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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번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속 징강당잡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by noh0058 2021.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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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나츠메 선생님의 글씨

 내게도 이따금 나츠메 선생님의 글씨를 검정해달라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안광으로는 도무지 분명히 검정할 수 없다. 단지 새빨간 위작만은 저절로 정체를 드러내준다. 나는 요즘 그런 가짜 중에서 결코 위작이라 생각할 수 없는 부채 하나를 만났다. 확실히 이 부채에 적힌 구는 소세키란 이름은 붙어 있어도 나츠메 선생님이 쓴 게 아니다. 하지만 또 구나 글씨체를 보면 나츠메 선생님의 위작을 만들기 위해 쓴 게 아닌 것도 확실하다. 이 소세키란 누구인가? 태백당 삼세 무라타 토린 또한 첫 호가 소세키였다. 하지만 내가 본 부채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그 위작 아닌 위작이라 불러야 할 부채의 필자를 정말이지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참고삼아 말한다. 나츠메 선생님의 글씨도 근년 들어 위작이 늘었다고 한다.(다이쇼 14년 10월 20일)

     둘 서리가 오기 전

 매일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끼가 가장 아름다운 건 서리가 오기 전――즉 10월 말이다. 그리고 서리가 오기 전에 "홍가시나무"나 "후피향나무"가 붉게 싹을 피우고 있는 건 아름답기보다 되려 애처로울 따름이다.(같은 해 11월 10일)

     셋 징강당

 내게 왜 징강당 같은 호를 쓰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이유라 할 정도의 사연은 없다. 단지 언제인가 막연히 징강당이란 호를 가지게 되었다. 언젠가 사사키 모사쿠 군은 "스미에란 게이샤한테 반한 건가요?"하고 물었다. 물론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이따금 본명 이외에 괜한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나 싶을 때가 있다.(11월12일)

     넷 아호

 하지만 아호란 역시 작품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개성을 드러낸다. 히시다 슌소는 어릴 시절에는 준주란 호를 썼다. 어린 시절의 히시다는 필시 잘 달렸을 테지. 그러고 보면 마사무네 하쿠쵸 씨도 과거엔 백총이란 호를 썼던 거 같다. 이는 내 기억이 잘못된 걸지도 모르다. 하지만 만약 잘못되지 않았다면 이 호 또한 어릴 적의 마사무네 씨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리라. 나는 과거 문인들이 아호를 몇 개나 가지고 있었던 게 단순히 도락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취미가 진보함에 따라 저절로 만들어진 거라 본다.(동상) 

     다섯 실러의 두개골

 실러의 유해는 그가 떠난 해――1785년 이후로 바이마르 대공작 가문의 영묘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후, 그 영묘를 재건축할 때에 두개골만은 괴테에게 보내게 되었다. 괴테는 그의 책상 위에 이 옛친구의 두개골을 두고 "실러"란 제목의 시를 썼다. 그뿐일까. 에벨라인은 고생스럽게도 "실러의 두개골을 바라보는 괴테"란 반신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건 실러가 아닌 다른 사람의 두개골이었다.(진짜 실러의 두개골은 얼마 전 튀빙겐의 해부학 교수에게 발견되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고 악마의 장난인가 싶었다. 다른 사람의 두개골에 감격한 괴테는 물론 우습게 보이리라. 하지만 그 두개골이 없었다면 괴테 시집은 적어도 "실러" 한 편이 부족했을 터이다.(11월 20일)

     여섯 미인 재앙

 괴테를 바이마르 궁정에서 내보낸 건 폰 하이겐도르프 부인이다. 심지어 또 쇼펜하우어에게 일생일대의 연가를 쓰게 한 것도 역시 이 폰 하이겐도르프 부인이다. 전자에 반감을 품은 여성은 그녀 이외에 없었던 모양이다. 후자에게 호감을 준 건 물론 그녀 한 명뿐이다. 어찌 되었든 두 천재를 머리 아프게 한 것만으로도 평범한 여자는 아니었던 걸 테지. 실제로 사진을 보면 눈이 크고 코가 뾰족한 참으로 특징 있는 미인이다.(21일)

     일곱 실수

 나는 교사를 하던 적에 넥타이를 잊은 채로 태연히 거리를 걸은 적이 있다. 그걸 다행히 발견해준 건 당년의 스가 타다오 군이었다. 하지만 그 후 학교에 가보니 이번엔 물리 교관 한 명이 단추를 채우는 걸 잊었는지 넥타이만 셔츠에 걸려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어느 쪽이 우스웠을까.(22일)

     여덟 동상

 나는 키쿠치와 나가사키에 갈 적에 기차 안에서 크게 문예론을 나누었다. 그때 문득 정신이 들고 보니 키쿠치는 어느 틈엔가 양손에 파라솔 하나를 들고 있었다. 나는 물론 "이봐"하고 말했다. 그러자 키쿠치는 쓴웃음을 지으며 옆에 있던 부인에게 파라솔을 돌려주었다. 나는 곧장 문예론 대신에 키쿠치의 실수를 찔렀다. 키쿠치가 항복한 건 이때뿐이다. 하지만 나가사키에 이를 때가 되니 내가 우에노야에 우비를 두고 온 걸 깨달아버렸다. 키쿠치가 그런 걸 두고 볼 리도 없어서 신경을 거스르듯 크게 웃으며 말하길 "너도 나한테 뭐라 할 처지는 아니다."(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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