 개일까, 하루오?"
 "누구 개일까, 누나?"
 누구 개? 이번에는 시로 쪽이 놀랐습니다.(시로는 아가씨와 도련님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개의 말을 알지 못 하니까 개도 우리 말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개가 기술을 익히는 건 우리의 말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개의 말을 들을 수 없으니까 어둠 속에서 구분하는 일이나 희미한 냄새를 맡는 등 개가 가르쳐주는 기술은 하나도 익힐 수 없습니다.)
 "누구 개라니요? 저예요! 시로!"
 하지만 아가씨는 여전히 꺼림칙하다는 양 개를 보고 있습니다.
 "옆집 쿠로의 형제일까?"
 "쿠로의 형제일지 모르겠다." 도련님도 배트를 장난감 삼아 생각에 잠겨 답했습니다.
 "이 녀석도 온몸이 검은색이니까."
 시로는 불쑥 온몸의 톨이 곤두서는 걸 느꼈습니다. 검은색! 그럴 리가 없습니다. 시로는 어릴 적부터 우유 같은 하얀색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앞발을 보니 아니――앞발만이 아닙니다. 가슴도, 배도, 뒷다리도 품위 있게 뻗은 꼬리도 모두 냄비 밑바닥부터 새까맣습니다. 새까맣다니! 새까맣다니! 시로는 미친 듯이 펄쩍펄쩍 뛰고 빙글빙글 돌면서 열심히 외쳤습니다.
 "어머, 어쩌면 좋지? 하루오, 이 개 분명 미친 개일 거야."
 아가씨는 그 자리에 서서 당장이라도 울 거 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하지만 도련님은 용맹했습니다. 시로는 곧장 왼 어깨를 배트로 얻어맞았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머리 위로 날아옵니다. 시로는 그 아래를 지나자마자 온 방향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멀게 도망 치진 못 했습니다. 잔디 끝자락의 종려나무 아래에 크림색으로 칠해진 개집이 있습니다. 시로는 개집으로 오고는 작은 주인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아가씨! 도련님! 저는 그 시로에요. 아무리 새까맣더라도 역시 그 시로라고요."
 시로의 목소리는 무어라 말로 다 못 할 슬픔과 분노로 떨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가씨나 도련님에겐 그런 마음이 전해질 리도 없습니다. 실제로 아가씨는 독을 머금은 것처럼
 "아직도 저기서 짖고 있어. 정말 뻔뻔한 들개다"하고 말하며 발을 구르고 있습니다. 도련님도――도련님은 길의 모래를 줍더니 있는 힘껏 개에게 던졌습니다.
 "이 똥개가! 아직도 뻔뻔하네. 이래도 안 가? 이래도 안 가? 모래는 계속 던져졌습니다. 개중에는 시로의 귀안을 긁어 피를 내는 것도 있었습니다. 시로는 기어코 꼬리를 말고 울타리 밖으로 나갔습니다. 울타리 밖에는 봄볕에 은빛 가루를 뿌리는 배추흰나비 한 마리가 느긋하게 살랑이고 있었습니다.
 "아아, 오늘부터 잘 곳이 없는 개가 되는가?"
 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한동안 전봇대 아래서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았습니다.
 


 아가씨나 도련님에게 쫓겨난 시로는 온 도쿄를 어슬렁거렸습니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새까매진 모습은 잊을 수 없었습니다. 시로는 손님의 얼굴을 비추는 이발소 거울을 두려워했습니다. 비가 그친 하늘을 비추는 거리의 물웅덩이를 두려워했습니다. 길거리 젊은이를 비추는 쇼윈도의 유리를 무서워했습니다. 아니, 카페 테이블이나 흑맥주를 품고 있는 컵마저――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걸까요? 저 자동차를 보세요. 네, 저 공원 밖에 주차된 커다랗고 검은 자동차 말이에요. 광택을 낸 자동차 차체는 지금도 옆을 걷는 시로의 모습을 비추고 있습니다――또렷이, 거울처럼. 시로의 모습을 비추는 건 손님을 기다리는 자동차처럼 온갖 곳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만약 저걸 보았다면 시로는 얼마나 겁을 먹었을까요. 자, 시로의 얼굴을 보시지요. 시로는 괴롭게 신음하고는 곧장 공원 안으로 달려갔습니다.
 공원 안에선 버즘나무의 어린잎이 작은 바람에 살랑이고 있습니다. 시로는 고개를 조아린 채로 나무 사이를 걸었습니다. 여기에는 다행히 연못 이외엔 모습을 비출만한 건 보이지 않습니다. 소리라곤 하얀 장미에 모이는 벌들의 날개 소리가 전부였습니다. 시로는 평화로운 공원 공기에 한동안 추한 검은 개가 된 나날의 슬픔도 잊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은 오 분이나 채 이어졌을까요. 시로는 단지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벤치가 이어진 거리에 나왔습니다. 그러자 골목 안에서 거친 개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깽깽, 살려줘! 깽깽, 살려줘!"
 시로는 그만 몸을 떨었습니다. 그 목소리가 시로의 마음속에 무시무시했던 쿠로의 마지막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오르게 한 것입니다. 시로는 눈을 감은 채로 본래 온 방향으로 도망 치려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아주 잠깐의 일이었습니다. 시로는 굉장히 으르렁거리며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깽깽, 살려줘! 깽깽, 살려줘!"
 그 목소리는 시로의 귀에는 이렇게 들린 것입니다.
 "깽깽. 겁쟁이가 되지 마라! 깽, 겁쟁이가 되지 마라!"
 시로는 머리를 낮추자마자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그쪽으로 가보니 시로의 눈앞에 나타난 건 개장수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학교에서 귀가하는 듯한 서양옷 차림을 한 아이 둘셋이 목에 줄을 매단 갈색 강아지를 끌면서 소란을 떠는 것이었습니다. 강아지는 끌려가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살려줘"하고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웃거나 목소리를 높이거나 혹은 강아지 배를 걷어차기만 할 뿐입니다.
 시로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아이들을 향해 짖었습니다. 허를 찔린 아이들은 보통 놀란 게 아닙니다. 또 실제로 시로의 모습은 불처럼 타오르는 눈 색도 그렇고 칼날같이 드러난 송곳니도 그렇고 지금 당장 물어뜯으려 들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험악했습니다. 아이들은 네 방향으로 도망쳤습니다. 개중에는 너무 놀란 나머지 길가 화단에 달려든 아이도 있습니다. 시로는 잠시간 쫓아가다가 강아지를 돌아보고는 꾸짖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따라와라. 집에 데려다줄 테니까."
 시로는 왔던 길을 다시 똑바로 달렸습니다. 갈색 강아지도 기쁜 듯이 벤치를 지나고 장미를 걷어차며 시로에게 지지 않게 달렸습니다. 아직 목에 걸고 있는 긴 줄을 질질 끌면서.

       ×          ×          ×

 두세 시간 후, 시로는 빈곤한 카페 앞에 갈색 강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낮에도 어두컴컴한 카페 안에는 이미 붉은 전등이 들어와 있었고 소리가 갈라진 측음기에선 나니와부시가 흐르는 듯했습니다. 강아지는 즐거운 듯 꼬리를 흔들며 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여기 살아요. 이 다이쇼켄이란 카페 안에서요――아저씨는 어디 사세요?"
 "아저씨?――아저씨는 저기 먼 곳에 살아."
 시로는 쓸쓸히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럼 아저씨는 이만 집으로 가볼게."
 "잠시만요. 아저씨네 주인은 무서운 사람이에요?"
 "주인? 그런 건 왜 물어?"
 "만약 주인이 안 무서우면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고 가세요. 그리고 저희 어머니도 제 목숨을 구해준 사례를 하게 해주세요. 저희 집에는 우유도 카레도 비프스테이크도 먹을 게 잔뜩 있으니까요."
 "고마워, 진짜 고마워. 근데 아저씨 볼일 있으니까 밥은 나중에 먹자――그럼 어머니께 말 잘 부탁드린다."
 시로는 잠시 하늘을 보고는 조용히 돌길 위를 걸었습니다. 하늘에는 카페 지붕 끝자락에서 초승달이 슬슬 빛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강아지는 슬픈 듯이 코를 벌렁였습니다.
 "그럼 이름만이라도 들려주세요. 제 이름은 나폴레옹이에요. 나포나 나포공이라 불리는데――아저씨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저씨는 시로라고 해."
 "시로――요? 시로라니 신기하네요. 아저씨는 죄 검은색이잖아요."
 시로는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래도 시로야."
 "그럼 시로 아저씨라고 할게요. 시로 아저씨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한 번 오셔야 해요."
 "그래, 나포공. 잘 있어!"
 "잘 가세요, 시로 아저씨! 또 봬요!"
 


 그 후 시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그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여러 신문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강은 여러분도 알고 있겠지요. 번번이 위태로운 목숨을 구한 용맹한 한 마리 검은 개를. 또 한때 '의견義犬'이란 활동사진이 유행한걸. 그 검은 개가 바로 시로였답니다. 하지만 아직 불행히도 알지 못 하는 분이 계시다면 부디 아래에 인용한 신문 기사를 읽어주세요.

 도쿄니치니치신분. 어제 18일(5월) 오전 8시 40분, 오우센노보리 급행열차가 타바에키 부근의 건널목을 통과할 때 건널목지기의 과실로 타바타히후미샤 사원 시바야마 테츠타로의 장남 사네히코(네 살)이 열차가 지나는 선로 안으로 들어가 자칫 깔릴 뻔했다. 그때 용맹한 검은 개 한 마리가 번개처럼 건널목을 갈라 눈앞으로 다가온 열차의 차륜에서 훌륭히 사네히코를 구해냈다. 이 용맹한 검은 개는 사람들이 술렁이는 사이에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기에 표창을 주지 못 해 당국이 크게 곤란해하고 있다.
 도쿄아사히신분. 카루이자와에서 피서 중인 미국 부호 에드워드 버클레 씨의 부인은 페르시아산 고양이를 총애했다. 그러던 최근 별장에 일곱 척 가량의 큰 뱀이 나타나 베란다에 있던 고양이를 삼키려 했다. 그때 처음 보는 검은 개 한 마리가 불쑥 고양이를 구하러 달려와 이십 분에 걸친 분투 끝에 기어코 그 뱀을 물어 죽였다. 하지만 이 기특한 개는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었기에 부인은 오천 달러의 상금을 걸고 개의 행방을 찾고 있다.
 고쿠민신분. 일본 알프스 횡단 중 일시 행방불명된 제1고등학교 세 명은 7일(8월) 카미코치의 온천에 이르렀다. 일행은 호타카야마와 야리게타케 사이서 길을 잃고 폭풍우에 천막 텐트나 식량 등을 빼앗긴 탓에 거의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검은 개 한 마리가 일행이 헤매던 계곡에 나타나 마치 안내라도 해주듯이 앞을 나서 걸었다. 일행은 이 개의 뒤를 쫓아 하루 넘게 걸은 끝에 겨우 카미코치에 이르렀다. 하지만 개는 눈앞에 온천 여관의 지붕이 보이자 기쁘게 짖은 후로 다시 얼룩조리대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고 한다. 일행은 이 개가 온 게 신의 가호라 믿고 있다.
 지지신보. 13일(9월) 십여 명의 사망자를 낸 나고야시 대화제에서 요코제키 나고야시 시장은 사랑하는 아이를 잃을 뻔했다. 아들 타케노리(삼 세)는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불이 붙은 2층에 남겨져 불탈 뻔했지만 한 검은 개 덕에 목숨을 부지했다. 시장은 앞으로 나고야시에 한해서는 들개 사살을 금한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분. 오다와라마치 성내 공원에 연일의 인기를 모으던 미야기 순회 동물원의 시베리아산 늑대가 25일(10월) 오후 2시경 불쑥 우리를 박살 내고 문지기 두 명을 부상 입힌 후 하코네 방향으로 도주했다. 오다와라서는 비상 동원을 통해 인근 전체에 경계선을 깔았다. 그러자 오후 네 시 반경, 상기한 늑대는 쥬지마치에 나타나 한 검은 개와 싸움을 시작했다. 검은 개는 악전을 거듭한 끝에 끝내 적을 물어 제압하는데 이르렀다. 그때 경계 중이던 순사가 달려와 곧 늑대를 총살했다. 이 늑대는 루프스 지간틱스라 해서 가장 흉악한 종족이라고 한다. 또 미야기 동물원 주인은 늑대를 총살한 게 부당하다며 오다와라 서장을 상대로 고소를 했다고 한다. 등등.
 

다섯


 어느 가을의 한밤중입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시로는 주인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아가씨나 도련님은 진작에 방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니, 지금은 아무도 일어나 있지 않을 테지요. 조용한 뒤뜰의 잔디 위에도 단지 높은 종려나무의 가지에 하얀 달이 하나 떠올라 있을 뿐입니다. 시로는 옛날에 살던 개집 앞에서 이슬에 젖은 몸을 눕혔습니다. 그리고 쓸쓸한 달 상대로 이렇게 혼잣말을 시작했죠.
 "달님! 달님! 저는 쿠로를 죽게 두었습니다. 제 몸이 새까맣게 물든 것도 그 탓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아가씨나 도련님과 헤어진 이후로 갖은 위험과 싸웠습니다. 그건 어쩌다 우연한 계기로라도 그을린 것보다 더 검은 몸을 보면 겁이 많았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끝내는 검은 게 싫어――이 검은 저를 죽이기 위해 때로는 불속으로 뛰어들고 때로는 늑대와 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기하리만치 어떤 강적도 제 목숨을 빼앗지는 못 했습니다. 죽음도 제 얼굴을 보고는 어딘가로 도망 쳐버린 걸 테지요. 저는 기어코 괴로운 나머지 자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단지 자살을 하더라도 귀여워해 주던 주인은 한 번이나마 보고 싶습니다. 물론 아가씨나 도련님은 제 모습을 보고는 또 들개라 생각할 테지요. 어쩌면 도련님의 배트에 맞아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바라는 바입니다. 달님! 달님! 저는 주인의 얼굴을 보는 것 이외엔 어떤 바람도 없습니다. 그걸 위해 오늘 밤은 이 먼 곳까지 다시 돌아왔습니다. 부디 밤이 걷히는 대로 아가씨와 도련님을 뵙게 해주십시오.
 시로는 혼잣말을 끝내고는 잔디에 누워 어느 틈엔가 푹 잠에 들었습니다.

       ×          ×          ×

 "진짜 놀랐다, 하루오."
 "어떻게 된 걸까, 누나."
 시로는 작은 주인의 목소리에 번쩍 눈을 떴습니다. 잘 보니 아가씨와 도련님이 개집 앞에 자리한 채로 신기하다는 양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로는 한 번 든 고개를 다시 한 번 잔디 위로 낮추었습니다. 아가씨와 도련님은 시로가 새까맣게 변했을 때에도 역시나 지금처럼 놀랐습니다. 그때의 슬픔을 생각하면――시로는 이제 돌아온 게 후회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 순간입니다. 도련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소리를 높였습니다.
 "아빠! 엄마! 시로가 다시 돌아왔어요!"
 시로가! 시로는 그만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도망친다고 생각한 거겠죠. 아가씨는 두 손을 뻗어 시로의 목을 꼭 잡았습니다. 동시에 시로는 아가씨의 눈에, 가만히 자신의 눈을 맞췄습니다. 아가씨의 검은 눈동자에는 개집이 또렷이 담겨 있었습니다. 높은 종려나무 아래에 놓은 크림색 개집이――그런 건 당연할 테지요. 하지만 그 개집 앞에는 쌀알 정도로 작은 하얀 개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깨끗하고 홀쭉한 개 한 마리가――시로는 단지 멍하니 이 개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머, 시로 운다."
 아가씨는 시로를 품은 채로 아가씨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도련님은――보시지요. 도련님이 허세 부리는 모습을!
 "헹, 누나도 울고 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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